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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쓸모

이번 달 스페셜 이슈 ‘나무의 말’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하셨나요? 트렌드를 다루는 《topclass》에서 왜 생뚱맞게 나무인가 싶은가요? 2년쯤 전부터인가 ‘나무’라는 키워드가 삶의 곳곳에서 감지됐습니다. 인테리어 영역에서는 한동안 유행하던 화이트 톤이 슬슬 자취를 감추고 다시 ‘우드 인테리어’가 인기를 끌고 있고, 가요나 드라마 배경에서도 나무가 중요한 비중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카페는 또 어떤가요. 식물카페를 넘어 우거진 숲을 재현한 듯한 식물원 카페도 속속 문을 열고 있습니다. 반려나무를 집에 들이는 이들도 많아졌지요.

가장 직접적으로 눈에 띄는 분야는 출판계입니다. 나무의 지혜를 담은 책들이 잘 팔리고, 관련 신간이 쏟아지고 있으며, 이런 시류를 타고 리커버 버전이 앞다퉈 출간되고 있습니다. 2001년에 출간된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는 20년 만인 지난해 10만 부 기념 리커버판을 내놨고, 《헤르만 헤세의 나무들》, 내촌목공소 김민식의 《나무의 시간》 등도 갖고 싶은 표지로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유행을 즉각적으로 담아내는 SNS와 유튜브도 이런 흐름을 놓칠 리 없죠. 나무에게 배우는 삶의 철학을 담은 책 리뷰가 확 늘었습니다. 읽고 나서 감동받아 친구에게 선물했다는 독자들도 꽤 있고요.

나무 예찬은 새로운 흐름이 아닙니다. 수백 년의 오랜 역사를 지녔습니다. 그런데 왜 최근 들어 나무를 다시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아진 걸까요? 우리는 이 질문에 천착했고, 꼬리를 무는 질문들을 파고들다 그 방아쇠가 된 사건으로 팬데믹에 주목했습니다.

첫째, 생명성의 재발견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대유행하며 누구라도 걸릴 수 있다는 아슬아슬한 러시아 룰렛 같은 상황에서 우리는 생명의 가치를 돌아보게 됐습니다. 잊고 지냈던 질병과 죽음을 인식하게 됐고,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처럼 하나였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 것이지요. 프랑스 석학 자크 아탈리는 팬데믹이 초래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생명경제로의 전환》으로 제시한 바 있습니다. 나무는 생명성의 가장 순연한 얼굴을 지니고 있습니다. 생태학자 우석영 씨는 우리가 얼마나 나무에 의존하는 삶을 사는지를 언급하며 ‘수목인간’이라고 명명했습니다. 녹엽식물의 생존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인간의 생존을 생각할 수 없다는 얘기인데요. 인류의 생물학적 생존, 물질적 생존, 정신적 생존의 토대가 나무라는 점에서 우리는 모두 수목인간(The Homo Arboris)이라는 그의 말에 수긍이 갑니다.

둘째, ‘혼돈의 시대의 해독제’입니다. 삶이 불안하면 삶의 지혜를 체득한 어른의 말이 듣고 싶어집니다. 판이 대대적으로 바뀌는 문명의 리모델링 시기에 우리는 누구나 어느 정도 미아가 되지요. 과연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나침반 같은 언어가 간절합니다. 나무는 흔들리면서도 버텨내는 삶의 지혜를 품위 있게 전하는 철학자와 같습니다. 수만 년간 생존법을 내재화한 나무는 인자한 얼굴로 자기만의 삶의 방식을 은근히 보여줍니다.

셋째, 속도와 디지털 시대에 대한 피로감입니다. 세상의 변화 속도가 빠를수록 우리는 그 반대급부인 변하지 않는 절대가치를 추구하게 돼 있습니다. 디지털 문명이 발전할수록 아날로그 감성 역시 각광받는 것만 봐도 그렇지요. 스마트폰 혁명 이후 현기증 나는 문명의 속도전에서는 5년, 10년 후 상황을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불확실성 시대에서 우리는 한편으로 변하지 않는 삶의 질서를 희구합니다. 인간이 옮겨 심지 않는 한, 같은 자리에서 같은 모습의 나무는 평온한 안정감을 선사합니다.

이번 달 《topclass》 스페셜 이슈 ‘나무의 말’에서는 나무를 만지고, 심고, 가꾸고, 나무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 18세에 목수가 된 이아진
- 담백한 흑백의 나무를 그리는 아티스트 손정기
- 나무 그림으로 마음을 읽는 심리학자 최정아
- ‘인간나무’로 불리는 댄서 제인
- 기자 출신의 나무농부 이광열
- 12년간 110만 그루의 나무를 심은 김형수 트리플래닛 대표

우리 일상은 나무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나무로 만든 침대에서 자고, 나무로 만든 식탁과 의자에 앉아서, 나무에서 따온 과일을 먹거나 주스를 마시고, 나무의 열매인 아몬드와 호두 같은 견과류가 들어간 시리얼을 먹습니다. 가로수를 보면서 출근하고, 나무로 만든 종이 위에 나무로 만든 연필로 끄적거립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나무와, 자연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자꾸만 망각하곤 합니다.

나무를 들여다볼수록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이상적인 존재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무는 인류에게 지속가능한 물리적 토대를 제공할 뿐 아니라, 위안과 쉼, 삶의 지혜라는 정신적 유산을 남겨주기도 합니다. 그런 나무가 점점 아파하고 있습니다. 증산 작용을 통해 나무가 만드는 비가 연간 40%에 달하기에, 숲이 감소하면 지구 환경이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영국 천문학자 마틴 리스는 우리가 당면한 현재 상황을 “우리의 마지막 시간”이라고 무시무시한 말로 경고합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실천으로 옮기는 이들이 많아진다는 겁니다. 기업 경영에서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중요하게 여기고 탄소 중립을 표방한 국가도 늘고 있습니다. 개인 역시 이런 분위기에 적극 동참하고 있고요. 다음 세대에 어떤 터전을 물려줄지를 고민하던 김형수 트리플래닛 대표가 찾은 해법은 ‘나무 심기’였다는 사실이 의미심장합니다. 늘 가까이에 있어서 고마움을 잊곤 하는 존재, 나무. 독자 여러분도 이번 호를 읽고 나서 주변의 나무들이 조금이라도 더 다정하고 의연한 몸짓으로 느껴지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2022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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