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제 맥주 전성시대

강태일 인더케그 대표

냉장고 크기의 브루어리로 누구나 브루마스터!

글 : 선수현 기자  / 사진 : 서경리 기자

지금까지 이런 제조법은 없었다. 이것은 맥주인가, 음료인가. 알코올은 없지만 결국 술이 되는 이상한 상황. 인더케그는 감히 맥주의 혁신이었다. 또 공간의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면서 일반인도 다양한 맛의 맥주를 손쉽게 제조할 수 있게 됐다. 수제 맥주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는 강태일 인더케그 대표를 만났다.
맥주를 만드는 과정은 간단히 이렇다. 보리를 끓여 맥즙을 만든다. 여기에 맛과 향을 더하는 홉을 넣고 효모가 활동하기 좋은 온도로 식힌다. 투입된 효모가 발효되면서 당을 먹고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를 뱉는데, 이때 술의 형태가 된다. 술로 거듭난 맥즙은 숙성을 통해 깔끔한 맛을 내고 종류에 따라 여과 과정을 거친다. 맥주회사가 병이나 캔, 케그(생맥주 통)에 담아 유통하면 일상의 친구 같은 맥주가 탄생한다.


그런데 맥즙의 발효와 숙성이 이용자의 손에서 이뤄지는 기기를 판매하는 회사는 주류회사일까, 음료회사일까? 인더케그가 던진 이 질문에 정부 부처 간 설왕설래가 뜨거웠다. ‘알코올 1도 미만’은 술로 취급하지 않는 주세법에 발목이 잡힌 터다. 알코올이 없는 맥즙 상태에서 유통하지만, 음료로 취급하자니 미성년자도 맥주를 제조하고 즐길 수 있는 허점이 발생했다. 이제껏 없던 새로운 맥주 제조 방식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때문에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서 혁신상을 수상하며 미국, 프랑스, 영국, 싱가포르, 중국, 벨기에 등 해외에서 러브콜이 밀려든 인더케그는 정작 국내에선 시판하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사연이 알려지며 법률 개정 움직임이 일었고, 주류의 정의를 바꾸는 것을 골자로 한 일명 ‘인더케그법’이 통과됐다. 문제가 됐던 ‘알코올 1도’ 조항이 완화되며 무려 30년 만에 술에 대한 정의가 바뀐 것이다. 결국 인더케그는 주류 제조업체로 허가받고 지금까지 90억 원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강태일 대표는 “기술의 속도보다 느린 법률이 개정되며 판매를 시작하게 됐다”며 “이제 전문가가 아니어도 누구나 쉽게 맥주 제조에 도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빛·열·산소·진동 완벽 차단


인더케그는 원터치 방식의 수제 맥주 키트다. 알코올 0도의 맥즙을 기기에 넣으면 발효와 숙성을 거쳐 맥주가 만들어진다. 가장 큰 장점은 공간 활용이다. 기존 방식으로 맥주를 제조하려면 소규모 브루어리(양조장)의 경우 수천 리터 규모의 탱크가 필요하고, 이를 설치할 넓은 부지도 필수다. 하지만 냉장고 크기의 인더케그 기기에는 18ℓ 케그 열 개가 들어가, 케그를 하나씩 비울 때마다 새로 채워 순환할 수 있다. 대량 제조가 필요하다면 소요 기간을 감안해 기기를 추가하면 그만이다. 대형 탱크를 갖출 필요가 없으니 고층 건물에 다량 설치할 경우, 브루어리 가로 면적을 높이로 조정해 공장을 운영할 수도 있는 셈이다.

또 하나, 새로운 레시피의 수제 맥주 구현이 가능하다. 청양고추, 고수, 마늘 등 원하는 재료를 넣으면 독특한 수제 맥주가 탄생하는데, 해리 포터가 먹던 버터맥주쯤은 어렵지 않다. 그것도 신선한 맛을 6개월간 유지한 채 말이다. 맥주의 맛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는 빛, 열, 산소, 진동 등이 모두 차단되기 때문이다. 세계 맥주 전문가가 4개월 된 캡슐 맥주를 시음하곤 2~3일 된 맥주 같다고 평가했을 정도다.

“맥주 제조는 온도와 시간이 핵심입니다. 효모를 발효할 때 온도를 유지하는 데서 맛이 좌우돼요. 큰 탱크를 이용하면 발효할 때 위아래의 온도 편차가 생기는데, 이때 브루마스터(맥주 제조업자)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평균 온도를 맞추기 위해 브루마스터가 시간을 재며 수시로 맛을 보고 탱크 안을 섞습니다. 인더케그는 기기가 브루어리와 브루마스터의 역할을 대신하는 겁니다.”

