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택트 라이프

언택트로 24시간 살아보니…

편리하고 안전하지만, 허전하고 그립다

며칠 전부터 회사 로비에 이상한 녀석(?)이 하나 등장했다. 생김은 꼭 〈스타워즈〉에 나오는 로봇 ‘R2-D2’같은데 목소리는 내비게이션에서 듣던 익숙한 ‘그녀’ 음성이다. 녀석은 방문객이 지날 때마다 “손은 깨끗이 씻고 생활방역을 실시해주시고…” 하며 말을 건다. 역할을 따지자면 건물 경비 혹은 안내인데, 아니 그럼, 며칠 전까지 우렁찬 목소리로 허리 숙여 인사하던 훈남 경비원은 어디로 갔지?

살면서 갑자기 일어나는 일이란 거의 없다. 건물 경비원이 사라진 것도 여러 해를 거치며 서서히 진행됐다. 처음에는 출입문마다 있더니, 출입카드로 인증하고 들어가는 자동화 시스템으로 바뀌면서 그 수가 줄었고, 건물 메인 출입구 외에 모든 경비원이 자취를 감췄다.

‘언택트 라이프 체험’을 위해 하루 동안 사람과 말을 섞지도, 접촉하지도 않고 오로지 스마트폰에 의지해 24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과연 그게 가능할까? 당신의 생각대로다. 맞다. 결론부터 말해 가능하다!

나의 하루 일과는 이렇다. 자동차로 30분 거리의 회사로 출근하거나 리모트워크를 하고, 퇴근해서 강아지를 데리고 한강을 산책한다. 저녁이 되면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도 있지만, 주로 집에서 요리하며 라디오를 듣거나 넷플릭스, 유튜브를 시청하고 잠든다.

언택트 라이프 체험을 위해 굳이 대화까지 끊은 건, 행여나 나의 오지랖으로 인해 생길 ‘콘택트’한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다. TMI로 나는 MBTI 유형에서 ENFP형이다. 일명 스파크형, ‘열정적으로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사람’이다.

언택트 라이프를 체험하며 가장 크게 느낀 건 ‘캐시리스 라이프’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지폐나 동전은 물론 실물 신용카드와 체크카드까지 없어도 된다. 스마트폰에 깔아둔 앱으로 얼마든지 소비 생활이 가능하기에.


아침 출근길, 스마트폰으로 스타벅스 매장에 ‘사이렌 오더’1)로 주문한다. 내 손안의 무인 주문계산기인 셈인데, 1분 1초가 소중한 나의 출근길, 긴 줄을 감내한 후 계산대에 서서 뒷사람 눈치 봐가며 매장 직원에게 빠르게 ‘샷 하나에 바닐라시럽 추가, 휘핑크림 많이’를 외칠 필요가 없다. 또 드라이브 스루를 이용하면 시간도 줄고, 사람과 마주칠 일이 없어 편하다. 화장 안 한 나의 출근길 얼굴을 들키지 않아 좋은 건 비밀!

1) 사이렌 오더


스타벅스 앱을 통해 주문하고 매장에서는 픽업만 하면 되는 시스템. 사이렌 오더는 근거리 통신 기술인 ‘비콘(Beacon)’을 기반으로 한다. 근거리(50~70m)에서 사용자 위치를 확인해 정보 전송, 상품 결제 등을 실현해주는 모바일 통신 기술이다.

오늘 점심 메뉴는 냉면으로 정했다. 식당까지 카셰어링 서비스 ‘쏘카’2)를 이용했다. 앱으로 쏘카가 주차된 위치, ‘쏘카존’을 검색하고 맘에 드는 차를 골라 원하는 시간만큼 예약했다. 쏘카는 일반 렌터카와 달리 이동거리당 주행 요금이 붙는다. 주유는 차량 내 비치된 주유 카드를 이용하면 된다. 내가 쓴 시간과 이동거리만큼 알아서 계산해주고 등록해둔 신용카드나 체크카드에서 추후 결제된다. 12시부터 2시까지 단 두 시간 이용하는데, 마침 사용 가능한 쿠폰이 있어 50%나 할인받았다. 올레!

