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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은 교수

게임 언어는 어떻게 일상을 파고들었나

글 : 유슬기 기자  / 사진 : 서경리 기자

넥슨의 ‘크레이지아케이드 BnB M’은 서비스 29일 만에 다운로드 1000만 건을 넘어섰다. 엔씨소프트 ‘리니지2M’ 사전예약 신청자는 700만 명이 넘기도 했다. 밀레니얼이 주요 소비층이 된 지금, 이들이 게임에 투자하는 시간과 자본은 진심이다.

2020년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원의 조사 결과 한국 초등생의 장래희망 5위는 ‘프로게이머’였다. 세계 롤드컵(리그오브레전드 월드 챔피언십)에서 3회 우승을 기록한 세계 랭킹 1위 게이머 페이커(본명 이상혁)의 연봉은 알려진 것만 50억 원이다. 그는 봉준호·김연아·BTS·손흥민과 함께 ‘5대 국보’라 불린다. 지금 10대는 그를 보며 꿈을 키운다. 페이커는 고등학교를 자퇴한 후 게이머의 길을 갔다. 하루 열 시간씩 연습하며 실력을 키웠다. 세계 1위 게이머를 보유한 나라지만 게이머를 위한 제대로 된 제도권 교육은 없다.

1020세대는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언어를 체화한 세대다. 어른 세대가 오락실에서 게임을 접한 비율에 비해 이들의 온라인 게임 참여 비율은 압도적으로 높다. 그만큼 게임 언어가 일상으로 깊숙이 그리고 광범위하게 녹아들어 있다. 게임 언어는 나이가 드러나지 않기에 평등한 소통이 이뤄지고, 속도전 특성상 압축적인 것이 특징이다.

이동은 가톨릭대학교 미디어기술콘텐츠학과 교수는 ‘디지털스토리텔링’을 연구한 1세대다. 미국에서는 1995년부터 개념이 정립되고 학문화됐지만 한국에서는 2000년대 초반에 들어서야 첫 논의가 시작됐다. 특히 밀레니얼에게 게임은 공기와 같다. 하지만 숨 쉬듯 게임 하는 자녀를 보며 박수 칠 부모는 여전히 많지 않다. 이동은 교수는 이 간극을 줄이는 작업으로 《나는 게임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펴냈다.



책 서문에 아들을 처음으로 PC방에 데려간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아이들은 이미 스마트폰을 갖고 있고, 집에는 게임 하는 아빠·엄마가 많아서 애들도 부모가 게임 하는 걸 보고 자라잖아요. 게임이라는 새로운 미디어를 익숙하게 받아들여요. 책 읽는 것처럼요. 어느 날 아이가 ‘엄마 PC방이 있대’라고 해요. ‘올 것이 왔구나, 드디어 네가 진정한 게임 세계에 입문하는구나’ 싶었죠.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둘째가 두 살 때였는데, 온 가족이 다 가야 하니까 아이들에게 쾌적한 PC방을 찾았죠. 이후로도 몇 번 같이 갔어요. ‘친구랑 갈래’ 하기 전까지는요. ‘암, 게임은 친구랑 하는 거지’라고 보내줬어요.”


태어나면서부터 디지털 세계를 접한 1020세대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도 다르겠습니다.

“제가 관련 수업을 할 때 ‘똑같은 스토리텔링인데 앞에 디지털이 붙었다. 그렇다면 달라지는 양상이 있을 것이다’라고 이야기하면 디지털이 익숙한 1020세대는, 앞에 ‘디지털’이 붙는 것 자체를 의아해해요. ‘스토리텔링이라면 당연히 디지털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거죠. ‘원래부터 이야기는 이랬는데요?’ ‘원래부터 댓글 문화가 있었고 원래부터 상호작용이 있었는데요?’라는 반응이 와요. 둘을 따로 떼어 생각하지 않는 거죠.”