브루마스터는 맥주의 맛을 좌우하는 압력, 온도, 에너지 등 미세한 차이를 조정하는 전문가다. 일종의 맥주 요리사인데, 재료나 설비가 같아도 브루마스터에 따라 맥주는 다른 맛을 낸다. 브루마스터가 브루어리를 옮기면 맛이 바뀌기도 한다. 맥주를 제조할 때 에일과 라거의 발효·숙성 기간이 각각 2~3주, 3~4주가 걸리는 반면, 인더케그는 에일 5~6일, 라거 10일 정도 소요된다. 강 대표는 “제한된 환경에서 발효하니까 활성화 속도가 빠르다”며 “누구나 쉽게 맥주 브랜드를 갖는 일도 쉬워질 것”이라고 자부했다.

대량의 물도 필요하지 않다. 사실 맥주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물보다 발효·숙성 과정에서 탱크를 수차례 씻고 소독하는 데 많은 물이 사용된다. 강 대표는 “찌개를 끓일 때 찌개에 들어가는 물보다 설거지에 사용되는 물이 많은 것과 같은 원리”라고 설명했다. 인더케그의 발효·숙성 공간은 기존 제조 방식의 탱크보다 작아 세척에 필요한 물이 훨씬 줄어든다. 물과 인건비를 절로 아끼는 효과다.


호박맥주, 오징어먹물 흑맥주…


전 세계 맥주 시장은 700조 원 규모. 우리나라 맥주 시장은 약 7조 원, 수제 맥주 시장은 고작 400억~600억 원 수준이다. 다만 기존 맥주 시장에 취향을 반영한 다양한 요구가 꿈틀대면서 수제 맥주 시장이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이는 미국, 일본 등을 중심으로 이미 확산되는 추세다. 우리나라도 종가세에서 종량세로 세금 부과 방식이 바뀌며 수제 맥주 시장은 더욱 탄력받을 것으로 보인다.

“시장의 요구는 다양해지는데 그동안 따라가지 못한 거예요. 맥주는 대표적 장치 산업이에요. 대기업이 대형 설비에 곡물을 대량으로 들여 시장을 장악한 거죠. 그 시장을 수입 맥주가 대체하고 있었는데, 점차 수제 맥주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어요.”

인더케그에 탑재된 인공지능(AI) 기술은 사람들의 패턴과 취향을 파악해 특정 시기에 생산할 맥주의 종류와 양을 제안할 수 있다. 물리적 공간과 시간, 전문 인력의 제약을 극복하며 인더케그가 진출을 꾀하는 시장은 호텔, 리조트, 호프집 등 신선한 맥주를 원하는 업체다. 한 예로 울릉도 리조트 ‘힐링 스테이 코스모스’의 경우, 신선한 맥주를 공급하기 위한 방안을 찾던 중 인더케그에 문을 두드렸다. 브루어리를 조성하려면 넓은 땅과 설비를 확보해야 했다. 청정한 섬을 유지하기 위해 제조 과정에서 배출되는 폐수 처리 시설을 갖춰야 함은 물론 브루마스터도 필요했다. 더불어 리조트는 울릉도의 정체성을 살린 맥주를 원했는데, 인더케그는 울릉도 호박엿을 연상시키는 호박맥주와 오징어먹물을 첨가한 흑맥주를 제안했다. 리조트의 고민은 단번에 해결됐다.


와인, 탄산음료, 콤부차도 가능

냉장고 크기의 인더케그 기기 안에 페트병처럼 생긴 18ℓ 케그 10개가 들어간다. 발효·숙성을 거친 맥즙은 탄산 결합을 통해 맥주가 된다.
아래쪽은 기기 내 스마트 케그를 결합한 모습. © 인더케그
현재 인더케그는 가정용 기기를 개발 중이다. 5ℓ 케그 네 개가 담긴 기기에서 꼭 맥주만 만들 필요는 없다. 가족 구성원이 케그 하나씩을 갖고 와인, 탄산음료, 콤부차(발효녹차·홍차) 등 원하는 음료를 제조하면 된다. 내년 상용화를 앞둔 가정용 기기에 벌써부터 해외 바이어들의 관심이 높다.

“‘멀티 베버리지’에 대비하려고 합니다. 다양한 음료를 제공하는 기업으로 성장하는 거죠. 사람들이 나만의 레시피로 소규모 사업을 할 수도 있고요. 현재 3000억 원 매각 제의를 받았는데요, 향후 전 세계 맥주 시장의 0.5%를 점유하는 게 목표입니다. 그때쯤이면 회사 가치가 20조 원 정도 되지 않을까요?”
  • 2020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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