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고수들

여행 책방 ‘사이에’ 조미숙 대표

별별 여행이 펼쳐지는 신나는 책방

글 : 선수현 기자  / 사진 : 서경리 기자

한적한 연남동 골목, 세상에서 가장 큰 책방이 있다. 하얀 벽을 타고 문을 열면 ‘땡그랑’ 종소리가 여행을 알리는 여행 책방 ‘사이에’다. 조심스레 문턱을 넘고 책방을 마주하면 세계 곳곳이 눈앞에 펼쳐진다. 여행 느낌 물씬 묻어나는 책부터 여행 포스터, 여행지의 마그네틱, 각종 소품과 지도가 여행의 설렘을 고스란히 전한다.

여행 책방 사이에는 2016년 문을 열었다. 여행 책방이란 장르가 전무하던 때, 오랜 기간 출판업에 종사해온 조미숙 대표의 꿈을 실현한 공간이다. 여행을 좋아하는 조 대표가 여행 가방을 꾸릴 때 책을 빼놓지 않고 챙겼던 걸 보면 책과 여행의 결합은 자연스러웠다.

“서재에 꽂힌 책을 공유하고픈 마음은 출판 관계자 대다수의 로망일 거예요. 책방을 차리고 독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제가 편하게 이해하는 책을 골라야겠더라고요. 여행을 주제로 얘기할 때는 독자들과 어렵지 않게 대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여행 책이라고 하면 가이드북을 떠올리기 쉽지만 조 대표는 “여행지에 가져가는 모든 책이 여행 책”이라고 말한다. 사이에에는 여행지를 소개하는 책은 물론 특정 지역의 인문 교양서와 작가의 에세이, 여행지에서 읽으면 몽글몽글한 감성이 피어오르고 배경지식을 든든하게 쌓아주는 책이 가득하다. 여행 과정에서, 여행 전후로 읽으면 좋은 책들이다. 여행 방식에 정답이 없듯, 무수히 많은 여행의 취향이 담긴 책을 소개할 뿐이다.

책장은 크게 대륙별로 나뉘어 해당 지역과 관련된 책이 놓여 있다. 여행 테마는 지극히 주인장의 취향대로 분류했다. 지난해까지 있었던 ‘한 달에 한 도시’는 매달 도시를 정해 책으로 소개하는 공간이었다. 2월은 ‘사랑스러운 도시 여행’을 테마로 관련 책을 큐레이션한다. ‘위로여행’은 위로가 필요해 혼자 떠나는 사람들에게 권하는 책, ‘여행친구’는 여행지에 들고 가면 친구가 되는 책을 진열해뒀다.


진유정 작가와 베트남 쌀국수 여행을!


사이에에서는 별별 여행이 펼쳐지고 있다. 조 대표는 책방 한편에서 기획사 ‘하라컴퍼니’를 운영해 수익을 보완하는 동시에 여행 책방 본분에 충실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고안했다. 호기롭게 문을 연 동네책방들이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하나둘 사라져가는 현실에서 사이에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작가와의 여행’으로, 도쿄 책방 탐사, 치앙마이 카페 여행, 베트남 쌀국수 여행 등이다. 여행을 매개로 작가와 독자를 잇는 시간을 마련한 것이다. 여행은 현지 관련 책을 출간한 작가들이 함께한다. 여타 그룹 여행과 달리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이 한 가지 주제에 집중하자 여행은 더욱 깊어졌다. 사이에는 작가와 함께하는 여행, 아는 만큼 보이는 여행, 같이하면 즐거운 여행을 책과 함께 만들어가고 있다.

사이에 여행 프로그램을 두고 대형 여행사에서도 러브콜이 왔지만, 조 대표는 거절했다. 지금의 색을 보존하는 것이 여행을 품질과 이용자의 만족도를 유지할 수 있는 길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사이에는 여행사가 아니라는 원칙. 지금처럼 책과 여행을 통해 독자와 작가를 이을 뿐이다.


진유정 작가와 함께한 베트남 쌀국수 여행에서는 참가자들이 새벽 5시에 일어나 현지인들이 가는 시장의 쌀국수 가게를 방문했다. 베트남 쌀국수에 조예가 깊은 작가가 직접 쌀국수의 역사와 재료, 먹는 방법 등을 알려주니 만족도는 더 높을 수밖에 없었다.

또 ‘엉덩이로 쓰는 여행 글쓰기’나 ‘드로잉 여행지도 만들기’ 프로그램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여행 책을 읽으며 자신의 특별한 에피소드를 떠올리지만 선뜻 기록할 용기가 나지 않는 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잘 쓰든 못 쓰든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고 여행 경험을 써내려가다 보면 어떻게든 여행 에세이가 탄생한다. 책을 발간한 사람도 생겼을 정도. 글에 자신이 없다면 그림으로 나만의 여행 기록을 남길 수도 있다.

