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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작가시대

1945년생 전순예 작가

60여 년 동안 써내려간 인생의 책

글 : 유슬기 기자  / 사진 : 서경리 기자

#나의살던고향은 #한국판_초원의집 #꿈을이루기에 #늦은나이는없다 #인생은60부터
“늦은 봄에 먹을 김치는 양념이 너무 많이 들어가도 안 되고 너무 적게 넣어도 안 되기 때문에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도록 특별히 신경 써서 만듭니다. 젓국이나 설탕, 찹쌀풀도 넣지 않고 파, 마늘, 생강에 새우젓만 약간 넣고 소금 간을 잘 맞추는 것이 비결입니다.”

비닐하우스도, 냉장고도 없던 시절엔 무얼 먹고 살았을까. 일제하에서 해방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 태어난 이들은 어떻게 자랐을까. 전순예 작가는 말한다. 아니, 쓴다. “그 시절에는 계절마다 산에 들에 강에 먹을 것이 지천이었다”고. “봄에는 풋고추석박김치 한 사발이면 밥을 한 그릇 비웠는데 배추김치를 쭉쭉 찢어 밥숟가락에 걸치고, 두툼하게 살찐 무쪽을 젓가락에 꿰어 들어 점심을 먹으면 피곤이 싹 풀렸다”고. 그의 글도 섞박지처럼 조미료 없이도 달고 맛있다.

그가 글을 쓰지 않았다면 우리는 1950년대 강원도 평창군 평창읍 뇌운리 어두니골의 풍경을 알 길이 없었을 것이다. 다행히도 그는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의 살던 고향’의 풍경은 날마다 더 선명해서 그는 연필을 쥐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의 첫 책이 나온 건 일흔셋이었다. 첫 책 《강원도의 맛》을 품에 안았을 때 그는 “다시 태어난 기분이었다”고 했다.



어떻게 그리 선명하게 기억하세요?
책에 음식 이름이나 지명은 물론 이웃집 아낙과 강아지 이름까지도 적혀 있던데요.


“어려서부터 시골에서 나고 자라서 그 땅에서 심고 키우고 뜯고 먹고 자라니까 그게 골수에 배어서 너무 잘 알 수밖에 없어요. 아주 작은 시골에서 100리 밖에도 못 나가보고 거기서만 자랐어요. 여섯 살부터는 본격적으로 살림에 참여했고요. 그래서 생생하죠.”


글로 복기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요?

“제 마음은 항상 고향에서 살아요. 우리는 강 안쪽에 살아서 뭘 사거나 하려면 강을 건너가야 했어요. 고향처럼 좋은 데가 없었죠. 너무 넓지도 않고, 어디에 무슨 바위와 돌이 있는지도 알고요. 커서는 도시나 외국에 나와 살기도 했는데 아마 고향이 없다면 못 견뎠을 것 같아요. 지금도 눈을 감으면 어디에 어떤 물고기가 사는지, 발밑에 있던 진개미(민물새우) 웅덩이도 기억이 생생해요.”


6세부터 살림을 했다면 글공부하기도 쉽지 않았겠습니다.

“매일 언나(아기) 보느라고 학교를 못 가서 비 오는 날만 갔어요. 날 좋은 날은 혼자 집에서 학교 놀이를 했고요. 6·25 때 폭격을 맞아서 교실이 모자랐어요. 1학년은 감나무 밑에서 공부했죠. 학교에 늘 굶주렸어요. 나는 아홉 살에 입학했는데 열아홉 살, 스무 살 학생도 많았어요.”


작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은 어떻게 품게 됐을까요.

“여덟 살 11월쯤 첫눈 내리는 날 오빠 방에서 책을 처음 봤어요. 책 속에는 바둑이도 있고 아이들도 있고 예쁜 그림도 있더라고요. 큰오빠가 ‘글을 배우고 싶냐’고 해서 그렇다고 했더니 하루도 안 빠지고 가르치는데 너무 싫은 거예요(일동 웃음). 나는 천천히 배우고 싶은데 너무 무섭게 하니까. 손바닥을 맞아가면서 배웠어요. 큰오빠는 아버지 대행이라 무서웠어요. 학교 들어가기 전에 한글을 다 뗐죠. 그러다 오빠 방에서 《집 없는 천사》라는 책을 봤어요. 그 시골에서 세상 어디 끝을 볼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았어요. ‘나도 이런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처음 생각했죠. 3일 밤을 새우며 읽었어요. 그때부터 오빠가 학교에서 매일 한 권씩 책을 빌려다 줬어요. 그 한 권 한 권이 너무 소중한 거예요. 이 책이 끝나면 이 세계도 끝난다고 생각하니까 거기에 계속 살고 싶어서 마지막은 안 읽고 덮어뒀어요.”


