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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 오디션의 마스터키 ③렛츠기릿! 박재범

자유를 주마, 너의 음악을 하라

보통의 귀를 가진 우리는 ‘노래를 잘한다’ 혹은 ‘노래를 못한다’ 정도만 구분할 줄 알지, 어떤 음역대에서 어떻게 호흡을 하기에 그러한 발성과 스킬과 그루브가 나오는지 알지 못한다. 전국 팔도에서 노래 좀 한다 하는 소리꾼들이 대거 참여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은 더욱 그렇다. 수학경시대회나 과학경시대회처럼 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이 경연에서, 누가 정답을 부르고 누가 오답을 노래했는지 측정하기는 어렵다.

이 난제 앞에서 우리가 주목하게 되는 건 심사위원의 눈과 귀다. 이들의 눈살이 조금이라도 찌푸려지거나 고개를 갸우뚱하기라도 하면 보는 이들도 덩달아 긴장한다. ‘지금 뭔가 문제가 있구나’ 싶어서. 화면을 통해 보는 시청자에 비해 심사위원은 현장에서 지원자의 호흡이 어디까지 차오르는지, 다리가 얼마나 후들거리는지 실시간으로 직관한다. 고작 3분 남짓한 시간에 지원자의 컨디션부터 연습량, 심지어 인성과 매너까지도 단박에 파악한다.


오디션, 지원자와 마스터의 이인삼각

그 와중에 신기한 점은, 노래 한 곡으로 우승 후보에 등극할 만큼 잘 부르는 지원자의 소리는 심사위원뿐 아니라 시청자도 만장일치로 알아본다는 사실이다. 어떤 이들은 단 한 소절로, 1절이 끝나기도 전에 듣는 이의 흉금을 울리는 데 성공한다. 그런데 무엇이 우리를 이토록 매료시켰을까. 말로 잘 설명이 되지 않을 때, 우리는 다시 심사위원의 입에 주목한다. 그들은 우리가 알 수 있는 언어로, 지원자의 탁월함을 조목조목 짚어낸다. ‘아 맞아, 그랬지’ ‘그래서 감동했지’ ‘역시 내 감이 틀리지 않았어’ 하고 안심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지원자와 심사위원의 이인삼각 경기다. 이 둘의 밸런스에 성패가 달려 있다. 먼저는 지원자의 재능이 있어야 하고, 이를 발견해 북돋워줄 코치가 필요하다. 이 둘의 호흡이 레이스 마지막까지 이어질 때, 경기는 환호와 함께 끝난다.

이 좁은 땅에 숱한 경연 프로그램이 생겨나고, 그럼에도 매번 깜짝 놀랄 만한 신인들이 등장한다. 무명이라는 흙 속에 묻혀 있던 보석들이 경연을 거쳐 세공되고 다듬어져 마침내 진주처럼 영롱해질 때 우리는 잘 만들어진 드라마나 영화를 한 편 본 뒤의 감동을 느낀다. 어떤 면에서는 그 이상이다. 이 드라마에는 각본이 없고, 벌어지는 모든 일은 실화다. 드라마 같은 다큐, 영화 같은 예능이 오디션이다. ‘또 오디션이야?’ 하면서도 또 보게 되는 마력이 여기에 있다.


마스터의 성향이 프로그램의 성격이 된다

때문에 오디션 프로그램을 론칭할 때, 제작진은 마스터 섭외에 공을 들인다. 대한민국 오디션계의 역사를 바꿨을 뿐 아니라 트로트 열풍을 일으킨 태풍의 핵 〈미스트롯〉과 〈미스터트롯〉은 마스터 장윤정을 빼고 설명할 수 없다. 무명 가수들을 음지에서 양지로 불러들인 〈싱어게인〉 역시 유희열 심사위원장이 〈슈가맨〉 제작진과 의기투합하지 않았다면 만들어지지 못했다. 대한민국 힙합을 상징하는 아이콘이자 AOMG의 수장이기도 한 박재범은, 등장만으로도 〈고등래퍼〉나 〈쇼미더머니〉의 플렉스를 다르게 만든다. 마스터의 성향이 프로그램 전체의 성격을 규정한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오디션에서 끝나지 않고, 이를 바탕으로 후진을 양성한다. 이른바 A/S까지 확실하다. 다음 세대에 가요계의 대부나 대모가 있다면 조용필, 이미자 같은 모습이 아니라 유희열, 장윤정 같은 모습일지 모른다.

“이번 시즌에는 모두 잘해요. 독보적인 에이스가 없죠.
딱 정해진 에이스가 없다는 건 다 에이스가 될 것이라는 거죠.
그래서 더 재미있어요. 자신만의 색깔, 그루브, 아우라를 보려고 합니다.”

