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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떠난 청년들

‘홍성에 청년농부들 왓슈’

무엇이든 물어보세유, 청년 귀농·귀촌 가이드

글 : 선수현 기자  / 사진 : 서경리 기자

농부가 씨 뿌리고 물만 준다고 농작물이 저절로 자라지 않는다. 고추, 감자, 양파, 포도 등 재배 방법도 다르다. 농촌 생활을 동경해 연고 없이 시골로 향한 초보 농사꾼이 무모하게 덤볐다간 자칫 의미 없는 땀만 흘릴 수 있다. 농촌 생활의 기역, 니은, 디귿부터 알고 싶을 때 이들을 찾자. 청년의 귀농·귀촌을 책임지는 ‘홍성에 청년농부들 왓슈(이하 왓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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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무연고 청년의 귀농·귀촌을 돕는 공동체 ‘홍성에 청년농부들 왓슈’의 구성원 정연성, 김미경, 이수정, 이태호, 우연희, 박휴근 씨(왼쪽부터).
박휴근·김미경 부부, 이수정 씨는 올해 초 홍성군민이 된 새내기 농부다. 정연성 씨는 도시에서 쌓은 IT 경력을 살려 스마트팜 운영을 담당하고 있고, 박휴근 씨는 농촌 생활 콘텐츠를 제작하는 유튜버로 변신했다.
햇살이 너무 뜨겁지 않게 내려앉은 한적한 마을. 바람이 일렁거리자 사르륵 소리가 스친다. 마을 입구의 커다란 나무가 초록빛 잎을 흩날리며 내는 소리다. 그 싱그러움에 몸과 마음 구석구석 쌓인 도시의 때가 씻겨가는 듯했다. 시선을 돌리자 저만치 기와지붕을 입은 하얀 집이 눈에 들어왔다. 깔끔한 하얀 벽에는 이런 글자가 쓰여 있었다.

“나 지금 홍성”

충남 홍성군 구항면의 카페 홍담은 시골 정취와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다. 농가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봉지마을 초입에서 누구라도 반기는 곳이다. 오랫동안 방치된 빈집을 이태호 왓슈 대표가 10개월 동안 손수 수리해 지금의 아늑한 홍담으로 탈바꿈시켰다. 구옥의 통창은 고즈넉한 시야를 선물하고, 기존 방들은 하나하나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이 됐다.

직접 수확한 농작물로 만든 디저트와 음료는 이곳의 자랑. 카페 사장이자 마을의 젊은 농부이기도 한 그가 농사지은 고구마는 고구마라테 재료가 되고, 마을에서 수확한 딸기·포도·감 등은 과일청과 주스가 된다.

봉지마을 초입에 위치한 농가카페 홍담. 마을 주민들에게는 사랑방 같은 공간이고 외지인에게는 시골 정취를 느끼기 위해 일부러 찾아오는 공간이 됐다.
홍담을 운영하는 이태호·우연희 부부는 이곳에 정착하며 새 가족을 얻었다.
2018년 도시를 떠나 홍성에 터를 잡은 이태호 대표는 모든 게 낯설었다. 아내 우연희 씨와 한적한 삶을 동경해 내려오긴 했지만 막상 무엇부터 해야 할지 막막했다. 어떤 작물을 언제 심어야 하는지, 잡초는 어떻게 뽑고 비료는 얼마나 줘야 하는지도 몰랐다. 동네 어르신들의 도움으로 조금씩 농부의 면모를 갖춰갈 즈음, 그는 인근 청년들과 비영리단체 ‘홍성에 청년농부들 왓슈’를 조직하기로 했다. 아무런 연고 없이 이곳에 정착하는 청년들이 자신과 같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왓슈는 홍담을 아지트로 삼고 틈나는 대로 모여 홍성군에 온 청년들을 도울 방법을 궁리했다. 체험활동, 세미나, 토론 등을 진행하며 청년 농부 멘토 육성, 청년 활동가 양성, 스마트팜 활용, 농업 컨설팅 등을 기획했다. 베테랑 농부인 마을 어르신을 강연자로 세우고, 왓슈 멤버들은 청년 멘토로 활약했다. 왓슈의 자발적인 활동은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20년 행정안전부 ‘청년공동체활성화사업’에서 전국 최우수 공동체로 선정됐다.


현재 왓슈 멤버는 10여 명. 20대부터 40대까지 연령대도 다양하다. 삶의 모습도 5개월 된 신입부터 농장·목장 경영인, 가죽공방 운영자, 귀농 생활을 영상에 담는 유튜버 등 제각각이다. 공통점은 쳇바퀴 같은 삶에서 빗장을 풀었다는 점뿐이다. 모두 도시의 삶을 뒤로하고 홍성에서 미래를 꿈꾸면서.

