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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차 토끼 집사 이순지

토끼 주식이 당근이라는 오해

글 : 최선희 객원기자  / 사진 : 서경리 기자  / 사진제공 : 이순지 

#토끼랑산다 #랄라_햇살이 #반려토끼 #짖지않고_기다리지않는 #사지말고입양하세요 #토끼보호연대
반려동물이라고 하면 흔히 강아지, 고양이를 떠올린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새 토끼가 새로운 반려동물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남과는 다른, 나만의 것’을 추구하는 MZ세대 사이에서 인기다.

토끼 집사로 가장 유명한 사람이 있다. 《한국일보》 기자이자 9년 차 토끼 집사로 사는 이순지 씨다. 그는 반려동물로는 잘 알려지지 않은 토끼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공유하기 위해 2018년 《한국일보》에 ‘토끼랑 산다’ 코너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좌충우돌 토끼 집사의 삶은 큰 호응을 얻었고, 반려동물로서 토끼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높아졌다. 그는 6개월간 연재한 스물세 편의 글을 모아 지난해 6월 동명의 책도 펴냈다. 책의 인세 일부는 토끼보호연대에 기부한다.

햇살이(왼쪽)와 랄라. 랄라는 2018년에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그 사이 그는 2013년에 처음 만나 5년간 키운 랄라를 떠나보냈고, 지금은 햇살이와 산다. 랄라는 대형 마트에서 ‘구입’했는데, 햇살이는 공원에서 구조해 입양했다. 그는 “좁은 유리상자 안에 갇혀 있는 토끼가 불쌍하다는 이유로 데려오긴 했지만, 이런 식의 소(小) 동물 판매가 얼마나 비윤리적이고 폭력적인지를 나중에야 인식했다”고 한다.

토끼에 대해 공부할수록, 또 시간이 지날수록 너무 무지한 상태에서 토끼 집사가 됐다는 자책감이 커졌다. 상품처럼 소비되는 동물을 보면서 ‘동물권’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됐다. 그가 글을 써야겠다고 결심한 계기다. 마침 선배 기자들이 “반려토끼라는 주제가 신선하고 흥미롭다”며 적극 지원해 지면을 할애 받았다.

지금도 그는 토끼와 관련된 글을 꾸준히 쓰고 있다. 초보 집사들이 개인적으로 보내오는 이메일 문의에도 성실히 답한다. 그가 직접 랄라를 키우며 정보 부족으로 겪었던 시행착오들을 줄여주고, 집사와 토끼가 서로 보다 빨리 적응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인터뷰를 위해 북서울숲에서 만난 그는 햇살이와 함께였다. 햇살이는 한눈에 봐도 부드러운 털에 윤기가 흘렀다. 토끼는 고양이처럼 그루밍(자기 몸을 핥는 행위)을 해 몸을 깨끗하게 유지한다고 한다. 체크무늬 케이프를 곱게 차려입고 공원 나들이를 나온 햇살이는 곧 시선을 끌었다. ‘신기하다’며 바라보는 사람들의 반응에 긴장한 듯 두 귀를 쫑긋 세웠다.



뭔가 알아듣는 것 같은 표정인데요.

“갑자기 낯선 환경에 떨어져 들을 게 너무 많아서 그래요(웃음). 토끼는 귀를 보면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있어요. 편안할 때는 귀가 이렇게 서 있지 않고, 몸통 쪽으로 넘어가 있어요. 보통 소리가 나는 쪽으로 귀를 움직이는데, 소리에 반응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아주 편하다는 뜻이죠. 토끼를 잡을 때 귀를 모아서 드는 건 순전히 사람들 편의를 위한 방식이에요. 귀에 신경이 몰려 있어 조심해야 합니다. 엉덩이를 받치고 안아주는 게 제일 좋아요.”


반려동물로 토끼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친구가 토끼를 키우기 시작했는데 너무 귀여운 거예요. 토끼 덕분에 자기도 행복하다는 말에 더욱 관심이 갔죠. 특히 짖지 않고,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는 두 가지 조건이 아주 마음에 들었어요. 서울에 혼자 와서 여덟 평 원룸에서 살고 있던 저한테는 딱이었죠. 어디서 살 수 있는지 물었더니 마트에 가면 많다고 하더라고요.”


마트에서 토끼를 사왔다고요?

