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살이

‘스테이 오조’ 이신아 작가

히끄와 나 그리고 스테이 오조

글 : 이신아 작가  / 사진 : 서경리 기자

작가이자 히끄 아부지, 민박집 주인장이자 텃밭 농부. 5년간의 제주살이가 나에게 안긴 타이틀이다. 본업은 서귀포시 오조리에서 ‘스테이 오조’라는 조그마한 민박집을 운영하는 일이고, 부업은 《히끄네 집》이 감사하게도 베스트셀러가 되어 어쩌다 보니 글 쓰는 사람이 됐다. 고백하자면, 청소를 좋아해서 민박은 천직이라고 생각할 만큼 적성에 맞지만, 글 쓰는 작업 과정은 즐겁지 않다. 머리를 써야 하는 일이다 보니, 육체를 쓰는 단순 노동을 더 많이 찾게 된다. 작년에는 집 앞 텃밭에 고구마를 심고 수확했다. 흙을 만지면 명상하는 기분이 들고 잡념이 사라진다. 직접 키운 고구마로 무농약 인증과 GAP 인증을 받고, 반려동물 식품회사인 ‘조앤강’과 콜라보를 맺어 고구마가 들어간 간식도 출시했다. 올여름에는 당근을 심어보고 싶다.

8년 전에는 생각지도 못한 삶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뭘 해야 할지 모른 채 시간을 보냈다. 동기들은 대부분 경쟁률이 XX:1인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는데, 1이 되기 위해 공부할 자신도 없었을뿐더러 내가 1이 될 확률도 낮아 보였다. 다른 대학에 다니다 적응을 못 해 도피성으로 선택한 대학과 전공이라서 성적이 안 좋았다. 입사지원서를 쓸 수 있는 회사가 한정적이었다. 부모님은 부담을 주지 않았지만, 2년이 지나자 변화가 없는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때 우연히 서랍에서 대학생 때 제주도 여행을 가서 구입한 ‘올레 패스포트’를 발견했다. ‘여기만 한 바퀴 돌고, 아무 데라도 들어가자’ 다짐했다. 한 달 동안 올레길을 따라 제주를 한 바퀴 걸었다. ‘한 달만 있어야지’ 했는데, 두 달이 되고, 그렇게 벌써 8년이 됐다. 도피성 여행지였는데, 정착지가 된 셈이다.


‘월간육지’의 이유

이신아 작가와 반려묘 히끄가 사는 진짜 ‘히끄네 집’. 왼쪽 민트색 문이 게스트하우스 ‘스테이 오조’다.
나는 ‘월간육지’ 생활을 한다. 한 달에 한두 번, 1박 2일로 잠깐 육지를 다녀온다. 서울 미용실도 가고, 맛집도 들르고, 뮤지컬과 공연, 전시를 본다. 지금 살고 있는 오조리는 마당에서 굴러다니는 낙엽 소리가 방에서 들릴 만큼 조용한 시골 마을이다. 물론 그런 고요함을 사랑하지만, 가끔 시끌벅적한 활기가 도는 도시가 그립다. 얼마 전에는 ‘씨마크호텔’에 가보고 싶어서 강릉 여행을 다녀왔다. 숙박업을 하다 보니 사람들이 많이 가는 호텔의 운영 방식이 궁금한 측면도 있다. 멀지 않느냐고? 오랜 시간 버스나 기차를 타는 것도 아니고, 비행기만 타면 되니 육지에 가는 게 편하다.

제주살이는 많은 것을 깨닫게 해줬다. 무엇보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많은 것이 필요하진 않다는 걸 알아가고 있다. 8년 전, 제주에 처음 왔을 때 배낭 하나만 메고 왔는데 지금은 집이 생겼다. ‘배낭 하나의 삶’을 언제든지 실천할 수 있게 정리하려고 한다. 습관적으로 집을 둘러보고, 중요하지 않은 것을 골라서 버린다. 물건을 버리듯이 인간관계도 자연스럽게 정리됐다.

제주에 오면서 자연스럽게 가족과 분리돼 독립했다. 부모님은 아직도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다가 결혼했으면 하지만, 새소리를 들으면서 하루를 시작하고, 비가 오면 히끄와 함께 거실에서 비 구경을 하고, 하늘이 예쁜 날에는 오토바이를 타는 일상이 소중하다. 무엇보다 내가 선택한 인생이기에 하루하루 만족하면서 살고 있다. 회사에 다니는 게 아니라서 히끄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다.