이날 인터뷰에는 이태호·우연희 부부를 비롯해 왓슈의 스마트팜을 연구하는 정연성 씨, 올해 초 홍성군민이 된 새내기 농부 박휴근·김미경 부부와 이수정 씨가 함께했다. 한창 바쁜 농번기, 고추밭에서 돌아온 정연성 씨는 옷에 묻은 흙을 툴툴 털어내고 안으로 들어왔다. 새내기 농부들은 아직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표정이지만 입가에는 연신 웃음이 배어 나왔다.


카페 홍담에서 마을 어르신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더라고요.
카페 옆 비닐하우스는 회의실처럼 꾸며져 있고요. 카페가 마을회관 역할을 하나 봅니다.


“홍담은 빈집을 개조해 만든 카페예요. 마을 사람들이 편하게 놀러 와요. 코로나 때문에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요. 밭에서 일하다가 ‘시원한 거나 한잔하지’라며 들어오고요. 여기가 동네 초입인데 마을 끝에서도 슬슬 걸어와 커피 한잔하고 가세요. 농가에 없던 문화가 생긴 거죠. 동네 아이들끼리 와서 숙제하고, 주말에는 영화 한 편씩 보고 가기도 해요. 비닐하우스는 왓슈를 시작하면서 청년 멘토 교육이나 외부 강사 세미나 등을 위해 마련한 거예요.”(이태호)


도시를 떠나 왓슈 멤버가 된 사연들이 궁금합니다.

“인천에 살았는데 복작복작한 곳이 싫더라고요. 조용하고 예쁜 하얀 집에 살면 좋겠다는 막연한 로망을 갖게 됐죠. 여행을 다니며 살 곳을 찾다가 홍성을 발견했어요.”(우연희)

“시골살이를 결심하고 경기도 양평 일대 땅값을 알아봤는데 평당 200만 원 정도였어요. 여기는 평당 25만 원 정도죠. 제 땅이 넓어진 덕에 할 일은 많아졌어요. 저도 정착해봐서 알지만 청년이 도시를 떠나 자립하기엔 기반이 너무 없어요. 먼저 자리 잡은 입장에서 서로 정보를 나누고 시행착오를 줄이고자 왓슈를 만들었습니다.”(이태호)

“정착 과정에서 이태호 대표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청년 농부 지원을 받으려고 하니 행정적인 처리가 많더라고요. 제가 도움을 받았으니 다른 청년들에게 다시 도움을 주고자 왓슈에 동참하게 됐습니다.”(정연성)

“의정부에 살다가 부모님이 계신 홍성으로 오게 됐어요. 왓슈는 검색하다가 우연히 알게 됐죠. 이곳 생활이 막연했는데 궁금했던 점을 물어보며 도움을 받았어요. 어디로 갈지만 정하면 지역별로 청년단체가 있을 거예요.”(박휴근·김미경)

“귀농·귀촌을 알아보다가 유튜브에서 카페 홍담을 봤어요. 경기도 화성에 살고 있었는데 너무 멀리 가는 건 두렵더라고요. 충청도가 딱이었죠. 탐사도 할 겸 카페에 놀러 왔다가 왓슈 포스터를 보고 생각을 굳혔어요.”(이수정)



왓슈는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나요.

“금전적으로 지원해주는 건 아니지만 농사짓는 법이나 그때그때 정부 정책을 활용하는 방법, 절차 등을 알려줍니다.”(이태호)

“저는 도시에서 IT 회사에 다니며 연구개발을 담당했어요. 경력을 살려 왓슈에서도 스마트팜 연구를 맡고 있습니다.”(정연성)


귀농·귀촌을 희망하는 청년들, 어떤 마음을 먹고 실행에 옮기면 좋을까요?

“왓슈 멤버들도 연령대별로 귀농하는 모습이 달라요. 20대부터 30대 초반은 뚜렷한 목표 없이 오는 경우가 많아요. 자금 사정이 여유롭지 않아 부모님 지원을 받기도 하고요. 대신 사업을 시작하면 무서운 속도로 성장해요. 시설을 짓고 작물을 심으며 2~3년 후면 농장 개념을 구축하더라고요. 30대 중반은 계획이 화려해요. 하고 싶은 게 많죠. 직장에서 팀장급이라 그런지 연륜이 있고 비교적 자금 사정도 괜찮아요. 금방 목표를 다져가더라고요. 30대 후반부터 40대 초반은 올인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고요. 이왕 도시를 떠날 거면 많이 알아보고 계획도 세우고 오길 바라요. 농사를 짓더라도 다른 수입원을 염두에 두는 게 좋고요.”(이태호)



홍성에 온 지 짧게는 5개월, 길게는 4년을 보냈는데요, 어떤 장단점을 발견했나요?

