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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말

‘전진소녀’ 이아진 목수 ①

열여덟 살, 나는 목수가 되었습니다

글 : 선수현 기자  / 사진 : 서경리 기자

이아진
열여덟 살, 아빠를 따라 방문한 건설 현장에 반해 빌더 목수가 됐다. 나무가 주는 편안함이 좋아 경량 목조주택을 짓기 시작했다. 유튜브 채널 〈전진소녀의 성장일기〉에서 꿈을 향해 달리는 과정을 보여주고, 〈인간극장〉 〈아무튼 출근!〉 〈너의 목소리가 보여〉 등의 방송에도 출연했다.

#쓰임
앳된 얼굴에 부드러운 손, 거친 공사 현장과는 이질감이 느껴지는 청년이 눈에 띈다. 하얀 안전모에는 직접 그린 노란 꽃과 전진을 뜻하는 ‘JJ’가 적혀 있다. 제일 좋아하는 장비는 성인이 된 기념으로 아빠에게 선물 받은 핑크색 망치다. 스물한 살 목수 이아진 씨는 소품 하나도 개성 넘친다.

현장 선배들을 ‘행님’ 하고 부르는 그의 행동은 여느 목수와 다르지 않다. 허리에 찬 툴벨트에는 언제든 척척 꺼내 쓸 수 있는 각종 공구가 들어 있다. 못을 박는 네일건 사용이 거침없고 각도절단기로 수십 개의 나무도 금세 동강 낸다. 작업 틈틈이 지시 사항을 꼼꼼하게 메모하는 데서 제법 숙련된 목수 티가 난다. 주머니 속에 가득 채워둔 사탕과 과자로 중간중간 체력을 보충하는 노하우도 지녔다. 아직 적응하지 못한 게 있다면 행님들이 한 사발씩 뚝딱 비우는 선지해장국 정도.

하루하루 값진 땀을 흘리는 현장이지만 여전히 목수를 가볍게 여기는 편견이 있다. 이아진 씨는 ‘노가다’란 단어로 건축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노력이 폄하되는 걸 원치 않는다. 오히려 사람을 위한 공간을 창조하는 목수이기에 “프로페셔널한 기술직인 동시에 자기만의 철학을 가진 예술가”라고 칭한다. 그 역시 스스로의 신념을 만들어가며 ‘사람을 위한 예술’이란 꿈에 한 걸음 더 다가서고 있다.



어제까지 빡빡한 육체노동이 이어졌다고요, 전혀 지친 기색이 없네요?

“일이 재밌거든요. 어제는 경북 영양군에서 골조부터 마감까지 한 달가량 일하다 돌아왔어요. 생각보다 머리 쓰는 작업이 많아 몸의 피로가 더해지면 힘들기도 했는데 이제 극복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커져서 그런가 봐요. 처음엔 주어진 일을 보조만 했는데 이제 스스로 시뮬레이션이 되고 내일은 어디까지 할지 현장의 숲을 보게 되니까 안 지쳐요.”


머리 쓰는 작업이 많다니,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이죠?

“목수라고 하면 톱질하고 망치질만 한다고 생각하는데 집을 지을 때 그건 20% 정도에 불과해요. 나머지는 도면을 그리고 계산하는 작업이 많아요. 저는 몸 쓰는 일을 좋아해서 나무를 자르고 만들고 싶었는데 정작 알아야 할 것도, 외워야 할 것도 많더라고요. 그런 게 중요한 걸 아니까 밤마다 공부하게 됐어요. 팀장님을 귀찮게 하며 물어보고, 사수분들 하는 걸 눈여겨봤다가 집에 와서 똑같이 따라 하기도 하고요.”


열여덟 살에 목수가 됐어요. 또래 친구들은 학교에 다니며 공부할 때인데요.

