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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움을 묻다

김초엽 ②

도전을 멈추지 않는 마음

글 : 유슬기 기자  / 사진 : 서경리 기자

김초엽
소설가. 한국 SF 소설계의 젊은 거장.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지구 끝의 온실》 《행성어 서점》 등을 펴냈으며, 오늘의 작가상, 젊은 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대학원 시절 딱 1년만 해보자던 ‘시한부 작가’였다가 이제는 ‘전업 작가’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글을 쓰는 동안 하루 일과는 어떤가요.


“글을 쓰는 기간과 아닌 기간을 구분해두고 글을 쓰는 기간에는 거의 하루 종일 작업실에 있어요. 물론 잠시 카페에 가서 일하기도 하고 산책도 하지만, 작업실에 출근해서 점심 먹고 자정 지나 새벽 무렵 퇴근하는 일과 자체는 규칙적으로 유지합니다. 글을 써야 할 때는 외부 일정을 잡지 않고, 와이파이도 일부러 꺼두는 등 ‘고립’ 상태를 유지하려고 해요.”


‘내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믿음이 전업 작가의 길을 걷게 했다고 했는데요.

“제 글을 읽는 독자들을 하나의 무리로 느끼지는 않아요.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도 다르고, 가장 좋아하는 작품, 덜 좋아하는 작품 등 워낙 다양한 분들이 계시니까요.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점점 더 다양한 독자들을 만난다는 건, 제가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가끔 일상에서, 정말 우연히 제 책을 보고 ‘어, 그 책 읽어보려고 했는데’ 하는 분들을 만날 때가 있어요. 그러면 어딘가에 내 글을 읽고 있는 사람이 반드시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돼요.”


김초엽의 소설을 통해 SF에 입문했다는 이들이 다수 존재하는 건 사실입니다. SF 장르 덕분에 지구 외 다른 행성, 인간 외 다른 생명체에 대한 감각도 깨어났고요. 김초엽의 소설이 SF의 경계를 확장했다는 평가도 있는데요. SF는 작가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처음에는 그냥 재미있어서, 제가 과학을 좋아해서, 꿈을 꾸는 것 같아서 좋아하게 된 장르예요. 지금은 창작자 입장에서, SF는 여전히 재미있고 흥미롭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다양한 의미를 담아낼 수 있는 장르라고 느껴요. 특히 SF가 내재하고 있는 태도, 세계의 구조를 계속해서 파악하려 하고 모르는 것을 미지의 영역에 남겨두지 않는 과학적 태도가 좋아요. 세계에 대한 탐구 정신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죠. 다만 제가 활동하는 시기에 SF는 이미 많은 이들에게 다가온 상태였기 때문에 제가 SF의 무언가를 성취했다고 하기엔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독자들도 SF를 읽을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였다고 생각하고요.”


여러 이야기와 평가가 있지만 스스로 생각하는 ‘김초엽다움’이란 어떤 의미일까요.

“사실 그런 게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제가 되고 싶은 ‘나다움’은 계속해서 도전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거예요. 스스로 내가 원하는 것을 잘 들여다보고, 나의 내면에서 발견한 다음 도전 과제들을 설정하고 나아가고 싶어요.”


‘나다움’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고민하는 시간이 찾아온 적은 없었나요.

“작가로 알려지고 많은 평가에 노출되다 보니, 작년까지는 고민이 정말 많았어요. 특히 첫 논픽션, 첫 장편소설에 도전하는 시기여서 더욱 그랬고요. 지금은 그 고비를 다 지나와서 마음이 무척 편안해졌어요. 다양한 작품을 내놓으면서 그 작품들이 상충하는 듯한 여러 평가를 받는 것을 보니, 오히려 저의 내면 기준이 확고해지더라고요.”


어떤 식으로요?

“당장 마주하는 칭찬과 비판 하나하나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계속해서 글을 써나갈 수 있다는 것, 앞으로도 작가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당연히 상을 받으면 기분이 좋고, 작품이 잘되면 좋지만 그보다도 중요한 건 내가 나에게 좋은 작품을 쓰는 것이구나, 그것과 바꿀 수 있는 ‘좋은 일’은 없구나, 생각하게 됐어요.”


크리스마스 즈음 신간이 또 나왔습니다.
월간지 수준으로 나온 셈이라, ‘다작한 해’로 남을 것 같기도 합니다.
2021년을 지난 소회는 어떤가요.


