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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떠난 청년들

전북 김제시 〈오느른〉 최별 PD

자연에서, 어른에게서 배우는 것들

글 : 김민희 기자  / 사진 : 서경리 기자

서울에서의 삶은 숨 가빴다.
최선을 다해도 맘대로 되는 일이 없었고, 다들 잘났는데 나만 못난 것 같은 좌절감이 들었다.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었다. 그때 우연히 발견한 전북 김제의 시골집.
115년 된 4500만 원짜리 마당 넓은 시골집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곳에서 다른 삶을 만났다.
내 속도대로 서툴게 살아도 아무도 타박하지 않는 삶, 28만여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채널 〈오느른〉의 최별 MBC PD 이야기다.

#4500만원폐가를샀습니다 #115년된집 #오늘을사는어른들 #자연이주는교훈 #서툴지만괜찮아
서울에서 3시간 30분, 연녹색 신록에 눈이 시려오는 충청도의 낮은 산들을 지나 탁 트인 평야를 보고 김제에 들어섰다는 걸 알았다. 김제평야는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평지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5월의 김제평야는 까슬한 청보리가 ‘쏴아~’ 소리를 내며 파도처럼 넘실댔다.

최별 PD의 집은 먼발치서도 눈에 띄었다. 형광주황색 지붕을 얹고 허리춤도 안 되는 낮은 담벼락 너머로 꽃밭이 어우러진 집은 동화의 한 장면 같다. 비스듬히 서 있는 자전거도, 누런 닥스훈트 효리와 믹스푸들 리본이도, 하늘거리는 꽃무늬 앞치마를 두르고 ‘까르르까르르’ 연신 웃어 보이는 최별 PD도 거대한 세트장 속의 설정처럼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느낌을 전하자 그는 “진짜요? 이토록 진심인데 왜요? 충격이에요” 하며 또 까르르 웃었다. 따가운 봄 햇볕에 한껏 그을린 까무잡잡한 팔이 그의 현실 생활을 대변했다. 논물이 바람에 찰랑이는 소리가 새벽방송 진행자 음성처럼 평온하게 스며들었다.


딱 이맘때였다. 최별 PD는 마당에 흐드러지게 핀 노오란 배추꽃에 반해 충동적으로 이 집을 샀다. 서울의 괴물 같은 집값에 눌려 있다가 ‘300평, 4500만 원짜리 집’이란 조건에 솔깃했다. 그저 내 소유의 집과 땅이 생긴다는 것만으로도 흥분됐다. 이후 그는 유튜브 채널 〈오느른〉을 개설해 낡은 시골집을 무려 5100만 원 들여 뼈대만 남기고 리모델링하는 전 과정을 천천히 화면에 담았다. 채널명 ‘오느른’은 ‘오늘을 사는 어른’이라는 뜻으로, 자기만의 속도로 살아내는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의 좌충우돌을 고스란히 녹여내고자 했다.

구독자들은 〈오느른〉에서 위안과 쉼을 얻었다. 낮은 담벼락에 팔을 걸치고 지나가는 동네 주민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마을, 비가 내리면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물에 손을 씻고, 배추꽃을 따다가 솥뚜껑에 감자전을 부쳐 동네 주민들과 나눠 먹는 삶. 한때 우리 과거였으나 도시에서는 상실한 풍경들 앞에서 구독자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작가 지망생이었던 5년 차 피디의 수준급 편집과 한 줄 에세이는 한 편의 영상 수필집처럼 감동을 안겼다. 그는 이 채널로 최근 한국PD대상 디지털콘텐츠상을 받았다.


거실에서 최별 PD와 마주 앉았다. 큼직한 창문 너머로 아빠가 딸을 위해 꾸민 꽃밭과 찰랑거리는 논이 한눈에 들어왔다. 최 PD가 핸드드립으로 내려준 원두커피는 깜짝 놀랄 만큼 향이 깊었다.


도대체 어쩌자고 서울서 3시간 30분 거리의 115년 된 집을 첫눈에 덜컥, 사버렸습니까.

“그러니까요. 하하하. 그때는 앞뒤 재지 않고 저질러버렸어요. 퇴사를 생각할 만큼 회사 생활이 힘들었거든요. PD라는 직업을 맹목적으로 하고 싶었는데, 막상 되고 보니 제가 꿈꾸던 것과는 거리가 있었어요. 해도 해도 채워지지 않았고요. 계속하려면 적응해야 하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느낌이 들었어요. 서울에서, 일에서 멀리 떨어지고 싶은 마음이 컸고, 도망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우선은 강화도에서 집을 알아봤는데, 차가 막히니 서울서 거의 세 시간이 걸리더라고요. 강화까지 차 막혀서 세 시간이라면, 김제까지 3시간 30분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싶었죠. 하하.”


