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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움을 묻다

김초엽 ①

서로를 해치지 않는 무해한 관계란 없다

글 : 유슬기 기자  / 사진 : 서경리 기자

김초엽
소설가. 한국 SF 소설계의 젊은 거장.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지구 끝의 온실》 《행성어 서점》 등을 펴냈으며, 오늘의 작가상, 젊은 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이야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눈빛을 안다. 자음과 모음이 결합된 글자일 뿐인데, 흰 여백과 검은 글자는 무엇이든 만들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다. 거기다 SF는 모든 것이 가능한 확장된 세계다. 이야기는 이야기를 읽는 이들의 동공뿐 아니라 세계관까지 확장시킨다. 책장을 덮고 나면 이 모든 시공간이 사뭇 달라 보일 만큼.

SF계의 우아한 계보를 잇는다는 평을 듣는 김초엽 작가. 그의 첫 소설집은 25만 부의 판매고를 기록했고, 후속작들도 무리 없이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올랐다. 숱한 이들이 그의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건데, 사실 김초엽의 이야기를 기다리는 제1 독자는 김초엽 자신이다. 그는 자신이 즐기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쓴다. ‘누가, 어떻게 읽어줄까’를 의식하기보다, 자신 안의 질문을 정확히 던지고 있는지 실험한다. 작품이 그 과녁에 명중하면 가장 환호하는 건 작가 본인이다. 이 순수하고 열렬한 몰입이 독자들의 과몰입을 만든다. 김초엽이 만든 세계는 첫 작품부터 지금까지 문단과 독자들에게 고른 환대를 받았고 그는 ‘오늘의 작가상’ ‘젊은 작가상’을 수상한 데 이어 2021년에는 무려 ‘젊은 지도자상’을 받았다. 그는 아무도 지도하지 않았다. 다만 이야기를 써나갈 뿐이다. 누구보다 자신이 가장 좋아할 이야기를.

포항공대 출신의 과학도, 2030 독자들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 한국 문단의 미래…. 그를 감싸는 화려한 조명에도 그는 들뜨지 않는다. 과학을 전공하는 이들 모두가 다르고, 제각기 취향이 다른 2030 독자들을 하나의 개체로 묶을 수 없으며, 한국 문단의 미래가 어떨지는 아무도 예상할 수 없으니까. 세상사 오욕칠정에 초연해 보이는 이 작가는, 대신 작품을 쓸 때만큼은 누구보다 엽렵하다. 와이파이를 끄고, 세상에서 고립된 채로 무한한 상상의 세계를 유영한다.


중학교 시절 도서관에서 출간된 과학 분야 책들을 대부분 찾아 읽었다고 했습니다. 당시 도서관은 어떤 공간이었나요.

“그게 가능했던 건 중학교 도서관이 무척 작았기 때문인데요. 어쩐지 다른 친구들은 절대 접근하지 않는 과학 분야 서가가 저만의 비밀의 방 같기도 하고 재미있었어요. 구립 도서관에 가도 과학책들은 유독 손이 닿지 않은 듯 깨끗했는데 그땐 그게 왠지 기분 좋았어요. 당시에는 정말 이해하기 힘든, 예를 들면 양자역학과 초끈 이론을 다룬 대중서 같은 책을 고집스레 끝까지 읽기도 했고요. 어릴 때는 그런 지적 허영심이 있었나 봐요(웃음). 그렇지만 지금 생각하면 과학책들이 깨끗했던 건 좀 슬픈 일인 것 같습니다.”


요즘도 많이 읽습니까?

“네. 독서는 일의 일부라고 생각해서 늘 책을 읽어요. 그래도 책이 쌓이는 속도가 읽는 속도보다 훨씬 빠른 건 어떻게 할 수가 없나 봐요.”


어떤 작품은 오래된 메모에서 시작됐다고 했는데요.
늘 메모하는 습관이 있는지요.


“정말 다양한 노트를 써왔어요. 기본적으로는 종이 노트와 에버노트 앱을 같이 사용하고요. 에버노트에 문서가 수천 개가 넘어가다 보니 로딩이 좀 오래 걸려서, 답답할 때는 카카오톡에서 나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기능을 이용해 메모하기도 해요. 작업실에서는 여기저기 포스트잇들을 잔뜩 붙여놨다가, 수십 장이 쌓이면 에버노트로 다시 옮겨 기록합니다. 정말 별것 아닌 이야기들도 다 기록하는 편이에요. 그냥 떠오른 아이디어 외에도 인상 깊은 칼럼을 봤다든지, 논픽션 책을 읽다 소설로 확장하고 싶은 부분이 생겼다든지, 어떤 작품이 마음에 들었다면 왜 마음에 들었는지 기록하기도 하고요. 그렇게 많은 메모가 쌓이고 또 쌓이고 있어요.”


그런 습관이 다작으로 이어지는 걸까요. 지난 8월 장편소설 《지구 끝의 온실》을 낸 데 이어 10월 《방금 떠나온 세계》, 11월에 짧은 소설 모음집 《행성어 서점》을 냈습니다.
각각의 작품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과정이 궁금합니다.