학문으로서 ‘디지털스토리텔링’을 연구하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대학 시절 연극을 했고, 졸업 후 영화사에서 영화를 만들다가 대학원에서 게임을 접했어요. ‘다른 사람이 하지 않는 일’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아요. 대학원에서 게임을 접하며 생각해보니 어렸을 때 비슷한 감촉을 느꼈던 기억이 났어요. 당시 연구실에 모여서 같이 게임을 했거든요. 교수님도 다 같이요(웃음). 그러다 보니 어릴 적 게임팩을 선물 받아 밤새우며 했던 기억이 났어요. 엄지손가락 지문이 닳을 정도로요. 대학원에서 게임을 학문적으로 접근하다 보니까, 이게 단순하게 유희로 했을 때랑은 다른 보물창고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을 접한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는 게임 속에서 스스로 한계에 도전하고 다른 사람과 협력하거나 경쟁하는 걸 반복한다. 서로 긴밀한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에 충돌 여지도 높다. 게임 언어에 축약어가 많은 것도 짧은 시간에 빠른 소통을 하기 위해서다. 게임을 마치고 승자와 패자가 모두 나누는 GG(Good Game)가 대표적이다. PLMK는 Please Let Me Know ‘어서 알려줘’, BRB는 Be Right Back ‘곧 돌아올게’의 줄임말이다. 한국어로는 ㅇㄷ/ㄴㄱ 등을 많이 쓴다. ‘어디? 누구?’의 줄임말이다. 게임업체에서는 게이머들의 용어를 통역하는 AI도 개발했다.

하지만 게임을 쏘고 맞히고 때리고 부수는 타격과 피격만으로 설명하기엔 그 의미와 묘미가 깊다. 실제로 이동은 교수는 게임 〈저니(journey)〉의 엔딩을 보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사막 한가운데서 시작한 이 게임 한 편이 인생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는 것 같아서다.



하지만 기성세대에게 게임을 권하기는 여전히 쉽지 않죠.

“대부분의 어른들은 게임을 ‘시간을 잡아먹는 괴물’이라고 생각해요. 그렇지만은 않다고 얘기해도 설득까지는 어려워요. 저도 제 아이에게는 ‘이제 그만 해, 게임’이라고 자연스럽게 말하게 되더라고요. 한번은 아이가 FIFA 온라인 게임을 하면서 그야말로 ‘현질(온라인게임 아이템을 현금을 주고 사는 일)’을 하는데 액수가 생각보다 컸어요. 도대체 이 많은 돈을 어디에 썼느냐고 물으니까 ‘전 시간이 많지 않아서 돈을 써야 해요’라고 하더라고요. 또 한번은 아이가 억·조 단위의 큰 숫자를 너무 빨리 헤아리고 이해하길래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더니 ‘(FIFA에서) 구단을 운영해봐서 그래요’ 하더라고요(웃음).”


게임 속 페르소나가 현실의 퍼슨에게 도움을 준 사례네요(웃음). 게이머의 정체성은 퍼슨(person), 페르소나(persona), 플레이어(player)로 나뉜다고 하는데요.

“현실의 퍼슨과 게임 속 페르소나를 연결해주는 존재가 바로 플레이어죠. 게임 세계에서 살아가는 페르소나는 검사도 될 수 있고 마법사도 될 수 있어요. 최근 현실에서 ‘부캐’라는 세계관이 유행했는데 게임계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쓰던 용어예요. 사실 메타버스 세계에서는 현실의 내가 가상으로 침투하기도 하고, 가상의 존재가 현실에 존재하기도 하죠.”


날로 확장되는 게임 세계관을 따라가기도 벅찬데 메타버스(가상을 의미하는 메타와 현실을 의미하는 유니버스의 합성어)까지 시작되니 좀 어지러운 기분이기도 합니다.

“가상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죠. 게임 안에서도 인문학을 비롯해 심리학 등 다양한 분야가 융복합돼 있는데 메타버스는 그걸 뛰어넘는 세계거든요. 그래서 플레이어에 대한 교육이 필요합니다.”


