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과 기억

‘오늘의 다은’ 그리는 심다은 작가

비움의 기록

글·사진 : 서경리 기자

인스타그램에서 @Todaydaeun 계정으로 활동하는 심다은 작가는 2017년부터 매일 그림일기를 그려오고 있다.
홍익대 시각디자인학과 휴학 중 개인 작업을 고민하다 언젠가 과제로 그렸던 관찰일기를 떠올렸다.
하나의 대상을 다른 시점에서 관찰하는 주제였는데, 그 대상을 자기 자신으로 옮겨온 것.
오늘 무슨 옷을 입고,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같은 소소한 일상을 그려 15만 독자의 공감을 사고 있다.
삶이 무료했던 대학교 2학년. 미술 전공생이지만, 거대한 캔버스를 채우는 일이 버거웠다. 대단한 작품을 완성하겠다는 욕심이 없는데도 번번이 목표조차 세우지 못하고 포기가 앞섰다. 완벽한 결과물보다 끄적거리는 한 장이 더 좋았다. 그때부터였다. 일상을 끄적이기 시작한 게. 심다은 작가에게 낙서는 취미이자 자신을 표현하는 도구였다. 말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내면은 늘 수다스러웠다. 한번 떠오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온 신경을 잠식시켰다. 그럴 때마다 뒤죽박죽 엉킨 생각의 꼬리를 잘라 노트에 쏟아냈다. 그래야만 했다. 생각을 비우기 위한 수단으로 일상을 기록했다.

일상의 딴짓으로 일상을 끄적였다. 오늘 입은 옷, 먹은 음식, 만난 사람과 그날의 향기, 버스를 타고 다리를 지날 때 창으로 불어온 바람까지. 일상의 사소한 감상을 수첩에 기록했다. 하루의 마무리로 손바닥만 한 캔버스에 일상을 기록하는 일은 매일의 성취감을 선물했다. 일상의 기록이 쌓여 캔버스 하나를 가득 메운 인생 작품이 되었다. SNS에 일기를 올리는 작업은 이름과 얼굴, 성격, 습관 등 ‘나’를 드러내는 일이었다. 사소했기에 친숙했고, 친밀했기에 조심스러웠다. 솔직함은 때론 약점이 되기에 일기에도 자가 검열의 잣대를 들이댔다. 그때마다 내가 아닌 타인이 바라는 나의 일기를 그리는 모순된 작업이 이어졌고, 일기에 대한 회의가 들었다. 진정 내가 원하는 나는 무엇인가. 자기다움에 대한 의문에서 ‘취향 일기’를 시작했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상세하게 기록하는 작업이다. ‘여행 좋아’ ‘만두 좋아’ ‘동그란 내 얼굴 좋아’ 등 나를 알기 위해 시작한 일상 기록이 나를 추억하고 또 위로하는 시간이 됐다.

“제 인생 목표는 ‘재밌게 살기’입니다. 제일 어려우면서, 제일 다양한 방법을 가진 목표죠. 내가 가려는 방향만 흔들리지 않는다면, 잔가지 정도야 바뀌어도 이상할 게 없어요. 나만의 큰 목표에 맞춰서 작은 목표를 조정해가며 사는 게 자기다움을 유지하는 방법이 아닐까요. ‘이래야만 해’가 아니라, ‘이래도 괜찮아’라고 자신을 다독이며.”

그에게 일기 쓰기는 생각을 비우기 위한 수단이었다. 하지만 점점 기록이 쌓여가며 나를 되돌아보게 되고, 더 단단해진 자신을 느낄 수 있었다. 그야말로 진정한 ‘나’를 찾는 과정이었다.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이 제일 특이해요. 세세하게 들여다볼수록 그렇죠. 내 인생의 목표나 좌우명은 남들과 겹칠 수 있어요. 하지만 오늘 내가 버스를 타고 지나가다 든 생각은 절대 겹칠 수 없는 ‘나’입니다. 일상의 순간으로 갈수록 모두 달라요. 틀렸다고 생각한 일을 ‘다름’으로 받아들이고, 옳고 그름의 평가보다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으로 바라보는 작업이 바로 일기 쓰기입니다.”


심다은에게 일기란 기억을 비워내기 위한 기록이다.
기록해서 비웠고, 곱씹으며 추억했다.



소소한 일들이 빈틈없이 꽉꽉 들어찬 심다은 작가의 하루.
누구나 한 번쯤 겪어본 평범한 오늘의 이야기지만 소중한 나의 기록이다.


  • 2019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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