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s pick

magazine 인기기사

topp 인기기사

daily 인기기사

아트테크

아트 컬렉터 이지혜

미술관을 사랑한 무용 전공생의 ‘덕투일치’

글 : 유슬기 기자  / 사진 : 서경리 기자

#나는미술관에서_투자를배웠다 #제이니의미술관 #미술시장의세대교체 #데이터보다안목 #애정매수컬렉팅
운동화를 신고 캔버스백을 멘 채 익숙하게 아트페어와 경매장, 갤러리, 미술관을 거니는 이들이 있다. 일찌감치 ‘영혼이 있는 황금’이라 불리던 미술품 시장에 MZ세대가 합류했다. 외환위기에서 성장기를,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사춘기를 보낸 이들은 돈과 소비에 편견이 없고 재무관리와 투자에 적극적이다.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 ‘자낳괴’라 불리던 이들에게 만물은 투자의 대상이다. 이지혜 컬렉터는 미술품 거래 역시 더 이상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라고 말한다. 자신의 취향을 담은 덕질을 투자로 발전시키는 이들. 이지혜 컬렉터 역시 부동산 시행 및 마케팅사 대표로 있으면서 아트 컬렉터로 활동 중이다. 그에게 미술품과 부동산은 좋은 물건을 고르는 데 ‘데이터보다 중요한 건 안목’이라는 점에서 일맥상통했다.


미술품에 대한 애호가 투자로 이어졌다고 했습니다.
처음 미술에 매료된 순간이 궁금합니다.


“대학 시절부터 미술관에 가는 걸 참 좋아했어요. 저는 뭔가에 꽂히면 끝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슈퍼 덕후 DNA’를 가지고 있거든요. 대학 때 미국 종횡단 로드트립 1만 마일을 일주하며 ‘미국 미술관에 깃발 꽂기 프로젝트’를 스스로 기획하고 실행하기도 했죠. 꽤 오랜 시간 미술품 애호가 단계에 머물러 있다가 처음으로 아트페어에 방문한 날이 터닝 포인트가 됐어요. 미술품이 화폐로 바뀌는 광경을 목격한 순간이었거든요. 제가 전공한 무용과 미술은 같은 예술 분야지만, 미술품은 실제 거래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무척 신선했습니다.”


‘미술관 깃발 꽂기 프로젝트’를 실행하며 느낀 점은요.

“프로젝트를 마친 후 지도를 보며 이동 경로를 체크해봤더니 미국을 시계 반대 방향으로 크게 한 바퀴 돌았더라고요. 미술관은 그 도시의 특성을 담고 있는데 산타페에서 방문한(‘미국의 천경자’라 불리는) 조지아 오키프 미술관은 산타페 건축의 특징인 어도비 스타일로 지어져 있었어요. 디트로이트 미술관은 그 도시의 주산업인 자동차 공장을 표현한 벽화가 현관에 들어서는 관람객을 압도했습니다. 제가 느낀 공통점은 미술관을 방문하는 관람객이 미술관을 어려워하지 않는다는 거였어요. 미술관 안 카페테리아에서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 제각기 바닥에 엎드려 마음에 드는 작품을 따라 그려보는 아이들, 아예 미술관으로 산보를 나온 것 같은 할머니들도 자주 볼 수 있었고요.”



지난 9월 《나는 미술관에서 투자를 배웠다》라는 책을 냈습니다.
책을 쓰기로 결심했을 때와 현재 미술 시장은 또 다를 것 같습니다.


“책을 쓰는 동안 느낀 미술 시장은 마치 살아 있는 생물 같았어요. 책을 준비하던 초기에 각 금액대에 맞게 추천하려고 정해둔 작가와 작품이 있었는데, 본격적으로 원고 작업을 하는 사이 가격이 너무 올라서 다시 새로 찾아야 했습니다. 미술 시장의 흐름이 너무 빠르게 변화하는 것 같아 당황스러웠어요. 책을 쓰면서 새삼 깨달은 건 ‘미술 시장은 지금도 변화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라는 당연한 명제였습니다. 책을 쓰기 전에 ‘미술을 좋아하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다’는 질문을 여러 번 받았는데요. 만약 누군가 저에게 같은 질문을 한다면, 좀 더 명쾌하게 말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미술 감상은 나의 취향을 찾아가는 즐거운 여정이자 좋은 안목을 기르는 확실한 방법이다. 그리고 안목을 기르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역시 많은 그림을 직접 눈으로 보는 것’이라고요.”


