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을 하며

동네, 좋네

‘따릉~따릉.’

어린 시절, 아빠만의 자전거 경적 소리가 있었습니다. ‘따르릉따르릉’도 아니고 ‘따따따릉’도 아닌, 아빠의 엄지손가락이 기억하는 리듬의 경적. 우리 3남매는 그 소리를 기막히게 구별해냈습니다. 마치 산후조리원에 있는 수십 명의 아기 중 내 아이의 울음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리는 것처럼요.

해질녘, ‘따릉~따릉’이 골목길에 울려 퍼지면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외쳤습니다.

“아빠 왔다!”

그러고는 다다다다 뛰쳐나갔습니다. 아빠 손에는 검은색 비닐봉지가 들려 있는 날이 많았는데, 계절과 상황에 따라 내용물은 달라졌습니다. 여름에는 하드가, 겨울에는 호빵이, 술 한잔 걸치신 날에는 누런 종이봉투에 통닭이 들어 있곤 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아빠 얼굴보다 아빠 손을 먼저 봤던 것 같군요.

골목길은 추억이었습니다. 인간다움과 정겨움이 녹아 있는 공간이었고, 집집마다 모양도 색깔도 제각각인 대문과 마당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습니다. 집들은 다닥다닥 붙어 있는 듯했지만, 적당한 거리가 있어 실내 소리가 웬만해선 밖으로 삐져나오지 않았고, 대문만 나서면 옆집, 뒷집 아줌마 아저씨, 삼촌과 이모들을 마주치면서 안부를 주고받던 기억도 납니다.

골목길이, 마을이, 오래된 건물이, 그곳에 묵혀 있는 스토리들이 로컬리즘의 옷을 입고 부활하고 있습니다. 소비하는 방식은 각자 다릅니다. 누군가는 신선한 미학으로, 누군가는 추억의 소환으로 소비합니다. 시간이 기억하는 공간 위에 현대적 해석을 살짝 덧입힌다는 점에서 새로운 복고를 뜻하는 뉴트로(New-tro)와도 통하는 지점이 있습니다.

이번 달 〈topclass〉에서 다룬 로컬리즘의 주역들은 대체로 후자입니다. 광주 사람들에게 ‘호랑가시나무’는 그 옛날 선교사들이 경건한 예배를 드린 공간으로 기억되고, 강릉 사람들에게 ‘버드나무 브루어리’는 누룩내가 솔솔 풍기던 강릉양주탁주의 추억을 소환하고, 사당동 동네 서점 ‘지금의 세상’은 소박하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나이테가 켜켜이 쌓인 공간의 이야기는 최첨단 도시 문명은 가질 수 없는 위대한 유산이지요. 모두가 도시로, 서울로, 빌딩숲으로 향할 때, 자기만의 호흡과 속도, 취향을 지키며 뚜벅뚜벅 걸어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두가 중심으로 향할 때 주변부를 향해 과감히 내딛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세상의 방향을 바꾸고 있습니다. 오래된 골목에서 도시의 미래를 읽습니다.⊙
  • 2019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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