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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움을 묻다

이어령 ②

천편일률적인 벽돌담이 아닌 다름이 어우러지는 돌담을 만드십시오”

글 : 김민희 기자  / 사진 : 김선아 

이어령
이화여대 명예교수. 작가이자 문학평론가, 언론인이자 교육자, 행정가이자 문화기획자 등 전방위를 넘나드는 통섭형 지식인. 《축소지향의 일본인》 《디지로그》 《생명이 자본이다》 등을 냈으며, 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어렸을 때 서당에서 천자문을 배우던 중 ‘하늘이 왜 검나요?’ 하고 훈장님께 따져 묻다가 쫓겨난 일화도 생각납니다.

“맞아. 엉뚱한 질문을 한다고 어른들한테 구박도 많이 받고 혼났지. 혼나면서도 나는 그런 반응에 굴하지 않았어요. 지적 호기심이 워낙 커서 혼나는 걸 각오하면서도 그걸 꼭 물어봐야 했거든.”


요즘 선생님의 질문의 대상은 뭔가요.

“죽음이지. 죽음은 누구나 무서워해요. 죽음이 무섭지 않은 사람이 어딨겠어. 그 죽음이 무서우면서도 나는 죽음에 대해 질문하고 있어요. ‘죽음이라는 게 대체 뭐지?’ ‘내가 암이라고?’ ‘암이 뭔데?’ 하면서 죽음이라는 대상에 대해 호기심을 품고 마지막으로 지적 탐험을 하고 있어요. 89세인 2021년에 내 책이 두 권 나왔잖아. 김민희 기자가 쓴 《이어령, 80년 생각》과 김지수 기자가 쓴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이게 나예요. 나는 죽는 날까지 글을 쓰고 싶어. 그게 이어령다움인 거지.”


참…. 의연하십니다.

“그런데 말이야, 자신이 없어. 죽음 앞에서 무너질까 봐. 이어령답지 않은 죽음을 맞이할까 봐…. 지금까지는 의연했는데 막상 죽음 앞에서 공포에 떨까 봐, 그게 불안해요.”


선생은 두려움과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를 한창 이어갔다. 많이 외롭다는 말도 했다. 여기에서 외로움은 그간의 외로움과는 맥락이 달랐다. 이제까지 이어령 교수가 피력해온 외로움은 천재의 외로움에 가깝다. 섬광같이 피어오른 발상을 현실화한 창조물들을 알아봐주고, 의미를 부여하고, 궁금해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데서 연유한 외로움.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실체적 외로움이었다. 그는 “이제까지 내가 맺어온 인간관계가 과연 사랑과 존경과 공감으로 맺어진 관계일까?”라는 의문이 든다고 했다. 그리고 간혹 이해관계가 전혀 없는 이들이 건네는 진심 어린 슬픔이 큰 위안이 된다고 했다.

자신이 없다니, 외롭다니, 무섭다니…. 그간 보아온 선생의 모습과는 달랐다. 이런 선생이 낯설었다. 한편으로는 당혹감도 피어올랐다. 그 당혹감의 실체를 한참 동안 들여다봐야 했다. 그건 ‘이어령다움’이 깨질 것에 대한 염려였다. 내 세계에서 쌓아온 이어령다움은 의연함과 품위, 자존심과 명예였다. 어떤 상황에서도 촛불처럼 팔락거리지 않고, 저 멀리 등대처럼 흔들리지 않고 내가, 우리가, 이웃이, 인류가 지향해야 할 시대의 가치를 제시하는 궁극의 어른이길 바랐다.

추상적 죽음이 아닌 물리적 죽음을 말하는 선생은 낯설었다. 존재론적 죽음이 아닌 실체적 죽음을 말하는 선생은 이제껏 못 보던 모습이었다. 나는 속상한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질문의 방향을 틀었다. 다행히 선생은 궁극의 어른 모드로 돌아와 말을 이었다.


선생님은 78억 지구인 중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면서 나다움을 지키라고 강조했지요.
나다움을 지키는 것이 왜 중요한가요.


