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일잘러

‘기획의 달인’ 박신영 기획스쿨 이사

상대의 입장에서 ‘왜? 뭐? 어쩌라고?’로 질문을 던져보세요

글 : 선수현 기자  / 사진 : 서경리 기자

수험생에게 《수학의 정석》이 있다면 직장인에겐 《기획의 정석》이 있다. 기획에 필요한 개념부터 응용까지 알기 쉽게 정리한 《기획의 정석》은 ‘기획의 달인’ 박신영 기획스쿨 이사가 노하우를 총집약해 집필한 책이다. 2013년 발행을 시작으로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스테디셀러 자리를 지키며 직장생활의 든든한 개론서로 자리 잡았다. 이어 기획의 달인은 《제안서의 정석》 《한 장 보고서의 정석》으로 영역을 확장해 길을 찾지 못해 헤매는 신입사원들의 야근을 덜어주고 있다.
회사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검토하고 있다. 이번 프로젝트만 잘되면 승진이 코앞. A는 몇날 며칠 밤새도록 머리를 쥐어짜며 혼을 갈아 넣은 기획안을 준비했다. 현재 시장 현황, 우리 제품의 강점, 성공 시 이득 등으로 수십 장에 달하는 기획안은 그야말로 걸작이었다. B 역시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그렇지만 프로젝트를 해야 하는 이유, 한 문장으로 정리한 제안 내용과 세부 실행 방안에 관련 여론조사를 덧붙여 한 장으로 압축한 기획안을 마련했다. 당신이 상사라면 누구의 기획안을 채택할까?

박신영 기획스쿨 이사에 의하면 다음 승진 명단에는 B가 올라갈 확률이 높다. 근본적 차이는 관점이다. A가 기획안을 쓰는 자신에게 집중한 반면 B는 철저히 읽는 사람의 관점에서 작성했기 때문이다. 내가 열심히 준비한 아이디어를 전달하는 동안 안타깝게도 그들의 머릿속에는 ‘왜? 뭐? 한마디로 뭐야? 느낌이 안 오는데 더 구체적으로, 지루하지 않게!’가 떠다닌다. 생각보다 상대는 당신에게 관심이 없다. 그들은 명확하게 자신이 알고 싶은 것만 파악하고자 한다. 비단 상사만이 아니다. 당신이 기획안을 제출했던 모든 곳에 적용된다. 박 이사는 ‘왜? 뭐? 어쩌라고?’의 원칙을 역으로 반영하는 게 기획의 핵심이라고 설명한다.

“많은 사람이 자신이 생각하는 순서를 써요. 기획안을 본 상대는 바로 묻죠. ‘그래서 하라고, 말라고?’ 다음 질문은 뻔합니다. ‘왜 해야 하는데?’ 이유를 열심히 설명하면 또 묻죠. ‘진짜 그래?’라고. 때문에 결론부터 이야기하고 ‘왜? 뭐? 어쩌라고?’에 객관적 수치를 더해 스토리텔링으로 엮는 게 좋아요. 상대의 질문부터 생각하고 쓴 기획안은 자신에게 빠져들어 쓴 기획안과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어요.”


좌뇌·우뇌의 균형을 맞춰 상대를 사로잡다


아이디어가 아무리 좋아도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면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몇날 며칠 공들여 쓴 기획안은 상사의 휴지통 속에 구겨져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 원리를 오늘도 수많은 A들이 놓치고 있다. ‘왜 이 좋은 기획을 몰라주는 거야’라고 원망하면서. A의 사례에서 내 모습이 스쳐간다면 박 이사는 한 광고를 기억하라고 말한다.

“피곤하시죠? 왜 그럴까요?” 물었을 때 “간 때문이야”가 떠오르는 광고. 중독성 있는 CM송 효과도 탁월했지만 광고 내용 자체만 봐도 소비자에게 군더더기 없는 10여 초의 기획안을 전달한 셈이다. 피곤한 건(문제) 간 기능 장애에 의한 육체피로·온몸 권태 때문(원인). 이걸 복용하면 피로회복 효과가 개선되는데(제안), 간 노폐물 배출에 도움을 주는 UDCA 성분이 함유돼 있어서(증명)란 내용이다. 상대가 알고 싶은 내용에 해결 방법과 연구 결과가 더해져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이 이뤄진 구조다. 어떤 상황에도 이 사고의 흐름을 대입한다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쉽게 전달할 수 있다는 뜻이다.

박신영 이사는 십 수 년 전 대학생 공모전계를 주름잡은 입지전적 인물이다. 대학생 공모전의 양대 산맥이던 제일기획과 LG애드에서 대상을 세 번 차지하며 공모전을 휩쓸고 다녔다. 거짓말 조금 보태 상금으로 혼수 준비를 다 마쳤을 정도.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이런 능력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수없이 공격당하고 치이며 남들보다 조금 일찍 노하우를 터득했을 뿐이다.

“대다수 참가자가 논문 형식으로 아이디어를 제시했어요. 수십 편의 발표를 듣는 심사위원 입장에서는 귀에 잘 들어오지 않을 것 같더라고요. 뇌리에 확 박힐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죠. 저는 남들처럼 분석하되, 결론은 감성적으로 풀어내기로 했어요. 좌뇌, 우뇌 균형을 맞춘달까요?”

가령 휴대전화 홍보전략을 내세울 때 해당 제품과 경쟁 제품을 분석해 각각 결혼하기 좋은 남자와 연애하기 좋은 남자에 빗댔다. 결혼하기 좋은 남자의 매력을 끌어내 연애도 하고 싶은 남자로 어필한 게 포인트. 좌뇌와 우뇌가 결합한 방식이었다. 2000년대 중반 공모전에서 수상한 이 기획안은 최근까지도 광고·경영 전공 대학생들의 스터디 대상이 되고 있다.

