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브랜드)

이방카 트럼프가 선택한 한국 디자이너 정고운

아, 그 옷!

글 : 이선주 객원기자  / 사진 : 김선아   / 사진제공 : 정고운 

올여름,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한국을 방문한 이방카 트럼프가 젊은 한국 디자이너의 옷을 입고 등장해 화제가 됐다.
모델 출신의 패션 리더로도 주목받는 이방카가 온라인 패션 쇼핑몰 파페치(farfetch)에서 직접 구입한 ‘고엔제이(GOEN.J)’ 원피스였다.
‘고엔제이’는 35세 디자이너 정고운 씨가 자신의 이름을 따서 만든 브랜드다. 원래는 ‘고운정(GOENJUNG)’이라고 이름 붙였지만, 외국인이 발음하기 어려워해 고엔제이로 바꿨다.

한국에서 고엔제이 의상은 서울 강남구 신사동 본사 매장과 신세계인터내셔날 쇼핑몰에서만 판매되기 때문에 잘 알려진 브랜드는 아니다. 해외 시장이 매출의 95%가량을 차지하다 보니 외국에서 더 유명하다. 수출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무역의 날 기념식에서 ‘수출의 탑’을 수상하기도 했다. 고엔제이는 현재 미국, 캐나다를 비롯해 영국, 이탈리아 등의 유럽권과 아시아 곳곳의 유명 백화점과 편집매장,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되고 있다.

정고운 대표가 고엔제이를 시작한 건 26세이던 2010년 말, 한 방송에 출연하면서부터다.

“2010년 봄에 케이블 채널 온스타일의 패션디자이너 서바이벌 프로그램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 시즌2〉에서 우승하고 상금 7000만 원을 받았어요. ‘다른 사람들도 내 취향을 좋아하는구나’라는 자신감을 얻었죠. 아직 어리지만 작은 규모라도 내 브랜드를 시작해보고 싶다는 결심이 섰어요.”


그는 서울시가 지원하는 서울패션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해 서바이벌 프로그램 상금으로 옷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성을 다해 만들어도 막상 팔 길이 없었다. 매장을 열 수 있는 형편도 아니고, 경력이 없어 백화점에 입점하기도 어려웠다. 또 백화점에 들어가더라도 높은 수수료 부담에 재고를 떠안아야 해서 ‘이런 유통 구조에서는 신진 디자이너가 자리 잡기 어렵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편집매장에 들어갔고, 입점 브랜드 중 ‘판매 1위’를 기록할 정도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얼마 후 해외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길도 열렸다.

“한국 시장을 조사하러 왔던 세계적인 패션 편집매장 ‘오프닝세레모니’ 바이어가 압구정동 매장에서 제 옷을 보고 사무실까지 찾아왔어요. 바로 구매하고 싶다고 했지만, 계절이 맞지 않았죠. 그런데 미국으로 돌아간 바이어가 ‘겨울에 여름옷을 팔아보겠다’라면서 주문했어요.”


팝스타 리한나, SKY캐슬 염정아…

© JTBC
그렇게 가져간 옷들은 금세 매진됐고, 주문이 이어졌다. 세계적인 팝스타 리한나가 그의 옷을 입은 모습이 파파라치의 카메라에 잡히면서 더욱 화제가 됐다. 2014년에는 이탈리아 ‘리카르도 그라시’ 쇼룸과 계약을 맺으면서 시장이 더 넓어졌다. 리카르도 그라시는 홍콩 패션잡지에 실린 그의 옷을 보고 연락해왔다. 이후 미국의 고급 백화점 체인인 버그도프굿맨과 바니스뉴욕, 세계적인 온라인 패션 쇼핑몰 네타포르테와 파페치 등으로도 판매가 이어졌다.

“해외 바이어들에게는 선주문을 받아서 팔기 때문에 재고 부담이 없어요. 1년에 네 번, 바이어들에게 새로운 옷을 보여주고 미리 주문 받아 제작합니다. 대신 1년씩 미리 디자인해야 하기 때문에 앞을 내다보는 남다른 감각이 필요하죠.”

