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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움을 묻다

김보통 ②

이상한 것을 이상하다고 말하는 것

글 : 유슬기 기자  / 사진 : 서경리 기자

김보통
만화가·스튜디오 보통 대표. 웹툰 〈아만자〉로 데뷔, 〈D.P 개의 날〉을 쓰고 그렸다.
특히 〈D.P 개의 날〉을 원작으로 한 넷플릭스 드라마 〈D.P.〉는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으며,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 《살아, 눈부시게!》 등의 책을 썼다.
각본을 공동 작업한 〈D.P.〉의 한준희 감독은 작가가 가진 유쾌함과 활기가 인상적이었다고 했습니다.
정해인보다는 구교환에 가까운 인물이었다고요(웃음).
‘가난에도 불구하고’ ‘불행에도 불구하고’ ‘실패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쾌함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어린 시절 아버지는 저에게 늘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가난하다는 건, 자동차를 타고 갈 곳을 버스로 갈 뿐인 거고, 버스로 갈 수 있는 곳을 걸어갈 뿐인 거야. 자동차를 타면 편하긴 하겠지만 버스를 탈 때의 즐거움이 있고, 걸어갈 때만 볼 수 있는 것들도 있으니 신경 쓸 거 없어. 조금 불편할 뿐이지 불행하다는 건 아니니까.’ 물론 이건 아무리 애를 써도 제대로 돈을 벌지 못했던 아버지가 만들어낸 나름의 정신승리법이었지만 어릴 때부터 세뇌 교육을 받았기 때문일까, 정말 그렇게 믿으며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게 믿으며 살아가고 있어요. ‘조금 불편할 뿐이지 불행한 것은 아니다’라고 생각하면 정말 대개의 것들은 대수롭지 않게 느껴졌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 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 ‘잊혀가는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스토리를 만들어오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눈은 어떻게 갖게 됐을까요.
혹시 관객, 독자 입장에서 영화나 만화를 볼 때도 주인공이나 영웅보다는 주변 인물, 조연들에게 더 관심이 가나요.


“태생이 변두리 출신이기 때문에 변두리 정서가 짙게 남은 것 같아요. 어린 시절 책이나 미디어에는 멋진 주인공이 나와 기적처럼 승리하는 이야기가 주를 이뤘지만, 막상 제 주변을 둘러보면 단 한 명도 예외 없이 전원 엑스트라들로만 채워진 세상에서 자랐습니다. 서울이지만 아무도 서울로 여기지 않는, 연말연시면 불우이웃돕기 방송에 나오는 동네였거든요. 그래서일까, 자연스레 당시 이웃들과 같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태어날 때부터 엑스트라였고, 평생을 엑스트라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의 삶에서 각자 주인공으로 소소한 일상을 영위하는 이야기를 앞으로도 만들고 싶습니다.”


최근에는 어린이 만화 《나비의 모험》을 냈습니다.
고양이의 눈으로 본 인간사, ‘전지적 나비 시점’이 된 동안 세상은 어떻게 보였나요.


“원래는 좀 더 과격하게 풀어가려 했어요. 하지만 아무래도 아이들을 겨냥한 만화였기 때문에 차마 그럴 수는 없었고, 대신 일반적으로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에 대해 ‘그게 정말 당연한 걸까?’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당연한 것을 그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순간 인류의 진보는 멈추기 때문입니다. 당연한 것에 의문을 가지고 세상에 불만이 가득한 아이들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김보통으로서 추구하는 ‘보통의 삶’을 위해 지금도 의문을 가지고 싸우고 있는 것들이 있을까요.
훗날에는 이것이 싸움거리가 아니라 보통인 세상이 되기를 바라면서요.


“요즘은 아무래도 드라마나 영화 작업을 하다 보니까 이쪽에서 겪는 부조리에 대한 불만이 가득합니다. 업계 신인을 속여서 모든 권리를 가져가려고 하거나, 성과에 대한 보상을 적절히 하지 않는다거나, 부당한 계약 조건을 은근슬쩍 밀어 넣는다거나 하는 것들요. 물론 이런 경우가 없는 영역이 없겠지만 뭐랄까, 살짝 환멸이 생길 정도입니다. 창작자가 존중받을 수 있어야 좋은 작품이 나오니 차차 나아지길 바라고 있습니다.”


2016년 트위터에는 “떠들다 돌 맞는 것보다 침묵하는 내 모습이 더 싫다”고 적었습니다. 그래도 돌을 맞으면 아플 것 같긴 합니다.

“어, 그 뒤로 된통 돌들을 맞아서 요즘은 그냥 침묵하고 있습니다(일동 웃음). 그래도 작품으로 대신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다행이긴 합니다. 사람들은 돌을 던지기 위해 굳이 작품까지 보는 애정을 보여주진 않으니까요.”


