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사랑과 썸 사이

“사랑보다 먼, 우정보다는 가까운/ 날 보는 너의 그 마음을 이젠 떠나리… / 연인도 아닌 그렇게 친구도 아닌/ 어색한 사이가 싫어져 나는 떠나리.”

그룹 ‘피노키오’의 노래 ‘사랑과 우정 사이’입니다. 이 노래를 반가워하며 흥얼거리는 분이라면 30대 이상이 아닐까 합니다. 28년 전인 1992년에 발표한 노래이니 말이죠. 노래 한 곡 더 볼까요? 2014년에 발표한 정기고와 소유의 ‘썸’입니다.

“요즘 따라 내꺼인 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너 / 니꺼인 듯 니꺼 아닌 니꺼 같은 나… / 피곤하게 힘 빼지 말고 어서 말해줘 / 사랑한단 말야.”

22년 차이를 두고 세상에 나온 두 곡, 소재는 같은데 톤은 딴판입니다.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는 이도저도 아닌 어색한 사이가 싫어져 결국 떠나지만, ‘썸’에서는 안달복달하면서도 아슬아슬한 관계를 즐깁니다. 음악평론가 김작가는 “90년대의 신세대는 이런 애매한 관계를 용납하지 못했다면, 2010년대의 밀레니얼은 썸을 하나의 관계, 즉 연애의 전 단계로 적극 수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합니다.

이번 달 《topclass》 스페셜 이슈에서는 ‘요즘 연애’를 다뤘습니다. 숨은 의도는 ‘잠자는 연애세포를 깨워라!’였습니다. 취업이 힘들어 연애 불감증을 겪는 청춘들이 많다기에 응원하고 싶은 맘이 컸습니다. 스타들의 사랑법(현아♡던, 류준열♡혜리, 정경호♡수영)부터 ▲커플 브이로그 ‘몽셀몽셀’의 몽남·에셀 ▲독자 64만 뷰티 유튜버 ‘새벽’의 사랑법 ▲연애 유형별로 정보를 제공하는 인스타툰 〈꿀차툰〉의 박구원 작가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연애의 과학’ ‘핑퐁’을 서비스하는 ‘스캐터랩’ 김종윤 대표의 인터뷰 등을 담아봤습니다.

쉽지 않더군요. 쉬운 사랑이 없듯, 천인천색(千人千色) 커플들의 양상을 ‘요즘 연애’라는 타이틀에 가두고 90년대생의 사랑법만의 특징을 뽑아내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설레고, 가까워지고, 무르익고, 이별하는, 사랑의 생로병사가 요즘 연애라고 다를 리 있나요.

한 가지 발견한 점이 있다면, 90년대생의 ‘조숙함’입니다. 저성장 경제 기조에서 자란 이들은 다분히 현실적입니다. ‘노오력의 배신’을 절감하며 ‘낭만적 연애 따윈 개나 줘버려’가 되는 거죠. 그런가 하면 이것저것 꼼꼼히 묻고 재는 ‘포노사피엔스’의 양상도 보입니다. 정보의 바다 속에서 ‘찐’(진짜)과 ‘짭’(가짜)을 구별하는 습성이 연인 관계에서도 나타나는 셈입니다. 한편 성숙한 연인들이 많았습니다. 불확실성의 시대, 심리학 서적 열풍의 힘이 아닌가 싶습니다.

초연결 사회의 연인들은 헤어져도 헤어질 수 없는 일명 ‘전남친 증후군’을 앓는다고 합니다. 소설가 백영옥이 《연애의 감정학》에서 실감나게 그린 개념인데요, 인스타그램, 카카오스토리, 페이스북 등 다양한 SNS를 통해 얽히고설킨 이들은 이별이 어렵습니다. VOS의 노래 ‘다시 만날까 봐’에서처럼 “팔로우 다 끊고서 좋아요는 왜 눌렀니” 같은 상황이 일어나는 거죠. 그렇게 보자면 1990년대 초반 O15B가 ‘텅 빈 거리에서’ 그린 “야윈 두 손엔 외로운 동전 두 개뿐”으로 상징되는, 공중전화가 유일한 네트워크였던 ‘이별 가능 시대’의 풍속도가 일면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 2020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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