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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등의 반란 내가 제일 잘나가 ③K팝스타4 준우승 정승환

그의 목소리가 드라마다

“찰스 린드버그의 이름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대서양을 두 번째로 횡단한 사나이의 이름을 누가 안단 말인가?”

1961년 구소련의 유리 가가린이 인류 최초로 우주 비행에 성공했을 때 미국 국회에서 분통을 터뜨리며 나온 말이다. 이 탄식은 ‘1등만 기억하는 세상’에 대한 메타포이기도 하다. 모두가 기를 쓰고 1등이 되려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2등의 슬픔은 생각보다 깊다. 1992년 미국 코넬대학교 심리학과 연구팀은 NBC의 올림픽 중계를 보며 연구를 진행했다. 선수들이 경기를 마치고 메달이 확정된 순간 어떤 표정을 짓는지 분석했다. 비통에 가까우면 1점, 환희에 가까우면 10점으로 채점했는데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동메달리스트들은 행복점수가 10점 만점에 7.1점이었는데, 은메달리스트는 4.8점이었다. 이들은 환희보다 비통에 가까웠다. 2등의 행복도는 3등보다도 현저히 낮았다. ‘실수만 하지 않았어도 금메달이었는데’ ‘스타트만 빨랐어도 1등을 할 수 있었는데’라는 아쉬움이 그를 비운의 선수로 만든 것이다.

2등을 보는 관중의 마음도 그렇다. 준우승이 아니라 탈락자를 보듯 안타까워한다. 심지어 준우승자는 이름도 불리지 않는다. 마지막 결승 라운드에서 3위까지 순위가 호명되지만 1위와 2위는 1위, 즉 우승자의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축포가 터지고 우승자가 왕관을 쓰는 동안 2위의 존재는 거의 잊히고 병풍처럼 무대에 서서 1등을 향해 박수를 쳐줘야 한다.


명곡만 기억하는 아름다운 세상

스포츠와 오디션이 다른 점은, 은메달리스트도 다시 한 번 전세를 역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디션 현장에서는 2등이었지만, 계급장 떼고 제대로 붙은 경기에서 순위는 의미가 없다. 이 공평한 세계에서는 오직 노래로 승부한다. 오디션의 우승자는 축포와 함께 기억의 뒤편으로 사라졌지만, 어떤 노래는 오래오래 살아남아 매년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대중의 귓가에 머무른다. 가수에게 우승 상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연금’을 매년 채워주기도 하고(장범준, ‘벚꽃 엔딩’), 어떤 곡은 드라마 OST로 삽입돼 짝사랑하는 이들의 인생곡(정승환, ‘너였다면’)이 되기도 한다.

‘1등만 기억하는 냉혹한 세상’은 적어도 여기엔 없다. 이곳엔 명곡만 기억하는 아름다운 세상이 있다. 우승이라는 달에는 1등이 먼저 도착했을지 몰라도, 대중의 마음이라는 우주에는 이들이 먼저 정착했다. 1등을 이긴 2등의 반란, 오디션 준우승 출신들의 대활약상을 모아봤다.




그의 목소리가 드라마다
2014년 K팝스타4 준우승 정승환


1등 케이티 김에게 반전의 드라마가 있었다면 2등 정승환에게는 발라드에 대한 한결같은 순애보가 있었다. 갈색 뿔테 안경을 낀 남자 고등학생이 무대에 올랐을 때만 해도 심사위원들은 “수능 준비는 잘 되느냐”고 물을 정도로 노래에 대한 기대가 높지 않았다. 그런데 그의 노래가 시작되자 참가지원서를 보던 심사위원들은 고개를 들었고, 클로즈업된 화면을 응시한 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담담한 목소리로 읊조리듯 시작해 “너무 외롭다. 난 눈물이 난다. 내 하루는 이토록 완벽한데”라며 절정을 향해갈 때 심사위원들은 무릎을 쳤다. ‘목소리 하나로 승부하는’ 진짜 원석의 등장이었다.

노래를 들은 뒤 유희열은 “〈스케치북〉에 발라드 남자 가수 특집을 한다면 정승환을 가장 마지막에 넣어 스페셜 무대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오디션 프로그램으로는 이례적으로 정승환이 부른 ‘사랑에 빠지고 싶다’가 음원차트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동영상 재생 뷰는 무려 680만 회를 기록했다. 오디션이 한창 진행되는 동안에도 그의 노래를 리스트업해 찾아 듣는 사람이 생겼다. ‘지나간다’ ‘만약에 말야’ 등 새로운 곡을 선보일 때마다 새로운 차트에 랭크됐다. 유희열은 “정승환은 선곡이 중요한 게 아니다. 그의 목소리가 드라마다”라고 다시 한 번 극찬했다. 양현석은 “정승환이 발라드를 부르면 보통 97점 이상이다. 목소리 자체가 핵무기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발라드, 한 우물만 팠어요

하지만 오디션은 발라드로만 승부하기엔 쉽지 않은 싸움이다. R&B와 소울로 무장한 우승자 케이티 김은 god의 ‘니가 있어야 할 곳’ 등을 그루브하게 편곡해 무대를 장악하면서 눈길을 모았다. “이 사람이 이런 것까지 잘해?!”라는 놀라움을 줘야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 반면 정승환은 시작부터 끝까지 발라드에 최적화돼 있었다. 다른 장르로 넘어가면 쭈뼛해지는 게 무대 너머로도 느껴졌다. 매 무대에서 변신의 기승전결을 보여준 케이티 김은 극적으로 우승의 드라마를 썼다.

하지만 진짜 드라마의 주인공은 발라드라는 한 우물만 판 정승환이었다. 이후 그는 드라마 〈또 오해영〉의 OST에 참여했는데 이때 부른 ‘너였다면’은 드라마의 인기만큼이나 사랑받는 노래가 됐다. 짝사랑을 해본 이들치고 이 노래에 가슴 치지 않은 사람이 없다. 이 드라마로 정승환은 오디션 준우승자가 아닌 감성 보컬로 자리매김하면서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 등에도 참여해 OST계의 황태자로 떠올랐다. 안테나 소속 가수가 된 정승환은 발라드 계보를 잇는 세손답게 발라드 왕자들의 길을 걷는다. 심야 라디오의 DJ를 맡았고, 〈비긴어게인〉에 출연해 노래 좀 한다 하는 보컬리스트들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했다. 지금 그가 어떤 오디션에서 몇 등을 했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그의 노래를 기억하는 사람은 숱하게 많다. 그리고 어떤 노래는 누군가의 인생곡이 됐다. 가수에게 이보다 큰 영광이 있을까.
  • 2021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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