한번 도태된 세대는 디지털 세계를 점점 따라잡기 어렵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디지털 세상에서 태어난 세대가 있고, 디지털 시대로 이주한 세대가 있죠. 또 그 이전 세대가 있고요. 디지털 세대는 메타버스든 디지털 스토리든 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요. 제가 수업에서 자주 하는 말이 ‘메타버스에도 노약자석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우리는 탑승해 있지만 누군가는 승차 자체가 쉽지 않을 수 있거든요. 키오스크를 어려워하는 노년층이 많은 것처럼요. 이들도 접근할 수 있는 시스템과 언어 체계를 만들어나가야 해요. 그 간극을 메우는 게 지금 세대의 숙제겠죠.”



이게 게임 용어였어?
현실에 침투한 게임 언어들


자강두천
‘자존심 강한 두 천재의 대결’을 표현할 때 쓰인다. 한 유튜버가 게이머 페이커와 플레이어 도파의 게임 편집본을 게시하면서 ‘자존심 강한 두 천재의 새벽 마지막 경기’라는 문구를 사용했는데 이후 롤 갤러리에서 자주 쓰이다가 스포츠, 경제 분야 등으로 뻗어나갔다.

–할 각
‘어떤 행위나 일이 벌어지기에 적절한 상황’이라는 뜻이다. 지금처럼 유행어가 된 건 게임 ‘롤’의 영향이 크다. 예전에 당구 게임이나 포트리스 등에서 각도가 중요할 때 사용하는 말이었는데 이제는 각도와 상관없이 특정 상황이 올 것 같을 때 ‘–각’을 쓴다. 일상에서는 ‘고소각’ ‘야식각’ 등으로 변주된다.

하드캐리
상황을 반전시킬 정도로 큰 능력을 발휘할 때 사용한다. 누가 봐도 이기기 어려운 팀이 한 명의 활약으로 드라마틱한 승리를 거뒀을 때 ‘하드캐리했다’는 말이 종종 나온다. 쉽게 말하면 ‘빡세게 이끌었다’, 비슷한 말로는 ‘대활약’이 있다.

어그로 끌다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행위다. 영어로 도발을 뜻하는 ‘aggravation’에서 따온 말로, MMORPG (Massive Multiplayer Online Role Playing Game, 수십 명의 플레이어가 동시에 가상공간에서 캐릭터 역할을 수행하는 게임) 장르의 게임에서 주로 쓰였다. 몬스터를 도발해 최우선 공격 대상으로 지정되는 행위를 ‘어그로 끈다’고 한다.

크리
‘크리티컬 히트’의 줄임말이다. 우리말로 바꾸면 ‘치명타’ 정도가 된다. 일상에서는 치명적인 영향을 받는 상황이나 행동을 말할 때 쓰인다. 대표 응용어로는 ‘엄마크리(엄크)’가 있다. 엄마가 등장해 게임을 중단해야 하는 상황이 올 때 ‘엄크 떴다’고 표현한다.

순삭
‘순간삭제’의 줄임말로 어떤 것이 매우 빠르게 사라지거나 순식간에 없어졌을 때 쓴다. 게임에서 상대방의 캐릭터를 순식간에 죽였을 때나, 자신이 시작하자마자 죽었을 때 썼는데 점차 용례가 확대됐다. 무언가를 하느라 시간이나 돈이 순식간에 사라졌을 때도 ‘순삭’을 사용한다.

쿨타임
게임에서 한 가지 스킬을 사용한 뒤 해당 스킬을 재사용하기까지 대기해야 하는 시간을 말한다. 원래는 ‘쿨다운 타임’인데 줄여서 ‘쿨타임’이라고 부른다. 평소에는 ‘주중에 달렸으니 주말에는 쿨타임 가져야겠다’ 식으로 응용해서 쓴다.

버스
온라인 게임에서 레벨이 높고 실력이 뛰어난 사람과 초보이거나 실력이 낮은 사람이 함께 플레이하는 상황을 말한다. 뛰어난 사람을 ‘버스 기사’라 부르고, 실력이 좋지 않은 사람은 ‘버스 탔다’고 말한다. 게임 외 일상이나 단체 생활에서 자신이 기여한 것이 적을 때도 ‘버스 탔다’고 말한다. 비슷한 말로는 ‘무임승차’가 있다.
  • 2021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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