처음 구입해 소장한 작품은 어떤 것이었고, 어떤 의미였을까요.

“해외 아트페어를 처음 가본 2017년 〈아트바젤홍콩〉에서 세계 시장의 규모를 체감하고, 1년 후 다시 방문한 〈아트바젤〉에서 마음에 담아뒀던 작가의 작품을 눈앞에서 놓치고 말았어요. 아쉬운 마음으로 들른 ‘화이트 큐브 갤러리’에서 운명의 작품을 만났습니다. 굴지의 갤러리인 화이트 큐브는 우리나라 박서보 작가가 소속되어 있는 곳이기도 한데요, 당시에는 안토니 곰리(Antony Gormley) 전시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안토니 곰리는 인간의 신체를 주로 작업하는 조각가로, 뼈대만 남겨놓은 듯한 작품은 인간의 원초적인 외로움을 표현하는 것 같았어요. 그즈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의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는데 제게는 안토니 곰리가 ‘포스트 자코메티’처럼 보였어요. 그의 회화 작품을 처음으로 구입했는데, 솔직히 말하면 제가 가진 작품 중 가장 가격 오름세가 더딘 편이기도 하죠(웃음). 하지만 지금도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해요. 자산 증식을 위해서만 컬렉팅을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실제로는 작가와 작품을 향한 무한 애정으로 선택하는 ‘애정 매수’ 컬렉팅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100만 원 미만으로 진입할 수 있는 아트테크 시장도 있다고요.

“아트테크의 아쉬운 부분을 꼽자면 가격대가 워낙 세다 보니 그만큼 진입 장벽이 높다는 것과 보유기간이 길고 환금성이 낮다는 점입니다. 이 때문에 미술품 투자를 많이 어려워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다운사이징’ 전략을 통하면 이러한 단점들을 상쇄할 수 있습니다. 이미 시장에서 검증이 끝난 블루칩 작가들의 원화 대신 1/10 수준의 금액에 머물러 있는 판화나, 그보다 더 가격대가 낮은 아트토이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판화는 원화에 가장 가까우면서도 훨씬 저렴하게 작품을 즐길 수 있는 좋은 방법입니다. 판화는 복제품이지만 작가가 판화 제작에 참여하고, 작가 서명과 총 에디션 개수 등을 직접 기입합니다. 작가가 작고한 후 제작되어 서명이 포함되지 않은 사후 판화도 있고요. 요즘은 판화의 제작 방식도 다양해지고 있는데요, 제작 기법에 따라 다르지만 100만 원 선에서 구입할 수 있는 대가의 판화도 많습니다. 피규어는 판화보다 발매가가 더 저렴해 30만 원대도 아주 많고요.”


지금의 노하우를 집약하는 데 가장 도움을 준 경험은 어떤 걸까요.

“처음 컬렉팅을 시작했을 때 일인데요. 평균 연령 65세, 컬렉팅 경력 30년 이상의 선배 컬렉터들과 연을 맺게 됐어요. 한 세대는 족히 차이 나는 분들을 이모님으로 모시며 가깝게는 일본, 멀리는 유럽으로 미술관을 참 많이도 다녔습니다. 한번은 다 같이 마크 로스코(Mark Rothko) 작품을 관람하기 위해 일본 ‘DIC 카와무라 기념미술관’에 가게 됐어요. 천천히 작품을 둘러보고 있는데 한 분이 다가와서 ‘이 중 어느 작품이 제일 좋은 것 같니?’ 하고 귓속말로 묻는 거예요. 천천히 전시실을 걸으며 작품을 멀리서도, 또 가까이에서도 바라봤어요. 그러면서 질문의 의도를 헤아릴 수 있었습니다. 좋은 작품에 당연히 정답은 없지만, 결국 좋은 작품을 골라내는 안목은 컬렉션의 수준을 결정하는 핵심 자질이라는 것을요.”


