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제주살이의 기쁨과 슬픔

언제부터인가 ‘제주살이’는 대안의 삶으로 떠올랐습니다. 아등바등하면서 각박한 도시인의 일상을 살다 보면 ‘인간다운 삶’이 사무치게 그리울 때가 있지요. 새하얀 뭉게구름 아래에 펼쳐진 푸르른 풀밭에서 뛰놀며 아무 걱정 없이 그저 좋았던 어린 시절이 떠오르면서 말입니다. 그땐 뭐가 그리 좋았는지, 배가 아프도록 까르르까르르 웃을 일도 많았습니다.

“적게 벌더라도 사람 사는 것같이 살고 싶다”는 낮은 탄식을 습관처럼 내뱉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세대 간, 성별 간, 산업군 간 갈등이 격화되는 현실도 그 반대급부로 인간다운 삶을 희구하게 하는 요인 같습니다. 푸른 초원, 너른 바다, 뭉게구름, 가족과의 소소한 일상을 즐기는 느린 삶. 제주도는 이런 가치를 가진 분들이 차선으로 택하는 이상향입니다.

한 5~6년 전쯤 ‘제주도 한 달 살기’ 열풍이 일었지요. 누군가는 한 달 살기를 한 달 일정으로 마치고 다시 도시의 일상으로 복귀하지만, 누군가는 제주의 매력에 빠져 눌러앉아버리기도 합니다. ‘살아보는 제주’라는 콘셉트를 표방한 제주 로컬 잡지 《iiin》을 만든 고선영 발행인이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이 도시, 저 도시를 떠돌며 살아보기로 한 고 대표는 남편과 함께 제주도에 와서 살다가 아예 눌러앉게 됐습니다.

재미있는 건, 서울보다 제주도에서 오히려 더 바쁘고 열심히 살게 됐다는 그의 고백입니다. 참 아이러니하지요. 고 대표는 “자연을 다 품고 있는 제주에 살다 보니 더 열심히 살게 된 것 같다”고 말합니다. 동경하던 자연 속에서 살게 되니 모든 게 충족돼 현재에 더 충실할 수 있다는 말로 들립니다. 마음과 몸의 거리가 이런 마음가짐을 만든 게 아닌가 싶습니다. 마음이 먼 곳에 있으면 덜 바빠도 괜스레 분주하고, 마음이 ‘지금, 여기’에 와 있으면 현재에 충실할 수 있으니까요.

푸른 목초지에 젖소를 방목하면서 동화처럼 살아가는 ‘어니스트 밀크’ 목장의 세 자매 이야기도 빙그레 웃음 짓게 합니다. 각자의 꿈을 찾아 도시로 갔던 세 자매는 제주로 와 ‘이곳’에서 ‘우리’ 아니면 하기 힘든 가치 지향적 일을 가꿔나가고 있습니다. 가장 해녀다운 공간을 만든 ‘해녀의 부엌’ 김하원 대표, 플루티스트 아내와 대기업 출신 남편이 꾸려가는 ‘카카오패밀리’, 제주 배송 문제를 해결한 제주도 출신 청년 사업가 이현경 제주박스 대표의 인터뷰도 의미 있습니다.

이들은 대안의 삶으로 택한 제주도에서 제주만의 콘텐츠로 성공한 경우입니다. 가수 루시드폴, 배우 윤진서 역시 제주에 정착해 제주의 콘텐츠로 더 농밀한 삶을 만들어가고 있지요. 중요한 건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삶입니다. 막연히 제주를 동경했다가 상처만 안고 도시로 돌아간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제주살이를 꿈꾼다면, 왜 꼭 제주여야 하는지에 대해 자기만의 뾰족한 답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 2020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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