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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모른 채로 사랑한다는 것》 정상윤 작가

가짜 성공과 공황장애를 이겨낸 글쓰기

글·사진 : 서경리 기자

#정서적찐따 #서툰청년의고백 #사랑을모른채로사랑한다는것 #공황장애를극복한_글쓰기
정상윤 작가는 유년기 트라우마가 뒤늦은 서른에 공황장애로 나타났다고 고백한다. 주치의가 “내일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라고 할 만큼 심각한 공황장애였다.

겉으로 보이는 그는 화려했다. 어릴 때부터 성실성을 타고난 그는 뭐든 열심히 해왔고, 미 치대생이라는 타이틀도 가졌다. 하지만 그건 자본주의가 원하는 가짜 성공이었다. 그는 스스로 “정서적 찐따”라고 칭한다. 사유력 없이 정서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서툰 청년. 그는 사회가 원하는 타자화된 자아상을 거두고, 진짜 자아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운동을 하고 철학책을 섭렵했다. 그 결과 국제 트레이너 자격증을 취득하고 PCA(피트니스대회) 지역 대회 두 곳(일산·대전)의 표지모델을 할 정도로 몸 근육을 키웠다. 그리고 사유력을 키워나가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쓰는 행위는 그가 몸과 마음의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정상윤 작가는 첫 책 《사랑을 모른 채로 사랑한다는 것》을 통해 방황하고 고뇌하는 자신을 가감 없이 풀어냈다. 유년 시절 그가 겪은 이야기에서 시작해 미국 치과대학원 생활까지, 자신의 삶을 되짚으며 “내가 만든 절망 속에서 내 영혼의 한없는 찌질함을 마주”했다. 그리고 외쳤다. “이제 정말 인간답게 살 준비가 되었다”고.

서른 살 작가의 첫 책은 풋풋한 언어들이 행간을 채운다. 철학자의 말도, 종교인의 말도 아닌, 자신만의 언어로 삶을 통찰하고 보듬으며 나아간다. 그 여정이 애잔하면서도 아름답다.



자신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 때를 기억하나요.

“보통의 청년들처럼 성공을 향해 열심히 달려왔는데, 어느 순간 성취 뒤에 오는 공허함을 느꼈어요. 이를 애써 무시하며 살다가 1년 전 동생이 쓰러지면서 모든 걸 멈추고 글을 쓰게 됐어요. 몸이 약한 동생이 생과 사를 오가는 것을 지켜보며 성취와 행복, 이 모든 인생의 순간이 죽음 앞에 무의미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내가 원하던 삶이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해보게 됐죠. 공허함을 파헤치려 종교와 철학에 빠져들었어요. 삶이 뭐지, 이렇게 살아도 되나, 남들이 말하는 성공한 삶이 과연 진짜 성공일까. 쓸쓸하고 외로웠습니다. 그때 나의 이야기를 글로 써보자 생각했습니다.”


첫 챕터 ‘앵무새 아저씨’는 이 책의 모든 이야기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어요. 사회가 정의한 행복이 아닌,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라. 아저씨가 하는 말이자, 스스로에게 던지는 말이죠.

