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과 기억

내 푸른 시인, 연필

연필은 내 여섯 번째 손가락이다.
쥐고 있으면 손에 착 감기고, 내려놓을 땐 아무 무리 없이 톡 떨어진다.
토끼의 간처럼 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는, ‘편리한 손가락’ 같다.


전업 작가로 사는 내게 ‘원고 마감’은 일상이다. 마감이 코앞인데, 랩톱 앞에 앉아도 아무 생각이 나지 않을 때가 있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가락과 생각이 서로를 믿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연필을 든다. 연필이 모든 글이 술술 써지도록 요술을 부리는 건 아니다. 다만 연필은 1루 출루에 성공하는 타자처럼, 글의 문을 열어준다. ‘득점은 모르겠는데, 일단 출루(시작)는 하게 해주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연필로 끼적인 글에는 억지가 없다

좋은 글은 니트 소매에서 올이 한 가닥 풀리듯 ‘무리 없이, 자연스럽게’ 시작해, 라면 가닥 같은 이야기가 술술 풀어져 나오듯 써내려가는 글이다. 연필로 끼적인 글에는 억지가 없다. 산문이 안 풀릴 때는 물론, 시를 쓸 때는 ‘언제나’ 연필로 쓴다. 책상에 비스듬히 앉아 연필을 쥐고 무언가를 써내려갈 때, 그 편안한 ‘풀림’이 좋다. 내 몸과 방망이(연필)와 그라운드(공책)가 각자의 위치에서 편안한 리듬을 탈 때, 연필이 내는 사각사각 소리와 손의 부드러운 악력, 편편한 공책의 찬 감촉까지! 이 모든 것이 합작해 내게서 빼앗아 가는 것이 있으니, 바로 ‘긴장’이다. 시의 초고를 구태여 연필로 쓰는 이유는 쓸데없는 긴장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연필은 뒷마당에서 노는 느린 빗자루

시는 긴장하는 자에게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는다. 모니터는 환하고 번듯한 광장 같아서 ‘이제 막 소리를 내려는’ 시적 자아를 주눅 들게 한다. 마이크를 쥐고 광장에 선 사람처럼 막막하게 한다. 반면 공책은 잡초와 그늘이 어우러져 노는 뒷마당 같다. 엄마에게 꾸중을 들은 아이가 터벅터벅 걸어와 숨는 곳, 몰래 울거나 웃는 곳, 작은 보물들을 숨겨두기에 좋은 곳. 발끝으로 떠오르는 단어를 써보며 사색에 잠기기 좋은 곳이 뒷마당이다. 연필은 뒷마당에서 노니는 빗자루처럼, 무얼 쓸어담기보단 그냥 마당을 만져보려고 움직이는 느린 빗자루처럼, 써내려간다. 무엇이고 아무렇게나 쓱쓱. 열쇠는 여기에 있다. 무엇이고 아무렇게나! ‘대단한 것, 훌륭한 것을 써보자’고 마음먹으면, 늘 실패한다. 대단하고 훌륭한 것은 작정을 하고 다가가는 자로부터 도망치기 때문일까? 동기나 목적 없이, 자유롭게 끼적일 때 쓸 만한 게 나온다.


연필과 나와 종이, 우리 셋

시는 뒤뜰이나 구석에서 나오는 목소리여야 하고, 자연스레 빛나야 한다. 연필은 태어나는 시에게 쓸데없는 화장을 시키려 하지 않는다. 연필은 태어나는 시가 지닌 열기, 핏기, 비린내, 약간의 뭉그러짐, 취약함 그리고 이 모든 불완전성에 둘러싸여 있는 ‘숨은 비범함’까지 온전히 받아준다. 그래서 나는 시의 초고를 쓸 때 많은 양의 못생긴 시를, 연필을 떼지 않고, 오래도록 쓰려고 노력한다. 연필을 떼지 않으려는 이유는 잠시라도 ‘또렷한 생각’이 침입해 연필과 나와 종이, 우리 셋을 갈라놓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시작한 연필은 종이에서 떼어내지만 않는다면, 내 능력보다 훨씬 더 좋은 것을 가져다준다. 언제나.


연필은 ‘자와 저울’ 역할까지는 버겁다


시의 초고는 ‘쓰레기에 둘러싸인 보석’이다. 덕지덕지 달라붙은 쓰레기들을 보석에서 떼어내는 일을 우리는 ‘퇴고’라 부른다. 초반에 힘을 많이 쓴 연필은 ‘자와 저울’ 역할까지는 버거워한다. 연필에겐 엄격함이 부족하다. 시의 마무리를 위해선 모니터와 키보드를 사용한다. 자기 빛깔을 지닌 초고는 광장에 서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모니터의 조명을 견디고, 광장의 개방성을 받아들인다. 어떤 시선에도 주눅 들지 않을 만큼, 단단한 내면을 가진 시로 자란다. 몇 번의 퇴고(몇 달, 몇 년이 걸릴 수 있다)를 거쳐 한 편의 시가 될 때까지, 연필은 곁에서 지켜보고 있다. 자기로부터 태어난 시가 성장하는 모습을. 자기만의 음악과 힘을 가지는 모습을, 시를 품고 기르던 나와 함께, 바라보고 있다. 완성되면? 나와 연필은 동시에 손 턴다. 공식적인 지면에 발표한 시는 내 것도, 연필의 것도 아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시를 배웅하고, 출가한 시의 생은 (애써) 모른 체한다. 시의 출처가 우리임은 자명하지만, 시의 생은 시 한 편 한 편의 독자적인 몫이다.


연필은 자기 생애를 갖는다

연필은 자기 생애를 갖는다. 키가 점점 줄어든다. 부러지고 늙는다. 잘 산 연필은 ‘몽당연필’이란 최후를 맞지만 이는 귀하고도 드물다. 연필들은 중간에 자주 사라지고(도대체 어디로?) 다른 이의 손으로 넘어가기도 한다. 나는 ‘몽당연필’을 두고 이렇게 쓴 적이 있다.

“새끼손가락만큼 작아지기까지, 이 연필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종이 위에서 걷고 달렸을까. 누군가의 손아귀에서 스케이트를 타듯 종이 위를 긁적이던 숱한 밤, 그리고 낮이 필요했으리라. 그 시간을 충분히 보낸 연필들만 ‘몽당’이라는 작위를 받을 수 있다. ‘몽당’이란 누군가의 품이 들고, 시간이 깃든 후에 붙여지는 말이다.”


연필은 결국, 시인의 목발

지금 내 곁에 있는 연필은 에메랄드색에 꽁무니에 분홍 지우개를 단, 손바닥 한 뼘 길이의 연필이다. 어느 시인이 아끼는 연필이라며 가방에서 꺼내준 것이다. 연필은 랩톱으로 작업하는 내 옆에서 잠자코 있다. ‘내가 할 일은 없나?’ 생각하는 것 같다. 나는 마음속으로 말한다.

‘시를 쓸 때, 일기를 쓸 때, 시작이 어려울 때는 네가 필요해, 그러니 기다리렴.’
연필은 의젓하게 책상에 엎드려 있다. 푸른 개 같다.

이따금 내 연필은 자기가 시인인 줄 안다. 하긴, “연필은 시인의 목발/ 부러져도 살아나는”이라고 쓴 것도, 분명 저 녀석이었지. 그이는 내 푸른 시인이다.
  • 2019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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