2) 쏘카


스마트폰 앱을 활용한 카셰어링 서비스. 일반 렌터카와 달리 이동거리(㎞)당 주행 요금이 부과되며, 주유 시 반드시 차 내에 비치된 쏘카카드로 결제해야 한다. 렌터카처럼 주유 게이지를 맞춰서 반납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없다.

냉면집이 있는 건물에 들어가기 위해 발열 체크는 필수다. 비대면 안면인식 발열체크시스템 ‘스마트패스’3)가 대신한다. 코로나19로 한창 들썩이던 지난봄처럼, 직원이 일일이 체온기를 코앞까지 들이대는 일은 없다. 나름 긴장되는 순간인데, 화면에 빠르게 ‘36.4℃’가 뜨기에 안심하고 들어가려 했더니, “삐- 마스크를 착용해주세요!” 앗! 나의 실수!

3) 스마트패스(Smart Pass)


비대면 안면인식 발열체크기로, 체온과 마스크 착용 여부를 자동으로 체크하는 시스템이다. 마스크를 착용해도 0.5초 내로 대상자 얼굴을 99% 정확도로 판독하고, 체온을 측정한다. 체온 판독 측정 오차가 ±0.3~0.5℃로 사실상 오차가 거의 없다. 마스크를 쓰지 않거나 턱에만 걸친 경우, “마스크를 착용해주세요”라는 문구가 뜨거나 음성으로 알려준다. 체온이 37.5℃ 이상이거나 마스크 미착용 시 출입금지 알람이 울린다.

음식을 주문할 때도 매장 직원이 가져다주는 메뉴판을 뒤적거릴 필요가 없다. 요즘 핫하다는 맛집 대부분은 ‘네이버 페이’4)나 ‘카카오 페이’ 혹은 ‘토스’를 사용한다. 스마트폰에서 해당 앱을 열면 QR코드를 읽기 위해 카메라가 자동으로 켜진다. 테이블에 있는 QR코드를 찍으면 자동으로 식당 메뉴와 가격이 줄줄이 뜬다. 먹고 싶은 메뉴를 온라인 장바구니에 담아 주문하고 결제하면 끝.

4) 네이버 페이(Naver Pay)


네이버에서 제공하는 핀테크의 일종으로, 은행 계좌나 체크카드 또는 신용카드를 미리 등록해두고, 등록한 결제수단을 통해 결제하는 간편 결제 서비스다.

식사를 마치고 식당 근처에 주차해둔 차를 찾으러 갔는데, 주차장 관리인이 보이지 않는다. 대신 입구에는 무인주차시스템 ‘아이파킹’5)이 서 있다. 주차장 이용 안내를 읊는데, 아침에 회사에서 들은 ‘그녀’ 목소리다.

5) 아이파킹


파킹클라우드가 선보인 무인주차장 브랜드다. 2015년 국내 최초로 인공지능(AI) 클라우드 기반의 번호판 인식(LPR) 솔루션을 적용했다. 아이파킹존에 설치된 모든 주차관제시스템을 클라우드로 연결해 통합관제센터에서 원격으로 제어한다. 민원이나 장애 문제를 실시간으로 처리할 수 있고, 각종 시스템 업데이트도 원격으로 가능하다.

식사 후 잠시 들른 무인 카페에는 전자결제시스템인 ‘키오스크’6)나 로봇만이 손님을 맞는다. 한쪽 팔로는 커피를 만들고, 다른 한쪽 팔로 음료를 배달하는 로봇을 보고 있자니 신기할 따름이다. 사람이 못 하는 멀티플레이를 이 녀석이 해낸다. 커피 양도 한 치의 오차가 없다. 물과 커피 양 모두 최상의 값이 입력돼서 맛도 일품이다.

