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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 라면

라면이 신스틸러 영화 속 라면 먹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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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후미진 골목길, 오래된 연식의 SUV 한 대가 멈춰 선다.
여자 : 태워다줘서 고마워요.
남자 : 고맙긴요, 뭘. (여자가 내리려 하자) 저기요. (악수를 청하는 남자)
여자 : (악수를 하고 내린 여자, 다시 차의 문을 열며 가볍게) 라면, 먹을래요?




원조 “라면 먹고 갈래요?”
〈봄날은 간다〉

그렇다. 여자의 대사는 “라면, 먹을래요?”다. 대부분이 “라면 먹고 갈래요?”로 알고 있지만, 실은 아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엔 가짜가 진짜를 압도한다. 영화는 2001년에 만들어졌고, 지난 20년 동안 “라면 먹고 갈래요?”로 구전되었다면, 그게 맞는 거다. 진짜 대사는 이후 여자의 자취방에 머쓱하게 들어온 남자와, 라면 물을 끓이다 문득 “자고 갈래요?”라고 묻는 대사로 이어진다. 그러니까 이 둘이 합쳐진 대사가 “라면 먹고 갈래요?”인 셈이다. “차 한잔하고 갈래요?”보다 마음이 가볍고, “잠깐 쉬었다 갈래요?”보다는 좀 덜 음흉한 문장의 탄생이다.

하지만 라면을 먹고 잔 다음 날이 그렇듯, 그 끝은 개운하지 않다. 여자의 마음은 인스턴트 라면처럼 오래가지 않는다. 남자의 가마솥에 끓인 곰탕 같은 순정을 감당하기엔, 여자의 봄날은 아직 일렁인다. 그는 설레는 다른 마음으로 훨훨 날아간다.

〈봄날은 간다〉의 허진호 감독은 이 대사를 배우 이영애와 함께 대화하다가 만들었다고 했다. 쓰디쓴 이별 후, 유지태가 “내가 라면으로 보여?”라고 쏘아붙이는 대사 역시 유지태가 만들었다. 두 사람의 봄날은 그렇게 가고 말았지만, “라면 먹고 갈래요?”라는 한 문장은 이 영화를 모르는 이들에게도 하나의 메타포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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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렁크 팬티에 러닝셔츠 바람의 남자, 거실 소파에 앉아 라면을 먹는다.
초인종 소리가 들리고, 집배원이 가져온 건 해외 소포다.
소포 안에 들어 있는 비디오테이프를 꺼내 틀어보는 남자.
그 안에는 찬란한 햇살 아래서 그보다 더 반짝이는 아내와 딸, 아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라면을 먹으며 화면을 응시하는 남자는 처음에는 웃다가, 나중에는 코를 훌쩍인다.
자기도 모르게 나오는 눈물 때문에 남자는 곤란한 듯 얼굴을 찡그린다. 어느새 남자는 울어버리고 마는데,
그 사이 불어버린 면발은 입 밖으로 자꾸 삐져나온다. 남자는 손에 든 라면 그릇을 던지고 만다.




어떤 라면은 등으로 먹는다
〈우아한 세계〉

영화 〈우아한 세계〉의 마지막 장면이다. 자신의 삶은 비루한 조폭이라도, 식솔들에게는 우아한 삶을 선물하고 싶었던 기러기 아빠. 그가 브라운관 앞에서 등을 보이며 라면을 먹는 장면은 그 자체로 하나의 엔딩이 됐다. 자신을 불살라 우아한 세계를 만들어주고자 했던 주인공의 바람은, 자신은 그 우아한 세계에 진입하지 못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영화 속 송강호, 그러니까 강인구는 대충 청과물 도매상처럼 둘러대지만, 조폭의 중간 보스다. 조폭도 가정에 돌아오면 가장이다. 사춘기 딸은 아버지의 직업을 알고 그를 멀리한다. 그가 더러운 현실을 견디는 이유는, 가족에게 물도 잘 나오고 채광도 좋은 집을 선물해주고 싶어서다. 그가 조폭이라는 건 영화적 설정이지만, 아버지의 등 뒤에 숨겨진 비루한 현실과 그걸 딛고 자라는 ‘즐거운 우리집’은 현실적이다. 장면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어떤 세계에서도 인정받지 못하고 표류하는 서러움과 자괴감이 주인공을 감싼다. 그는 먹던 라면을 내던져보지만 깨져버린 그릇, 쏟아진 면발과 국물은 치워줄 사람이 없다. 그는 검은 봉지와 노란 행주를 가지고 와 냄새와 기름기가 고인 거실 바닥을 쓱쓱 닦는다. 어떤 라면은,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지만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의 무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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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 모를 건물의 옥상에서 간이용 식탁을 펴고 휴대용 버너에 라면을 끓여 먹고 있는 남자.
양복을 입은 한 남자가 다가온다.
라면남 : 밥은 먹었냐? 와서 한 젓가락 해.
양복남 : 아닙니다. 형님 드십시오.
라면남 : 왜, (손 없는) 병신이 끓인 거라 맛이 없을까 봐?
양복남 : 아닙니다. (입맛을 다시며) 형님 드시기도 부족해 보여서요.
라면남 : 콩 한 쪽도 나눠 먹으라 했어. 와.
양복남 : (웃으며) 네, 형님.