한 권 한 권을 아껴가며 읽었군요.

“제가 공부는 많이 못 했어도 책 한 권 한 권은 거의 외운 것 같아요. 그래서 책 쓰는 법이나 전체 그림 같은 건 이 안에 들어와 있지 않은가 생각해요.”


그러다 예순에 대학을 가셨습니다.

“우리 아들딸이 제가 환갑이 되니까 여행 가라고 여행비를 주더라고요. 나는 자식 다 키우고 할 일 다 했으니 그 돈으로 제일 가고 싶은 데를 가겠다고, 학교 입학금으로 썼어요.”


캠퍼스 생활은 어떠셨나요.

“신학대학교를 가서 나이 든 사람도 제법 있었어요. 서로 도우면서 공부를 했죠. 제가 하도 글을 쓰고 싶어 하니까 막내딸이 글쓰기학교, 소설대학 같은 데도 보내줬어요. 거기는 젊은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제가 글을 써 가면 강사가 ‘전순예 씨, 이게 글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그래요. 어린 사람들 글은 막 칭찬해주더라고요. 그래서 ‘에라, 내 하고 싶은 대로 써야겠다’ 했어요(웃음).”


막내따님이 《초원의 집》 아홉 권을 선물하며 “엄마, 재미난 책 많이 읽으시고 작가의 꿈 꼭 이루세요”라는 편지를 남겨서 혼자 앉아 엉엉 우셨다고요.

“내 평생 가장 좋은 말, 가장 행복한 말이었죠. 학교 가는 길에 전철에 사람이 많으면 책을 머리 위로 들고 읽었어요. 지하철 플랫폼 벤치에 앉아서도 읽고요. 내 평생 가장 행복한 시간이기도 했어요.”


첫 연재는 어떻게 하게 됐나요.

“제 글을 한 일간지 기자님이 좋게 보셨나 봐요. 덕분에 주간지에 연재를 할 수 있었고 그 글들이 모여서 책이 됐어요. 첫 연재를 시작하는 날, ‘강원도의 맛’을 쓴 그날은 평생 잊을 수 없어요. 아마 가장 기쁜 날이었을 거예요.”


같은 제목으로 첫 책이 나왔을 때는요.

“책을 처음 봤을 때, 세상에 다시 태어난 것 같았어요. 너무 감격했어요. 표지가 어떻게 나올지 전혀 몰랐는데 다 만들어진 후에 베트남에서 한국에 들어와서 본 거거든요.”


베트남에서 지내고 계신가요.

“남편이 인생 후반에 베트남에서 사역을 하고 있어요. 거기서 그렇게 행복하대요. 저는 가면 덥고 습하고 사우나 안에 있는 것처럼 기운이 없는데, 남편은 아니더라고요.”


거기서 어떤 일을 하세요?

“제가 별 재주가 없는데, 한 솥 끓여서 이웃이랑 나눠 먹는 건 잘할 수 있어요. 베트남에서도 밥 짓고 반찬 가득 해서 나눠 먹어요. 한국 음식 먹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누구든 오라고요. 우리 어머니가 늘 그러셨거든요. 자식이 여덟인데도 늘 다른 집을 챙기셨어요. 힘든 일 있으면 먹을 것을 해다 주시고요. 우리 할머니도 사랑이 많으셨어요. 뭐든지 먹이려고 하시고. 동물도 영물이라고 늘 아끼셨어요. 시골에서는 달걀이 모이면 닭이 되고 닭을 정성껏 기르면 개가 되고 개가 모이면 소가 되는 거예요. 소는 땅이 되고요.”


작가님은 그 모든 게 모여 글이 됐군요.

“마음으로나 생각으로는 평생 글을 쓰고 살았어요. 신춘문예를 볼 때마다 마음이 두근거렸고요. 당선작이 나오면 꼭 다 읽어봤어요. 나도 꿈을 버리지 않고 평생을 가져오다가 ‘인생은 60부터다’ 이러면서 다시 시작했으니까 할 수 있었어요. 다 녹슬고 문드러져서 못 하지 싶었는데, 딱 시작하니까 초등학교 6학년 때 문예반 하던 그 마음이더라고요. 저는 지금도 쓰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아요. 다 쓰고 갈 수 있을까, 조바심이 날 정도로요.”


작가의 글은 곱고 흠 없이 맑았는데 뜻밖에 그의 손마디는 굵고 거칠었다. 여섯 살부터 부엌살림을 익혔다는 전순예 작가는 일흔일곱에도 누군가를 위해 한 솥 밥을 짓고 있었다. 여덟 살에 품은 꿈을 일흔에 이룬 작가는 밥 짓는 빠듯함이 아로새겨진 손마디로 이제 글 짓는 뿌듯함을 적어가고 있다.
  • 2021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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