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s pick

magazine 인기기사

topp 인기기사

daily 인기기사

요즘 소비

착한 소비 ‘119레오’ 이승우 대표

소방관은 우리가 구한다

글 : 유슬기 기자  / 사진 : 서경리 기자

# 당신이 몰랐던 소방관 이야기

“제가 업무에 부름을 받을 때에는 신이시여, 아무리 강렬한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주소서. 그리고 신의 뜻에 따라 저의 목숨을 잃게 되면 저의 뜨거운 마지막 순간이 남은 가족들을 지켜주는 밝은 빛이 되도록 부디 허락해주소서.”

지난 11월 9일, 소방의 날 기념행사에서 배우 박해진이 낭독한 ‘소방관의 기도’ 중 일부다. ‘매일 두려움과 싸우고, 가장 먼저 위험에 뛰어들며, 가장 늦게 자신의 안전을 챙기는 사람’ 소방관은 다른 사람의 위험을 제거하기 위해 스스로를 위험에 빠트리는 사람이기도 하다.

이승우 119레오(REO) 대표가 소방관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대학 시절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다. 매일 생사의 경계에 서야 하는 소방관이지만 막상 자신이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 때는 누구도 돕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2016년 119레오의 모티브가 된 고 김범석 소방관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분은 1021회의 소방 출동 후 혈관육종암에 걸려 투병하다 돌아가셨습니다. 김범석 소방관님은 가족 병력도 없었고 평소에도 몸 관리나 체력 부분에서 소방관들 사이에 소문이 자자할 정도로 매우 뛰어났다고 합니다.”

이승우 대표의 마음이 쓰였던 부분은 고 김범석 소방관이 남긴 유언이다. 당시 그에게는 한 살배기 아들이 있었다.

‘내 병이 인정받기 힘든 거 알아. 하지만 아들에게 병에 걸려 죽은 아버지가 아니라 멋진 소방관 아버지로 기억되고 싶어.’

김범석 소방관의 아버지는 손자에게 자랑스러운 아빠를 간직하게 하고 싶어 국가를 상대로 소송에 나섰다. 공무원연금공단에 순직 유족 보상을 청구했지만 “공무와 질병의 연관성이 입증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각됐고, 다시 항소했다. 소방관은 현장에 투입돼 화재를 진압하다 병에 걸려도 공무상 재해를 인정받지 못한다. 병원비와 투병에 드는 모든 비용을 개인이 감당해야 한다. 국가에 대한 소송은, 이미 세상을 떠난 아들이 생명보다 중하게 여겼던 소방관으로서의 명예를 위한 것이었다.



#그날의 기억, 방화복

REO는 Rescue Each Other의 약자다. 소방관이 우리를 재난에서 지켜주니, 우리가 소방관을 지켜주자는 의미를 담았다. 소방관은 방화복 하나, 소방호스 하나에 자신을 의존해 불길에 뛰어든다. 소방복은 수명이 다하면 폐기된다. 이 폐자원을 업사이클링하자, 그리고 그 수익을 소방관에게 돌려주자는 게 119레오의 아이디어다.

“처음 시작할 때는 1년 프로젝트로 생각했어요. 그리고 정확히 1년이 되는 날에 실제 기부금 전달까지 마쳤습니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처음 시작할 때 기부금 전달이 목표였나? 처음 마음은 암 투병 소방관의 권리 보장과 서로를 구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었어요. 기부금을 전달하면 암 투병 소방관 권리가 보장될까요? 정말 우린 서로를 구하는 사회를 만든 걸까요? 의문이 들었어요. 더욱이 김범석 소방관의 아버님이 우리 기부금을 받지 않았어요. 우리보다 더 어려운 다른 소방관을 지원해달라고 하셨죠.”

이들이 기부금을 전달했던 소방관 중 두 명의 별세 소식은 이승우 대표를 더욱 괴롭게 했다. 기부보다 중요한 건 변화다. 119레오가 소방복 업사이클링에 머무르지 않고 전시까지 확장한 이유다.

“기억이라는 말이 계속 마음속에 머물렀어요. 〈현장의 기억, 방화복〉이라는 전시회와 〈당신이 몰랐던 소방관 이야기〉라는 토크쇼를 열었어요. 진행하려면 돈이 필요했는데 어디서도 구할 수가 없었죠.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 1000만 원을 쓰기로 했습니다. 동료 소방관들과 유가족들이 찾아와서 이렇게 기억해주고 공간까지 만들어줘서 정말 고맙다고 하셨어요. 전시회 현장에서 눈물 흘리는 분들도 있었고요. 전시를 이어가고 싶었지만 제가 계속 사비를 쓸 수는 없고 그렇다고 어디서 돈을 구해 올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보다 체계적으로 해나가기 위해 119레오 주식회사를 만들게 됐습니다.”


