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일잘러

‘다능인(多能人)’ 마케터 정혜윤

하고 싶은 게 많아 고민인 이들에게

글 : 차지현 명예기자  / 사진 : 서경리 기자

‘스페이스오디티’는 한 줄로 정의하기 어려운 회사다. 음악 콘텐츠 회사인데, 전속 가수는 한 명도 없다.
흩어져 있는 작가, 작곡가, 가수, 뮤직비디오 감독 등 오디티(괴짜)를 모아 협업 네트워크를 이루고, 이들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콘텐츠를 만들어낸다. 음원사이트 멜론의 브랜디드 콘텐츠인 ‘우리 지난날의 온도’는 공개 6주 만에 조회 수 700만을 넘겨 화제를 모았다. 가수 폴킴, 윤딴딴, 멜로망스를 초기에 섭외해 함께 음원을 내기도 했다. 이상함을 추구하지만 대형 기획사 못지않은 성과를 낸 배경에 다능인 정혜윤 마케터가 있다.
스페이스오디티의 성공에는 탁월한 브랜드 마케팅이 있다. ‘우주, 음악, 오디티’라는 브랜드의 가치를 명확히 해 브랜드를 알리고 두터운 팬덤을 확보한 것. 정혜윤 브랜드 마케터는 2017년 창업 초기부터 오디티의 브랜딩을 담당했다. 그가 주도한 오디티 론칭 행사 ‘리프트 오프’에서는 실제 우주인이 먹는 음식이 들어 있는 ‘우주 식량 패키지’를 선물로 주는 등 우주 이미지를 살려 오디티를 효과적으로 알렸다. 그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오디티 뉴스레터 ‘오디티 스테이션’은 강력한 마케팅 툴이 됐는데, 단순한 메일이 아닌 커뮤니티로 자리 잡아 구독자가 1만 2000명이 넘는다. 그는 마케팅을 “브랜드의 이야기를 찾아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사람들이 브랜드에 열광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마케팅 분야에 눈을 뜬 건 고등학교 때다. 좋아하는 일이 너무 많아 진로 방향을 잡기가 어려웠다. 좋아하는 작가가 생기면 그 작가의 책을 모두 읽을 정도로 파고드는 성격이지만, 금세 또 새로운 분야에 눈독을 들이곤 했다. 그러던 차에 지인에게서 “마케터는 오케스트라 지휘자 같은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휘자는 모든 악기를 다룰 줄 아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악기에 대해 조금씩 알아야 한다고 했다. 어떤 시점에 어떤 악기를 연주해야 하는지를 조율해 하나의 하모니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설명이 마음을 울렸다. 하고 싶은 게 많은 성격이 단점이 아닌 장점이 될 수 있다는 걸 느꼈다. 실제로 그의 왕성한 호기심은 브랜드 기획에 큰 영감을 줬다.

“다양한 분야의 콘텐츠를 즐겨요. 음악도 많이 듣고, 영화도 많이 보고, 책도 많이 읽어요. 친구들과 대화하다가 마케팅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고요. 스페이스오디티 콘퍼런스에서 관객 선물로 준비한 스티커 세트를 카세트 케이스에 담아 인기를 끈 적이 있어요. 기사로도 소개될 정도였죠. 이 아이디어는 넷플릭스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에서 주인공이 가지고 다니는 카세트테이프에서 얻었어요.”


“너 여기 평생 있을 거 아니야”

그는 올해 10년 차 마케터다. 광고 에이전시에서 5년, 스타트업에서 5년 일했다. 뉴욕에 있는 대형 아시안 광고회사 ‘애드아시아’를 시작으로 PR 회사 ‘프레인 글로벌’ 등에서 근무했다. 마케터로서 활약도 두드러진다. 뉴스레터 붐이 일기 전인 2012년 프레인 글로벌에서 영화 마케팅을 위해 동료와 함께 뉴스레터를 운영했다. 마케팅 업계에서 ‘일잘러’로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정혜윤 마케터는 가장 기억에 남는 회사로 애드테크(AD Tech) 스타트업 ‘앱리프트’를 꼽았다. 업무 강도는 셌지만 자율성을 준 덕에 가장 많이 성장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베를린에 본사, 샌프란시스코와 서울에 지사를 둔 앱리프트는 48개국에서 온 직원들이 근무하는 글로벌 스타트업이다. 서울 지사에 있는 열한 명의 멤버 중 유일한 마케팅 매니저였던 그는 이벤트, PR, 블로그 등의 일을 도맡았다. 어느 날 사내 세미나에서 지사장이 해준 이야기는 그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여러분은 이 회사에 평생 있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까 있는 동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 네트워크를 쌓으세요. 새로운 기회가 올 겁니다.”

퇴사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쉬쉬하는 한국 기업 문화에서는 흔치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듣고 회사에 대한 그의 애정은 더 커졌다. 온몸으로 부딪쳐가며 일하다 보니 그는 마케팅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있었다. 1년 후 다른 직장에서 좋은 조건으로 오퍼를 받았을 때 지사장은 진심으로 응원해줬다. 효율적으로 업무 처리하는 법, 협업할 때 중요한 것, 혼자 일하는 방법 등 노하우도 많이 쌓았지만, ‘일잘러’를 키우는 회사와 좋은 리더에 대한 생각도 잡혀갔다.