6) 키오스크


정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 은행, 백화점, 전시장 등에 설치된 무인정보단말기다. 경로 안내, 예약, 시설물 이용 방법 등 각종 정보를 제공한다. 최근엔 무인 주문 및 결제가 가능한 기기, 무인자판기 등으로 키오스크의 용도가 진화했다.

회사는 코로나19 사태에 발 빠르게 대처해 대대적으로 리모트워크를 권장하고 있다. 덕분에 노트북 하나만 들고 카페나 집, 야외에서도 근무가 가능하다. 물론 ‘시프티’7)에 출근 도장을 찍어야 하기에 업무 외 딴짓에 대해서는 ‘얄짤’없다.

7) 시프티


재택근무, 거점 오피스 근무 등 유연화된 근무 트렌드 맞춤형 근태 관리 시스템이다. 시프티의 핵심 서비스는 대규모 인력이 동시 출퇴근이 가능한 출퇴근 기록 기능, 계획된 근무 일정으로 근로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 스케줄러 기능, 동료들과의 업무 협업을 위한 근무시간 및 휴게시간 공유 기능 등이다.

리모트워크의 장점을 꼽자면, 동료와의 잡담 시간이 줄었다는 점이다. 또 상사나 후배와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안 하게 되면서 일의 효율성이 높아졌다. 문자언어를 통해 업무 상황을 공유하다 보니 ‘전달 사고’도 확 줄었다. 상사가 ‘아’라고 말하면, ‘어’라고 듣는 일들 말이다.


대면 인터뷰를 꺼리는 취재원들과는 주로 ‘스카이프’나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나눴다. 이미 오래전부터 생활화되어 있던 화상 대화가 코로나19 이후로 요긴하게 쓰였다. 20대 청년들과는 주로 화상회의 플랫폼 ‘줌’8)을 이용해 인터뷰했다. 웹캠 앞에 얼굴을 마주 보고 앉아 대화를 나누니 서로 침 튈 일도 없다. 요즘 20대는 ‘줌’으로 종강 파티를 한다고 들었다. 화상 수업이 끝나고 난 뒤, 다시 오픈 채팅방을 열고, 웹캠을 앞에 두고 앉아 술잔을 기울이는 식. 파자마 차림으로 각자 먹고 싶은 안주와 주종을 준비해서 화면에 뜬 서로의 얼굴을 보며 ‘건배’를 외친다. 때론 집에 있는 아버지가 등장해 건배사를 읊어주고 가기도 한다. 언택트 시대에 새롭게 등장한 파티 문화다.

8) 줌(Zoom)


모바일, 데스크톱, 회의실 시스템에서 화상 및 오디오 회의, 채팅을 위한 클라우드 플랫폼을 제공하는 비디오 통신 플랫폼이다. 줌을 이용하는 사람을 두고 ‘주머(Zoomer)’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2030세대에 인기가 높다.

오늘은 고된 하루였다. 고생한 나를 위해 카카오 택시를 불렀다. ‘카카오T’9) 앱을 열어 내 위치를 지정하고 도착지 주소를 넣었더니 앱 화면에 표시된 택시 아이콘이 빠르게 움직여 내 앞에 당도했다. 마스크를 쓴 기사님은 말도 없이 나를 태우고 집으로 향했다.

9) 카카오T(KakaoT)


카카오가 2015년 출시한 콜택시 및 대중교통 서비스 앱이다. 이용자는 카카오 계정으로 로그인해 본인의 정보를 카카오 택시에 적용한다. 이용자가 승객용 앱을 통해 택시 요청을 하면 카카오 택시 기사용 앱에 가입한 택시기사에게 이용자의 현 위치정보와 목적지 등이 전송된다.