혼자서 시작한 회사가 지금은 꽤 큰 규모로 성장한 걸로 압니다.
당시 어시스턴트들에게 합당한, 상식적인 대우를 한 게 업계에서는 화제가 되기도 했죠.


“처음엔 개인사업자로 시작했는데 어쩌다 보니 회사를 두 개 가지고 있고, 직원이 열일곱 명 정도예요. 직원들 월급 주고 먹고살 정도는 됩니다만, 내년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는 평범한 소기업 사장입니다.”


회사 운영과 창작자의 삶은 전혀 다른 영역인데요.
이 둘이 부딪히지 않고 삶에서 조화와 균형을 이루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부분이 있을까요.


“회사 운영은 관리와 경영의 영역이라서 끊임없이 사람들과 소통해야 하는 반면, 창작자의 삶은 골방에 틀어박혀 자기 자신만을 괴롭히면 되는 지극히 개인 영역의 일입니다. 그 둘을 다 잘하는 것은 어렵다는 판단하에 올해부터 관리직 직원 둘을 뽑아 회사 업무는 그 둘에게 일임하고 저는 제 일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작은 규모의 회사다 보니 제가 열심히 하는 게 결국 회사 전체 실적에 영향을 줍니다. 별 수 없는 판단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 저 말고 다른 창작자들이 개별 프로젝트를 맡아 작업을 진행할 수 있는 회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때가 되면 회사를 직원들에게 넘길 예정입니다. 사장이라는 건 저랑은 맞지 않네요.”


퇴사 후 소망 중 하나로 도서관을 만들고 싶다고 했고, 실제로 퇴직금의 절반을 책을 사는 데 썼다고 했는데요.
아직 그 꿈은 유효한가요.


“당연히 도서관을 만들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저 도서관 하나 만든다고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 장학재단을 만드는 것으로 꿈을 확대했습니다. 도서관은 장학재단 이름으로 운영하면 되니까요. 정보 격차가 점점 커지고, 그 격차가 곧 인생의 격차로 고착될 수 있는 요즘, 조금이라도 격차를 줄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김보통다움이란 뭘까요.

“그런 게 있나요? 전 모르겠네요.”


음. 스스로 타협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요.

“음. 일단 김보통다움이 뭔지를 저도 모르기 때문에, 무엇과 타협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김보통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싫은 사람은 만나지 않겠다’는 각오 비슷한 것을 한 적이 있는데, 작가 생활도 결국은 사회생활이라 별 수 없이 싫은 사람과 만나 싫은 내색을 안 하고 일을 하게 됩니다. 매일 타협하고 있습니다(웃음).”



“군대 안 왔으면 탈영할 일도 없지 않았을까요?”

〈D.P.〉에서 군무이탈체포조로 차출된 안준호 이병은 이렇게 묻는다. 이 질문에 박범구 중사는 이렇게 답한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국방의 의무를 가진 나라에서, 군대에 가는 게 선택이 아닌 의무인 사회에서 그런 가정은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 질문은 의미가 있다. 원하지 않는 시기에, 원하지 않는 곳에 가서, 처음 보는 이들과 계급의 관계를 맺고, 가혹행위가 군기로 포장되는 조직에 인생의 일부를 바쳐야 한다. 여기에 예외나 열외는 없다.

그래서 물어야 한다. “이상하지 않느냐”고. 사람이 사람을 이렇게 괴롭히면 안 되는 것 아니냐고.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이 사실은 당연하지 않은 건 아니냐고. 군에 다녀온 대부분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고, 그렇게 제대한 이들이 또 그런 유사 조직을 만드는 사회는 결코 정상일 수 없다. ‘군인 잡는 군견’이었다는 김보통 작가가 ‘개의 날’로 고백한 시간들은 뒤늦은 반성문이다. 더는 방관하지 않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그는 집안이나 가문이 쥐어준 수저가 없는 평범한 이들이 살아가는 세상, 특권이나 반칙이 불가능한 이들이 견디는 세계가 부디 지옥이 아니길 바란다. 한 개인의 퇴사, 한 군인의 탈영은 그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조직 내 일탈에 불과할지 몰라도, “이건 아니지 않느냐?”고 묻는 질문은 오래오래 잔상을 남긴다. 당연한 것들로 채워진 견고한 세계의 부조리에 균열이 생긴다. 바다를 벗어날 수도, 고래가 될 수도 없는 새우들의 거대한 구호다. 운이 좋으면 행복할 수도 있겠지만, 불행하지만 않아도 감사한 새우의 꿈. 김보통 작가는 말한다.

“아무렇지 않은 듯 어쩔 수 없잖아, 모두가 이렇게 살잖아, 하며 흘려보내는 우리의 이 삶이 ‘딱 한 번인 생이면서, 딱 한 번 인생’이라는 걸 알았으면 했다. 그것이 내 예명이 김보통이 된 이유다.”(《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 중)
  • 2022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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