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과 기억

전미정·박소진 기억발전소 대표

사진으로 과거와 현재를 아카이빙합니다

글·사진 : 서경리 기자

기억발전소 전미정(왼쪽), 박소진 대표.
개인의 삶은 차곡차곡 쌓여 보편의 역사가 된다. 2011년 문을 연 문화예술 사회적 기업 ‘기억발전소’는 과거와 현재의 기록을 아카이빙한다. 책, 사진, 영상 등 다양한 기록 매체를 통해 사람들의 기억을 정리하고, 삶의 가치와 의미를 재발견하는 일이다. 지난 8년간 그들은 100여 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수백 명의 이야기를 수집했다. 기억을 기록해 가치를 더하는, 기억발전소의 전미정·박소진 대표를 만났다.

전미정 대표는 대학에서 사회학, 대학원에서 사진학을 공부했고, 박소진 대표는 대학에서 사진학, 대학원에서 기록학을 공부하고 있다. 둘에게는 사진이라는 공통분모가 있다. 이들은 사람들의 기억과 이야기를 사진이라는 매개로 풀어내는 지점을 떠올렸다. 한 장의 사진은 찰나의 순간을 기록하지만 우리는 그 안에 담긴 감정, 상황, 그날의 향기 등 모든 것을 기억한다. 되돌아가지 못해 더 아름답게 추억되는, 사진의 힘이다.


기억발전소를 세우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전미정_ “빠르게 변화하는 한국 사회에서 오롯이 전달돼야 하는 헤리티지, 즉 인류의 유산이 쉽게 사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것을 잘 붙들어 다른 이들에게 의미를 전달하는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기록문화도 재조명돼야 하고요. 기억의 가치나 의미를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방식으로 ‘아카이빙’이 필요한데, 그 역할을 해보자고 뜻을 모았습니다.”


기억발전소(memory plant)의 의미가 궁금합니다.

박소진_ “기억을 발전시키는 것과 기억의 가치를 널리 확산한다는 두 가지 의미를 담았어요. 기억발전소의 영어식 이름은 ‘메모리플랜트’입니다. 일반적으로 발전소를 뜻하는 ‘팩토리’는 제조업, 즉 소비자가 쓰는 물건을 ‘찍어내는’ 공장의 개념이죠. 플랜트는 좀 더 넓은 의미의 산업 차원이고요. 기억이라는 추상적인 자원으로 기억의 사회적 가치를 전파하고 싶어 그 의미를 확장한 ‘플랜트’로 이름 지었습니다.”


기억발전소는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으로 ‘기억의 가치’를 알리고 있습니다.
그동안의 작업, 활동상을 소개한다면.



박소진_ “기억이나 기록을 모으고, 정리해서 어떻게 보여주는지까지 세 단계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시니어를 대상으로 한 사람의 이야기를 책자로 만드는 ‘기억의 지도’와 떠난 이들을 위한 추모집 ‘기억의 정원’ 같은 장기 프로젝트도 하고 있고요. 마을에 기록박물관을 만들어 전시를 열거나, 사회활동가들의 이야기를 수집해 책으로 엮고, 기업의 일대기를 정리하는 등 그때그때 대상을 달리하며 새로운 프로젝트를 만들어 진행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프로젝트마다 8개월이 넘게 걸리는데, 저희를 포함한 여섯 명의 팀원이 함께 키를 잡고 프로젝트에 따라 인테리어나 사진가, 작가 등의 전문가와 함께 작업하고 있습니다.”

2014년에 시작한 ‘기억의 지도’는 인생 사진집을 만드는 자서전 수업이다. 시니어들을 대상으로 한 사람의 일생을 책자로 만드는데, 벌써 100권 넘게 출간했다. 치매를 앓는 어머니를 기억하려는 70대 딸, 30년 동안 고생한 아내에게 결혼기념일 선물을 하려는 남편 등 저마다 사연이 구구절절하다. 사진이라는 기록 매체를 이용해 참가자들은 잠시 멈춰서 마치 ‘나의 인생 지도’를 그리듯 찬찬히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참가자들이 남기고 싶어 하는 이야기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던가요?