퇴근길, 스마트폰에 경쾌한 ‘띠링’ 소리와 함께 “로켓 배송 상품을 배송 완료했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뜬다. 어제 저녁 ‘쿠팡’에서 주문한 강아지 간식이 벌써 도착했다. ‘쿠팡맨’은 친절하게도 건물 1층 무인택배시스템의 몇 번째 칸에 내 물건을 넣어뒀는지 사진 찍어 보내줬다. 누군지 얼굴이라도 보면 감사인사라도 하련만, 사진 한 장 홀랑 남기고 그는 이미 떠났다. 무인택배함에 지정해둔 비밀번호를 누르면 기다리고 기다린 택배 상자가 ‘짜잔!’. 펀딩 플랫폼 ‘와디즈’에서 ‘얼리버드’로 발 빠르게 구매한 신상 가방도 함께 있네? 이 맛에 돈 벌지!


집에 도착하니 아이스박스 안에 곱게 담긴 곱창전골과 차돌박이가 기다리고 있다. ‘마켓컬리’10)에서 미리 ‘샛별배송’으로 주문한 오늘의 만찬이다. 꽁꽁 얼린 육수며 때깔 고운 곱창과 신선한 채소가 일명 ‘뽁뽁이’에 싸여 왔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손 씻기가 무섭게 냄비에 육수 붓고 재료를 넣어 끓여 한 그릇 뚝딱. 먹고 나면 ‘오늘 하루 잘~ 살았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10) 마켓컬리


우리나라 최초로 새벽배송 시대를 연 플랫폼이다. ‘샛별배송’으로 신선식품 배달 시장을 개척했는데, 채소, 과일 등 신선식품을 밤 11시까지 주문하면 다음 날 아침 7시 이전에 배송하는 서비스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상품 입고부터 배송까지 유통 전 과정을 일정 온도로 유지하는 풀콜드체인(Full Cold-Chain)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다.

식사를 마치고 본격적인 나만의 시간. 먼저 ‘눔’11) 앱에 오늘 먹은 음식을 적어 올렸다. 다이어트 프로그램을 무려 9만 9000원 주고 사용하는데, 얻는 게 많아 꽤 만족스럽다. 눔 앱이 “체중 감량 중인가요?”라고 묻기에 “네”라고 답했을 뿐인데, 눔 코치가 뜨끔할 정도로 내 몸을 파악해 이야기해준다. 집 어디에 CCTV라도 달았나? 오늘 먹은 아이스크림 브랜드명을 쓰자마자 빨간불이 떴다. 250kcal. 털썩! 미션을 성실하게 수행하고 나면 회원비를 환급해준다고 했는데, 이번에도 틀린 걸까.

11) 눔(Noom) 코치


개인 트레이너처럼 식단을 관리하고 사용자의 건강한 라이프 스타일을 도와주는 앱이다. 행동심리학을 기반으로 과학적으로 증명된 생활습관 개선 프로그램을 통해 체중 관리는 물론, 당뇨, 고혈압 등의 만성 질환 예방을 돕는다. 매일 아침 그날 집중해야 할 미션을 제시하고, 식사 때마다 알림을 보내줘 꾸준히 기록할 수 있도록 한다. 무려 4만 개 이상의 한식 데이터베이스를 갖고 있으며, 사용자에게 필요한 하루 칼로리 양을 한눈에 보여준다.

유튜브를 열어 강아지 훈련 영상을 찾아본다. 요즘따라 강아지가 자주 짖는데, 이럴 땐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 애견 훈련 전문가들이 알려준다. 작년에 ‘클래스101’12)을 이용해 반려견 훈련 온라인 교육을 받았던 기억이 떠올라 앱을 열었다. 취미 강좌를 쇼핑하듯 둘러보다 요즘 꽂힌 아이패드 드로잉 클래스가 눈에 띄었다. ‘아이패드 하나로 떠나는 아날로그 텍스처 여행’ 20주 강의. 수강생 만족도 97%. 그래 올여름은 너로 정했다!

