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s pick

magazine 인기기사

topp 인기기사

daily 인기기사

나다움을 묻다

장윤주 ②

이왕 하는 거 재밌게, 너무 뻔하지 않게!

글 : 유슬기 기자  / 사진 : 서경리 기자

장윤주
모델. 1997년에 데뷔해 줄곧 한국 톱모델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배우, 싱어송라이터, MC 등으로도 활약 중이며, 영화 〈베테랑〉 〈세자매〉 등에 출연했다.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평가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해요?

“아, 제가요?”


모델뿐 아니라 방송, 라디오, 영화계, OTT까지 전방위로 활동하고 있으니까요.

“서울예대 영화과를 나와서 주변에 영화 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10대 때부터 영화 출연 제의가 꾸준히 있었는데, 잘 응하지 않았어요. 혼란의 시기였지만 제가 하는 모델 일을 너무 좋아했고, 음악 작업에도 집중했어요. 30대에 즐기는 시기가 됐을 때 제안 받은 〈베테랑〉은 흔쾌히 해보겠다고 했죠. ‘영화?’ ‘형사?!’ 했다가 감독님 만나고 나서는 바로 승낙했어요. 되게 재밌겠다, 잘 통하겠다 싶었죠.”


〈무한도전〉에서 ‘발연기를 연기하는 걸’ 본 류승완 감독은 “영특한 배우”라고 생각했다죠.

“그때 저를 두고 현장에서 ‘미스봉이 계속 연기를 할까, 안 할까’를 이야기했다더라고요. 오달수 선배님은 진지하게 이렇게 말했어요. ‘윤주가 이 작품을 하면 아마 비슷한 캐릭터가 많이 들어올 거다. 그런 걸 하지 말라고는 안 하겠지만 이 캐릭터랑 완전 다른 캐릭터를 한번 해보고 연기를 계속할지 안 할지를 고민하면 좋겠다’고요. 지금 보면 그 조언대로 가고 있는 것 같아요.”


5년 후에 문소리, 김선영 배우와 함께한 〈세자매〉가 그렇죠.

“〈베테랑〉 후에 임신을 하면서 2년간 쉬었어요. 아이 낳고 복귀할 때도 드라마 제안을 많이 받았는데, 연기로 다시 시작하는 게 좀 두려웠어요. 모델 일부터 차근차근 하고 싶었죠. 그러다 〈세자매〉를 만나서 마음이 바뀌었어요. 극중 역할처럼 저도 세 자매의 막내거든요. ‘이거 뭐지?’ 싶었어요. 함께하는 배우들도 너무 멋진 언니들이었고요. 〈세자매〉는 정말 고민을 길게 했어요. 고민 끝에 처음엔 거절했지만 고민을 시작할 때부터 그 영화에 이미 빠져 있었더라고요.”


합류 결정을 내리게 된 계기는요?

“만삭일 때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를 봤는데, 드라마 속 할머니들이 너무 부러웠어요. 나이 들어서도 저렇게 연기를 하고 현장에서 삼각관계 같은 러브라인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면 ‘그 일이 연기일까’ 하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보게 됐고, 그래서 기도했어요. 제 길이 맞다면 사인을 달라고요. 어느 날 남편이 좋아하는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는데 마침 방송 주제가 ‘세 자매’더라고요. 아버지의 폭력을 호소하는 내용이었어요. 그걸 보고서 ‘뭐지?’ 했죠. 함께 시나리오를 보고 고민하던 친구가 ‘미옥이가 머리가 빨간색이면 이해가 되겠다’ 하는데 저도 느낌이 오는 거예요. 거절한 지 3일 후에 (문)소리 언니한테 ‘저, 머리 탈색하면 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얘기했어요.”

문소리 배우는 이렇게 회고했죠.
“이 과정에서 모든 것을 감당하는 장 배우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력도 열정도 자세도 대단했다.”(〈세자매〉 이야기 중)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했을까 싶어요. 너무 많이들 도와주셨지만 쉽지 않았어요. 중간에 크게 아픈 적도 있었고요. 열이 머리, 눈, 팔다리로 퍼져 나가는데 그런 아픔은 처음이었어요. 끝나고 나니 덕분에 깡이 생겼죠. 그래서 자연스럽게 바로 다음 작품도 하게 됐고요. 작품을 연달아 하다 보니까 멘붕이 오긴 하더라고요(웃음). 그때는 염증이 온몸을 돌아다녔어요. 위염, 장염….”


멘붕이 오면 어떻게 하나요.

“가정에서 회복해요. 저는 남편과 딸 리사에게 의지하는 면이 많아요. 집에 들어가면 일 얘기는 안 해요. 남편에게는 깊숙한 이야기까지 털어놔요.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게 큰 힘이 되죠. 남편은 제가 빨리 작품 하기를 바랄 거예요. 제가 작품 할 때는 별로 신경을 안 쓰는데 없으면 남편 비즈니스 챙기고 회장 노릇을 하거든요(웃음). ”


다섯 살 리사는 어떻게 힘이 되어주나요?

