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s pick

magazine 인기기사

topp 인기기사

daily 인기기사

요즘 이 라면

《라면의 재발견》 한종수 작가

라면은 어떻게 소울푸드가 되었나

글 : 유슬기 기자  / 사진 : 서경리 기자

#라면의탄생 #라면만먹고뛰었어요 #라면세계를씹어먹다
#어디까지매워봤니 #놀이인가요리인가
“먹는 것이 죄일 수는 없다. 먹는 것이 죄라면 삶은 천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돼지 먹이로 사람이 연명을 한다면 식욕의 본능을 욕하기에 앞서 삶을 저주해야 옳단 말인가.”

1964년 5월 경향신문에 실린 기사의 일부다. 한국전쟁 이후 ‘꿀꿀이죽’으로 연명해야 했던 시기에 대한 기록이다. 미군 부대에서 쏟아지는 것이 그나마 영양가 있다고 믿은 이들은 꿀꿀이죽으로 입에 풀칠을 했고 이 정체불명의 액체도 구하지 못하면 온 식구가 식은땀을 흘리던 시절을 살았다.

당시 대기업 제일생명 사장이던 전중윤은 본사가 있던 남대문시장을 지나다가 100m 가까이 줄이 늘어선 것을 보고 호기심이 동해 함께 줄을 섰다. 20분 뒤 그가 받아 든 것은 단추며 담배꽁초까지 뒤섞인 죽 한 그릇이었다. 그는 보험회사에서 나와 식용유와 밀가루를 다룰 수 있는 회사를 인수해 1961년 ‘삼양식품공업’을 세웠다. 꿀꿀이죽을 대체할 ‘라면의 탄생’이었다.


1963년 삼양라면 신문 광고.
# 라면, 그 가난한 사랑 노래

밀가루로 면을 만들고 기름에 튀긴 후 수프를 뿌린다. 거기에 뜨거운 물을 부으면 한 끼가 완성된다. 짐승이 먹는 것이 아니고, 누가 먹다 버린 것이 아니고, 따뜻하고 위생적인데 기름기까지 있는 라면을 먹을 수 있게 된 건 하나의 은총이었다. 지난 1월 발간된 책 《라면의 재발견》에서는 라면이 어떻게 한국인의 소울푸드가 됐는지를 탐구하는데, 그중에서도 라면의 탄생 과정을 세밀하게 기록하고 있다. 거대한 담론보다 사람과 세상살이의 미시사가 더 흥미롭다는 저자 한종수 작가는, 그 과정 역시 “한 편의 드라마 같다”고 말한다.

“라면은 뭐니 뭐니 해도 산업화 시대의 산물입니다. 탄생과 전파 과정이 흥미롭죠. 전후 미국이 대량생산한 밀가루가 당시 아시아에서 가장 산업화된 일본에 대거 유입됩니다. 그 시기에 대만 출신의 일본인 안도 모모후쿠가 라면을 개발하고, 은행원 출신 오쿠이 기요스미가 수프 별첨 라면을 발명했으며, 전중윤이 한국에 도입하는 과정은 드라마 같죠.”

라면의 종주국은 일본이다. 전후 일본은 패전국으로 앞길을 도모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하지만 한국전쟁의 특수는 일본이 재건할 발판을 마련해줬다. 전중윤에게 라면 만드는 기술을 무료로 전수하고 기계 또한 싼 값에 넘긴 오쿠이 기요스미는 드물게 ‘한국에 대한 부채의식’을 가진 인물이었다.

“책을 쓰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일본에도 이런 양심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려준 인물이기도 하고, 라면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입니다. 그가 수프 별첨 라면을 만들기 전까지 인스턴트 라면의 표준은 면을 반죽할 때 이미 간을 해서 별도의 양념 없이 물만 부으면 되는 방식이었어요. 편리하지만 맛은 부족했죠. 더구나 면이 산패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라면 가격은 10원. 꿀꿀이죽이 5원, 커피 한 잔이 30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라면은 나무랄 데 없는 한 끼였다. 여기에 혼분식을 장려한 정부 정책, 쌀보다 값싼 밀가루를 먹도록 유도한 ‘무미일(쌀 없는 날)’ 캠페인, 커다란 아궁이 대신 풍로에 음식을 끓일 수 있는 양은냄비의 등장 등은 라면 소비에 날개를 달아줬다. 당시 결혼식에 온 하객들에게 답례품으로 라면을 줄 정도로 인기 상품이 됐고 1968년 1월에는 한 달에만 라면 1200만 개가 팔리는 기염을 토했다.