“그건 말이야, 벽돌담과 돌담의 차이를 보면 알 수 있지. 벽돌은 부서지면 어때요? 똑같은 규격의 벽돌로 대체할 수 있지. 하지만 돌멩이는 달라. 아무리 찌그러진 돌이라도 이 세상에는 그것과 똑같은 게 없어요. 돌이 하나 없어지면 이 지구에서 그런 돌이 하나 사라지는 거야. 나답게 산다는 건 내가 늘 얘기하는 ‘온리 원’, 그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것을 잃지 않고 산다는 거예요. 남과 구별됨으로써 자기만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이지.”


문명의 속도전 한복판에서 헉헉거리다 보면 타인의 기준을 좇기 쉽습니다만.

“내가 나다워지려면 끝없이 너라는 대상, 즉 나 아닌 다른 대상을 생각하게 돼요. 사막에서 혼자 사는 게 아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어. 그래서 나다워진다는 건 이미 너를 의식한다는 거예요. 너를 알고 있어야 나답지, 너를 모르는데 어떻게 나다울 수 있겠어요. 남자다우려면 여자를 먼저 알아야 하지. 그래서 타인을 의식하는 건 나다운 삶을 위해 불가피하게 필요한 부분이에요. 다만 자신만의 뭔가를 구축하려는 태도가 필요해요. 현실주의자가 아닌 구축주의자의 시선이 필요하지.”


구축주의라.

“유치원에 있는 아이들한테 각설탕을 줘봐요. 그걸 먹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가지고 노는 아이가 있지. 가지고 놀더라도 수직으로 쌓는 아이, 동그랗게 쌓는 아이 다 달라요. 각설탕 하나는 모양도 똑같고 맛도 똑같은데, 그걸 가지고 놀게 되면 전부 다른 모양의 각설탕 레고가 탄생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의식주와 돈, 권력을 추구하는 건 ‘그’다운 게 아니야. 누구나 다 돈 좋아하고 권세 좋아하고 뻐기고 싶어 하니까. 나답게 사는 사람은 각설탕을 먹지 않아요. 그걸로 구축해나가지.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모양으로 쌓아가는 거예요. 구축주의는 리얼리즘이 아니야. 리얼리즘 세계에서는 똑같아. 배고프면 도둑질하고, 약자를 보면 강자가 지배하려 들지. 전쟁의 극한 상황에서는 살기 위해 같은 짓을 하지만, 평화로운 시대에는 그렇지 않아요. 각자가 다 다른 삶의 양태를 가지게 되지. 그러니까 현실주의 시선으로 보느냐, 구축주의 시선으로 보느냐에 따라 역사 기술이 달라져요.”


점점 우리 사회가 선진화되고 평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잖아요. 그렇다면 나다운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될까요?

“물론 많아지지. 하지만 코로나 시국에서는 똑같아. 비상시국이니 행동들이 엇비슷하지. 내가 살기 위해 또 타인을 보호하기 위해 마스크 쓰고, 백신 주사 맞고, 정해진 인원만 만나고, 만인에 의한 만인의 감시 사회가 되고, 거리두기를 하고. 각자의 나다움을 추구하기 힘들 수밖에 없어요.”


그렇다면 나다움과 나이와의 상관관계는요?
나이 들수록 자기다움에 점점 가까워지는 걸 느끼는지요.


“의식적으로 나다워지는 건 없어요. 걸음걸이만 봐도 그렇지. 똑같이 걷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어. 먼 데서 다가와도 걸음걸이만으로 누구인지 식별할 수 있지. 그걸 그 사람이 의식하고 걸어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손은 이렇게 흔들면서’ 식으로? 아니잖아. 무의식적으로 걷는 거예요. 무의식 속에 자기가 드러나는 것이지. 그러니까 나답다는 것도 의식하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나다워지지 않아. 그저 일상생활에서 끝없이 꿈꾸고 실천하고 부딪히면서 나다워지는 것이지. 그래서 사막에 있는 선인장은 사막에 있어야 선인장다워지는 거예요. 그걸 정원에 가져와서 물을 줘봐. 다 죽잖아. 선인장의 선인장다움은 뜨거운 사막에서 사는 거야. 남들이 불행하다고 생각해도 그게 그에게는 행복인 게야. 그러니까 두려울 게 없지. 나다움의 세계는 나만의 세계예요. 남들이 어떻게 보든 자기만의 최적의 세계. 권력 욕심 없는 사람을 왕 시켜봐. 그처럼 불행한 일이 없어요.”