영상을 보니 생의 본질에 대한 고민이 많던데요,
신중한 캐릭터에 이런 무모함이 얹어지니 흔치 않은 일이 벌어지는군요.


“저도 제가 신기해요. 이렇게 하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을 오랫동안 많이 하는 편인데요, 결정하면 행동으로 옮기는 데 과감해요. 이 집은 즉흥적으로 결정했지만, 시골집을 사고 싶다는 생각은 예전부터 했거든요. 서울 강서구 개화동에 살았는데, 〈응답하라 1988〉 덕선이네 집 같은 분위기였어요. 그때는 몰랐는데, 지나고 나니 그 시절의 환경이 좋은 곳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대학교 때 지하 고시원에서 친구와 살았는데, 끝없는 우울감을 맛봤죠. 아파트가 아니면서 해가 잘 드는 곳에서 살고 싶었어요.”


각종 농사 도구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집값은 4500만 원이데, 수리비가 5100만 원이 들면서 서울 전셋집까지 빼야 했지요.
후회는 안 해요?


“공사가 진행 중인데, 돈이 없으니 전셋집을 뺄 수밖에요. 그때는 무모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후회는 안 해요. 제 소유의 집이 처음 생기는 거잖아요. 제 땅과 제 집이 있으니 엄청 든든하더라고요. 만족감이 상당했어요. 서울에서 완전히 망해도 여기서 굶어죽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심리적 여유도 생기고요.”


이곳의 자연과 사람들로 인해 달라진 게 있다면요.

“동네 어머님들이 너무 좋으셔서 사람에게서 받는 위로도 크고, 자연에서 받는 위로도 상당해요. 농사짓는 분들에게서 배우는 것도 많고요. 아무리 열심히 농사를 짓는다 해도, 무를 언제 심느냐에 따라 잘되고 안 되고가 결정되거든요. 그건 본인의 노력 여하와 관계없는 부분이잖아요. 이분들은 그걸 그냥 당연하게 받아들이시더라고요. 여기에서는 당연한 세계인데, 저만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거예요.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들을 그저 받아들이는 태도를 배우게 됐죠.”


찬장의 식기들. 이전 집주인이 사용하던 컵과 접시를 뽀드득뽀드득 씻어 그대로 사용한다.
도시에서는 비싸게 거래되는 희귀품이지만, 이곳에서는 그저 밥그릇, 물그릇이다.
서울에서는 어땠는데요?

“서울에서는 내가 열심히 했는데 보상을 못 받으면 억울하고, 저 사람보다 내가 더 나은데 결과가 그렇지 않으면 내 자신을 못마땅해 하고, 누군가를 원망하는 상황이 많았어요. 그런데 여기서 살다 보니 ‘굳이 그럴 필요가 없구나’ 하는 마음이 생겨요. 사실 우리가 이걸 모르진 않잖아요. 책을 통해서도 많이 접하고요. 그걸 글로 아는 것과 생활로 부딪치면서 알아가는 것과는 다르더라고요.”


삽질을 하다가 문득 “모든 게 서투르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그래도 된다”는 영상의 한 문장도 마음에 남아요.

“서울에서 방송국 PD로 살다 보니 잘난 동료들이 많잖아요. 학력도 좋고, 논리적이고, 말도 잘하고요. 나만 못난 것 같은 콤플렉스가 있었어요. 누군가가 ‘별이는 아기자기한 걸 잘해’ 하고 칭찬해줘도 ‘왜? 나도 대작 할 수 있는데’라고 꼬아서 받아들이게 되고요. 그런데 이곳 어르신들은 제가 못하면 못하는 대로 있는 그대로 봐주시니까 사랑받는 느낌이 들어요. 또 유튜브 구독자들을 통해서도 위로를 많이 받아요. ‘이렇게 살아도 괜찮다’고들 말해주시니까 ‘그래? 그렇다면 조금 더 나아가볼까?’ 하는 용기도 생기고요.”


뒷마당 텃밭에서 샛노란 갓꽃을 꺾어 와 꾸민 부엌.
1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영상을 보니 자존감과 자신감이 쑥쑥 자라는 게 확연하던데요.


“맞아요. 그 생각을 정말 많이 하는데요, 가끔 제가 변했다면서 구독 취소하는 분도 계세요. 작년까지만 해도 제가 가진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어요. 가정환경에 대해서도 왜곡해서 기억했고요. 아빠와 여기서 같이 살면서 대화를 많이 해요. 공간의 힘인지, 대화가 서울에서보다 수월해졌어요. 그러면서 서로 맞춰지는 부분도 있는데요, 가난하고 불우했던 부분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을 객관화할 수 있게 됐어요. 또 유튜브를 하면서 자존감이 올라간 면도 있고요. 유튜브에서는 뭘 해도 나와 비슷한 취향의 사람들이 모이게 돼 있거든요. 내 콘텐츠를 좋아해주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을 보면 고마우면서도 신기했어요. ‘왜 나를 좋아해주지?’ 하면서요. 받은 관심과 사랑을 어떻게든 돌려줘야 한다는 책임감과 부담감이 커지면서, 이걸 압박으로 느끼지 않으려면 제가 건강하게 달라져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방법은 찾았나요?