‘브랜드 정혜윤’


개인이 브랜드가 되는 시대다. 유튜브나 SNS 등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과 쉽게 연결될 수 있다. ‘나만의 색’과 ‘능력’만 있다면 조직에 소속되지 않아도 얼마든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 정혜윤 마케터는 이런 시대의 흐름을 빠르게 예측하고 실행에 옮겼다. 지난 8월 초, 3년을 몸담았던 오디티를 퇴사하며 직장생활에서 독립했다.

“마케터로 일하며 전 세계를 다니다 보니 일의 방식이 바뀌는 게 명백하게 보였어요. 2021년에는 주 5일 출근하는 삶에서 벗어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는데, 좀 더 빨리 이루게 됐죠.”

그의 홀로서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6년 말에도 1년 가까이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않은 상태로 많은 도전을 했다. 시간을 좀 더 잘 쓰고 싶다는 욕심에서였다. 마케팅 일은 즐거웠지만, 출퇴근 등 회사에 묶여 있는 시간이 아까웠다. 무작정 유럽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글을 쓰다가 궁금한 회사가 생기면 직접 방문해 인터뷰를 요청하기도 했다. 프리랜서로 돈도 벌어보고,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일하는 디지털 노마드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했다.

관심 분야가 많은 것도 직장을 그만둔 이유 중 하나였다. 하고 싶은 것을 좇다 보니 2010년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10년 동안 여섯 개 회사에서 일했다. 잦은 이직을 통해 쌓은 다양한 경험이 그에겐 경쟁력이 됐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됐고, 혼자 할 수 있는 일도 많아졌다.

“방황한 경험이 많은 게 제 경쟁력 같아요. 처음엔 도전이 불안했지만, 그다음엔 한번 해봤으니 조금 더 수월해지고, 이런 식으로 도전을 계속했어요. 시행착오 하나하나가 ‘나와 친해지는 시간’이었어요.”


일잘러를 만드는 힘, 기록

프리랜서로 지내면서 활동한 경험을 꾸준히 브런치에 기록했다. 업무 경험과 퇴사 도전기를 연재해온 그의 브런치 구독자는 1만 4000여 명이다. 앱리프트의 일화를 담은 글 〈너 여기 평생 있을 거 아니야〉는 8000회 이상 공유됐고, 지난 2019년에는 〈나의 퇴사여정기〉로 ‘브런치북 프로젝트’ 특별상을 수상했다. 퇴사 후의 일과 감정을 담은 책 《퇴사는 여행》도 인기를 끌고 있다.

기록은 힘이 셌다. 기획력을 높이는 데는 물론 프리랜서로 전향하고, 자신만의 브랜드를 강화하는 데도 큰 자산이 됐다. 블로그 글이 공유되고 브런치가 인기를 끌면서 인지도가 높아져 오퍼와 사업 제안도 많이 받고, 가장 큰 고민이었던 수익 문제도 해결됐다.

“글 한 편에 마케팅의 기본이 다 들어가는 것 같아요. 주제와 콘셉트를 정하고, 어떤 제목을 쓸지 고민하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정보를 조합해 하나로 만들어야 하니까요. 글 쓰는 연습이 기획하는 힘을 길러주죠.”

기록하는 습관은 그가 ‘일잘러 마케터’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이기도 하다. 정리를 잘해놔야 아이디어가 허공에 날아가지 않고, 일하는 시간도 줄여주기 때문이다. 생각을 기록해둔 메모들은 기획력의 기반이 됐다. 또 글을 쓰는 과정 자체가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아이폰 메모를 많이 사용해요. 요즘은 메모 앱 ‘노션’으로 갈아타고 있고요. 손으로 글을 쓰는 것도 좋아해요. 책에서 읽은 좋은 문장을 필사하는 노트가 있는데, 글 쓸 때 많이 참고하죠.”

《모든 것이 되는 법》의 저자이자 테드(TED)의 인기 강연가인 에밀리 와프닉은 ‘다능인(多能人)’이라는 개념을 소개한다. ‘유난히 관심사가 많고 다재다능하며 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들’의 가능성에 주목한 것이다. 오랫동안 같은 고민을 해온 그는 이 책을 읽으며 공감과 위로를 받았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그는 여러 분야에 관심을 두고 도전 중이다. 요즘엔 다능인을 위한 커뮤니티, 사이드프로젝트(sideproject.co.kr)를 시작했다.


일잘러 되는 네 가지 팁

1. 몸과 마음 잘 관리하기
체력이 받쳐줘야 일도 잘할 수 있어요. 마음 근육을 단련하는 것 또한 결국 일과 연결된답니다. 우울해지기 쉬운 코로나 시대에 몸과 마음을 잘 보살피는 게 우선입니다.

2. 나를 위한 시스템 만들기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루틴이 필요해요.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그걸 작은 습관으로 만들어나가는 것이죠. 저는 회사에서 북마크 탭에 메일, 캘린더, 구글 드라이브를 올려놨어요. 세 가지를 켠 후 일을 시작해요.

3. 검색과 질문 활용하기
제 강점 중 하나가 검색이에요. 검색만 잘해도 시간이 단축되거든요. 검색 툴을 잘 익혀두고, 구글 검색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요. 검색으로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땐 나보다 잘 아는 사람에게 도움을 구하는 것도 중요해요.

4. 나를 믿기
‘나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어야 일도 잘할 수 있어요. 스스로를 믿는 것에서 일이 시작됩니다.
  • 2020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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