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살이

해녀와 젊은 예술인의 합작 무대, ‘해녀의 부엌’에 가다

글 : 선수현 기자  / 사진제공 : 해녀의 부엌 

제주도 동쪽 끝에 위치한 구좌읍 종달리. 조용한 어촌 마을 포구에 낡은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곳이지만 12시가 되자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한다. 30년 전 문을 닫은 종달리 어판장이다. 어업인이 줄어들면서 오랫동안 방치됐던 이 건물은 지난해 1월 ‘해녀의 부엌’으로 다시 태어났다.

해녀의 부엌은 종달리 어촌계 해녀와 청년 예술인이 함께 해녀 다이닝을 제공한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연기를 전공한 김하원 대표가 주축이 돼 공연을 펼치고, 해녀들이 직접 채취한 해산물로 정성 가득한 밥상을 차려낸다. 금·토·일 사흘, 점심·저녁 두 차례 운영하는데 1인당 5만 원가량의 가격에도 늘 만석이다.


청년들의 안내를 받아 손님이 모두 자리에 앉자 곧 조명이 꺼졌다. 그때 해녀 분장을 한 젊은 배우가 제주 민요 ‘이어도사나’를 부르며 식탁 사이로 등장했다. 해녀는 바다에 남편을 잃었다. 막내딸 영희는 갓 말이 트여 ‘아빠’를 겨우 말할 뿐이다. 그 심정을 아는 동료 해녀가 옆에서 먹먹한 가슴을 위로한다.

“물에 들어가면 막 눈물만 쏟아져.”

“파도에 씻으면 그만이지.”

“가슴이 답답해서 숨이 턱턱 막혀.”

“숨 비는 소리에 털어내면 그만이지. 새끼들 생각하며 악착같이 이 악물고 살아보자게!”


숨 참듯, 인생을 참다


숨을 참고 또 참으며 바다의 품에 안긴 해녀의 삶을 노래하는 모습에 객석에서 연신 훌쩍이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물질하는 해녀를 표현할 때는 수조에서 물이 튀어 오르기도 했다. 과거 해산물 경매에 쓰던 수조가 공간 해석에 십분 활용된 장면이었다.

물질로 인생을 살아온 해녀는 딸에게 물었다.

“나 이만하면 그래도 잘 살았제?”

그 말에 주인공의 실제 막내딸인 영희가 “네, 엄마” 하며 등장했다. 종달리 최고령 해녀 권영희(89) 할머니다. 그 역시 엄마의 뒤를 이어 물질을 숙명으로 삼고 살아왔다.


해녀의 부엌은 해녀가 주인공이다. 해녀는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모진 인생을 살아온 제주의 어머니들을 대변한다. 그들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청년들은 해녀의 가치를 공유하고자 제주 시골마을에 모여들었다. 서울에서 관객으로 왔다가 해녀의 부엌에 합류한 박대철(27) 씨 역시 그랬다. 대학을 1년여 휴학하고 제주에 머물며 공연 시나리오를 집필했다. 그는 “해녀 할머니들의 ‘숨 있을 때 나오라’는 말이 와닿았다”며 “해녀들이 숨을 참듯, 인생도 참고 있었는데 스스로 반짝이는 해녀들의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다음 순서는 해녀가 들려주는 ‘해산물 이야기’다. 45년 경력의 강인화(69) 해녀가 준비한 재료는 제주 특산물인 뿔소라와 군소다. 그는 뿔소라가 제주의 거센 물살을 이기기 위해 뿔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망치로 속살을 꺼내 암수 구별법을 설명했다. 시커멓고 울퉁불퉁한 군소가 생소한 외지인에게 강인화 해녀는 ‘베지근하다’는 제주 방언으로 맛을 표현했다.


제주 재료로 차린 해녀의 밥상


해산물 이야기가 끝나갈 무렵, 허기진 배를 자극하는 냄새가 밀려왔다. 두 개의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다른 해녀들이 차린 밥상이 준비됐다는 뜻이었다.

고은숙(55) 해녀는 “공연할 때 우리는 음식을 하느라 제일 바쁘다”고 말하며 상을 내왔다. 연극을 하던 청년은 어느새 국자를 들고 갈치조림을 덜고 있었다.