“아트포라이프(Art for life)라고, 일상이 되는 예술, 예술이 되는 일상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어요. 제가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것처럼 각자의 인생을 들여다보면 제각각 드라마가 되거든요. 이 프로젝트를 위해 어제는 화가 김선두 선생님이 다녀가셨지요. 사실 프로젝트를 하기까지 고민이 많았어요. 〈오느른〉 채널의 인지도가 생기면서 감사한 제안을 많이 받게 됐어요. 얼굴 공개도 안 하려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제 통제권을 벗어나더라고요. 처음에는 다 거절하다가 ‘내가 불편하고 힘들다고 자르는 게 맞나’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제안들을 받아들인 지 얼마 안 됐어요.”


서울서 무기력하던 아빠는 이곳에서 활기를 되찾았다. 요즘 아빠는 앞마당에 딸을 위한 꽃밭을 만드느라 분주하다.
‘아트포라이프’라, 취지가 멋집니다.

“첫 주제는 동네 친구 1호 할아버지예요. 이 집에 와서 첫날 만난 분이고, 이사 온 지 70년 됐다고 소개하신 95세 할아버지요. 저기 왼쪽 집, 무꽃 뒤에 사시는데요, 그분의 인생관이 제게 큰 의미가 있어요. 한번은 6월쯤 복숭아를 먹으라며 내미셨어요. 딱 봐도 덜 익었는데 어르신이 먹으라고 주신 거니까 먹었죠. 떫어도 꾹 참고. 그런데 어르신은 먹다가 뱉으시는 거예요. ‘어우 맛없어, 맛없으면 뱉으면 되지’ 하고 가시는데 뭔가 깨달음이 오더라고요. 일관성 있는 위트를 던지는 분이세요.”


서울에서보다 몸을 더 많이 쓰는데, 훨씬 덜 피곤하다고 했지요. 왜 그럴까요?

“이곳의 삶은 자기주도적이에요.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들. 새벽에 일어나서 텃밭을 가꾸는 것도 내 땅이고 내 밭이고, 내 작물이니까 좋아서 하는 거거든요. 서울에서 누가 시켜서 하라고 했으면 못 했을 거예요. 어제는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동네분들과 요 앞 논에 싹이 난 나락을 모판에 심는 작업을 했어요.”





최별 PD의 삶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편집된 장면만 보고 환상을 품는 분들도 있을 텐데요, 현실 조언을 해준다면.


“일단 몸이 쉬는 것과 마음이 쉬는 것을 분리해야 해요. 몸을 쉬게 할 요량으로 시골에 온다면 말리고 싶어요. 브이로그를 하면서 카메라 속의 저를 보다 보니, 저는 부지런한 편이더라고요. 가만히 있지 못하고 쉴 새 없이 움직여요. 서울에서도 집이 지저분한데 가만히 누워 있으면 되레 스트레스를 받았고, 청소를 하면서 기분이 좋아지는 타입이에요. 그래서 이곳 생활이 맞는 것 같아요. 여기에서는 노동 없는 아름다움이나 대가가 있을 수 없어요. 이웃과의 관계도 어떻게 보면 되게 정확하거든요. 주고받는 게 배드민턴처럼 쉴 새 없이 이어져요. 물론 저는 일방적으로 받는 경우가 많지만요. 또 하나, 여긴 뭔가 다르겠지, 하는 기대감으로 오면 안 될 것 같아요.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거든요. 서울에서 느낀 소외감을 보상받고자 시골에 오면 오히려 더 힘들어질 수 있어요. 두 번 상처받을 수 있는 거죠.”


김제에서 앞으로 더 해보고 싶은 게 있다면요.

“오래된 건물에 관심이 많아요. 《진짜 공간》이라는 책을 봤는데, 한국 건축물은 대형 복합공간만 나오지, 삶의 공간에 대한 이야기는 없더라고요. 별로 안 예뻐 보이는 것도 시간이 스민 공간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어요. 시간의 흔적을 아깝게 여기는 태도가 더 필요해 보여요. 곧 읍내 사무실에 동네사랑방 같은 카페를 오픈하는데요, 오일장이 열렸던 동네라 일자로 조르르 상가가 있어요. 지금은 텅텅 빈 채 닫혀 있지만, 그 공간을 리모트 워커들이 사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봤어요. 생활비도 줄고, 영감의 원천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제는 인터넷만 있으면 어디서든 일할 수 있잖아요. 제 또래의 친구들이 집에 대한 개념을 넓혀서 생각해보면 좋겠어요. 새로운 기회가 열릴 수 있거든요.”
  • 2021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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