제주의 삶이 불편한 부분도 있다. 삼다수와 귤 빼고는 물가가 비싼 편이라 생활비가 많이 든다. 당일, 익일, 식품 배송은 당연히 안 되고, 도선료라는 명목으로 택배비가 3000~5000원 추가된다. 제주 토박이들끼리 서로 돕는 ‘괸당 문화’는 이방인들에게는 소외감을 안긴다. 육지와 비교해서 같은 돈을 지불해도 서비스의 질이 낮은 편이다. 그래서 미용실이나 치과, 병원 일은 육지에 갈 때 해결한다.

제주에서의 생활이 내가 선택한 인생이라면, 히끄는 내가 선택한 첫 번째 가족이다.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대문 앞을 서성거린 날이 많았다. 내게 행복한 가족이란 선택받은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처럼 느껴졌다. 마당을 서성이던 그 고양이에게서 어린 시절의 나를 느꼈다. 우리는 진정한 가족이 됐고, 지난 시간을 보상받듯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물론 배낭 하나를 메고 훌쩍 떠날 수 없게 됐지만, 희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책임의 무게를 즐기고 있다. 히끄가 나와 함께 지내는 동안 행복했으면 좋겠다.


가진 게 없어서, 떠나기 쉬웠다

이신아 작가가 직접 농사지은 고구마.
고구마 농사의 시작은 건강한 먹거리를 히끄와 함께 즐기고 싶은 마음에서다. 히끄와 함께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반려동물 먹거리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건강한 먹거리란 좋은 원료에서 시작할 텐데, 왜 친환경 농산물을 사용하지 않을까?’라는 아쉬움이 있었다. 이미리 조앤강 대표는 반려동물 간식을 만들 때 좋은 재료를 찾아다니기로 유명하다. 이곳이라면 안심하고 먹일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줄 거라는 믿음이 생겨서 함께하게 됐다.

나는 가진 게 없고 지킬 게 없어서 떠나기가 쉬웠다. 안정적인 직업이 있었다면 제주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 가진 건 없었지만 운이 좋았다. 세입자를 동반 성장으로 생각하는 좋은 집주인과 조언을 아끼지 않는 친구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다. 나는 다행히 혼자서도 잘 노는 유형이고, 정적인 성격이라 외로움을 타지 않는다. 제주의 밤은 어둡고 길어서 외로움이 많은 사람은 지내기 힘들 수 있다. 지금은 집값도 많이 오르고 해서 이주가 아닌, 잠깐 한 달살이든 회사 생활 하면서 휴가를 와도 좋을 것 같다. 현실적으로 제주에 오는 게 힘들다면, 귀농·귀촌 혜택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육지의 소도시 생활도 추천한다.
  • 2020년 03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
이름      비밀번호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5건의 글이 있습니다. 작성일순 | 찬성순 | 반대순
  아찔   ( 2020-03-01 )    수정   삭제 찬성 : 1 반대 : 0
어떻게 글을 쓸수 있을까요.
 소박한 자의 소중한 마음,생활 표현인데..
  음...   ( 2020-02-29 )    수정   삭제 찬성 : 17 반대 : 2
내 자식이었다면 어찌했을까.. 라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남의 자식이니 상관 않기로 한다.
 마스크나 사러 가봐야겠다.
 오늘은 구할 수 있을까.
  구름   ( 2020-02-29 )    수정   삭제 찬성 : 10 반대 : 5
지랄.. 다 배부른 자들의 개소리임.
  나그네   ( 2020-02-29 )    수정   삭제 찬성 : 48 반대 : 6
한달에 한번 도시로 놀러가시고 주중엔 제주도에서 사시고, 강릉에씨마크 호텔(거의 최고급)에도 가고 연극도 보시고...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은 "사는데 많은게 필요치 않은 듯 하시다" 헐, 강남 좌파같은 발언이네. 그냥 즐기시오! 누가 뭐랍니까! 말도 안되는 이상한 말 "사는데 많은게 필요치 않니 어쩌니" 그런 당치 않고 어울리지도 않는 이야기 하지 마시고..
  이성호   ( 2020-02-29 )    수정   삭제 찬성 : 19 반대 : 6
놀고 자빠젔네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독자팀)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