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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하는 인류

이 편지는 늘 마감 마지막 날에 씁니다. 그달의 지면을 닫는 기사라고 할까요. 모든 기사들을 한 번, 두 번 그리고 세 번씩 꼼꼼히 읽고 독자 여러분께 꼭 건네고 싶은 말을 정제해서 담는 페이지랍니다.

저는 지금 사무실이 아닌 집에서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집에서 마감을 하는 건 처음인데요, 이 상황을 만든 건 바로 오미크론입니다. 어제는 하루 62만여 명의 확진자가 발생했더군요. 가공할 만한 전염력을 가진 감염병 앞에서 저 역시 확진 판정을 받았고, 부서원 절반이 본인 또는 가족 확진이라 전면 온라인 마감을 하게 됐습니다. 게다가 인터뷰이 중 절반이 갑자기 확진되는 바람에 이번 달 마감은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코로나 이후 재택근무를 일상화해 왔지만, 잡지 인쇄 전 며칠은 모두가 출근해 실수가 없는지 꼼꼼하게 챙겨왔습니다. ‘전면 재택 마감’은 지난주까지만 해도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상황입니다. 일을 하다 보면 변수를 생각하면서 대비하곤 하지만, 갑작스럽게 맞닥뜨린 전면 재택 마감은 미처 상상하지 못한 시나리오입니다. 그러나 “변화는 빠르고 우리는 적응을 잘한다”는, 마인드마이너 송길영 박사(바이브컴퍼니 부사장)의 말이 과연 맞더군요.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대처법을 모색했고, 중지를 모았으며, 방법을 순식간에 찾아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불가능해 보이던 전면 재택 마감을 시일 내에 무사히 해내고 있습니다.

“변화는 빠르고 우리는 적응을 잘한다”는 메시지는 이번 달 스페셜 이슈인 ‘요즘 마케터’를 관통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소용돌이치는 세상의 변화를 가장 잘 읽어내는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요? 우리는 이 질문에 천착했고, 그 결과 ‘마케터’라는 직업군에 주목했습니다. ‘잘 팔리는 물건은 무엇이 다를까?’라는 질문을 품고 생산자와 소비자를 향해 기민한 촉수를 세우고 세상을 읽는 마케터. 이들이야말로 편견과 선입견 없이 시류의 최전선에서 그 파도에 거침없이 올라타는 사람들이라고 봤습니다.

생각해보면 매년 신조어를 양산하면서 한국인들에게 피로감을 안기는 ‘트렌드’의 핵심도 결국 ‘소비 트렌드’입니다. 무엇을 입고, 먹고, 어디에서 머무느냐의 의식주는 모두 소비 범주에 포함됩니다. 트렌드 서적의 대표 주자인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를 서울대 소비자학과가 주축이 돼서 펴내는 건 자연스럽습니다.

《topclass》 4월호에서는 요즘 마케터를 브랜딩, 콘텐츠, 공간, 아트디렉팅, SNS 분야로 나누고, 각 분야의 손꼽히는 전문가를 만나 잘되는 마케팅의 비결을 물었습니다.

▲ 브랜드다움으로 팬덤을 만드는 브랜딩 디렉터 전우성
▲ 기록을 통해 영감을 얻는 콘텐츠 마케터 이승희
▲ 머물고 싶은 공간을 만드는 공간 마케터 손창현
▲ ‘저음비버’ 공익 캠페인으로 화제몰이한 아트디렉터 최인철
▲ SNS ‘판플레이’의 실력자, 대학내일 마케터 서준원

이들이 주력하는 분야는 각각 다르지만 놀랍도록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바로 “따라 하지 말고 브랜드다움을 지켜라”는 것. 브랜드가 지향하는 궁극의 지점은 팬덤을 공고히 하는 것인데요. 팬덤이 생기기 위해서는 브랜드 자체가 매력적이어야 한다고 입을 모읍니다. 억지로 잘 보이려 하지 말고 브랜드 자체의 철학에 집중하는 거죠. 그리고 이들은 하나같이 브랜드를 사람에 비유했습니다. 매력적인 사람은 어떤가요? 팬덤층이 공고한 스타들을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것 같습니다. 예쁘다고, 화려하다고 눈길이 가는 건 잠깐입니다. 스타가 질리지 않는 매력을 주려면, 브랜드의 영속성을 가지려면 일관된 철학과 진정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자기중심이 분명한 마케터들은 “상품이 아닌, 철학을 판다”는 명제를 가슴 깊이 새기고 있습니다.

소비자가 진화했습니다. 과거 대중의 시대에는 평균값이 존재했고, 소위 ‘평균’에 가깝게 분포하는 대중의 층이 두툼했습니다. 하지만 문명사회로 갈수록 인간은 점점 개별자로서 각성하게 됩니다. 대중의 층은 점점 얇아지고, 각자의 개성과 취향이 뚜렷한 개인들이 많아집니다. 이런 양상을 두고 마케터의 구루인 세스 고딘은 “대중의 종말 선언”이라고까지 표현했더군요. 이제 마케팅 분야에는 평균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평균이란 정확한 정보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마케터들을 위한 낡은 개념이 돼버렸습니다.

소비자는 더 이상 대량생산된 복제품을 선호하지 않습니다. 대형 프랜차이즈 베이커리 매장이 점점 줄고 개성 강한 동네빵집이 각광받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요. 스몰 브랜드의 천국이 되어가고,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차별화된 물건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나는 선택한다, 고로 존재한다. 바야흐로 우리는 ‘선택하는 인류’를 향해 내딛고 있습니다. 나다움이 중시되는 문명사회에서는 소비가 곧 나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일련의 활동이 됩니다. 이런 시대에 마케터의 역할은 과연 무엇일까요? 하나로 모이는 정답은 없지만 이번 달에 만난 고수들의 말에서 그 단초를 읽어봅니다. 전우성 디렉터는 “잘 팔려 하기보다 더 좋은 선택을 하도록 도왔다”고 하더군요. 그런가 하면 이승희 마케터는 “마케터들은 대부분 선한 유전자를 가진 것 같다”면서 마케터의 역할에 대해 “브랜드 안에 숨어서 브랜드 가치관에 맞게 사람을 돕는 조력자”라고 말합니다.

이들이 마케터로서 성과가 좋은 건 바로 이런 태도 때문일 겁니다. 앞서서 이끌지 않고, 소비자를 매출과 팔로워 수 같은 숫자로 보지 않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소비자의 더 나은 선택을 돕겠다는 마음. 이런 진정성은 결국 통하게 돼 있습니다. 모든 과정을 검증할 수 있는 투명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렇겠지요. 사려 깊은 개인들이 인정받는 사회를 향해 내딛는 발걸음이 느껴집니다. 신이 납니다.
  • 2022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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