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살이

책방 소리소문(小里小文)

구석구석 이야기를 찾는 재미

글·사진 : 서경리 기자

70년 된 돌집을 개조해 만든 책방 소리소문. 정도선·박진희 부부가 직접 큐레이션한 책을 진열해 파는 서점이다. 필사 코너가 있는 ‘작가의 방’과 이달의 추천 책을 소개하는 ‘그림서가’, 키워드만으로 책을 고르는 ‘블라인드 북’ 등 곳곳에 소소한 재미가 가득하다. ‘소리소문(小里小文)’은 한자로 ‘작은 마을에 작은 글’이라는 뜻. 작지만 알곡 같은 활자와 책이 널리널리 퍼져나가기를 바라는 주인장의 마음이 담겼다.

제주 제주시 한림읍 중산간서로 4062 | 인스타그램 sorisomoonbooks | 11:00~18:00(수 휴무)
바람이 세차게 불어오는 날, 창문은 덜컹덜컹 흔들리는데 집 안은 고요하다. 보리차가 끓는 주전자에서는 뽀글뽀글 김이 피어오르고, 따끈한 바닥에 앉아 달곰한 귤을 까먹으며 책을 읽는 시간. 이처럼 평범하고도 소소한 순간이 눈물 나게 반가울 때가 있다. 오래된 돌집, 주인장이 한 땀 한 땀 공들여 꾸민 책방 소리소문은 딱 이만큼의 소소한 행복을 주는 공간이다.

제주도 한 달살이를 하던 부부는 우연히 70년 된 돌집을 보고 “우리가 꿈꾸던 작은 책방을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신혼 초에 아내가 암 판정을 받고 나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근원적인 질문과 마주하게 됐어요. 그때 ‘살기 위한 수술’이 아닌 ‘살기 위한 여행’을 택했죠. 여행에서 작고 낮은 일상 속에 숨은 행복을 찾아냈습니다.”(정도선)

7개월간의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부부는 지리산 자락의 작은 마을로 귀촌했다. 그곳에서 정도선 씨는 시내 대형 서점에서 일하며, 언젠가 동네 사랑방 같은 서점을 차리겠다고 다짐했다.

“책보다 책방이라는 공간을 더 좋아했어요. 어릴 때 시골로 이사 가면서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친구가 없었는데, 책이 유일한 친구가 되어줬죠. 책방은 제게 위로와 구원의 공간이에요.”

어릴 적 책방의 기억을 더듬어 2014년 봄, 그는 제주도에 자그마한 동네 책방을 열었다.


네 개의 테마가 있는 방


책방은 거실을 중심으로 두 칸씩, 네 칸의 방이 서로 마주하고 있다. 방마다 각기 다른 테마를 갖고 있는데, 거실 오른쪽으로는 벽면에 가상의 책장과 실제 책을 배치한 ‘그림서가’ 그리고 작가 한 명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작가의 방’이 있다. 맞은편은 주인장의 취향이 더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공간이다. 높낮이가 다른 테이블이나 감귤박스로 만든 책장에는 책들이 들쑥날쑥 꽂혀 있고, 벽면에는 누런 신문 조각들이 눌어붙어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장판과 벽지를 걷어내니 신문지로 덧댄 흔적이 있었어요. 재밌어서 그대로 살렸죠. 바닥과 벽, 책장까지 모두 활자로 덮인 공간이 됐어요.”

책방 소리소문의 가장 큰 매력은 ‘북 큐레이션’에 있다. 고객 스스로 취향에 맞는 책을 고를 수 있도록 장치를 심어놨다. 구글 검색어에서 상위 키워드와 연관된 책을 진열한 코너는 책 제목만 봐도 대한민국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어떤 삶을 지향하는지 한눈에 볼 수 있다. ‘블라인드 북’도 그런 의미에서 인기 코너다. ‘도대체 이런 책이 어떻게 나왔을까’ 싶은 책을 모아놓은 코너도 있다.

“책방에서는 소곤소곤 말할 필요가 없어요. 책방은 엄숙한 공간이 아니라 책에 관해 이야기 나누고 취향을 공유하는 공간입니다. 이곳에서 삶의 여유와 안식을 찾아가면 좋겠어요.”
  • 2020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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