“지금은 많이 없어졌는데, 제가 랄라를 데려올 때(2013년)만 해도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었어요. 큰 토끼들 틈에 쪼그려 앉아 있던 아이가 불쌍해서 3만 원 주고 데려왔어요. 그게 얼마나 잘못된 행동이었는지 그때는 몰랐어요. 토끼나 햄스터 같은 작은 동물이 물건처럼 소비되는 현실에 대해 별다른 인식이 없었던 거죠. 상품으로 진열된 아이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질병이나 스트레스에 취약할 수밖에 없어요. 엄연한 학대죠. 동물보호단체들이 그 문제를 꾸준히 제기하면서 서울, 수도권에서는 거의 사라졌어요.”


햇살이의 생일파티.
토끼 외에 다른 반려동물을 키워본 적이 있나요?

“전혀요. 랄라가 처음이었어요. 그래서 시행착오가 더 많았죠. 불쌍해서 데리고 오긴 했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게다가 물면 어쩌나, 무섭기까지 했어요. 랄라를 키우면서 공부도 하지 않고 덜컥 반려동물을 들이는 게 얼마나 무모한 짓인지 깨달았어요. 귀여워서, 불쌍해서, 이런 충동적인 감정으로 데려오면 절대 안 된다는 걸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흔치 않은 반려동물이라 강아지나 고양이와 비교해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정보도 부족하지만, 키워보니 토끼는 반려동물로는 난이도가 높은 편이에요. 강아지처럼 말귀를 잘 알아듣는 것도 아니고, 화장실 청소도 엄청 열심히 해줘야 해요. 배변 훈련 자체는 크게 어렵지 않아요. 화장실을 만들어서 소변이 묻은 화장지를 놓아두면 계속 그 자리에서만 볼일을 보거든요. 대신 자주, 깨끗하게 청소해야 집에서 냄새가 나지 않아요. 집사가 아주 부지런해야 합니다. 그런데 진짜 어려운 건 전문 병원이 거의 없다는 점이에요. 토끼를 진료해주는 병원이 서울에도 겨우 두 군데밖에 없어요. 수의사에게 듣기로는 수의대에서 토끼 부분은 그냥 한번 훑고 지나가는 정도로만 배운다고 해요. 랄라가 1년 정도 투병하는 동안 집에서 한 시간 반 거리의 병원을 거의 매주 다니느라 정말 힘들었어요. 이제 토끼 반려인들이 늘고 있으니 토끼 전문 수의사도 많아지기를 기대합니다.”


토끼만의 특징이나 습성 같은 게 있다면요.

“우리나라에서 반려토끼로 키우는 종이 10여 가지 정도 돼요. 그중에는 이어드롭이라고, 귀가 아래로 축 늘어진 애들만 단일 품종이고, 나머지는 거의 다 혼혈이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종에 따른 특징보다는 토끼마다 성향이 달라서 한마디로 특징짓기는 어려워요. 랄라와 햇살이만 해도 랄라는 강아지에 가까웠고, 햇살이는 독립적이고 깔끔한 게 고양이 같아요. 또 원래 토끼는 야행성이라 낮에 자고 밤에 주로 활동하는데 랄라는 낮에 놀고 밤에 저랑 같이 잤어요.”



햇살이의 식생활도 궁금합니다.

“건초를 먹어요. 균형 있게 먹이려면 건초 80% 정도에 사료 15%, 나머지 5%는 과일이나 영양제로 채워주는 게 제일 좋아요. ‘토끼 주식은 당근 아니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게 토끼에 대한 흔한 오해 중 하나예요. 당근은 당분이 많아 치아를 빨리 상하게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밥이 아니라 가끔 먹는 반찬 같은 거죠. 토끼를 데려다놓고 아이들에게 계속 당근을 주게 하는 체험행사 같은 건 없어져야 합니다. 특히 서울 서래마을 인근에 ‘토끼공원’으로 불리는 곳이 있는데, 당근을 들고 토끼를 보러 오는 아이들이 많아요. 토끼보호연대 회원들이 거기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토끼 식성에 대해 알려주곤 했어요.”


토끼의 주식이 당근인 줄 알았는데 오해였군요.
토끼보호연대가 할 일이 많겠습니다.