SNS로 랜선 아트테크 가이드도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배움의 과정에 있다고 했지요.


“프랑스 철학자 조제프 주베르(Joseph Joubert)는 ‘가르치는 것은 두 번 배우는 것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배움의 절반은 가르치는 데 있다’는 중국 속담도 있죠. 미술 시장에 막연한 궁금증을 가지고 있을 누군가에게 읽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쓰고, SNS를 운영하고 있지만 사실 그 과정에서 가장 많이 배운 사람은 저였습니다. 요즘도 쉬는 날이면 미술관, 갤러리, 아트페어에 출석 도장을 찍는 삶의 반복입니다. 제 SNS 계정에 ‘#제이니의미술관’이라는 해시태그를 달아 꾸준히 전시 관람 리뷰도 적고 있고요. 전시 리뷰의 1차 기능은 물론 기록이지만, 사실 편식이나 선입견 없이 모든 작품을 잘 소화하는 컬렉터가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현재 제 컬렉션을 30년 후 미래의 제가 봤을 때 부끄럽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아트테크의 전망을 어떻게 보나요.

“어느 시장에나 ‘10년 주기론’이 존재하는 것 같아요. 미술 시장에 대입해보자면,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발발하기 직전의 미술 시장이 최고의 호황을 누렸으니 현재의 미술 시장을 10년 안팎 주기로 다시 돌아온 활황기로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현재를 ‘비로소 미술품이 자산 대열에 막 합류한 시기’로 봅니다. 아트테크라는 단어는 비교적 최근에 생긴 신조어지만, 이미 미술품은 아주 오래전부터 자산 기능을 충실히 해오고 있었습니다.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컬렉터 모임인 ‘곰가죽(the skin of the bear)’이 반 고흐와 피카소 등이 포함된 컬렉션을 경매에 내놓아 투자 원금의 다섯 배나 넘는 차익을 벌어들인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미술품 투자는 ‘아트테크’라는 전문 단어와 함께 형태가 더욱 다양하게 발전하고 있고요.”


지금 아트테크에 입문하려는 이들에게 딱 한 가지 조언을 해준다면요.

“현재의 미술 시장을 몇 가지 키워드로 정리해보자면 ‘활황’과 ‘세대교체’를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단군 이래 가장 똑똑한 세대라고 하는 MZ세대가 미술 시장에도 새로운 소비자로 떠올랐습니다. 과거 기성세대가 안정추구형 투자법의 일환으로 ‘풍차 돌리기식 예·적금’을 선호했다면, MZ세대는 ‘요즘엔 방향보다는 속도’라고 입을 모으죠. 이러한 경향이 미술 시장에도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아트테크를 새로운 투자처로 바라보는 시각은 물론 좋습니다만, 작가와 작품을 주식의 단타 종목처럼 여기는 건 대단히 위험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대학 시절 그가 미술관을 순례하며 느낀 감상과 소회는 몰스킨 노트 20권에 빼곡하게 담겨 있다. 당시 그가 남긴 메모 중에는 ‘KIAF에서 300만 원 정도의 작품 구매하기!’라는 목표도 있다. 10여 년 전이지만 그때의 다짐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그 낡은 노트에는 미술 공부에 쏟은 그의 시간과 정성도 녹아 있다. 이지혜 대표는 말한다. “그때부터 차곡차곡 쌓은 지식과 안목이 마일리지처럼 지금의 기본기를 만들었다”고. 어떻게 아트테크에 입문하느냐고? 일반인에게 멀어 보이는 예술품의 세계, 그 천릿길도 역시 한 걸음부터다. 캔버스화를 신고, 에코백을 멘 채로 가볍게 말이다.

  • 2021년 12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
이름      비밀번호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독자팀)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