한 손으로 먹어도 라면은 맛있다
〈내부자들〉

내가 끓인 라면을 선뜻 “한 젓가락 먹어라”고 내줄 수 있는 건, 사랑이고 의리다. 양복남이 손 하나가 잘리고 개털이 되어버린 라면남을 끝까지 형님이라고 믿고 따르는 이유도 아마 거기 있을 것이다. 〈내부자들〉은 이병헌이 여러 논란을 딛고 오직 연기력으로 승부해 승리를 거둔 영화다. 그중 손에 꼽히는 연기가 왼손으로 라면을 끓이고, 왼손으로 라면을 건져 먹으며, 또 그 손으로 소주를 따라 마시는 장면이다. 손을 하나만 쓸 수 있을 때도 배고픔을 채워줄 음식, 라면 말고는 쉽게 생각나지 않는다.

덕분에 〈내부자들〉의 안상구(이병헌)는 다시 후일을 도모할 기회를 잡는다. 사람이 끼니를 먹어야 뭐라도 할 수 있다. 자신의 오른팔 같았던 이들도 떠나고, 실제로 오른손도 잘리고,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그가 그나마 라면과 소주는 먹을 수 있었던 게 그에게 남은 유일한 생명줄이었다. 더구나 라면을 먹는 이병헌의 모습은 애처롭지 않다. 심지어 맛있어 보인다. 식욕이 있다는 것, 그 식욕을 맛있게 채워줄 라면이 있다는 것, 덕분에 안상구는 복수에 성공한다. 그야말로 2015년 버전 “라면만 먹고 뛰었어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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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식집에서 라면을 먹는 남자와 여자. 남자는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고,
여자는 면접을 본 뒤라 한 벌뿐인 정장을 입고 있다.
남자 : (라면 한 젓가락 먹고) 아 물린다 물려. 넌 질리지도 않냐?
여자 : 백수가 돈이 어딨어요.
남자 : 근데 넌 원래 라면에 계란 안 넣냐?
여자 : 네. 왜요?
남자 : 나도 그렇거든.




계란 넣지 않은 라면 좋아하는 분?
〈내 깡패 같은 애인〉

같은 반지하 세입자인 두 사람은 백수다. 한 사람은 대신 옥살이까지 다녀왔지만 조폭에서 버림받은 백수고, 다른 한 사람은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면접을 보러 다니지만 취업이 되지 않는 백수다. ‘반자발적’ 백수라는 점 외에도 두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계란을 넣지 않은’ 라면을 좋아한다는 거다. 두 사람은 자주 분식집에서 만난다. 여자를 대신해 ‘계란 뺀’ 라면을 주문해준 남자는, 이런 말을 한다.

“그래도 우리나라 취업준비생들은 착해요. 다 자기 탓인 줄 알잖아. 프랑스인가 어딘가는 취업이 안 된다고 다 몰려 나와서 난리를 치던데. 너도 니 탓 하지 마.”

그렇다. 남자는 깡패다. 이날도 어디서 흠씬 두들겨 맞고 온 참이다. 깡패는 여자와 한 테이블에서 라면을 먹고 먼저 일어나면서 라면 값을 내주진 않지만, 아무도 해주지 않은 이야기를 한다. “네 잘못 아니야”라는 말.

〈오아시스〉 이창동 감독의 조감독 출신인 김광식 감독은 “88세대를 리얼하게 그려내고 싶었다”고 했다. 영화가 만들어진 2010년은 ‘88만 원 세대’라는 말이 횡행하던 시기였다. 취직에 성공한 20대도 대부분은 비정규직이고, 월평균 급여는 88만 원이라는 분석이 낳은 불행한 단어. 하지만 영화는 이들을 연민하지 않는다. 영양실조로 쓰러지기까지 한 여자가 계란을 넣지 않은 라면을 좋아했던 건 ‘계란 값이 아까워서는 아니었을까’라는 동정에 빠지지 않고 ‘누가 뭐라든 라면 하나 정도는 내 취향대로 먹겠다’는 패기가 담긴 영화이기도 하다.
  • 2021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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