-〈고등래퍼 4〉 제작보고회에서 -

박재범은 한국힙합어워즈에서 2017년, 2018년, 2021년 세 차례에 걸쳐 올해의 아티스트상을 받았다. 첫 시작은 아이돌이었다. 그는 2PM의 초기 멤버였지만 1년 뒤 탈퇴하고 솔로 활동을 시작했다. 2013년 힙합 레이블 AOMG를 설립해 수장이 됐다. 그리고 한국대중음악상은 그의 앨범을 최우수 알앤비&소울 음반으로 선정하면서, “끊임없이 결과물을 보여주는, 메인 스트림의 트렌디함과 대중적 입맛을 놓치지 않는 음악가”라고 인정했다.

2021년 2년 만에 네 번째 시즌을 시작한 〈고등래퍼〉는 “박재범 사단을 등에 업어 더 풍성해졌다”는 걸 내세웠다. 지원자만 1만 2000명이 모였다. 2019년에는 AOMG에 속할 새로운 래퍼를 발굴하는 단독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MBN에서 방영한 〈사인히어〉다. 포맷은 간단하다. AOMG의 아티스트들이 직접 오디션을 진행하고 그중 한 명을 뽑아 계약서를 내밀어 사인하게 하는 방식이다. 이런 도전을 하는 이유를 박재범은 이렇게 말했다.

“힙합 프로그램이 한 곳밖에 없다면 우리도, 보는 사람도 식상하지 않나요? 이 기회에 판을 크게 벌여놓으려고 합니다.”

당시 박재범의 심사기준은 하나였다. 마음가짐과 태도 그리고 인성이다. “실력은 AOMG에서 키워주면 되지만, 인간성은 그럴 수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아티스트가 아닌 식구를 뽑는다는 생각으로 그는 프로그램에 임했다. AOMG의 식구가 되면 누릴 수 있는 혜택은 꽤 크다. 앨범을 내는 건 당연하다. 가장 큰 혜택은 ‘자유’다. 원하는 음악을 할 수 있는 자유. 또 자신들의 노하우를 아낌없이 공유한다. 계약금보다 중요한 게 이 부분이다.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든 우리는 계속 우리가 하던 대로 편하게 자유롭게 할 겁니다.
어떻게 되든 사실 별로 상관없어요.”

-〈쇼미더머니 4〉를 시작하며 -

박재범이 다른 심사위원과 다른 점은 그 역시 끊임없이 도전 중이라는 것이다. K팝 중심의 아이돌 그룹에서 솔로 래퍼가 된 그는, 2019년 미국 진출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Jay Park〉을 제작하기도 했다. 유튜브 오리지널에서 만든 이 다큐는 미국에서 온 교포 박재범이 한국을 넘어 다시 미국으로 진출하는 도전기를 그렸다. 한국에서는 〈쇼미더머니〉 심사를 보는 힙합의 수장이지만, 미국에서는 여전히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 다큐멘터리에서 그는 “미국 힙합 쪽에서는 나를 더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라디오에 출연해 갑자기 랩을 시키면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제이지(Jay-z)가 이끄는 힙합 레이블 락네이션과 계약해 화제가 됐다. 이 글로벌 프로젝트에서 싱글곡을 ‘soju(소주)’로 정하는 패기를 보이기도 했다. 한국 사람이 미국 힙합의 영향을 받듯, 미국에도 한국적인 뭔가를 보여주고 싶었다는 이유에서다.

그가 〈쇼미더머니〉 심사위원이 됐을 때도 여러 말들이 있었다. “박재범이 힙합인가?” “박재범은 비보이 아닌가?” “박재범이 후배를 양성할 정도로 선배인가?” 등등. 지원자들이 자신을 증명하기 전에 박재범 먼저 스스로를 증명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들의 기준에 맞게 심사했고, 색깔이 맞는 지원자는 AOMG에 영입했다. 우원재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우원재는 〈사인히어〉에서 심사위원 중 한 사람이 됐다.

“가수 못 하고 연예인 못 한다고 인생이 끝나는 건 아니에요.
지금 사랑받는 게 너무 복받은 삶이지만 이게 다는 아니거든요.”

-2018년 미국 진출 후 인터뷰 -

박재범 역시 AOMG를 이끄는 수장이지만 세계 시장에서는 그도 소속사의 관리를 받는 아티스트다. 그는 항상 소속사의 대표인 “제이지가 보고 있다”는 걸 명심하려고 한다. 자신의 태도가 또 자신의 레이블에 속한 아티스트에게도 영향을 주리라 믿는다. 세계 무대에서는 그도 오디션 지원자들처럼 늘 “나만의 멋을 제대로 보여줘야 한다”고 되뇐다. AOMG의 그레이와 로꼬가 잘되기 전부터, 쌈디가 함께하기 전부터 그는 믿었다. “우리가 열심히 잘하면 한국 힙합 신에서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될 것”이라고. 아이돌 생활을 접고 미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비보이를 할 때도 그는 주눅 들지 않았다. 열심히 살아서다. 그때는 오히려 머리도 가뿐하고 몸도 가벼웠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를 지켜주는 건 자존감이다. 아티스트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기도 하다. 오디션에 임하는 이들에게도 그가 당부하는 건 한 가지다. “렛츠 기릿(Let’s Get it)”, 한번 가보자는 거다.
  • 2021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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