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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움을 묻다

장윤주 ①

편견에 갇히지 않고 돌파하는 삶

글 : 유슬기 기자  / 사진 : 서경리 기자

장윤주
모델. 1997년에 데뷔해 줄곧 한국 톱모델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배우, 싱어송라이터, MC 등으로도 활약 중이며, 영화 〈베테랑〉 〈세자매〉 등에 출연했다.
“윤주가 키가 조금만 더 컸더라면.”

그가 모델 활동을 할 때 자주 듣던 말이다. 모델을 준비하던 기간, 그는 오디션에 자주 떨어졌고 학원에 가장 오래 남아 연습하던 연습생이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해보자. 멀리 보고, 길게 보거라”는 어머니의 이야기에 6개월 동안 매일 수영을 하고 운동했다. 덕분에 키가 자라진 않았어도 마음이 자랐다. 어깨가 넓어지고 몸이 탄탄해졌다. 2년 동안 연습한 그의 시그니처, 척추를 꼿꼿이 세우고 발을 8자로 교차하는 워킹은 훗날 모델들의 교본이 됐다. 발이 크지 않던 장윤주는 모델에게 주어진 어떤 사이즈, 어떤 높이의 신발도 발바닥과 근육의 힘으로 발에 착붙시켜 당당하게 걸었다. 관계자들은 혀를 내둘렀다.

타고난 키와 발 사이즈는 바꿀 수 없지만, 운명은 바꿀 수 있다. 그가 자신의 운명을 바꾼 덕분에 한국 모델계는 장윤주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천편일률적인 모델이 각자의 얼굴과 몸과 느낌을 가진 뮤즈로 재탄생했다. 모델이 애초 ‘판타지를 시연하는 인물’이라면, 장윤주가 만들어낸 판타지는 ‘자기답게 걸어가는 자’가 갖는 아우라 같은 것이었다.

장윤주와 이야기를 나눌 때 그가 가장 많이 쓴 단어는 ‘자연스럽게’였다. 자기 것이 아닌 것을 욕심내지 않되, 자기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완벽하게 해내며, 자기 취향과 자기 사람들을 지켜가는 삶. 40대의 그를 보며 세상은 “달라진 게 없는 자기 관리의 끝판왕”이라 상찬하지만 그는 안다. 20대의 탄력과 싱그러움을 여전히 가질 수는 없다는 걸. 다만 20대의 혼란과 방황, 고뇌와 번민을 지난 지금은 그때 갖지 못한 평안과 자유를 얻었다. 무언가는 잃어버리고 무언가는 얻는다. 이 또한 자연스럽다.

그 와중에 자연스럽지 않은 일이 있다면 뉴페이스가 매일매일 출몰하고, 트렌드가 시시각각 변하는 패션계에서 그가 20년 가까이 톱 위치에 있다는 것. 그리고 패션계 너머의 음악, 방송, 라디오, 영화계에서도 독보적인 성취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수직으로도 우뚝하고, 수평으로도 너른 장윤주의 세계는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모델 장윤주의 첫 무대는 1997년 SFAA(서울패션아티스트협의회) 컬렉션이었습니다. 열여덟의 나이였고요.

“아휴. 저 데뷔 때요? 모델 초창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정말 옛날얘기더라고요. 20년이 더 넘어가니까. 당시는 필름 사진이라 원본을 갖고 있는 사람이 없어요. 아카이빙이라는 개념도 없을 때고요. 모델 한 지 15년 정도 됐을 때 지금까지 자료를 모아봐야겠다 싶어서 출판된 걸 스캔했어요. ‘그땐 정말 그런 시대였구나’ 싶어요.”


당시 진태옥 디자이너는 뒷부분에 나오기로 돼 있던 신인 장윤주를 오프닝 무대에 세우면서 “머지않아 이 아이가 한국의 케이트 모스가 될 것이다”라고 예언했는데요.

“제가 데뷔할 때 케이트 모스는 톱모델이었어요. 자연스럽게 그를 접하게 됐죠. 공통점이라면 개성이 있다, 키가 크지 않다는 점? 활동할 때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윤주가 키가 조금만 더 컸더라면’이었거든요. 그런 편견을 깨준 사람이라 저에게는 귀감이 됐어요. (‘한국의 케이트 모스’ 같은) 대중적인 수식어가 필요할 때도 있고, 그 말에 힘을 얻을 때도 있지만 그거에 막 연연하지는 않아요.”