# 한국인의 라면 소비량 세계 1위

시간은 흐르고 흘러 2019년. 이제 라면만 먹고 달리는 시대가 아님에도 한국인 1인당 라면 소비량은 75.1개로 세계 1위다. 5일에 한 번은 라면을 먹는다는 이야기다. 2위 네팔, 3위 베트남이 각각 57개, 56개인 것과 비교하면 평균 20개 정도를 더 먹는 압도적 선두다. 라면 종주국인 일본 라면이 육수와 후추로 맛을 낸다면, 한국 라면은 고추와 마늘의 아린 맛으로 매운맛을 낸다. 그리고 이 매운맛이 한국인의 취향뿐 아니라 세계인의 취향도 저격했다.

“우리나라 라면은 커피믹스와 비슷해요. 따지고 보면 ‘라멘’과 ‘원두커피’라는 원조가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그런 존재가 없기에 그 분야에서 각자가 주인 노릇을 하며 독자적인 발전을 한 거지요. 어찌 보면 압축 성장을 한 우리나라 현대사와도 많이 닮은 존재이기도 해요. 현재 세계, 특히 개발도상국에 더 어필하는 점도 그런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

삼양, 농심, 오뚜기, 팔도로 이어지는 라면 회사들은 제각기 필살기를 가지고 라면 시장에서 진검승부를 겨룬다. 소비자 역시 자신의 취향과 추억에 따라 라면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긴다. 한국인에게 라면은 추억이고, 친구다. 한종수 작가에게도 그렇다.

“저는 분식점 라면이 1000원이 넘을 때 충격받았습니다. 아마 90년대였을 거예요. 이젠 1000원으로 한 끼를 때울 수 없게 됐다는 현실을 깨달은 것이지요. 라면과 소주는 늘 싸고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서민들의 영원한 친구잖아요. 참 섭섭하더라고요. 학교가 있던 안암동 로터리에 라볶이가 참 맛있는 분식집이 있었어요. 졸업 후에도 두세 달에 한 번은 갔는데 어느 순간인가 문을 닫았더군요. 청춘의 한 조각이 사라진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2010년대 소비자는 ‘모디슈머’다. 새로운 라면의 친구들은 스스로 제품을 변경(modify)해 즐긴다. 라면은 나만의 레시피를 동원할 수 있는 가장 간편한 식재료다. 실패 위험도 가장 적다. 라면수프라는 마법의 가루가 웬만한 결점은 다 덮어준다. 설령 실패하더라도 기회비용이 저렴하다. 소비자의 놀이는 SNS를 타고 다시 제품에 영향을 미친다. 기존 불닭볶음면에 크림소스를 넣어 먹는 레시피가 유행하면서 만들어진 게 까르보 불닭볶음면, 아빠들의 레시피였던 짜파게티와 너구리를 섞는 수고를 덜어준 게 짜파구리다. 그리고 그 유행은 세계로 번져간다. K-팝, K-드라마의 선전에 이어 이제는 K-라면이다.


# 한국인의 매운맛, 세계를 접수하다

“제가 책을 쓰던 2020년 6월을 기준으로 ‘Fire Noodle’로 유튜브를 검색하면 120만 개가 넘는 동영상이 올라와 있더라고요. ‘고추도 고추장에 찍어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한국인이 사랑하는 매운맛에 도전하려는 이들이 일으킨 현상이죠.”

매운맛의 끝판왕인 불닭볶음면은 김정수 삼양식품 사장이 딸과 함께 분식집에 갔다가 10~20대 여성들이 매운 라면을 먹으려고 분식집 앞에 줄 서 있는 걸 보고 만든 라면이다. 2019년 7월 기준으로 불닭볶음면 시리즈가 출시된 지 7년 만에 누적 매출액 1조 억 원을 돌파했다. 누적 판매량 23억 개 중 수출 물량은 15억 개다. 수출이 내수를 앞선 것이다. 삼양식품의 첫 시작이 ‘꿀꿀이죽을 먹기 위해 줄 선 이들’에서 기인했다면, 삼양의 제2 전성기는 ‘매운 라면을 먹으려고 줄 선 이들’에서 시작됐다. 흥미로운 우연이다.

“책을 쓰면서 3일에 한 번꼴로 라면을 끓여 먹었습니다. 끓일 때마다 만두나 햄을 넣어보기도 하고, 라볶이를 해서 먹기도 했어요. 라면이 나온 지 50년이 넘어가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사랑받는 제품들이 있는 것도 신기합니다. 그러면서도 완전히 새로운 라면이 계속 등장하고 있는 것도 흥미롭고요.”

《라면의 재발견》은 2021년판 라면의 기록이다. 10년이 흐르고 50년이 흐르면, 라면의 기록은 또 새롭게 업데이트될 것이다. 하지만 그때도 누군가 라면을 끓이면, 단호히 안 먹겠다던 사람이 냄새에 홀린 듯 다가와 머쓱하게 “나 한 젓가락만” 하는 풍경은 그대로지 않을까. 그게 바로 라면의 마성이니까.
  • 2021년 03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
이름      비밀번호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독자팀)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