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살이

고선영 재주상회 대표

‘살아보는 제주’를 잡지에 담다

글·사진 : 서경리 기자

리얼 제주 매거진 《iiin》이 조용한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iiin》은 ‘살아보는 제주’를 표방한 로컬 매거진. 2014년 봄 창간호부터 완판되더니 제주를 넘어 육지 곳곳에서 폭넓은 독자를 거느린 잡지로 부상했다.

《iiin》을 발간하는 재주상회는 서울에서 여행잡지 기자로 활동한 고선영 대표 부부로부터 시작됐다. 아내는 글을 쓰고, 남편을 사진을 찍으며 소박하게 시작한 재주상회가 이제는 제주, 하면 손꼽히는 실력파 콘텐츠 그룹으로 거듭났다. 성장 가능성을 인정받아 지난해 4월에는 액셀러레이터 크립톤으로부터 3억 원을 투자받았다.

© 재주상회
재주상회의 사업 영역은 다양하다. ‘살아보는 여행’을 콘셉트로 내세운 매거진 《iiin》을 시작으로 콘텐츠 제작 협업, 작가 에이전시, 전시와 공간 디자인, 브랜딩, 제주 라이프스타일 디자인 브랜드 ‘Swim Jeju’까지 론칭했다. 최근엔 오래된 농협 건물을 개조해 ‘사계생활’이라는 공간을 만들고, 작가들과 전시 협업 겸 오프라인 상점인 ‘인스토어’를 운영하고 있다.

고선영 대표는 콘텐츠 그룹 ‘재주상회’와 협업 프로젝트 ‘로컬리지’의 공동 대표로 있다. 로컬 콘텐츠 편집숍 ‘iiin+store’, 콘텐츠 저장소 ‘사계생활’을 기획·운영한다. 《제주 여행의 달인》 《당신에게, 제주》 《언제나 제주》 등을 출간했다. 고 대표를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생활에서 만났다.


제주는 왜, 어떻게 오게 됐습니까?


“여행잡지 기자로 일하면서 해외 출장을 많이 다녔어요. 다들 부럽다 하겠지만 일이 되면 다르죠. 어느 순간 그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더 트래블러》를 창간하고 2년 뒤인 2010년 회사를 그만두고, 이듬해 제주도로 왔어요. 어디로 갈까 생각하다 자연스럽게 제주를 떠올렸죠. 제가 ‘제주 고씨’이기도 하고요. 처음부터 제주도에 살려고 내려온 건 아니에요. 1년 정도 머물다가 다른 도시로 가서 또 1년 살자 했는데, 이렇게 정착하게 됐네요.”


잡지 창간 배경이 궁금해요.

“부채감이 컸어요. 2013년 제주도 관광객이 1000만 명을 넘어섰어요. 작은 섬에 10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온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일인데, 제주에는 제대로 된 매거진이 없었죠. 전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생겼다 사라지곤 했어요. 여행 기자로 다니면서 보니 어느 나라, 어느 도시를 가든 숙소에 꼭 그 지역 로컬 잡지가 있었어요. 누군가 해줬으면 좋겠다 생각하다가 제가 하게 됐어요.”


매거진 이름 《iiin》은 무슨 뜻이죠?

© 재주상회
“인(iiin)은 I’m in island now의 약자이기도 하지만, 제주 방언을 담은 이름입니다. 제주처럼 바람이 거센 지역에서는 말이 짧고 발음이 세거든요. 그래서인지 ‘인’은 제주 말로 ‘있다’는 뜻이에요. 즉 ‘제주가 이 안에 있다’는 뜻도 되죠.”


창간 당시 주변 반응은요.

“모두 말렸죠. 예전에 만들던 여행 잡지는 누적 적자만 몇 십억인 채로 문을 닫았거든요. 《iiin》을 창간하면서 사람들이 하도 망할 거라고 하니까 ‘안 망하는 잡지를 내가 보여주겠어’라는 오기도 있었어요.”


어떤 수익 구조를 구상했는지요?

“잡지가 지속 가능성을 가지려면 자생력이 있어야 해요. 광고도 안 받고, 공공 보조나 후원금도 안 받고, 오직 판매로 자립할 수 있는 잡지를 만들겠다고 결심했죠. 방법은 단순해요. 제가 글 쓰고, 남편이 사진을 찍으니 인쇄비 500만 원만 있으면 망하지 않겠다고 봤어요. 1년에 네 번 출간하는 거니까 연 2000만 원이면 잡지를 만들 수 있죠.”


고비는 없었나요?

“왜 없었겠어요. 창간호 발행일이 2014년 4월 4일, 실제 발간일은 4월 11일인데, 며칠 뒤에 세월호 사고가 터졌어요. 책은 도착해서 쌓여 있는데 팔릴 리 있나요. 남편 손잡고 한동안 매일 울었어요.”


그 시간을 어떻게 극복했나요?


“당시 제주도에는 서점이 별로 없었어요. 중고등학교 앞에서 참고서 파는 정도가 전부였고, 독립출판 개념도 없을 때였죠. 판매처를 고민하다가 생각을 바꿨어요. ‘서점이 없으면 서점을 만들자. 서점의 정의를 다시 생각해보자. 책이 많아야 서점일까? 좋은 책 한 권만 파는 곳도 서점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사람이 모이는 곳을 서점으로 만들자’라고요. 카페와 게스트하우스가 생겨날 때였어요. 민박과 카페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부탁해 책을 납품했죠. 1년 후에는 100개의 자발적 판매처가 구축됐어요.”


성장세가 빨랐군요.