“제가 딸을 친구처럼 대하기도 하지만 딸이 엄마를 보호해주는 게 있어요. 리사가 또래 애들보다 조숙하고 배려심이 있거든요. 제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기억도 잘해요. ‘엄마 너무 힘들어’ 하면서 울면 휴지 가져다주면서 ‘뭐가 엄마를 그렇게 힘들게 했어?’라고 물어봐요. 나중에 리사가 커서 그런 게 상처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예요. ‘어릴 때도 나는 내가 엄마를 위해줘야 했었어’라고 생각하면 어쩌지 싶어요.”


하지만 “영원히 너의 편이 되어 주겠어”(장윤주 노래 ‘LISA’ 중)라는 노래를 엄마한테 선물받는 아이가 몇이나 있겠어요.

“그 노래를 자주 들려줘요. 한번은 리사가 물었어요. ‘붕붕, 슝슝, 윙윙 그런 말들은 왜 집어넣은 거야?’ 하고요. ‘너에게 보내는 순수한 엄마의 마음이야’라고 했죠.”


디지털 싱글 ‘Fly Away’부터 1집 앨범 ‘Dream’, 2집 앨범 ‘I’m Fine’, 이번 앨범 ‘LISA’까지 네 개의 앨범을 냈습니다.
‘LISA’처럼 음악이 찾아오는 순간이 있나요?


“2집을 낸 후에는 제가 노래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곡을 아주 잘 쓰는 것도 아니니까 ‘음악은 좋아하는 취미로 남기자’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아이를 낳고 나서 뭔가를 풀어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더라고요. ‘LISA’ 멜로디는 만들어놓은 곡이었고, 가사는 고민 안 하고 바로 썼어요. ‘영원함을 꿈꾼다’는 앨범을 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자연스럽게 나왔어요.”


‘영원함을 꿈꾼다’는 자기 자신에게 보내는 노래인가요.

“언젠가 세대교체가 될 텐데, 그때를 위해 나의 삶, 나의 가정을 잘 지켜가야겠다고 생각해요. 20대에는 제가 가진 좋은 에너지나 재능을 좀 더 넓게 사용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는 감을 잃을 수밖에 없다는 걸 인정하게 됐어요. 나이 들면 몸이 탄력을 잃는 것처럼,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잖아요. 잃어가는 것들은 잃어가는 대로 인정하면서 중심은 잃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마음일 수도 멘탈일 수도 있는데, 그걸 잃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음악 하는 모델, (프랑스 사르코지 전 대통령의 부인) 카를라 브루니와의 교분이 화제가 됐죠. 브루니는 “나와 윤주에게는 패션이 첫 번째 가족”이라고 했는데 두 사람만 알 수 있는 공감대가 있을 것 같아요.

“그분이 귀족 출신이고 영부인이다 보니 이미지에 대한 편견이 있었나 봐요. 그런데 이야기를 하다 보니 관심사가 겹치는 부분도 많고, 음악도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둘 다 모델 출신이고, 음악을 좋아하고, 아이도 있어서 잘 통했어요.”


다방면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는 지금, 첫 번째 직업인 모델은 어떤 의미인가요.

“모델로 오래 일했고 전문적으로 이 판을 꿰뚫고 있다 보니 판을 끌고 갈 수 있게 됐어요. 저의 아이디어나 이야기로 함께 판을 만들어가는 거죠. 내가 이끌 수 있는 판을 캐치하고 그걸 모델이 리드미컬하게 가지고 가면,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플러스알파가 될 수 있거든요. 아예 다른 판이 될 수도 있고요. 그런 기획이 재미있어요.”


20대의 방황과 번민 속에서도 ‘모델’의 정체성을 놓지 않을 수 있었던 비결은요.

“패션이나 하이엔드 브랜드, 화보, 쇼에서 추구하는 건 일상적이지 않아요. 판타지가 많은 장르예요. 가끔 모델들한테 ‘포즈를 어떻게 취하나요?’라고 물어오는데요. 포즈는 그 의상에 맞는 사람이 돼서 애티튜드를 보여주는 작업이에요. 그 애티튜드가 무용처럼 보일 수도 있고, 더 깊게 들어가면 연기처럼 보일 수도 있죠. 모델은 그 중간 어디쯤 있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화보를 준비하며 현대무용을 배우기도 했죠.

“저는 현대무용을 한 사람의 몸을 너무 좋아해요. 모델로서 제 애티튜드가 무용수 같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쭉 해왔어요. 한번 배워보자는 생각으로 1년간 배웠죠.”


현대무용의 무엇에 매료됐을까요.

“현대무용은 아주 실험적이면서 어디로 갈지 모르는 예측불허 장르잖아요. ‘다음 동작, 다음 페이지는 저럴 것이다’라는 게 예상되면 재미없죠. 저도 퍼포머로서 그런 고민을 해요. ‘예측할 수 없는 포즈는 없을까, 예측할 수 없는 애티튜드는 없을까’ 하는. 촬영할 때 집중하다가 한번 무너지면 실제 제 모습이 나오기도 하는데, 그 사진이 선택될 때가 있어요.”


