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리즘

‘지금의 세상’ 김현정 대표

동네 사랑방이 된 사당동 서점

글 : 김가원 명예기자  / 사진 : 서경리 기자

고민을 털어놓을 누군가를 기다리는 작은 서점이 있다. 사당동에 위치한 ‘지금의 세상’.
이곳은 동네 사람들에게는 사랑방처럼, 멀리서 오는 이들에겐 안식처 같은 공간이 되어준다.
골목 사장님들의 이야기를 모아 《사당10번길》이라는 잡지도 내면서 이웃과 동네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있다.
2018년 3월 문을 연 ‘지금의 세상’은 다섯 개 테마 아래 25권의 책을 보유한 작은 서점이지만 개성 있는 큐레이션으로 주목받고 있다. ‘지금의 세상’은 서점지기 김현정 대표가 클라우스 슈밥의 《제4차 산업혁명》에 나온 단어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책을 도구 삼아 ‘지금’에 집중하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붙였습니다. 모임에 참여하거나, 차를 마시면서 쉬고, 저와 대화를 하는 등 여러 문을 만들어놨으니 이곳에 오셔서 ‘자기만의 지금’을 느꼈으면 해요.”


이곳의 책 분류 방식은 개성이 넘친다. 시·소설 등의 장르가 아닌, ‘행복에 대한 갈망’ ‘미래에 대한 두려움’ ‘지적 호기심’ ‘사랑에 대한 감정’ ‘마음의 편안함’이라는 다섯 개의 테마로 책을 분류한다. 분야는 다양하다. 행복에 관한 테마에 여행 에세이가, 마음에 관한 테마에 그림책이 놓여 있기도 한다. 서점 중앙 오각형 모양 책상 위에는 네 권의 책이 진열돼 있고, 서랍에는 ‘블라인드 북’ 한 권이 숨어 있다. 블라인드 북은 손님이 직접 추천 글을 쓴 중고 책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책 중에서 좋은 책을 발굴해 매력적으로 제안하는 게 동네 서점과 주인장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섯 가지 테마는 ‘나는 언제 책을 읽지?’ 고민하다 나왔어요.”


김현정 대표는 다양한 모임을 기획·진행하는 책 문화 콘텐츠 기획자이기도 하다. 그는 서점을 열 때부터 모임 위주의 공간을 꿈꿨다. 독서 모임만 열지는 않는다. 뮤지션들과 진행하는 ‘동네 공연장’, 인디레이블 슈가레코드와 함께하는 ‘책, 음악을 만나다’와 같이 음악을 접목한 모임도 있으며, 서점 근처 카페 분더킨트에서는 ‘영화 읽는 밤’을 열기도 한다. 참가자들이 영화를 보고 오면 김현정 대표가 그에 맞는 책을 선정해 함께 이야기해보는 자리다.

“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책의 매력과 재미를 알리고 싶었습니다. 책은 어떤 이야기나 상황과도 다 연결되거든요. 사람들이 쉽게 접하는 영화나 음악과 함께 책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었어요.”


책과 사람의 연결고리, 고민


김현정 대표는 서점을 열기 전 교육 관련 회사에서 근무했다. 교육 콘텐츠를 개발하고, 학교와 기업에서 강연도 했다. 2016년 서울 지사로 발령 받으며 서울에 오게 됐는데, 그때부터 고민이 물밀듯 밀려들었다.

“인생에서 가장 많이 흔들린 시기였어요. 교육이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인지 의문이 들었고, 서울이라는 도시가 저와 맞지 않는 것 같았죠. 또 사람들에게 한 방향으로 하는 이야기가 아닌, 대화를 하고 싶었어요.”

힘들 때 도움을 준 것이 바로 책이다. 그즈음 동네 서점의 매력에 빠진 그는 길을 가다 우연히 지하에 있는 서점을 발견한 후, 동네 서점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정말 힘들면 누구와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 오잖아요. 그럴 때일수록 책에 더 빠졌습니다. 책의 구절에서 생각의 방향을 틀거나, 책을 통해 생각하는 힘을 기르면서 단단해지는 느낌을 받았죠. 누구나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걸 절감했어요. 이런 부분을 책으로 전달하는 안내자 역할을 해주고 싶었죠.”