“초기 2년 동안은 책 배달도 했어요. 한번은 제주시 조천읍에 있는 지인의 민박집에 책 스무 권을 두고 돌아오는 중에 책이 다 팔렸다는 연락을 받았죠. 지인이 트위터에 잡지 소개를 올렸는데, 트위터를 본 사람들이 몰려와 다 사갔다는 거예요. 차를 돌려 책을 더 두고 왔어요. 첫 호 만 권이, 소리 소문 없이 빠르게 완판됐습니다.”


《iiin》의 흥행 비결을 자평하자면요.

“처음부터 끝까지 한 땀 한 땀 최선을 다해 만들었어요. 시기적으로 운도 따랐고요. 당시 제주에 대한 관심이 초절정에 달해 있었어요. 정보가 필요했던 거죠. 제주가 좋아서 이곳에 살고 싶은데, 제대로 된 제주 이야기를 얻을 길이 없었던 거죠.”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지점은 어디에 있다고 보나요?


“우리는 10년쯤 지나면 기억에서 잊힐 만한 얘기를 끄집어내요. 사람들이 대부분 알고 있지만 잊고 있던 것들이죠. 사실 우리가 알고 싶은 것, 우리가 궁금해한 것은 이미 책 속에 다 있잖아요. 또 누군가의 기억 속에 다 들어 있고요. 그걸 꺼내보지 않을 뿐이죠. 왜 꺼내보지 않을까요. 콘텐츠를 재밌게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우린 그걸 보기 좋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해요.”


재주상회를 꾸려가는 사람들의 면면이 궁금해요.

“재주상회는 총 열여섯 명이 일해요. 어반플레이와 함께 설립한 로컬리지까지 포함하면 스무 명 정도죠. 전국 각지에서 모인 청년들이에요. 홍콩에서 온 디자이너도 있고요. 제주 청년을 우대해요. 방송작가나 TV, 매거진 기자 등 출신이 다양해요. 20대가 가장 많고 30대 초중반도 꽤 있어요. 편집장이 30대 초반이고요.”


독자층 구성은요.

“20대 후반과 30대, 영포티라 불리는 40대 초반이 대부분입니다. 주로 제주로 오는 관광객들이죠.”


《iiin》의 테마를 정하는 기준은 뭔가요?



40년 넘은 안덕농협 건물을 개조해 만든 ‘사계생활’.
콘텐츠 그룹 재주상회와 어반플레이가 함께 만든 문화공간으로, 로컬 라이프스타일 콘텐츠와 식음료를 중심으로 마을 사람들과 여행자들이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다.
“우리는 독자에 맞춰서 콘텐츠를 기획하거나 제작하지 않아요. 매거진을 처음 만들 때 ‘내가 제주에 살면서 알게 된 제주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친한 친구에게 들려주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신상 카페나 줄 서서 먹는 맛집이 없는 이유예요. ‘원래 제주의 것’에 관심이 갑니다.”


제주에 와서 새삼 깨달은 삶의 철학 같은 게 있을까요?

“두 가지가 있어요. 첫 번째는 로컬과 콘텐츠와 사람의 관계. 매력 있는 로컬에 사람들이 오고, 그 사람들이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고 가면 다시 새로운 로컬이 돼요. 지방이 소멸하는 시대에서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까요. 콘텐츠가 없는 로컬에는 사람들이 오지 않아요. 로컬 콘텐츠 발굴이 중요한 이유죠. 두 번째로 제주의 콘텐츠는 오래된 책과 사람에게 있어요. 사람 중에서도 ‘할망’이라고 생각해요. 아카이빙 작업 중인 제주 해녀 한 분이 치매에 걸렸어요. 이들의 기억이 하나씩 사라지면 제주의 이야기가 그만큼 없어지는 거예요. 조금이라도 더 빨리 옛 제주 이야기를 모으는 게 우리 일이에요.”


행복도를 비교하자면 제주도로 오기 전과 후, 어떻게 달라졌나요?

“행복에 대해 생각 안 한 지 오래됐어요.”


제주살이를 꿈꾸는 도시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눈에 무엇이 보이느냐가 중요해요. 지금은 오히려 서울에서 기자 일을 할 때보다 더 바쁘고 열심히 살고 있어요. 눈을 살짝만 돌려도 산방산과 바다가 보여요. 자연을 품은 제주에 있으니 열심히 살 수 있는 것 같아요. 도시인들에게 제주에 오라고 굳이 말하지 않아요. 각자 만족도가 다르니까요. ‘너는 지금 좋으니?’라고 물었을 때 ‘좋아’라고 답할 수 있으면 된 거죠. 내가 살고 싶은 곳에서 나다운 일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 2020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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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건의 글이 있습니다. 작성일순 | 찬성순 | 반대순
  고롱   ( 2020-03-16 )    수정   삭제 찬성 : 2 반대 : 0
기사 쭉 읽어내리다가 '행복에 대해 생각 안한지 오래 됐어요' 라는 말이 가시처럼 박히내요. 기사만을 읽는 독자는 인터뷰 당시 그 순간의 분위기나 대화의 행간을 알 수 없으니 이 말이 무슨 맥락에서 뜻에서 나왔는지 모르잖아요. 그냥 글만 봐서는 더이상 행복을 생각하기보단 현실을 생각한다라는 느낌이면 되게 차갑게 느껴지기도 하고. 아니면 굳이 행복을 생각하지 않아도 될정도로 현실에 만족한다는 뜻인지도 모르겠고. 대체 이 분이 왜 그렇게 말할까, 왜 기자는 이 한마디를 단답형으로 집어넣었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그런 부분을 좀더 설명이 있다거나 하면 좋겠단 생각이 들어요. 기자가 그 부분에서 왜? 라고 안물어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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