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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가 된 비주류 ‘선비랩’ 머쉬베놈

“보여줘야겠어. 내가 망할 거랬던 놈들에게도, 내가 잘될 거라 했던 너에게도. 다 할게 최선. 갈아끼워 다 새 거.
My life's shining like a VVS VVS. 내 삶은 빛나 VVS VVS. … 왔노라 봤노라 결국 이겨냈노라.”
- Mnet 〈쇼미더머니 9〉 ‘VVS’ 中-
© 머쉬베놈
#쇼미더머니9 #왜이리시끄러운것이냐 #충청도래퍼 #특이한목소리 #진정한국내힙합

‘그동안 이런 랩이 있었나?’ 머쉬베놈의 랩을 듣고 나면 지금까지의 힙합조차 짜인 리듬과 플로에 갇혀 있었단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자유로운 힙합 속에서도 결코 찾아볼 수 없던 스타일이다.

랩 좀 한다는 사람은 다 모이는 〈쇼미더머니〉 시리즈. 시즌 9이면 웬만한 고수는 다 나왔을 법도 한데 어김없이 충격적인 실력자가 나타난다. 머쉬베놈도 그 가운데 한 명이다. 제목부터 발칙한 ‘왜 이리 시끄러운 것이냐’로 등장한 머쉬베놈은 독특한 목소리에 충청도 사투리 억양이 가미된 랩을 구사했다. 사극을 보며 당시 사회적 쟁점이던 층간소음 이슈를 더해 만든 곡이었다. 머쉬베놈의 랩을 두고 “진짜 신선하다” “진정한 국힙(국내힙합)”이란 반응이 쏟아졌다.

머쉬베놈의 특이한 목소리는 어려서부터 도드라졌다. 친구들의 놀림감이 된 목소리는 콤플렉스였다. 다양한 스타일의 랩을 시도하며 성대 수술을 받아야 할지까지 고민할 정도였다. 어느 날 그는 생각을 바꿔봤다. “잠깐, 그만큼 귀에 꽂힌다는 소리잖아. 내 목소리를 재밌게 만들어보자”고. 상대에게 쉽게 각인되는 독특한 억양과 톤을 개성으로 살려 충청도 플로를 더하자 독보적인 랩이 빚어졌다.

‘Trick’이란 랩 네임도 ‘머쉬베놈’으로 바꿨다. 내친김에 참가한 〈쇼미더머니 8〉에서는 좋은 성적을 거두진 못했으나 개성 있는 랩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인지도를 굳힌 그는 심기일전해 〈쇼미더머니 9〉에 다시 출연했다. 최종 준우승. 7년 무명으로 쌓아온 탄탄한 기본기에 자신만의 스타일이 더해져 이룬 결과였다.


콤플렉스 목소리, 새로운 장르를 만들다

머쉬베놈의 랩은 알맹이도 탄탄했다. 특히 언어유희를 활용한 가사로 관객과 연결된 끈을 늘였다 줄였다 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야기는 귀를 쫑긋하게 만들었다. “머쉬베놈, 멋이 밴 놈” “비즈니스가 있어야 가족은 있긴, 원래 가족은 있으니까 어머니 아버지 만수무강하세요” “안 될 것도 되게 하래서 난 되게 했더니만, 됐다고 하네. 고독하고만” “요것 좀 봐라, 하는 선생 그거 좀 마라” 등. 말이 되는 듯, 안 되는 듯한 가사가 허를 찔렀다.

일상에서 대화하는 듯한 랩이나 도통 따라잡을 수 없는 그만의 해학은 판소리나 타령을 연상케 했다. 구수하기까지 했다. 그에게 ‘조선힙합’ ‘선비랩’이란 별칭이 붙은 이유다. 머쉬베놈의 채도는 한층 높아졌다. 자이언티는 “너무 뻔뻔하게 자기 영역을 계속 넓혀가고 있는 듯한데 이런 느낌으로 죽을 때까지 랩을 해도 될 것 같은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그의 무대 중 가장 회자되는 것은 단연 ‘VVS’다. 세 명이 팀을 이뤄 무대를 준비하던 중 팀원 한 명의 대마초 흡입 사실이 드러나며 공연 전날 하차하는 일이 발생했다. 지금까지 준비해온 무대에 큰 타격이었다. 남은 멤버 머쉬베놈과 미란이는 공연을 재구성하기로 했다. 준비 시간이 극도로 부족한 상황. 하지만 두 사람은 최상급 다이아몬드를 가리키는 노래 제목 ‘VVS’처럼 완벽한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가사 속 “왔노라 봤노라 결국 이겨냈노라”는 예상치 못한 고난을 이겨낸 두 래퍼를 대변했다. 그 과정을 지켜봐온 시청자들에게 전해진 건 노래 너머의 용기와 위로였다.

머쉬베놈의 깊은 마음이 드러난 무대도 있다. ‘인디고’를 부를 때 팀원 미란이가 가사 실수를 했다. 당황한 미란이는 잠시 랩을 멈추고 고개를 숙였다. 팀원의 당황스러움이 전염될 수도 있었지만 머쉬베놈은 아니었다. 원래 있던 랩의 한 소절처럼 “Let’s go, 멈추지마”라며 상대를 격려했다. 다년간의 무대 경험에서 나온 여유이자 팀원을 끌어안는 포용심이었다. 결국 미란이는 실수를 털고 공연을 이어갈 수 있었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경쟁을 바탕으로 참가자를 한계에 몰아넣는다. 힙합의 색채가 짙은 〈쇼미더머니〉는 더욱 그렇다. 서서히 조여오는 압박에 굴복하면 나아갈 수 없다. 어떤 형태로든 극복해야 한다. 머쉬베놈이 택한 방법은 즐기는 것이었다. 수천 번도 더 해본 랩을 읊조리면서. 선비랩을 구사하는 그는 내면의 광대를 깨웠다. 신명 나게 한 판 놀아재끼자 이제껏 없던 힙합이 열렸다.
  • 2021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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