“예전에는 작가들 중심으로 여행 에세이를 썼다면 요즘은 일반인도 많이 해요.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여행 후기를 책으로 남기는 게 트렌드예요. 생각보다 여행 기록을 남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그런 독자들이 글쓰기·드로잉 프로그램에 많이 참여하고 있어요.”

책과 여행과 사람을 연결하는 사이에는 자연스레 여행 사랑방으로 자리 잡았다. 매주 토요일 저녁은 여행 작가와 독자가 자유롭게 소통하는 시간이 있다. 책 속에는 없는 나만의 여행지의 팁을 공유하며 정을 나누다 보니 어느 순간 사이에에는 여행의 여운이 진하게 배어들었다.



북유럽 여행에서 느낀 것들

조 대표는 책방을 운영하면서도 종종 여행을 떠난다. 지난가을에는 북유럽을 다녀왔다. 여행은 즐거웠지만, 삶의 만족도가 높다고 알려진 북유럽의 모습은 상상했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추운 날씨 탓이라 쳐도 코펜하겐 시민들의 표정은 다소 굳어 있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한국에 돌아와 마이클 부스의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을 읽고 나서야 그들의 문화와 굳은 표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또 북유럽에는 왜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많을까 궁금했는데, 그 이유도 책을 통해 알게 됐다. 환경보호를 위해 자전거를 일상화하고 깨끗한 환경을 유지하려는 노력이었다. 이런 배경은 가이드북에는 나오지 않는 내용이다. 북유럽의 건축물 하나만 봐도 건축에 담긴 서사를 알게 되니 도시가 달라 보였다. 여행을 가기 전 책을 읽고 갔다면 더 빨리 이해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마저 들었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 여행과 책의 깊은 관계를 다시 한 번 체감한 순간이었다. 여행은 점차 편리한 방법으로 진화하고 있지만, 책이 여행에 미치는 힘은 여전하다. 조미숙 대표는 그 사이에서 여행과 책과 사람을 연결하는 공간을 지키고 있다. 사이에는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낭만과 모험을 공유하고픈 사람이라면 누구나 환영한다.



‘사이에’ 기획, 작가와 함께 테마 여행을!

인스타그램 @ saiebook

장은정 작가와 ‘타이베이 책방 여행’
4.9~12(3박 4일)


타이베이는 책이 곧 일상이 된 도시다. 사람들은 24시간 문을 여는 대형 서점에서 밤새 책을 읽고 책을 사랑한다. 《두근두근 타이완》의 저자 장은정과 함께 떠난 타이베이에서 서점과 도서관을 방문한다. 골목 사이사이로 숨은 개성 있는 작은 서점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송산문창원구’ ‘화산1914’ 등 책과 작품이 쌓인 문화공간을 탐방하며 책을 사랑하는 도시 타이베이를 즐긴다.


장준우 셰프와 ‘피렌체 미식 여행’
4.25~5.3(7박 9일)


이탈리아 요리학교 ICF를 졸업하고 북유럽과 프랑스, 이탈리아 곳곳을 누비며 요리하는 《플레이버보이》 저자 장준우. 셰프 출신 작가와 함께하는 식도락만큼 특별한 여행이 또 있을까. 토스카나의 심장인 피렌체, 에밀리아로마냐의 볼로냐, 모데나에서 진정한 이탈리아 가정식과 현지 쿠킹 클래스, 와이너리 투어를 하며 이탈리아의 진정한 맛과 역사를 음미한다.


진유정 작가와 ‘호찌민 쌀국수 여행’
5.21~24(3박 4일)


《나는 그곳에 국수를 두고 왔네》의 저자 진유정은 20년간 베트남을 오가며 국수여행을 해왔다. 베트남은 ‘싸고 맛있다’란 표현이 꼭 들어맞는 음식이 가득한 곳으로 작가와 원정대는 미식도 일상이 되는 호찌민을 탐방한다. 베트남의 기후와 환경, 역사가 만들어낸 최고의 맛에 온전히 집중하는 여행으로 쌀국수, 가정식, 80년 넘은 카페 등 하루 세 끼로는 도저히 부족하다.


서진영 작가와 ‘시베리아 열차 여행’
5.23~29(6박 7일)


조금 느리고 불편해도 한 번은 타보고 싶은 시베리아 횡단열차. 러시아 문화에 반해 러시아어를 배우기 시작한 《이지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서진영 작가와 함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르쿠츠크까지 달리며 소박한 도시와 광활한 자연을 느껴본다. 도시마다 즐기는 음식, 공연, 작가가 들려주는 도시 문화 이야기는 열차여행의 로망을 채우기에 충분하다.
  • 2020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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