#튼튼하면서 가벼운 가방

매년 1만 벌가량의 방화복이 폐기된다. 3년의 내구연한이 지나면 버려진다. 방화복은 아라미드라는 소재로 만들어지는데 방염·발수·방검 성능을 지녀 튼튼하다. 다른 소재에 비해 가볍기도 하다.

“소방관이 사용하는 수많은 장비 중 방화복은 소방관을 지켜주는 거의 유일한 장비라는 점에서 우리가 추구하는 방향과 맞았어요. 그다음에는 일상 속에서 자주 쓰이는 제품을 생각했어요. 옷보다는 가방이 적합했죠.”

119레오를 구입한 이들의 후기를 보면 “튼튼한데 가볍다” “내구성이 좋은데 디자인도 좋다” 등의 내용이 많다. 그런데 119레오 창립 멤버 중 디자인을 전공한 이는 없다. 이승우 대표만 해도 건축을 공부했다.

“건축학과에 입학해서 교수님이 첫 수업에 건축가는 100가지 일에 대해 99까지 할 줄 알아야 하고 부족한 1을 모아 건축에 100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암 투병 소방관과 버려지는 폐방화복을 연결할 수 있었던 것은 건축의 열린 사고에서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자활 근로자와 함께하다

‘REO714’라는 슬링백 디자인은 소방관의 산소호흡기에서 영감을 받았다. 소방관의 산소호흡기에는 마스크가 두 개 연결되어 있는데, 하나는 소방관용, 다른 하나는 구조자용이다. 714는 소방관들의 심박 수를 국민들의 심박 수로 나눈 숫자다. 또 ‘REO1181’ 제품에서 1181은 소방관 한 명이 책임지는 국민의 숫자를 의미한다. 소방관의 어깨에 국민의 안전이 달려 있다는 의미이고, 수많은 국민을 책임진다는 뜻에서 대중적인 사이즈보다 훨씬 큰 사이즈로 디자인했다. 더불어 이 제작에 참여하는 이들은 지역의 자활 근로자다. 119레오는 각 지역의 자활센터와 세탁 및 임가공 공정을 함께한다.

“작년까지만 해도 소방관은 지방직 공무원이었습니다. 부산의 폐방화복을 분해하지 않고 전부 서울로 가져오려면 막대한 물류비용이 발생하고 작업장도 커져야 하니 고정비도 늘어납니다. 하지만 부산의 방화복을 부산에서 작업해서 가져오면 물류비도 줄어들고 대규모 작업장이 필요 없어 고정비를 줄일 수 있죠. 지역 자활센터 대부분이 세탁이나 임가공을 많이 운영하고 있어 우리 사업의 든든한 파트너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자활 작업자분들이 근로를 통한 경제 활동뿐만 아니라 지역 폐자원의 순환과 소방관에 대한 권리 보장에 동참하는 데서 자긍심을 얻는 것도 매우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소비자이면서 후원자

119레오는 사회적 기업이다. 투병 소방관이 공무상 상해 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이들의 현실을 알리고, 의미를 담은 제품을 만든다. 착할수록 영민해야 한다. 디자인도, 전시도 이들은 허투루 하지 않는다. 이들에게 고객은 소비자이면서 후원자, 후원자이면서 동료다.

“고객들이 119레오의 제품을 착용하고 전시장을 찾아와서 제품에 대한 다양한 제안이나 감사 인사를 해줄 때가 있어요. 제품이 마음에 들어서 샀는데 전시회를 통해 119레오의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며, 사회적 가치를 품은 제품이라 더욱 감사하다는 말을 전해주실 때 매우 뜻깊었습니다.”

2019년 9월 19일 고 김범석 소방관은 승소했다. 2016년 처음 사연을 접했을 때만 해도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수많은 후원자들과 국민의 관심이 모여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냈다. 아직 갈 길은 멀다. 소방관 개인이 업무상 재해라는 것을 입증해내야 한다. 119레오는 그 먼 길에 동행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제 저의 급여도 생겼고 직원도 많아졌어요. 지금까지는 Rescue(구조), Remember(기억) 중심이었다면 앞으로는 팀원들과 Rebirth(재생)라는 가치를 더한 멋진 브랜드로 키우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 2021년 01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
이름      비밀번호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독자팀)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