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리즘

로컬숍 연구 잡지 브로드컬리 조퇴계 편집장

결국, 삶의 방식과 행복을 묻다

글 : 유슬기 기자  / 사진 : 서경리 기자

‘가깝고, 싸고, 양도 많이 주는 프랜차이즈 매장을 두고 구태여 로컬 베이커리를 찾을 이유는 도대체 뭔가?’라는 물음을 던지며 시작한 로컬숍 연구 잡지가 있다. 브로드컬리다. Broad와 Locally를 합친 이름에는 도발적인 질문과 달리 ‘로컬숍이 널리, 더 많이 알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1년간의 준비 과정 끝에 2016년 2월 창간한 브로드컬리의 조퇴계 편집장은 증권사 리서치센터에 근무하면서 기업을 분석하는 일을 했다. 창간을 준비하던 당시는 대형 프랜차이즈 베이커리와 동네 빵집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이를 두고 대기업 관점에서 노무 관계로 접근하는 분석도 있었고, 소형 빵집을 낸 자영업자를 응원하는 내용도 많았다. 브로드컬리는 그 중간에 서고 싶었다. 이런 현상이 ‘왜’ 일어나는지를 분석해봤다.

“자영업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는 것이나 대형 프랜차이즈와 동네 빵집을 흑백 논리로 가르는 접근은 지양하려 했어요. 손님으로서 우리는 이들이 만들어낸 결과만 보지만, 밖에서 보는 것과 안에서 보는 건 다르거든요. 이들이 하나의 숍을 완성하기까지의 과정과 실상을 담고 싶었죠.”

과정을 미화하지도, 불안을 과장하지도 않는 브로드컬리의 1호 잡지 《서울의 3년 이하 빵집들 : 왜 굳이 로컬 베이커리인가?》는 이렇게 탄생했다.


다른 사람 말고 내가 먹고 싶은 빵

“…빵을 만드는 사람이 거짓말을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게 된다. 유기농이라며 값비싸게 팔면서 일반 재료 쓰는 집이 많다. 섞어 쓰는 가게는 훨씬 많다. 마가린 쓰면서 천연 버터 쓴다고 거짓말하는 경우도 많고, 어제 빵 팔면서 당일 생산 빵이라고 뻥 치는 곳도 진짜 많다. 하지만 거짓말은 결국 들통 난다. 벌써 내가 다 알고 있지 않나.”(엄성훈 율베이커리 대표)

2012년 6월 서울 강동구 성내동에 ‘율베이커리’의 문을 연 엄성훈 대표는 “주방장이 시키는 빵이나, 사장님이 시키는 빵이 아닌 내가 먹고 싶은 빵을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그의 빵집은 손님을 끌기 위해 창을 넓게 내거나 냄새를 풍기지 않는다. 빵의 품질을 위해서다. 직접 구운 고구마로 만든 필링과 카망베르치즈를 넣은 찐이빵, 얇게 썬 바게트에 캐러멜을 입혀 오븐에 구워 낸 카라멜바게트 등 다른 빵집에는 없는 빵을 판다. 입맛이 맞으면 오라고 하지 않아도 이곳을 찾게 된다.

당시 한 달 매출 2000만 원에 그가 가져가는 수익은 300만 원 정도, 재료비가 매출의 45%를 차지했다. 하지만 그는 재료에 대한 고집을 버리지 않는다. 매출 대비 수익과 관계없이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먹고, 마시고 싶은 거 있으면 마시는’ 삶이면 괜찮다고 생각해서다. 그러니까 굳이 로컬 베이커리를 하는, 혹은 가는 이유는 단순하다. ‘가깝고 싸고 양도 많이 주는, 프랜차이즈 매장에는 없는’ ‘내가 먹고 싶은 빵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이후 브로드컬리 로컬숍 연구 잡지는 2호 《서울의 3년 이하 서점들 : 책 팔아서 먹고살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3호 《서울의 3년 이하 서점들 : 솔직히 책이 정말 팔릴 거라 생각했나?》, 4호 《제주의 3년 이하 이주민의 가게들 : 원했던 삶의 방식을 일궜는가?》, 5호 《서울의 3년 이하 퇴사자의 가게들 : 하고 싶은 일 해서 행복하냐 묻는다면?》으로 이어진다. 앞의 책의 질문은 뒤의 책의 질문을 더 입체적으로 만든다. 취재를 통해 얻은 답은 다음 호의 실마리가 되기도 한다. 이제 이들의 질문은 삶의 방식과 행복의 문제로 확장된다.

