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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말

아티스트 손정기 ①

고요한 나무가 던지는 치열한 물음

글·사진 : 서경리 기자

손정기
그림 그리기 전 드럼 연주자로 음악 활동을 했다.
군대에서 손을 다쳐 음악의 길을 잠시 멈춰야 했을 때 붓을 들었다.
자발적 침묵과 고독을 통해 내면을 탐구하고 그림을 매개로 물음을 던지며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질문
길쭉한 나무가 빼곡하게 들어찬 흑백 그림. 거대한 숲속에 한 사람이 서 있다. 방금 저 숲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숲으로 들어가려는 건지 알 길이 없다. 그는 걷거나 뛰거나, 울거나 소리치거나, 혹은 고요히 숲에 ‘있다’.

판교 헤드비갤러리에서 열린 〈MONO GREEN〉전. 손정기 작가의 그림 앞에 놓인 ‘사색의 의자’에 앉아 한참을 생각에 빠졌다. 나는 그림 속 저 사람일까, 나무일까, 혹은 지나는 바람일까. 알 수 없는 고독이 내 안에 침잠해 사색의 물꼬를 텄다. 하얀 바탕 위 툭 그어진 선 하나가 불러온 고요한 사유의 시간이다.

그림은 순간을 담아내지만, 그 안에 무수한 질문을 품고 있다. 손정기 작가가 그림으로 사유의 시간을 만들어내기까지는 삶에 대한 치열한 물음이 있었다. 그 물음이 투영된 그의 작품은 그가 고민하면서 집요하게 탐구해온 순간이자 여정이며 기록이다.

처음에는 사람 얼굴을, 그다음엔 자연을, 자연에서 우주로 시야를 확장했다가 다시 돌아온 건 나무 그리고 사람이다. 그의 세계관은 하나의 원으로 이어진다. 그 원 안에서 하고자 하는 말은 명료하다. ‘한 존재가 생의 한가운데 살아 있다’는 것. 그리고 질문을 던진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더 나아가 ‘유한한 생을 가진 존재로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절제된 선, 여백에서 수많은 생각이 오고갑니다.
작품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쓸쓸하기도 하고요. 제목들도 그래요.
‘홀로 걷는 길’ ‘침묵으로의 여정’ 같은.


“제 작품을 보고 가장 많이 하는 말이 ‘고독하다’ ‘쓸쓸하다’ ‘나 같다’입니다. 자발적 침묵과 고독의 시간을 가지면서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고, 그러다 보면 나와 나의 삶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어요. 현대인은 먹고살기 바쁘다 보니 이런 시간을 갖기가 쉽지 않아요.”


내면에 고독이 있다지만, 자발적으로 그 안에 들어가기란 쉽지 않죠.

“제 그림은 내면으로 들어가기 위해 문 앞까지 데려다주는 역할을 해요. 그다음 여정은 홀로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고독은 소모적인 게 아니라 나를 채울 수 있는 시간이에요. 고독을 피하지 않고 마주하고 받아들였으면 좋겠어요. 고독의 시간에 잠식되는 게 아니라 그 시간을 즐기는 방법을 터득해내는 것이죠. 저 또한 그 시간을 얻기 위해 그림을 그리고 있고요.”


나무로 빼곡한 숲, 그 앞에 홀로 서 있거나, 웅크리거나 무릎 꿇은 사람을 보면 자연 앞에 나약한 한 존재로 느껴집니다. 그러면서도 끝끝내 살아낸다는 점에서 강인하게 읽히고요.

“나무와 나무 사이에 사람이 걸어가고 있는 건 군중 속에서 홀로 고독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으로도 볼 수 있어요. 숲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 숲속에서 걸어 나오는 사람, 숲에 머물러 있는 사람, 그 자체가 인생의 사색의 연속이고 과정이에요. 나만의 고독을 안고 가는 여정이죠. 사람마다 혼자만의 고독이 있다고 생각해요. 분명 그들에게도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고, 사랑하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어도 내면엔 외로움이 있어요. 그림에서 사람을 한 명만 그리는 이유는 나 혼자만의 시간을 느껴봤으면 하는 바람에서예요.”


나무는 어떤 의미입니까.

“나무일 수도, 사람일 수도, 사회일 수도 있고, 인생을 살아가면서 맞닥뜨리는 사회적 요소일 수도 있어요. 나무도 숨 쉬고 움직이잖아요. 살아서 생장하는 존재로서 사람과 나무는 같다고 생각해요. 가지가 부러지고 꺾여도 나무는 나무잖아요. 사람도 그래요. 모자라고 비어 있어도 살아가는 존재로서 우리는 사람이에요.”


표현 기법에 변화가 느껴집니다. 무엇보다 선이 간결하고 여백이 많아졌어요. 예전에는 색을 많이 썼지만, 지금은 흑백의 농담으로 표현하는 것도 다르고요.

“예전에는 컬러도 많이 사용하고 보기 좋은 그림을 많이 그렸어요. 시간이 지나며 생각이 쌓이다 보니 그림도 차차 바뀌더군요. 표현 기법에서도 펜을 주로 썼는데, 바닥의 질감을 보여주는 데 한계를 느껴서 아크릴을 선택하게 됐고요. 하고 싶은 말이 많이 없었을 때는 보여주기에 치중했는데 하고 싶은 말이 많아지면서 오히려 보여주는 부분에서 심플해졌어요.”


역설적으로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하지 않는 말이 더 많아졌다’로 들리는데요.

“영화감독 드니 빌뇌브는 절제된 미장센 안에서 메시지를 전달해요. 그의 작품을 보며 느꼈어요. 오히려 심플하게 풀어내는 게 더욱 강렬하게 다가온다는 것을. 하고 싶은 말만 담아내자, ‘미니멀리즘의 철학’이라고 하죠. ‘삶에서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라는 질문을 바꿔 물으면 ‘무엇이 필요 없을까’로 연결돼요. 필요 없는 걸 지워가다 보니 가장 필요한 하나만 남더군요. 작품의 메시지도 간결해졌고요. 하고 싶은 말이 많아도, 딱 할 말만 하게 되는. 딱히 기점이랄 건 없어요. 작업이 그래요. 지속적으로 하면서 점차 바뀌어온 과정입니다.”


작품을 보는 내내 수없는 질문이 오가며 나를 들여다보게 됩니다.

“그림과 그 그림이 던지는 질문을 통해 마음이 복잡해졌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이 복잡해진다는 것은 그 질문에 대해 깊이 고민해보지 않았다는 의미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질문을 품고 삶으로 돌아가 천천히 고민하면서 스스로 해답을 찾아가며, 그림을 대하기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삶의 부분들을 찾아내 보다 더 풍요로운 인생을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SNS에서 작품을 보고 위로와 위안을 얻었다는 말이 줄을 이어요. 작품을 한 번 보기보다 여러 번 오랜 시간을 두고 보며 느끼는 바가 있죠. 마침 이번 전시가 열리는 갤러리에 ‘사색의 의자’를 두었더군요. 의자에 앉아 작품을 보면서 내면의 나와 대화를 나눠보라는 취지겠고요.

“그들에게도 이런 시간과 대화, 기회와 공간이 필요했구나, 갈구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살아가며 쉽게 던지는 질문들이 아니잖아요. ‘고독하니?’ ‘삶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인생 그리고 죽음은 어떤 의미지?’ 그동안 해오지 않았던 물음을 작품을 보는 동안 던져봤으면 하는 거죠. 우리에겐 이런 사색의 시간이 필요해요. 자신을 마주하고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요.”

〈나무의 말, 아티스트 손정기 2편으로 이어집니다.〉
  • 2022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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