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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감수성을 높여주는 책(1) 《훈의 시대》

언어가 어떻게 개인을 시대의 욕망 안에 가두는가

《대리사회》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를 쓴 김민섭 작가의 책. 그 자신이 거리에서, 삶에서 마주치고 수집한 훈(訓)의 언어를 채집해 언어가 어떻게 시대의 욕망 안에 개인을 가두어왔는지를 풍부한 예시를 들어 보여준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등이 대표적인 훈의 언어들이다.

작가에 따르면 ‘훈(訓)의 언어’는 ‘규정된 언어’를 말한다. 다시 말해 첫째, 집단에 소속된 개인을 가르치기 위한 교육 언어, 둘째, 지배계급이 생산·해석·유통하는 권력 언어, 셋째, 한 시대의 욕망이 집약된 언어가 그것이다. 교훈·사훈·아파트(공간) 이름이 각각 여기에 해당한다. 강북에 있는 수많은 ‘강남맨션’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준다”는 래미안 아파트 광고 이후 등장한 ‘래미안빌’이라는 이름의 빌라들이 그 예다.

김 작가는 훈의 언어를 모은 후 통계를 내고 분석해, 우리 사회가 어떤 가치 지향의 사회로 변해왔는지 추이를 보여준다. 공립여학교 교훈을 분석한 결과 ‘순결’은 1979년까지 많이 등장하다가 급감했고, ‘정숙’은 점차 사라지는 분위기라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보기만 해도 민망한 교가와 교훈이 많다. “순결함은 우리의 자랑” “어여쁜 겨레의 자랑” “알뜰이 부덕을 닦아” 등이 2021년 현재에도 교가로 불린다.

단순히 책상 위 분석에 머물지 않고 현장을 찾아다니면서 담은 인터뷰도 많다. “참된 일꾼, 착한 딸, 어진 어머니”라는 교훈을 가진 한 여고 교감을 인터뷰해 교훈 변경을 시도했던 사연, 삼성그룹과 우아한형제들에 근무하는 직원들을 인터뷰해 사훈이 각 사원들에게 미치는 영향 등을 담았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나면 별문제 없이 보이던 사훈·교훈·아파트 이름의 상당수가 불편감을 안기면서 물음표를 던질 수 있다. 김민섭 작가는 줄곧 말한다. “개인은 조직의 통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만, 어떤 공간에서든 자신만의 사유를 지켜낸다면 대리인간이 아닌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 2021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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