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제 맥주 전성시대

김정하 브로이하우스 바네하임 대표

공릉동 그곳에서, 미슐랭 레스토랑 맥주 만드는 여자

글 : 차지현 명예기자  / 사진 : 서경리 기자

김정하 브로이하우스 바네하임 대표는 국내 여성 1호 브루마스터다. 2016년 일본국제맥주대회에서 ‘벚꽃라거’로 금메달을, 2017년 아시아맥주대회에서 ‘란드에일’로 은메달을 수상하며 각종 맥주 대회를 휩쓸었다. 국제맥주대회 심사위원으로도 활약하는 등 국내 대표 브루마스터로 지평을 넓혀가는 그는 사회의 편견과 규제에 맞서 맛있는 맥주를 만드는 이야기를 담은 《맥주 만드는 여자》라는 책을 펴냈다.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에 위치한 바네하임 브루어리는 지난 1월 문을 열었다. 2004년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 오픈한 브로이하우스 바네하임의 제2 양조장으로, 400㎡(약 120평) 규모에서 연간 300㎘의 맥주를 생산할 수 있는 설비를 갖췄다. 바네하임의 수제 맥주는 국내 내로라하는 레스토랑에 공급된다. 신세계L&B ‘와인앤모어’ 직영 18개 지점을 포함해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 ‘문바’, 미슐랭 2스타 파인다이닝 ‘권숙수’와 ‘백곰막걸리’ ‘종로도담’ ‘락희옥’ 전 지점, 홍대 ‘얼쑤’ 등에서 만날 수 있다.

바네하임 브루어리에서 만난 김정하 대표는 더위를 식히라며 장미 에일을 건넸다. 프랑스 화가 르누아르의 작품 〈시골의 무도회〉의 연인과 장미를 배경으로 만든 맥주 라벨이 시선을 끈다. 부드러운 목 넘김 뒤에 남는 은은한 장미 향이 일품이었다.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 있는 브로이하우스 바네하임은 2004년부터 줄곧 지역색을 품은 맥주를 만들고 있다.

“공릉동에서 시작한 이유는 제가 나고 자란 고향이기 때문이에요. 동네에서 맛있는 맥주를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처음 방문했던 손님이 결혼해서 유모차를 끌고 오고, 동네 꼬마가 성인이 돼서 매장을 찾아오는 모습을 보면 뿌듯해요.”


상생을 추구하는 지역 밀착형 맥주


김 대표가 추구하는 가치는 로컬리티다. 그 지역만의 특색을 살려 맥주에 녹여내는 것, 그가 말하는 수제 맥주의 매력이다.

“맥주는 외국 술이지만, 우리나라에서 만들면 우리 술 아니겠어요? 지역의 특산물을 활용해 ‘우리만의 색’을 띠는 한국형 맥주를 만들고 싶었어요.”

바네하임은 맥주에 들어가는 재료도 국내 농수산물을 적극 사용한다. 국내산 기능성 쌀로 만든 맥주 ‘도담도담’이 대표적이다. 수입 맥아 대신 공급 과잉 상태인 국내산 쌀로 만들어보자는 취지에서 농촌진흥청과 협업한 프로젝트다. 맥주 양조에 적합하게 실험과 연구를 계속한 끝에 ‘맥주용 기능성 쌀’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도담도담은 호주국제맥주대회에서 은메달을 수상 했다.

“정말 힘들었죠. 기능성 쌀의 특이성 때문에 기존 양조 과정보다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도 어려웠어요. 그래도 1차 산업을 이어나가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다는 뿌듯함이 더 컸어요.”

지역 특산물로 만든 음식을 맥주와 페어링하기도 한다. 계절 맥주인 장미 에일은 해산물과 잘 어울려 제주에서 딱새우를 공수해왔다. 봄에는 청국장에 무친 냉이와 명란구이를, 겨울에는 열무튀김에 엔초비소스를 곁들여 쌀맥주 도담도담과 함께 내놓는다. 김 대표는 로컬리즘의 가치를 살려 지역 단위의 맥주 축제도 지속적으로 기획하고 있다. 노원구에서 요식업이나 펍을 운영하는 주민들에게 좀 더 저렴한 가격으로 바네하임 맥주를 납품하기도 하고, 노원구민에게는 할인해주는 이벤트도 진행한다.


Save water, drink beer

탄산음료조차 잘 마시지 못하던 김 대표가 맥주에 눈을 뜬 건 아버지 덕분이었다. 아버지가 신문에 실린 맥주 제조 기계 광고를 보고 데려간 작은 수제 맥줏집에서 마신 맥주의 맛이 잊히지 않았다. 탄산만 강하고 별맛이 나지 않는 기존 맥주와는 달랐다. 은은한 향이 감돌면서 목 넘김이 부드러웠다. 맥주 사업의 가능성을 엿본 그가 연습 삼아 맥줏집 운영을 시작한 게 지금의 바네하임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수제 맥주는 상대적으로 인건비와 재료비가 많이 들고 공정이 복잡해 대기업이 대량 생산하는 맥주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 지난 5월 주류 규제가 개선되면서 주류 제조 방법을 변경하는 절차가 간소화되고, 신제품 출시 소요 기간이 단축되는 등 소규모 주류 제조 면허자의 부담이 완화되곤 있지만, 수제 맥주의 유통 판로를 찾는 일은 여전히 힘든 실정이다. 현행법상 수제 맥주는 온라인 판매와 배달이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 판매와 배달은 전통주만 가능하며, 나머지 주류의 경우 음식과 함께 주문할 때만 온라인 주문을 할 수 있다.

그는 우리나라 수제 맥주 시장의 발전을 위해서는 주류의 택배와 유통에 대한 더 적극적인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요즘은 브루마스터가 아니라도 비어 소믈리에, 국제맥주심사위원, 맥주교육강사, 맥주잡지 에디터 등 맥주 관련 직업이 많이 생겨나고 있어요. 맥주 생산자가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관련 콘텐츠도 함께 갈 수 있죠. 규제가 점점 완화되면 앞으로 더 유망한 직종이 아닐까 생각해요.”

김 대표의 꿈은 넓고 크다. 그중에서도 특히 놓치고 싶지 않은 부분이 환경이다. 간과하기 쉽지만, 맥주를 만드는 과정에서도 환경 문제가 많이 발생한다. 특히 맥주를 만들고 남은 찌꺼기인 맥아박은 물기를 많이 머금고 있어 음식물 쓰레기로 버려진다. 환경오염을 줄이기 위해 그가 고민한 방법은 맥아박의 수분을 날려 연료화하는 것. 물론 설비 비용이 많이 들어 당장 실현은 어렵지만, 맥아박을 건조해 만든 땔감을 노인과 저소득층 가정에 대체 원료로 보급하는 게 장기적인 꿈이다.

“사회적 사업에 관심이 많아요. 제가 맥주를 만들면서 환경에 피해를 준 부분이 있다면 꼭 다시 되갚아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 2020년 07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
이름      비밀번호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related article 1

비어리즘(beerism)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독자팀)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