서점의 한쪽 벽은 손님들의 고민이 적힌 포스트잇으로 빼곡하다. 이 중 매주 하나의 고민이 선택돼 책과 연결된다. 예를 들면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는 고민에 책 《오래된 생각과의 대화》를 소개해주는 식이다. 선택된 고민은 김현정 대표의 코멘트와 함께 오각형 책상에서 만나볼 수 있다.


“고민은 생각의 시작이자 책과 만나는 접점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어?’하는 생각이 하나라도 들었다면 좋은 책이라고 보는데, 독자가 그 고민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누군가 써놓고 간 고민과 비슷한 고민을 하는 이들이 공감하며 다시 책과 연결될 수도 있죠.”

그 고민은 책과의 연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고민 대화 모임 ‘지금의 살롱’에서도 이어진다. 고민을 꺼내놓으니 뜻밖의 조언과 위로가 찾아오고, 사람들의 이야기도 켜켜이 쌓여간다. 이곳을 찾는 이들은 물론, 김현정 대표에게도 위로가 되는 자리다.

“강사 시절엔 고민을 해결해주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어요. 그런데 서점 주인을 하니까 저도 고민이 있고, 약하고, 힘들 때가 있다는 걸 보여도 괜찮아서 좋아요.”


동네 잡지 2호 《머물다, 사당》 발간 예정


지금의 세상은 점점 다양한 역할로 확장 중이다. 처음엔 서점을 어떻게 알릴까 고민했고, 이제는 어떤 재미있는 콘텐츠를 제공할지 고민하다 자연스럽게 동네를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왜 동네 서점들이 동네의 맛집이나 좋은 카페를 소개하는지 알게 됐어요.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면 좋을 텐데, 서점 하나만으로는 약하니까요. 서점에 왔다가 카페도 가보고, 빵집도 가보면서 동네를 찾는 이들이 많아지는 거죠.”

그래서인지 지금의 세상을 소개할 때 빠지지 않는 수식어가 ‘동네 서점’ ‘사당 서점’이다. 김현정 대표는 서점을 열면서 동네의 가치를 알게 됐다.


“서울에 와서 적응하기 바쁘고, 출퇴근 시간이 길다 보니 동네를 구경할 시간조차 없었어요. 서점을 열면서 동네에 애착이 생겼습니다. 여유가 생기고, 골목 사장님들과 친해지면서 동네가 좋아졌죠. 이제는 동네가 안정을 주는 공간이 됐어요.”

그러다 보니 동네가 가진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주변 가게들과 나누는 이야기는 혼자 알고 있기에 아까운 것들이었다. 그 이야기들이 모여 동네 잡지 《사당10번길》이 됐다.

“골목 사장님들은 이곳을 알리기 위해 변화를 주고 싶어 하셨어요. 같이 뭔가 해보자고 제안하셨고, ‘사당10번길’이라는 서점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제 블로그에 사장님들의 이야기를 적었는데, 여기에만 두기 아깝다는 생각에 회비를 걷어서 잡지를 발간했죠.”


9월 30일에는 ‘로컬 라이프 랩’ 지원 사업을 받은 동네 잡지 《머물다, 사당》이 발간된다. 《머물다, 사당》에는 지금의 세상 인근 상인들의 이야기 그리고 사당에서 즐길 수 있는 공간들의 지도가 실린다. 이번 동네 잡지는 무중력지대 소속의 동작구 무중력탐사대원들과 함께한다.

책보다 사람이 더 많이 머무는 공간, 지금의 세상은 어느새 동네 사랑방이 됐다.

“지금의 세상이 동네 사람들에게는 어린 시절 문방구 같은 공간이, 멀리서 찾아오는 이들에게는 힘들 때 생각나는 안식처가 됐으면 합니다. 앞으로는 보다 더 전문적으로 책에 대해 대화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사당의 문화에 더욱 집중해 사람 냄새 나는 공간을 만들고 싶습니다.”
  • 2019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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