화려한 수상 경력을 인정받아 제일기획에 입사한 그였지만 정작 직장에서 기획안 작성은 쉽지 않았다. 맨땅에서 삽질 정신을 거듭하자 패턴이 보였다. 가장 중요한 건 상대에게 전달돼야 하는 점. 이 지점을 공략한 그는 폴앤마크, 기획스쿨 등으로 자리를 옮기며 어느새 기획의 달인이 되어갔고, 정답이 없는 영역에서 오늘도 헤매고 있는 이들을 위해 ‘기획 교과서’ 시리즈를 마련했다. 그렇게 출간한 《기획의 정석》은 대학 교재로 사용될 만큼 인기를 얻었다. 현재 박 이사는 삼성, LG, 포스코, 롯데, 월드비전 등에서 수많은 직장인들에게 기획·제안·보고·발표 노하우를 전하고 있다.


상대의 구시렁구시렁 수집이 출발점

그렇다면 상대의 입장은 어디서부터 훑어야 할까. 박 이사는 “구시렁구시렁을 수집하라”고 강조한다. 상대의 요구와 직결되는 지점이 구시렁에 있어서다. “지난번에 ○○을 말씀하셨는데(혹은 ○○이 고민이시죠?), 그래서 생각했습니다”라고 발표를 시작한다면 상대는 ‘왜 내 속마음이 여기 써 있지?’ 하고 집중하게 될 것이다. 기획안이나 보고서는 내가 보기 위한 게 아니라 상대를 위한 것. 결국 상대가 듣고 싶은 말로 시작해 내가 하고 싶은 말로 연결 지어야 한다는 의미다.

박 이사 역시 구시렁의 힘을 경험한 적 있다. 직장인을 대상으로 ‘기획하는 방법’에 대해 열강을 토하고 대다수가 만족스런 얼굴로 떠난 자리, 몇몇 참가자가 스치듯 말했다.

“요즘 시대를 모르네, 요즘은 한 장으로 하는데.”

힘이 쫙 빠졌다. 그러다 곰곰이 생각해봤다. 좋은 강연의 본질에 대해. 답은 똑같았다. 상대가 관심 있게 듣고 실전에 사용할 수 있어야 했다.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건 그가 가장 경계해온 모습이었다. 이후 박 이사는 《기획의 정석》에 이어 《제안서의 정석》 《한 장 보고서의 정석》을 출간했다. 구시렁 수집에서 나온 결과물이었다.

직장생활의 핵심 ‘기획·제안·보고·발표’에서 성과를 낼 수 있는 박신영 이사의 방법은 비교적 간단하다. 철저히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 ‘왜? 뭐? 어쩌라고?’ 논리로 사고의 근육을 키운다면 공들여 쓴 나의 기획서가 휴지통 아닌 상사의 책상에 자리할 것이다. 정 어렵다면 ‘간 때문인’ 그 광고 흐름이라도 떠올려보길.


‘기획의 달인’ 박신영이 강조하는 네 가지 정리법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뇌파 측정 연구로 알게 된 ‘주의 지속 시간’ 발표에 따르면 인간이 한 사물에 집중하는 시간은 8초밖에 안 된다.
내 문서에 대한 상대의 집중력이 8초란 의미다.
이 현실을 직시한 일잘러들의 정리 기술이 있다.


1. 숫자 : 모든 일에는 돈이 든다. 상사가 “이 돈 왜 써야 돼? 굳이 해야 돼?”라고 물을 때 가성비를 검증하면 좋다. “예산이 얼마 들지만 몇 가지를 얻을 수 있어요” “1년 진행하면 얼마를 아낄 수 있어요” 그걸 기획서 제목에 쓰면 된다. ‘○○ 제안보다 1년에 얼마를 아끼기 위한 ○○ 제안’ ‘××명에게 노출되기 위한 제안’으로 한눈에 쓱 읽고 싶도록.

2. 근거 : “한번 믿어주십쇼!”는 드라마에서나 통한다. 근거를 설명해도 “그건 네 생각이고”라는 답변을 듣고 싶지 않다면 힘 있는 근거, 눈길 가는 근거가 필요하다. 회사에서 잘 통하는 근거는 돈·힘·말이다. “안 하면 이만큼의 비용 손해가 있어요” “대표님(혹은 직원 78%)이 말한 거예요” “연구 결과가 있어요”라고 말하면 주장에 힘이 실린다.

3. 비교 : “A가 좋은 것 같아요”라고 보고하면 상대는 “왜? 어떤 맥락에서? 무엇보다? ‘좋다’는 게 뭔데?”라고 되묻는다. 대혼란의 시작이다. 8초 만에 상대를 안심시키기 위한 비교표 한 장이 절실하다. “안 했을 때 대비 세 가지는 좋다” “타사보다 세 가지는 낫다” “전체 대비 이렇게 바뀐다”라고 비교하자.

4. 결론 : “결론이 뭔데? 왜 그런데? 그래서 앞으로 어쩔 건데?”처럼 상대에게서 돌아올 질문 순서를 바꿔 생각해보자. “나는 이런 경험과 사고의 흐름 속에서 결국 이걸 얻었다”는 건 나의 순서다. 상대의 순서는 결론부터 듣고 싶어 한다. 결론부터 말해야 8초 집중력의 상대는 내 말을 듣기 시작한다.
  • 2020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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