“저도 모르게 앵무새처럼 남들에게 나의 행복을 맡겨왔어요. 인생을 단순화했죠. 세상이 원하는 가장 그럴싸한 상품이 되면 나의 행복이 저절로 따라올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사회가 만든 틀 안에서 나의 모든 것을 유지해왔어요. 그런데 완벽하지 않은 사회에 저를 맞추다 보니 언젠가부터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조차 답을 할 수가 없었어요. 알맹이가 빠져 있는 상태였죠. 타인에 맞춰 살다 보니 저 자신을 너무 몰랐어요. 사랑에 대해서도 모르고. 그러니 이성 친구를 만나면 자꾸 의존하게 되고 타인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 상품형 인간이 되어간 거죠. 조금 더 제 생각을 표현하고 솔직하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생존만을 바라며 살아온 나는 정서적으로 유약하여 항상 공허감에 시달렸다. 그렇게 나는 공황에 빠져들었다.” 책에서는 ‘이한’이라는 가상 인물을 내세워 속내를 고백합니다. 유년기 트라우마와 성인이 돼서 갑자기 찾아온 공황장애를 풀어내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제 경험을 들려주고 싶었어요. 공황장애를 겪을 때 많이 외로웠거든요. 사람들이 해주는 이야기가 귀에 와닿지 않았어요. ‘사람이 사람을 구원해줄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타인의 말을 듣지 않았죠. 하지만 그때 누군가 솔직하게 자신의 경험을 공유했다면, 저도 외롭진 않았을 것 같아요. 그래서 누군가 저와 같은 상황이라면, 솔직한 한 사람의 지질한 자기 고백이 위안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나 또한 너와 같았다’고 말을 건네면 힘든 시기를 지나는 누군가가 덜 외롭지 않을까요.”


“내가 하는 사랑이 정말 사랑일까, 물음을 던진 적이 있었던가.” 책에 담긴 메시지가 제목 《사랑을 모른 채로 사랑한다는 것》을 관통합니다.

“성숙하지 못한 어른이라 사랑과 행복, 삶의 이유가 타인에게 맞춰져 있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정서적으로 결핍돼 있었죠. 저는 이를 ‘정서적 찐따’라고 표현했어요. 내가 왜 정서적으로 찐따가 되었나를 고민하고, 지난 시간을 반추하며 삶의 의미를 찾던 중 삶에서 가장 의미 있는 게 사랑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동안 저는 사랑이 뭔지도 모르고 내가 하는 사랑이 전부인 줄 알았어요. 우연성에 사랑을 맡기고 살았죠.”



그 해답은 찾았나요.

“인간은 인식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라고 합니다. 그렇기에 개인의 삶은 세상의 크기에 비해 너무나 제한적이며 짧아요. 제가 사는 인생과 산티아고에서 만난 농부들의 인생이 전혀 다른 것처럼요. 사랑이란 그 작은 세계와 인식을 넓혀줄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자 희망이었습니다. 사랑의 올바른 정의가 무엇인지 몰라도, 틀린 것부터 지워가기로 했어요.”


어떤 지점이 틀렸던가요.

“나의 결핍을 그저 사랑이란 이름으로 떠넘기려 했어요. 사랑하면 결핍을 채울 수 있다고 본 거죠. 사랑하는 와중에도 여전히 결핍 상태일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사랑할 때는 과장이나 거짓 없이 솔직하게 ‘외롭다’ ‘결핍되었다’ 이야기하며 함께 풀어가는 겁니다. 끊임없는 연습 속에서 자신을 사랑하며 누군가에게 사랑을 줄 수 있는 존재가 되어가는 것 같아요.”


글을 쓰면서 겪은 변화의 순간들이 있다면요.

“글을 쓰면서 행복을 연습하는 법을 알게 됐어요. 행복은 결국 나 스스로를 사랑할 때 온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행복하기 위해 어떤 연습을 하나요.

“사소한 것들을 실천해요. 한 시간마다 한 번씩 웃기, 책을 읽은 후 이야기 나누기 같은. 평소에 하지 않던 행위를 통해 나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어요.”


책을 낸 후 삶에서 달라진 부분이 있나요?

“며칠 전 누군가에게 ‘너 굉장히 편안해 보여’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성숙한 사람이 된 것인지, 희망이나 용기가 생긴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강박과 기만으로부터 벗어난, 진정 혼자가 된 가벼운 기분이었어요. 일주일에 한 번씩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것들에 도전 중이에요. 예를 들면 하루 10분 하늘 보기 같은. 그러면서 느낀 게 있어요. ‘하늘은 한시도 똑같은 순간이 없구나. 나의 한순간도 특별하지 않은 게 없구나. 정말 소중하다’라고요. 타인의 시선을 완벽하게 극복하진 못했지만, 나 스스로에게 좀 더 솔직한 글을 써보려 해요.”
  • 2021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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