“열다섯 살에 호주로 유학을 갔어요. 호주에서는 내 생각을 물어보는 과제와 어떻게 생각하고 풀어나가고 싶은지 방향을 묻는 수업이 많았어요. 나한테 맞는 공부를 찾으면서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알게 됐어요. 미술 수업이 재밌어 건축에 관심을 가졌죠. 그런데 막상 미대에 진학하거나 건축회사에 취업하는 게 내가 원하는 삶인지 의문이 들더군요. 건축을 하고 싶은 거지, 건축가가 되고 싶은 게 아니었거든요. 보통 ‘꿈이 뭐야?’라고 물으면 특정 직업을 말하는데 제 꿈은 건축가란 이름표를 받는 게 아니었어요. 대학에서 배우는 게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질까 싶었죠. 가슴이 반응하는 대로 먼저 배우고 싶은 걸 찾고 나중에 대학에 진학해도 늦지 않겠다고 생각해 자퇴하고 돌아왔어요.”


학교를 그만두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 같아요.

“자퇴하기까지 1년 정도 고민했어요. 고등학교 졸업장은 따서 돌아갈까 싶었지만 버티는 게 큰 의미가 없다고 느껴졌어요. 졸업을 1년 앞두고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자퇴를 하면 알아서 일이 술술 풀릴 줄 알았는데 막상 한국에 오니 더 큰 산이 있더라고요. 마침 부모님이 세계여행을 끝내고 돌아온 지 얼마 안 됐을 때인데 두 분이 직접 살 집을 짓고 싶어 해서 아빠가 목조주택 현장 막내로 들어간 상태였어요. 제가 건축 일을 하고 싶어 하니 아빠가 건설 현장에 가서 체험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셨어요. 그때부터 시작이었죠.”


건설 현장에 반한 건가요?

“집 짓는 첫 공정에 들어가는 날이었을 거예요. 허허벌판에서 터파기를 하는 굴삭기를 보고 마음을 뺏겼죠. 생동감 넘치는 현장을 보니 불끈불끈하던데요. 정말 매력적이었어요. 현장에 있을수록 내가 진짜 건축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공간이 만들어지는 걸 보니 더 경험하고 싶었어요.”


열여덟 살 소녀가 현장에 있다는 사실이 흔한 광경은 아닌데 주변 반응은 어땠나요?

“첫날 일을 마치고 현장 대표님한테 ‘내일 봬요’ 하고 인사했어요. 다음 날 가니까 ‘진짜 왔네?’ 하시더라고요. 하루 있다가 갈 줄 알았는데 1년, 2년이 되니까 ‘진짜구나’ 생각하셨대요. 지금은 다른 팀으로 옮겼는데 팀장님도 처음에는 마음을 안 주고 알려줄 필요도 없다고 여기셨대요. 그런데 점점 대견해지면서 믿음이 생겼다고 말씀하셨어요. 열정이 있고 배우려는 의지도 있어 진심을 느꼈다고. 저도 인정받으니 뿌듯했고요.”


현장에서는 관심을 한 몸에 받았겠습니다.

“현장에서 모든 사람이 저를 달갑게 보는 건 아니에요. 며칠 하다 그만둘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어요. 지금도 현장에서는 거친 발언이 많고 ‘아가씨, 이거 들 줄은 알아?’ 하기도 해요. 저도 처음엔 트라우마가 생기고 포기할까도 했는데, 점차 괜찮아졌어요. 그때는 목표가 뚜렷하지 않고 이거라도 있어야 한다는 회오리 속에서 힘들어했다면 지금은 결심한 바가 있어서 그걸 따라갈 수 있게 됐어요. 저를 향한 화살의 강도가 약해진 게 아니라 제가 대응하는 강도가 세진 거죠. 응원도 많아졌어요. 용기가 생겼다고, 하고 싶은 걸 찾았다고 연락이 엄청 와요. 힘을 얻는다는 얘기를 들을수록 동력이 생겨요.”


지금 하는 일에 완전히 매료된 것처럼 보여요.
이 일의 매력이 뭔가요?


“사람이 사람을 위해 공간을 만드는 자체가 매력이에요. 사람을 위한 예술을 하고 싶은데 제가 가진 장점을 100% 활용할 수 있는 일이 건축이었어요. 건축을 뿌리로 해서 가지를 키워나가고 싶어요. 나무가 변신하고 가공되는 과정에서 공간이 생기는 게 참 멋있어요. 건축을 기반으로 어떤 형태로든 세상에 도움이 되는 예술을 하려고 합니다.”

〈나무의 말, ‘전진소녀’ 이아진 목수 2편으로 이어집니다.〉
  • 2022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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