“도시에서 살 때 아이를 갖고 싶었는데 쉽지 않았어요. 우연인지 이 마을에 이사 오고 임신을 했네요. 아기가 6개월 됐어요. 출생신고 하러 면사무소에 갔더니 직원이 출생신고 방법을 잘 몰라 헤매더라고요. 출생신고가 얼마나 오랜만이면 그랬을까요.”(우연희)

“단시간에 건강을 되찾았어요. 회사에서 유럽 지역을 담당하고 있어 출장이 잦았는데 어느 날 몸에 이상신호가 오더라고요. 그런데 여기 오고 거짓말처럼 괜찮아졌어요. 또 모르고 살던 사계절을 알게 됐고요. 회사 다닐 때는 출퇴근 시간에 잠깐씩 느꼈던 것을 여기서는 하루 종일 계절과 함께하죠. 대신 돈 쓰는 법을 잊어버렸어요. 머리도 손질하고 유행 패션도 따르고 살았는데 지금은 헐렁한 바지에 조끼가 일상이에요. 도시의 센스도 같이 없어진 거죠.”(정연성)

“저는 물류 업무를 하며 충성맨으로 살았습니다. 회사가 80, 가족이 20인 삶이었죠. 분기별로 성과를 발표하는 게 스트레스였어요. 그 부담이 없어져서 제일 좋네요. 가족을 먼저 생각하는 삶으로 바뀌었고요.”(박휴근)


좋은 점만 이야기하네요. 불편한 점도 있을 텐데요.

“교통이죠. 운전면허가 없어 이동할 때면 꼭 남편이랑 같이 가야 돼요. 버스도 잘 다니지 않아요.”(김미경)

“저는 술을 끊었어요. 사람들과 어울려서 술 마시는 걸 좋아했는데 어두워지면 집에 오기가 힘들어요. 대리운전 비용도 만만치 않은 데다 멀어서 잘 가려 하지도 않고요. 의도치 않게 술을 끊게 됐네요.”(정연성)


시골로 떠난다고 했을 때 주변 반응은 어땠나요?

“반반이었어요. 부모님은 자식이 고생할 것 같으니까 걱정하셨어요. 물론 도시 생활도 힘들지만 같은 노동을 해도 경제적인 면에서는 도시가 좀 더 낫잖아요. 친구들은 부러워해요. 코로나 때문에 아파트에 살 때는 현관만 나서도 마스크를 써야 되잖아요. 여기서는 마당에서 편안하게 바깥 공기를 쐴 수 있어요.”(이수정)

“저희 부부는 둘 다 일을 관두고 올 용기가 없었어요. 남편은 퇴사했지만 저는 휴직 중이에요. 홍성으로 이사 간다고 하니까 직장 동료들이 걱정하더라고요. 안 좋은 일이 있다고 생각했나 봐요.”(김미경)

“저 같은 충성맨이 회사를 그만둔다고 하니 다들 ‘회사에서 무슨 일 있냐’는 반응이었어요. 여기 와서 농사를 준비하고 유튜브도 시작했습니다. 회사 다니면서 장비를 구입하고 오래 준비했어요. 이직이자 업종 변경이죠.”(박휴근)



꿈꾸던 시골 생활을 한다고 마냥 행복한 건 아닐 텐데요, 요즘 어떤 고민을 합니까.

“시간을 이렇게 써도 되나 싶어요. 너무 빨리 흐르니까. 새벽 4시에 일어나 부지런히 움직였는데도 아무것도 한 게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회사에서는 월급 받기 위해 일하지만 여기서는 나의 선택에 의해 100% 내 시간을 책임져야 해요. 그러다 보니 하루하루가 너무 빠르게 가는 것 같아요.”(정연성)


이전과 지금의 삶의 만족도 변화를 점수로 표현한다면?

“50점? 도시나 시골이나 장단이 있으니까요. 다만 점수의 질이 달라요. 도시에 계속 살았다면 하루하루가 꽉 채워져 있으면서도 비전은 없고, 50점의 삶은 변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여기서는 장기적인 목표를 세우고 하나하나 이뤄가고 있어요. 그러니 발전 가능성이 있는 50점이죠.”(이태호)

“도시의 직장 생활에서는 월급날 하루 행복했어요. 이곳에서는 순간순간 행복해요. 새싹 올라오는 것도 재밌고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도 많아졌고요. 소소한 행복이 늘어났죠. 삶의 점수는 같을지언정 행복의 빈도는 달라요.”(이수정)
  • 2021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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