12) 클래스101


인물화 그리기, 가죽공예, 동영상 제작, 나만의 향수 만들기, 작곡, 필라테스 등 300여 개의 강좌가 개설돼 있다. 준비물까지 신청이 가능해 번거로운 준비 과정 없이 곧바로 시작할 수 있는 게 특징. 2018년 3월, 2개 강좌로 첫 서비스를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클래스101 앱을 다운로드 받은 이용자는 40만 명에 이른다.

한참 동안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으니 강아지가 짖는다. 서둘러 산책을 준비한다. 요즘은 강아지 산책을 겸해 친구들과 하루 만 보 걷기 운동 중이다. 러닝 앱 ‘나이키 런 클럽’13)을 주로 이용하는데, GPS 러닝 추적 기능으로 내가 달린 시간과 거리, 소모 칼로리까지 분석해준다. 친구들과 결과를 공유해 하루 만 보를 못 채우면 벌금을 물기로 했다. 한강 따라 한 시간여 걸었을까. 애플 워치에서 만 보 달성 알람이 뜬다. 친구들에게 카카오톡으로 정보를 공유하며 서로의 소모 칼로리를 체크해본다. 260kcal. 오늘은 맘 편히 아이스크림 한 통 더 비워도 될 것 같다.

13) 나이키 런 클럽


GPS 러닝 추적 기능을 통해 시간, 거리, 소모 칼로리 등을 자세하게 분석해주는 러닝 특화 앱이다. 러닝 페이스와 심박수까지 체크해주기 때문에 각자의 신체 상황에 맞게 운동하면 된다. 또 나이키 러닝 전문 코치나 유명 운동선수의 가이드를 따라 러닝을 배울 수 있다.

집에 오니 밤 10시. 이번 주 금요일 중요한 미팅에 입고 나갈 정장 세탁을 깜빡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수요일 밤인데 어쩌자고! 허둥지둥 스마트폰에서 ‘세탁특공대’14) 앱을 열었다. 우리 동네에서 가장 빠른 수거 시간이 나온다. ‘23시 30분~7시’. 당일 밤 11시 50분 전에 주문하면 새벽에 가져간다. 이런 감사한 일이! 심지어 가격도 싸다. 재킷과 스커트, 블라우스까지 대략 1만 3000원 선이다. 예약을 마치니 카카오톡으로 메시지가 왔다. “세탁물을 자정까지 문 앞에 두시면 내일 아침 7시 전에 수거할게요.”

14) 세탁특공대


고객이 원하는 시간대를 지정하면 요원이 방문해 세탁물을 수거해 가는 방문 세탁 서비스다. 클릭 한 번에 집으로 찾아오는 모바일 세탁소로, 365일 간편하게 사용 가능하다. 세탁물 수거부터 세탁 및 관리, 배달까지 대행한다.

하루 동안 언택트로 살아보니,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말 한마디 안 하고도, 사람을 마주해 실랑이 벌이지 않아도 일이 척척 돌아간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사람을 대면하거나 접촉하지 않고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올 수 있어 뿌듯했다. 헌데 문득 허전한 기분이 든다. 뭘까. 오늘 하루 내가 뱉은 말이라곤, 강아지 ‘마리’에게 ‘산책 갈까?’ 정도뿐이었다. 문득 콘택트 시절의 추억이 하나둘 떠오른다. 회사 회의실에서 모닝커피를 핑계로 상사 눈 피해 수다 떨며 동료와 다진 친분이나, ‘아줌마 여기 국밥 한 그릇 양 많이!’를 외치면 으레 등짝 한 대 치며 “또 왔냐”고 푸짐하게 담아주는 정(情)이라든지, 택시 기사님이 간간이 “이 동네 살아요? 저 골목에 있는 맛집이 글쎄” 하며 풀어내던 동네 소식…. 사람과 사람이 만나야 들을 수 있고, 만들 수 있는 세상사들 말이다. 때론 성가시기도 하지만 퍽 다정했던 시간들이었다. 과하지 않은 선에서의 ‘생활의 참견’이 참 그립다.
  • 2020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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