“자유로워진 한 해, 여러 압박감으로부터 편안해진 한 해로 2021년을 기억하게 될 것 같아요. 걱정이 정말 많았거든요. 논픽션을 이렇게 써도 될까, 첫 장편소설이 실패하면 어떡하지, 두 번째 소설집은 또 어떻게 할까…. 그런데 그냥 눈 딱 감고 하고 나니까 정말 후련해요. 내가 나를 만족시킬 수 있는 무언가를 내놨다는 감각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새해에는 첫 에세이가 나오는데 비교적 가벼운 마음이에요. 아무래도 본업은 소설이라고 생각해서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물론 에세이도 잘 써야 하고 멋진 걸 내놓고 싶은 마음이지만 부담감은 덜해요. 그동안 창작과 독서, SF의 여러 소재에 대해 고민해온 것들을 편한 마음으로 풀어놓으려 합니다.”


독자로서 김초엽의 작품을 읽으면 새로운 세계를 엿보는 희열과 세계에 대한 고민이라는 양가감정을 함께 느낍니다.
작가로서 행복을 느낄 때와 고통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행복과 고통이 특별히 분리돼 있지 않고, 늘 뒤섞여 있는 것 같아요. 어제도 ‘올해의 책’ 선정 소식을 들어서 기분이 좋았다가 두 시간 뒤에는 ‘이제 차기작은 뭘 써야 잘 쓸 수 있을까’ 하고 머리 싸매고 다시 심각해지고 그랬거든요. 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행복한 순간들이 훨씬 많아요. 무엇보다 저 스스로에게 좋은 작품을 쓰고 있어서 좋아요. 어떤 부분은 고쳐나가고 싶은 점들이 분명히 있고, 도전 과제들도 쌓여 있지만, ‘그래도 돌이켜보면 나는 이 소설을 써서 정말 행복했어’라는 생각을 자주 하거든요. 저는 제 글을 좋아하고, 다행히도 어떤 독자들도 제 글을 좋아해주신다는 것, 그건 참 기쁜 일 같아요.”


“저는 제 글을 정말 좋아합니다”라고 말할 때 김초엽의 눈빛이 반짝했는지도 모르겠다. 가볍게 들뜨지도, 쉽게 언성을 높이지도 않는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만은 무구한 순정을 드러낸다. ‘아직 부족하다’는 겸손이나 ‘갈 길이 멀다’는 겸양보다,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써왔고, 쓰고 있으며, 쓸 것이다’라는 다짐은 그의 이야기를 더 기다리게 만든다.

2022년 김초엽은 서른이 됐다. ‘서른 즈음’ 그가 풀어놓을 이야기는 처음으로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다. 자신이 읽어온 책과 창작에 대한 이야기를 쓸 예정이란다. 김초엽의 작품이 어떻게 발아하고 꽃을 틔웠는지를 궁금해할 이들에게는 쫑긋할 이야기인데, 거기에 ‘잘 읽히는 글을 쓰는 비법’ 같은 건 없을지 모른다. 다만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세계를 이해해보려 애쓰는 안간힘 같은 건 담겨 있을 것이다.

과학과 문학을 종과 횡으로 오간 그가 두 세계에서 발견한 건 ‘세계도, 타인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는 진실이다. 그럼에도 이 안 되는 걸 해보려고 하는 이들이 그의 작품 속에서는 왕왕 등장한다. 해결할 수 없는 고통에 대한 이야기도 자주 등장한다. 이해할 수 없어도, 해결할 수 없어도 그 고통을 헤아리는 것만으로, 당사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생각보다 많은 게 달라진다. 그의 소설에 해결사 영웅이나 극악무도한 빌런이 등장하지 않는 이유다. 우리와 비슷하나 다른 세상에 사는 이들, 나와 비슷한 걸 느끼고 생각할 그들이 사는 세상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우리 관점과 시야는 한 뼘 정도 넓어진다.

우주에 대해 상상하는 건 좋아하지만 우주에 직접 가고 싶지는 않은 SF 작가, 세계를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 불가능에 매료되는 이야기꾼. 김초엽의 그 초연함, 그 엽렵함이 그의 이야기를 계속 기다리게 하는 이유인지 모르겠다. 누구보다 그 스스로가.
  • 2022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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