“《지구 끝의 온실》은 2020년 8월에 선공개 버전을 완성했고, 그 후 초고에서 아쉬웠던 부분을 새롭게 쓰거나 고쳐 써서 정식 출간했습니다. 4개월 넘게 《지구 끝의 온실》을 고치고 다듬었어요. 아무래도 첫 장편이다 보니 시간이 더 오래 걸리더라고요. 《방금 떠나온 세계》에 수록된 작품들은 2019, 2020년에 이미 발표한 원고들이에요. 문장을 다듬고 내용을 수정하는 과정이 물론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출간 준비를 했던 것 같습니다. 《행성어 서점》 수록작들 역시 2019년부터 2021년까지 3년에 걸쳐 틈틈이 쓴 짧은 소설들을 모은 것이고요.”


작품 속 인물들은 모두 독특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스치기만 해도 통증을 느낀다든지(〈선인장 끌어안기〉), 해석할 수 없는 책을 파는 서점(〈행성어 서점〉)에서 일을 한다든지요.


“인물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단 초고를 끝까지 써봐야 하는 것 같아요. 쭉 쓰고 나면, 이 인물이 어떤 인물이었구나,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구나, 하는 것들이 좀 더 선명해지고요. 그렇게 알게 된 인물을 바탕으로 다시 대사나 행동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듬어나가요. 그 밖에 인물들의 직업이나 배경 등에 대해 참고자료를 많이 찾아보는 편이기도 합니다.”


그들이 처한 상황은 질문을 드러내는 도구이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고통을 주지 않는 것이 사랑일까, 아니면 고통을 견디는 것이 사랑일까’ 같은요.


“작품을 쓰다 보면 자연스럽게 평소 고민들이 반영돼요. 〈선인장 끌어안기〉의 그 문장은 일단 쓰고 나서 의미를 생각하게 됐는데, 제가 평소 관계의 상호 침투성에 대해 생각하던 것이 이런 대사가 됐구나 싶더라고요. 서로를 해치지 않는 무해한 관계는 없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것들이요.”


반면 〈방금 떠나온 세계〉에서는“이곳을 사랑하게 만드는 것들이 이곳을 덜 미워하게 하지는 않는다”고 했습니다.
서로 대립되는 두 가지가 동시에 존재하죠.


“빛과 그림자, 다면성을 늘 드러내려고 해요. 유토피아 안에는 디스토피아가 있고, 디스토피아 어딘가에는 유토피아 공동체가 생겨나는 것처럼요. 삶이 아름답고 빛나기 때문에 낙관하는 것이 아니라, 삶은 어둡고 축축하고 슬프지만 그럼에도 낙관이 가능할까 묻는 것이 저의 지향점이에요.”


세계의 양면성, 다면성을 들여다보면 무엇이 옳은가, 무엇이 정답인가를 찾을 수 없는 부분에서는 혼란도 있을 것 같아요.

“저는 다행히도 정답을 내리지 않아도 되는 직업을 택했어요. 답이 아니라 질문을 던질 수 있다는 건 소설가의 특권 같기도 하고, 약간은 비겁한 면모이기도 해요.”


비겁하다니요, 왜요?

“현실에서는 어떤 일들은 어쨌든 결론을 내리고 나아가야 하잖아요. 그렇지만 이왕 소설가가 된 이상, 그 양면성에 충분히 혼란스러워질 각오를 하려고 해요. 현실에서 제가 찾아낸 ‘잠정적인 답’들은 아무래도 소설을 통해 말하기보다는 다른 방식으로, 논픽션을 쓴다든지 시민단체를 후원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표현되는 것 같아요.”


논픽션 《사이보그가 되다》를 낸 것처럼 말이군요.
‘비장애인이 생각하는 장애인’ ‘장애를 고쳐야 할 무언가’로 인식하는 게 아니라 ‘장애 자체가 존중되는 세상’에 대해 썼습니다.


“일단은 《사이보그가 되다》뿐 아니라, 사이보그(기계와 결합한 인간)가 등장하는 소설도 여러 편 써서 저에게는 한 시즌이 마무리된 것 같아요. 앞으로는 더 확장된, 혹은 약간 다른 고민들을 담아내야 하지 않을까 싶고요. 꼭 ‘사이보그’라는 이미지를 통하지 않더라도 몸과 기술, 멸시되는 몸의 물질성은 여전히 저의 주요 관심사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안 되는 걸 해보려고 하는 사람들’을 좋아한다고 했어요.
문학과 과학에서 고른 성취를 이룬 셈인데 작가 본인은 ‘안 되는 게 있을까’ 싶은 질문이 생기기도 합니다.


“대학원생 때 그걸 많이 느꼈어요! ‘아, 나는 안 되는 걸 해보려고 하는 사람은 아니구나…’ 하고(웃음). 과학자들은 정말 안 되는 걸 해보려는 사람에 가까운 것 같아요. 물론 모든 연구자들이 그런 건 아니지만, 수십 년간 하나의 연구 주제에 천착해서 끝내 무언가를 발견해내는, 그런 사람들을 보면 정말 존경심이 생겨나고요. 저는 그런 분들과 반대로 인내심과 끈기가 무척 부족한 편이라서, 작품을 쓸 때도 ‘빨리 다음으로 넘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하지만 시간만이 해결해줄 수 있는 것, 한참 붙잡고 있어야만 답이 나오는 문제도 있다는 것을 점점 알아가고 있어요.”

〈나다움을 묻다, 김초엽 2편으로 이어집니다.〉
  • 2022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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