해녀의 ‘숨’이 담긴 귀한 밥상. 재료 준비부터 조리까지 종달리 해녀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청년들은 메뉴의 균형, 플레이팅 등에 젊은 감각을 더할 뿐이다. 톳밥, 성게미역국, 갈치조림, 톳·군소·우뭇가사리 무침, 뿔소라꼬지, 돔베고기, 메밀빙떡 등이 한 상 푸짐하게 차려졌다. 주방을 책임지고 있는 현로사(64) 해녀는 “제주 바다에서 나는 재료로 평소 집에서 먹는 그대로 차린다”면서 “해산물 무침은 조미료를 안 쓰고 제주 방식대로 된장 양념을 한다”고 비결을 귀띔해줬다.

공연과 다이닝으로 순식간에 100분이 지나갔다. 가장 제주다운 공간에서 가장 제주다운 귀한 밥상을 맛본 시간이었다.



해녀의 부엌 김하원 대표
종달리 출신 예술가, 세상에 없던 공연 만들다


김하원 대표는 제주 종달리 출신이다. 그가 해녀의 부엌을 기획한 것은 해녀들이 채취한 해산물이 가격 경쟁력에 밀려 적절한 비용을 받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다. 해녀의 문제는 남의 일이 아니었다. 그의 가족도 어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연극을 전공한 김 대표는 스스로가 잘할 수 있는 일로 접근하기로 했다. 해녀의 이야기를 예술로 풀어내 관광객을 불러들이는 것이었다. 기본 원칙은 해녀가 주인공인 공간이어야 했다.

“해녀의 부엌인 만큼 해녀의 참여가 꼭 필요했어요. 수십 년간 해녀로 살아온 삶에 변화를 주는 게 부담이자 거부감이 생길 수 있는 일이라, 해녀들을 참여시키는 게 가장 어려웠죠. 그분들을 설득하기 위해 관광객을 모아 활성화하고 해산물을 많이 소비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김 대표의 구상에 종달리 어촌계가 함께하기로 했다. 건너건너 모두가 아는 작은 마을이지만 그들을 새롭게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그는 해녀들과 해산물을 나르고 말리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안무, 조명, 음향 등 무대 공간을 조성하는 데는 한예종 교수와 선후배들이 도움을 줬다. 청년들은 문화의 힘으로 공간을 채웠다. 30년간 방치된 어판장은 공연과 다이닝을 위한 장소로 변모했다.


해녀도 관객도 치유하는 공간

공연은 네 가지 테마로 구성돼 있다. 물질하느라 학교에 가지 못한 게 한으로 남은 해녀, 어린 나이에 원정 물질을 떠나 사고를 당한 해녀, 해녀가 되기 싫어 도망쳤다가 가족을 위해 다시 물질을 해야만 했던 해녀 등 바다로부터 삶과 죽음을 함께 건네받은 해녀의 역설적 삶을 고스란히 담았다. 메시지는 한결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살아보자고.

공연을 보고 해녀는 부끄럽게 여겨온 자신의 삶에 자부심을 가졌다. 제주를 찾은 관광객은 공연을 통해 위로를 받았다. 김 대표는 이러한 해녀의 부엌을 ‘치유의 공간’이라 명명한다.

“해녀 문화를 보존하기 위한 거창한 목표가 있었던 건 아니에요. 관객들이 해녀를 이해하고 반응하는 과정에서 해녀들이 ‘아, 내가 잘 살아왔구나’를 느끼게 하고 싶었어요. 해녀들은 제주의 엄마잖아요. 공연 내용도 해녀를 소개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해요.”

제주를 떠나 젊은 예술가가 된 청년이 다시 고향에 돌아오는 데 주저함이 없진 않았다. 김 대표는 “후퇴하는 느낌도 있었지만 제주가 처한 문제를 알수록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며 “연극을 공부해 잘 활용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그가 초기 해녀들에게 약속한 바처럼, 해녀의 부엌은 해녀들이 직접 채취한 해산물을 시가보다 20% 높게 구입해 상을 차리는 데 쓴다.

“해녀의 부엌은 가장 제주다운 공간이에요. 해녀들은 힘든 삶 속에서도 서로 포용하고 행복과 즐거움을 찾잖아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관객들도 밝게 웃으며 열심히 살아갈 힘을 얻어가길 바라요. 또 문화예술이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아줬으면 합니다.”
  • 2020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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