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과 기억

‘스토리 디렉터’ 조은별 작가

누구나 주인공

글·사진 : 서경리 기자

인스타그램에서 @story.zip 계정으로 활동하는 조은별 작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수집해 그림을 그린다.
뉴욕주립대 빙햄튼유니버시티에서 아트 히스토리를 전공하고, 한국에 돌아와 ‘스토리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다.
목포의 선구마을을 그림과 글로 기록해 전시했으며, 지금은 서울 중구 필동 골목의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삶을 기록하고 있다.
엄마는 바쁜 작가였다. 아침 일찍 나가 밤늦게 들어오곤 했는데, 설핏 잠에서 깼을 때 들려오던 ‘타닥타닥’ 키보드 소리가 기억에 선명하다. 소리의 기억을 모아 동시를 지어 ‘타닥타닥’이라 제목 붙였다. 조은별 작가의 최초의 이야기 기록이다. 그는 대학에서 아트 히스토리를 전공했다. 아트 히스토리는 미술의 역사를 되짚는 학문으로, 그중 한 분야가 고미술 복원이다. 처음 그는 미술작품의 과거를 되살리는 복원 전문가의 길을 가려 했다. 하지만 생각을 바꿔 직접 역사에 남을 그림을 그려보기로 했다. 지금의 순간들이 쌓여 미래를 만들어간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일이 ‘이야기집’이다. 이야기집은 이야기가 사는 집(home)이자, 사연이 응집된 ‘Zip File’의 의미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가 모여 기록이 되고, 기록이 쌓여 역사가 만들어집니다. 한 사람의 이야기가 소중한 이유죠.”

SNS로 수집한 사람들의 소소한 이야기를 열 컷의 삽화로 그려냈는데, 사연 하나하나가 소중하고 뭉클하다. 누군가는 한 장의 사진으로 돌아가신 아버지를 기억하고, 누군가는 버려진 종이컵에서 따뜻한 순간을 추억한다. 그는 이야기를 수집하고 엮어 그림으로 풀어내는 역할에 ‘스토리 디렉터’라고 이름 붙였다. 이야기를 글로 쓰거나 그림 그리는 작가이자 기획자이다.

한창 이야기집 작업을 이어갈 즈음, 목포의 로컬 컴퍼니인 ‘나는목포에삽니다’에서 로컬 콘텐츠 작업을 함께하자는 제안을 해왔다. 조 작가는 스토리 디렉터로서 목포의 이야기를 발굴해 그림으로 기록하는 일을 맡았다. 목포에는 뱃일에 필요한 물건을 만들어 파는 오래된 선구 거리가 있다. 생선을 보관할 때 사용하는 어상자나 생선 잡이에 필요한 그물 등을 팔아 하루 생계를 이어가는 이들이 살아낸, 살아 숨 쉬는 역사의 골목이다. 항구 도시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품은 이곳은 결코 낭만적인 공간이 아니다. 치열한 삶의 터전이다. 70년 가까이 나무상자를 만들어 배에 납품해온 할아버지, 배 부품으로 쓰이는 거대한 프로펠러를 만드는 아저씨, 선원들에게 필요한 잡화를 파는 잡화상 노부부, 수십 년째 얼음 공장을 운영하는 사장님… 항구 도시의 역사만큼이나 골목에 켜켜이 쌓인 이들의 이야기는 선구 거리를 지켜온 산 역사다.

“선구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시하던 날, 이야기 속 주인공 어르신들이 자신을 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이었다며 고개 숙여 고마움을 전했어요. 생애 최초 주인공이 되는 순간, 그들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누군가는 나의 가치를 알아봐주는구나’ 하는 마음이겠죠. 이야기의 기록이 가치를 발현한 순간이었습니다.”

전시가 열린 날, 어상자를 만드는 할아버지는 결국 병환으로 쓰러져 함께하지 못했다. 더 늦기 전에 연로한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기록해야겠다는, 그의 손이 더 바빠진다.


조은별에게 이야기란 인생의 주인공인 나의 가치다.
이야기를 기록하는 일은 누군가의 가치를 알아봐주고 기억하도록 돕는 행위다.



목포 앞바다를 오가는 뱃사람들은 누구나 다 안다. 배에서 필요한 살림살이를 마련하려면 ‘남성사’ 할머니를 찾아가야 한다는 것을.
장갑이나 장화, 우의, 고기 잡는 어망에 낚싯바늘까지. 선원들에게 필요한 온갖 잡동사니가 그 집에 있다.
조은별 작가가 그린 목포 선구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리네 삶의 증거다. 그 이야기는 하나의 역사가 되어가고 있다.


  • 2019년 12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
이름      비밀번호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201912

201912

구독신청
낱권구매
전체기사

related article 1

텍스트형 인간

event2019.12

event
event 신청하기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30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