그는 9월에 파리와 밀라노로 출장을 떠난다. 그곳에서 바이어들을 만나 2020년 여름 상품을 보여주고 주문을 받을 계획이다. 그래서 내년 여름 상품을 올여름까지 준비해야 했다.

© 뉴시스
그의 디자인은 상반되는 요소들이 만나 새로운 조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특징이다. 이방카가 한국을 찾았을 때 입었던 옷이나 염정아가 드라마 〈SKY캐슬〉에서 입었던 원피스에서도 그런 특징을 엿볼 수 있다. 벨트를 매는 코트 모양의 드레스는 단정하고, 소매에 달린 러플(물결 모양으로 잡은 주름)은 우아하면서도 섬세하고 독특한 느낌을 자아낸다. 그의 옷에서는 이런 건축적인 실루엣과 우아하고 섬세한 디테일이라는 상반된 요소가 조화를 이룬다.

“소재를 사용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딱딱한 코튼 트위드에 하늘하늘한 시폰을 붙인 소재를 활용해서 똑떨어지면서도 우아한 라인을 만들려고 하죠. 긴팔 티셔츠와 터틀넥 니트, 카디건과 러플 블라우스처럼 상반되는 소재의 옷을 합해서 한 벌이지만 두 벌 같은 효과를 내기도 합니다. 이질감에서 느껴지는 새로움과 재미가 있잖아요?”

세계 곳곳으로 넓게 퍼진 고객층의 요구는 어떻게 만족시킬까?

“모두를 만족시키겠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 않았어요. 유행을 따르기보다 나만의 개성을 표현하려는 분들이 우리 옷을 좋아합니다. SNS를 통해 고객의 직업, 주말에 하는 일 등을 파악하려고 해요. 고객을 구체적으로 상상하면서 디자인하는 게 도움이 되거든요. 다음 시즌에는 어떤 옷이 나올지 고객들이 설레면서 기다리는 브랜드로 만들어가고 싶어요.”


모두를 만족시키기보다 ‘나만의 개성’을 담는다


어렸을 때부터 옷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나만의 개성이 담긴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다. 미대에 진학한 후에도 꿈을 포기할 수 없어 패션학교인 에스모드서울로 옮겨 공부하고 다시 프랑스로 건너갔다.

“대학 1학년 여름방학 때 에스모드서울에서 여름 특강을 들었어요. 1학기 수업을 한 달 만에 마치는 과정이었는데, 하고 싶었던 공부라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2학기 때 대학으로 돌아가지 않고 그 학교에 편입해 란제리 디자인을 전공했죠. 프랑스에서는 아뜰리에 샤르동 사바를 다니다 스튜디오 베르소에 편입했습니다. 돌이켜보니 패션학교 세 군데를 거친 게 나만의 자산이 된 것 같아요. 에스모드서울에서는 테크닉을 익히면서 손바닥만 한 속옷에 섬세하게 디자인하는 법을 배웠고, 샤르동 사바에서는 온갖 실험을 해봤고, 스튜디오 베르소에서는 날카로운 지적을 받으면서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파리에서 시작할 생각이었지만,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다행히 한국에 있는 그를 외국 바이어가 먼저 알아봤고, 옷이 가진 경쟁력만으로 세계 시장을 뚫을 수 있었다. 그는 이제까지 한 번도 패션쇼를 하지 않았고, 홍보나 마케팅도 따로 한 적이 없다. 그에 쓸 비용을 모두 옷에 투자했다.

“보기에만 좋은 옷이 아니라 입었을 때 편안하고 촉감이 좋은 옷, 멈춰 있을 때뿐 아니라 움직일 때 라인도 예쁜 옷을 만들려고 합니다. 그래서 안감도 겉감만큼 비싼 원단을 쓰고, 고급 브랜드의 원단을 입수해서 쓰기도 하죠. 따로 홍보하지 않아도 그런 마음과 정성을 고객들이 알아주는 것 같아요. 고객층을 급격하게 늘리기보다 한번 입어본 고객은 다시 찾을 수밖에 없는 브랜드로 만들고 싶습니다.”
  • 2019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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