편견에 갇히지 않았다, 지금도 현역에서 왕성히 활동한다는 공통점도 있네요. 장윤주 이후로는 모델계에 ‘군기문화’가 사라졌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만.

“저도 신인 때는 선배들이 마냥 무서웠어요.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을 했죠. 예전에는 더 예의범절이 중요했으니까요. 한 끗 차이로 군기처럼 보이는 게 갑갑하고 ‘왜 꼭 그래야 하지’ 의문스럽기도 했어요. 그래서 후배들과 친구처럼 자연스럽게 지내게 된 것 같아요. 누군가는 책임감이 없다고 할 수도 있어요. 이후로는 단합보다 개인플레이로 흐르는 경향이 생겼으니까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장단점이 있어요.”


매체에서는 쉽게 ‘장윤주 이전과 이후’를 나누는데요.
매체에 비친 이미지가 답답할 때는 없나요.


“10대에 진로를 결정했고, 매체에 자주 노출되다 보니 20대에 정체성 혼란이 왔어요. ‘내가 너무 일찍 결정한 거 아닐까’ ‘나는 이런 면도 있고 저런 면도 있는 사람인데’라는 생각을 했죠. 그때는 모델이라는 직업에 대한 인식이 별로 없어서 모델 하면 그저 몸에 대해서만 평가하는 게 아쉬웠어요.”


보이는 것으로만 평가받고 이슈가 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인가요?

“저는 ‘몸을 위해 운동을 하니, 마음을 위해 운동을 하니?’라고 물으면 마음 쪽이거든요. 몸과 마음이 연결돼 있지만, 저는 마음을 지키기 위해 운동하기 때문에 그런 외적인 평가를 먼저 하는 게 싫었어요. 키도 마찬가지죠. ‘모델은 꼭 키가 커야 해?’라고 물으며 편견을 깨야 살아남을 수 있었어요. 또 ‘모델은 사치가 심하다’는 편견도 있었어요. ‘모델이라면 쇼핑을 많이 하시죠?’라고 쉽게 묻는데 저는 (우렁차게) ‘아니요?!’ 했어요(일동 웃음). 어릴 땐 저를 둘러싼 편견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컸던 거 같아요.”


스스로 “옷이 없는 모델” “배 나온 모델”이라고 소개하기도 했죠(웃음).

“나이가 들어 하나씩 하나씩 포기하게 되면서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모델을 몸으로 평가하고 이슈로 삼는 것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제가 가진 것들을 잘 가져가자고 정리했어요. 제가 지닌 탁월함을 잘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더라고요. 성격도 마찬가지고요.”


그렇게 마음먹은 후 달라진 게 있다면요.

“대중적으로 알려지고 방송도 하면서 조여 있던, 숨 막히는 이미지나 고정관념을 저 스스로 풀게 됐어요. 이후로는 즐기면서 일할 수 있게 됐고요. 20대는 갈증과 물음이 많았다면 30대는 받아들이면서 ‘이왕 하는 거 재밌게 너무 뻔하지 않게 나의 길을 가자’로 바뀌었죠.”


보이는 이미지는 극강의 외향형인데요.
그동안 낸 음반과 음악을 들으면 나지막이 읊조리고 담담하게 침잠하는 내향형의 자아가 보입니다.


“모든 사람이 외향적인 면과 내향적인 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취향이 확실한 건 있어요. 저처럼 습작을 하는 여성 싱어송라이터를 굉장히 좋아하고요. 제가 가진 성향 중에는 상업성과 거리가 먼 것도 많은데, 그런 것들을 잘 가져가고 싶은 마음이에요.”


어떤 것들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가요.

“제가 가진 성향과 취향을 잘 지키고 계속 좋아하려고요. 보이는 나와 내가 좋아하는 나, 그 둘은 극과 극이 아니고 하나로 버무려져서 저를 표현한다고 생각해요.”

〈나다움을 묻다, 장윤주 2편으로 이어집니다.〉
  • 2022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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