전미정_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때 가장 유의미하다고 꼽는 것이 가족이나 연인, 혹은 주변 사람과의 관계 등 일상의 사소한 부분이에요. 일상의 순간을 가치 있게 들여다봄으로써 가족, 나아가 지역을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더군요.”


그동안의 작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는.


전미정_ “‘미스 할머니’라고 엄마들의 이야기를 모아 연 전시입니다. 여기서 ‘미스’는 그리워하다, 잃어버린, 젊은 시절 등 다의적 표현입니다. 풀지 못한 숙제처럼 엄마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시점이었어요. 대학 교수 부인으로 살았던 여성, 여성 자원봉사 운동의 선구자, 간첩으로 몰렸던 여인 등 다양한 삶의 풍파를 겪은 사람들을 하나의 ‘엄마’로 보고, 혹은 ‘나’일 수도 있다는 관점으로 사진 전시를 기획했습니다. 우리 모두에겐 엄마가 있고, 누군가의 엄마로부터 태어났잖아요. 그것만으로도 엄마의 가치는 엄청난데, 엄마들은 대부분 자신의 삶을 스스로 대단하다 여기지 않아요. 그들의 가치를 바로 보자는 뜻에서 기획했습니다.”


기억발전소는 사진을 중심으로 개인사와 사회상을 기록하고 수집합니다.
기록 수단으로서 사진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전미정_ “기록과 사진은 철학적으로 닿아 있는 지점이 있어요. 사진이라는 매체는 시간과 공간을 ‘프레이밍(framing)’합니다. 기억도 같아요. 사람마다 똑같은 상황을 다르게 기억하는 것은 모두 자신만의 틀로 잘라낸 한 장면이에요. 기억 행위 자체가 가진 힘이죠.”


“기억한다는 것은 곧 사는 것이다”,
기억발전소의 슬로건이 의미심장합니다.



박소진_ “누군가 실질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다른 이가 기억해줘야만 가능하죠. 슬로건은 기억발전소 창립 멤버였던 고(故) 육영혜 대표와 함께 지었어요. 2011년 전미정 대표와 육 대표가 기억발전소를 세웠고 이듬해 제가 합류했습니다. 육영혜 대표는 저희와 함께 2년 반 동안 일하고 세상을 떠났어요. 그때부터 저에게 ‘기억하다’의 의미가 달라졌습니다. ‘기억한다는 것은 곧 사는 것이다’라는 슬로건이 아이러니하게도 ‘기억하는 대상만 살리는 것’보다 ‘그 사람을 기억하려다 보니 내가 살아남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억되는 대상도 다시 불러 살게 하지만, 기억하는 행위 또한 그 힘으로 지금을 살게 하더라고요.”


우리는 왜 삶을 기억해야 할까요?

박소진_ “기억 자체가 삶의 일부 같아요. 박소진이라는 사람을 기억해주지 않고, 아무도 저를 박소진이라 불러주지 않으면 과연 ‘내가 박소진인가’ 하는 존재에 대한 정의라고 할까요? 기억은 추상적이지만 너무나도 확실하게 존재를 나타내는 방법인 것 같아요.”


그렇다면 왜 기억을 기록해야 할까요?

전미정_ “어렸을 때 저는 기록광이었어요. 예전의 기록은 존재론적인 기록이었죠. 일기나 나의 감정을 남기는 일이요. 하지만 지금은 실무적인, 실용적인 기록을 더 많이 해요. 잊지 않기 위한 스케줄러의 의미가 더 강해졌죠. 저에게 기록이란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라는, 약속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에요. 기록의 본질로 돌아온 거죠.”


기록은 결국 약속의 범주 안에 있다. 누군가의 이름을 기억하고 잊지 않으려 애쓰는, 또 누군가의 삶이나 경험치를 잘 전달하기 위한 약속.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남기는 흔적이 바로 기록이다. 낭만적일 필요는 없다. 존재를 증명하고, 잊지 않기 위해 기억하고 기록하는 일. 기억발전소가 8년을 버텨온 진짜 이유일 것이다.
  • 2019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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