한국인과의 상관관계도 궁금합니다.
한국인은 자기 머리로 생각하는 힘이 약한 편인가요?


“그렇지 않아. 한국 사람이 의심이 많잖아. 한국 환자들처럼 의사 말 안 듣는 사람도 드물다고 하지. 무조건 의심하고 보는 게 한국인이야. 개성이 강하고 각자 자기가 잘났다고 생각하는 민족이야. 모든 면에는 장단점이 있듯, 이것도 마찬가지예요. 우선 단점부터 보자고. 한국 사람들은 남의 말을 잘 안 듣고 잘 안 따라요. 그래서 팔로워십이 약하지. 우리가 지금 나다워져라, 온리 원이 되라고 하는 것도 팔로워십 가르치는 게 아니야. 개인주의를 가르치는 것이지. 하지만 장점도 많아요. 각자가 자기의 개성을 지키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우리처럼 사는 게 옳은 것이기 때문에 세계인을 사로잡은 BTS(방탄소년단)도 나오고, 글로벌 군무가 된 싸이의 말춤도 나온 거예요. 결국 이런 개성과 나다움이 우리 사회의 발전 요인이 된 것이지. 한국인의 약점이라고 생각한 것이 긍정적으로 발현한 거예요.”


오늘 또 하나의 한국인의 긍정 DNA를 읽어냈군요.

“그 서로 다름의 개성으로 우리는 아름다운 돌담을 쌓아야 해요. 시골의 돌담을 봐요. 하나가 쏙 나왔으면 다른 하나가 쑥 들어가서 서로 맞물리며 튼튼한 구조를 이루잖아. 똑같은 벽돌로 쌓으면 벽돌담밖에 안 돼요. 러시아나 중국처럼 전체주의로 흐르는 것이지. 내가 나다워야, 개성이 있어야, 차이가 있어야 우리는 똑같은 벽돌로 쌓은 벽돌담이 아니라 서로의 개성과 개성이 어우러져서 자연스럽고도 아름다운 돌담이 만들어지는 거예요. 각자의 나다움을 인정하면서 서로가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줄 때, 그때 비로소 진정한 한국식 커뮤니티를 완성할 수 있어요.”


들쭉날쭉한 돌들이 맞물린 시골의 낮은 돌담을 떠올리며 ‘이어령다움’을 생각해본다. 죽음 앞에서 죽음을 질문하는 삶은 어떤 삶일까. 육체의 고통 앞에서도 인간의 고매함을 끝끝내 지켜내고자 하는 삶은 어떤 삶일까. 그 삶의 경지를 언어라는 존재의 집에 가두기엔 한없이 좁으리라. 다만 이것만은 알 것 같다. 가닿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끊임없이 무언가를 넘어서고자 하는 그 눈빛의 의미. 그것은 거대한 난해함 앞에 선 절망이 아니었다. 한없는 호기심으로 아이처럼 빛나는 영롱함이었다. “내 삶은 물음표와 느낌표를 시계추처럼 오가는 삶이었어”라던 선생의 말이 귓전을 맴돈다.
  • 2022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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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건의 글이 있습니다. 작성일순 | 찬성순 | 반대순
  나도 죽음을 한마디   ( 2022-01-18 )    수정   삭제 찬성 : 3 반대 : 0
사실, 인생의 본질은 죽음이다. 어쩌면 죽기위해 산다는 말이 맞을지 모른다. 그런데 각 사람들의 삶의 면면을 들여다 보면 살기위한 삶을 살면서 죽음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는 듯 보인다. 그래서 죽음이 두려운거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두렵지만, 그 실체를 알면 그 두려움의 강도는 많이 약해진다. 그런데 그 죽음의 실체는 딱히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각 사람들이 인생을 통해 찾아야 하는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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