“토끼보호연대는 2018년에 만들어졌어요. 반려토끼가 늘면서 버려지는 아이들도 그만큼 많아요. 주로 공원이나 숲, 아파트 잔디밭 같은 데 풀어놓아요. 풀밭에서 잘 자랄 거라고 생각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이미 반려동물로 개량된 아이들이고, 집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야생에서 생존 능력이 거의 없어요. 게다가 토끼는 먹이사슬에서도 최하위에 있고요. 아까 그 공원에서만 토기 40마리를 구조해 입양 보냈어요. 햇살이도 거기서 데려왔어요. 말이 좋아 토끼공원이지, 관리하는 사람 하나 없이 토끼들이 그냥 방치되고 있던 상황이라 구조가 시급했어요. 그걸 계기로 토끼보호연대가 만들어졌고, 구조한 토끼들의 입양을 위해 토끼보호소도 운영하고 있어요. 토끼를 정말 키우고 싶다면 사지 말고 입양하기를 부탁드립니다.”


반려동물로서 토끼의 매력은 뭔가요.

“저는 토끼를 키우며 삶이 달라졌어요. 불평 많고 게을렀던 취준생의 인생에 어느 날 불쑥 뛰어든 랄라를 돌보며 같이 성장한 것 같아요. 책에도 이렇게 썼어요. ‘사람을 좋아하게 되었고, 마음에 따뜻함이라는 것이 생겼다. 내 인생에 랄라가 온 것은 축복이었다. 학창 시절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에 마음의 벽을 쌓았다. 성인이 되어서는 뭐 하나 되는 일이 없다며 나 자신을 원망했다. 랄라를 만나고 모든 것이 변했다. 랄라를 위해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었고, 그렇게 살려고 노력했다. 열심히 살다 보니 정말 그런 사람이 됐다. 그렇게 오늘도 토끼랑 산다’고요.”


토끼 집사가 되고 싶은 사람들에게 당부해줄 말이 있다면요.

“정말 신중해야 합니다. 분명히 매력적이고 사랑스러운 존재지만 손이 많이 가고 경제적인 부담도 무시할 수 없어요. 그래도 키워보고 싶다면 우선 토끼 반려인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를 방문해보세요. 거기 올라온 많은 글을 읽어보고, 또 토끼보호소에서 자원봉사를 해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토끼에 대한 오해와 진실


1. 토끼의 주식은 당근?
No. 토끼에게 당근은 오히려 피해야 할 음식 중 하나다. ‘토끼=당근’이라는 인식은 1940년경 제작된 미국 애니메이션 캐릭터 ‘벅스 버니(Bugs Bunny)’에서 유래한다. 벅스 버니를 탄생시킨 제작자들은 토끼의 성향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당근은 당분이 많아 토끼 치아에 좋지 않다. 토끼의 주식은 건초다.

2. 토끼는 공격적이지 않고 얌전하다?
NO. 토끼는 호불호가 매우 분명하다. 극한의 분노를 느끼거나 짜증이 날 때는 ‘으르렁’ 소리를 반복해서 내기도 한다. 랄라의 경우, 분을 못 이겨 인형을 구멍 날 때까지 물어뜯은 적도 있다. 토끼를 키우지 않았다면 평생 토끼를 얌전하고 한없이 귀여운 존재로만 알았을 것이다.

3. 토끼도 중성화 수술을 한다?
Yes. 암컷 토끼는 중성화를 하지 않으면 자궁 질환 발병률이 80%가 넘고, 수명도 5년을 넘기기 어렵다고 한다. 토끼를 반려동물로 인정하는 영국이나 미국에서는 중성화가 흔한 일이다. 영국의 한 동물보호단체에서는 중성화를 하지 않으면 아예 입양을 보내지 않기도 한다.

4. 토끼도 산책을 한다?
No. 토끼는 강아지처럼 통제가 어려워 잃어버리기 쉽고, 풀밭에 사는 진드기나 벌레에 감염될 수도 있다. 토끼는 하루 종일 먹고 잔다. 자신이 좋아하는 공간에 몇 시간이고 가만히 앉아 있기 때문에 비만이 되거나 사회성이 떨어질 수도 있다. 토끼가 좋아하는 놀이를 찾아 함께하면서 충분한 운동을 시켜주는 게 좋다.

- 이순지, 《토끼랑 산다》 中
  • 2021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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