사진을 보면 보이나요. 실제의 나와 내가 버린 사진이?

“그럼요. 저도 저의 새로운 모습을 보는 게 좋아요. ‘했던 걸 했네’ 싶은 건 싫어요.”


무섭네요. 다 보인다니.

“보여요. 그 사람의 치열함이, 보여주기 식인지 아닌지 대중도 다 알거든요. 저는 음악을 통해서 그런 면을 체크해요. 차트에 있는 음악을 다 찾고 들어봐요. 왜 대중의 사랑을 받는지 알고 싶거든요. 타이밍도, 구성도 중요하니까요. 히트곡들은 멜로디와 가사뿐 아니라 시의성과 퍼포머의 매력도 필요해요. ‘왜 1등을 했지? 이래서 1등을 했구나’ 배워가는 거죠.”


음악도 연기도 모델도 다 연결돼 있네요.

“크리에이티브해야 한다는 점에서요. 저는 앨범을 만들 때 가장 많이 성장한 걸 느껴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작업을 다 하거든요. 곡을 만들고 부르는 것뿐 아니라 앨범 디자인, 사운드 총괄까지요. 단계마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계속 나오고, 프로젝트를 끝냈을 때는 굉장히 뿌듯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예측할 수 없는, 크리에이티브를 끌어올리기 위해 분투 중이군요.

“어떤 분야든 타고난 재능으로 갈 수 있는 기간은 2년 정도 같아요. 모델로서도 2년이 지나니까 새로운 후배들이 등장하더라고요. 우리나라는 다른 자원이 풍부하지 않으니 인적 자원으로 승부를 걸어야 하잖아요. 계속 경쟁해야 하고 또 1등만 기억하고요. 더구나 모델 쪽은 감이 너무 중요해요. 감을 잃어서 퇴장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모델이 아티스트고 판타지를 예술이라고 말한다면, 저는 아직 판타지의 정점을 꿈꿔요.”

장윤주는 서른두 살까지 옥탑방에 살았다. 옥상에는 어머니가 기르는 채소가 자라고 있었고, 옥탑방은 두 평 남짓, 옷장과 피아노를 놓으면 남은 공간이 없어 한쪽에 책을 쌓아두던 작은 방이었다. 보일러를 틀면 따뜻해도 웃풍이 심했던 톱모델의 방. 해외에서 하이엔드 브랜드의 화려하고 우아한 화보를 찍고 커다란 이민가방을 들고 옥탑방 계단을 오를 때의 마음이 지금도 선연하다. 도망치듯 한 달에 한 번은 해외에서 촬영하고, 어디든 먼저 도착하면 “여기서 한 달을 살려면 얼마가 들지?”를 계산해보던 날들이었다.

메트로폴리탄대회에 한국인 최초로 참가하고, 파리 프레타포르테쇼에 참여하는 등 입지전적 기록을 세우며 럭셔리로 가득한 런웨이와 서울의 옥탑방을 오가던 장윤주. 판타지와 리얼리티 사이에서 뿜어내는 묘한 분위기는 동양적 얼굴에 서구적 몸매만큼이나 입체적이었다. 《보그》는 그를 “한국 모델의 역사를 바꾼 사람”이라고 평하기도 했는데, 장윤주는 그 이야기에도 어깨를 으쓱할 뿐이다.

“내가 그런 사람인가? 장윤주 이전 모델과 이후 모델이 있다면 이제는 이후 모델만 남았는데 그럼 이제 나는 어떻게 되는 거죠(일동 폭소)? 저는 그동안 제가 이걸 해야 제일 앞서간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그저 자연스럽게 된 것들이에요.”

자신의 성취에 도취되지 않는 객관성, 그 객관성을 유지할 때 가능한 여유와 유머. 그런 자연스러움이 대중을 매료시킨다. 덕후몰이의 제1원칙은 ‘자신이 가진 재능과 매력을 과시하지 않으면서 뚜벅뚜벅 걸어가는 이들의 무심함’ 아니던가. 그 당당한 워킹은 세상에 등장한 순간부터 사람들을 입덕의 세계로 초대했다. “바꾸지 못하는 것에 대한 고민은 접어두고 나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꿈은 이뤄진다”는, 편견과 고정관념에 넘어져 징징대기보다 멀리, 길게 보고 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길이 열린다는 현재진행형 판타지.

24년 차 현역 모델인 그는 후진 양성에도 누구보다 열심이다. 〈도전! 수퍼모델 코리아〉를 진행할 때도 형식은 쇼였지만, 그는 모든 순간 진심이었다. 최소라, 정호연 등 그가 눈여겨본 이들은 현재 세계적인 톱모델이 됐다. 톱모델이면서 누군가의 롤모델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크리에이티브 아티스트, 그럼에도 여전히 예측할 수 없는 장윤주는 지금 판타지의 정점에 있다.
  • 2022년 01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
이름      비밀번호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독자팀)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