“각 호마다 주제를 정하고 답의 방향성이나 인지도와 상관없이 솔직한 답을 들려줄 수 있는 분들을 찾았죠. 제주도 편을 만들 때는 100군데 이상을 손님으로 다녀봤어요. 서너 번 방문 후 확신이 들면 명함을 드리고 섭외했죠.”

제주도 로컬숍에는 ‘도시의 반복되는 일상에서 탈출한 부러움의 대상’이라는 환상도 담겨 있다. 하지만 SNS에 편집돼 소개되는 이들의 아기자기한 환상의 이면에는 현실이라는 실상이 있을 터. 브로드컬리는 묻는다. 이곳에서 바라던 삶의 방식을 일궈내고 있는가?

“돌이켜보면 질문부터 잘못된 거란 생각이 든다. 도시의 직업, 도시의 주기, 도시의 경제를 기준으로 보면 도시를 벗어나면 못 살 거 같다. 제주도 사람들 역시 각자의 방식으로 땀 흘려 생활을 꾸려간다. 단지 도시의 관점에서 익숙하지 않은 삶의 방식일 뿐이다.”(김승희 북촌9길빵 대표)


30~40대가 자영업에 뛰어들면서


브로드컬리에도 제주의 이야기를 담은 4호는 뜻깊다. 그전까지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다. 2018년까지만 해도 책에 투입되는 비용이 더 컸고, 매체를 유지하기 위해 부업이 필요했다. 말 그대로 ‘벌이가 마땅치 않아 불행했던 시간’이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사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실감하는 시간이었다.

“네 번째 책을 마지막으로 내고, 다시 직장으로 돌아갈 계획도 있었습니다. 마무리하는 의미에서 새로운 시도를 해보자 했고, 책을 리뉴얼하면서 부수도 8000부로 확장했습니다.”

조퇴계 편집장은 SNS에 이런 글을 남긴다.

“2019년 7월 매출액이 1660만 원을 기록했습니다. 여느 출판사나 기업체와 비교해 많은 돈이기는 어렵겠습니다만, 2016년 창간호를 발표한 뒤 첫 번째 달 매출액이었던 26만 7000원을 놓고 보면 60배로 많은 책을 팔았습니다.”

독자들의 응원과 관심도 여기에 맞닿아 있다.

“독자와의 만남 시간에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책 팔아서 먹고살 수 있는가’예요. 전에는 ‘그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는데, 지금은 ‘그럴 수 있다’고 답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실제로 행복합니다.”

‘먹고살 수 있다’는 결론은 이상과 현실이 수평을 이루는 지점이자, 숱한 로컬숍이 문을 열고 닫는 분기점이다. 그 전까지 이들에게 필요한 건 ‘버티는 힘’이다.

“예전에도 동네 가게는 많았잖아요. 그런데 요즘 주목받는 이유는 30~40대의 젊은 세대가 자영업에 뛰어들고 있기 때문이에요. 이들이 이런 공간을 만든 건, 그걸 원해서이기도 하지만 그걸 원하게끔 내몰리는 상황도 있는 것 같아요. 은퇴 후 자영업을 시작했던 이전보다 조직에서 만족감이나 안정감을 얻기 어려운 구조이고요.”

5호 잡지인 《서울의 3년 이하 퇴사자의 가게들 : 하고 싶은 일 해서 행복하냐 묻는다면?》에는 평균 나이 36세, 로컬숍 오픈 2년 내외 퇴사자들의 생계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특별히 비싼 술 마시지 않았고, 값비싼 여행 다니지 않았으나, 통장은 늘 비어 있는 구조’ 안에서 이들은 각자도생, 고군분투한다. 브로드컬리의 연구에 따르면 로컬숍은 그렇게 낭만으로 가득 차 있지도, 그렇다고 불행으로 점철돼 있지도 않다. 이들이 연구한 바, 로컬리즘은 취향의 반영 너머, 시대의 반영이다.
  • 2019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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