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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통 작가는, ‘아주 보통의 삶’을 응원한다

글 : 유슬기 기자  / 사진 : 서경리 기자

김보통 작가는 ‘성공 신화’의 탑에 벽돌을 보탤 생각이 없다.
스스로 걸어온 길도 성공 비책과는 거리가 멀다.
그저 가고 싶은 방향으로 천천히 걸었고, 걷다가 아니다 싶으면 돌아 나왔다.
그 걸음의 기록이 글이 되고 그림이 됐다.
“모두가 한 방향으로 뛰어가면 1등은 정해져 있지만, 각자가 360도로 뛰면 모두가 1등”이라고, 이어령 선생은 말했다. 김보통 작가는 서른두 살에 다 같이 한 방향으로 뛰던 대열에서 벗어나 다른 방향으로 가기 시작했다. 뛰지도 않고 걸었다. 때로는 쉬었다. 전력 질주를 하던 이들은 “너 그러다가 큰일 난다” “망할지도 모른다” “한번 도태되면 다신 재기 불가능하다”라며 겁을 줬다.

질주하는 이들의 모래바람이 지나가고, 그는 사방을 둘러봤다. 걷고 싶은 방향으로 한 걸음 내딛었다. 불행하지 않았다. 더구나, 망하지도 않았다. 2013년 암환자의 일상을 담은 웹툰 〈아만자〉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받았고, 이듬해 탈영병을 쫓는 헌병의 이야기를 그린 〈D.P 개의 날〉을 펴냈다. 2015년부터는 수필가로 전업해 매해 두 권 이상의 에세이집을 펴내고 있다. 그의 웹툰과 수필에는 경험담과 흑역사, 실패담 등이 빼곡하게 담겨 있는데 이 책들을 읽고 나면 ‘보통의 삶’이 가진 그 소소하고 다정한 찌질함에 쿡쿡 웃게 된다. 눈부신 성공기를 담은 뉴스는 우리를 채찍질하지만, 다정한 실패담은 채찍이 할퀸 자리에 연고를 발라준다. 땀도 식고 호흡도 한결 편안해진다. 그리고 생각한다.

‘가만, 내가 왜 뛰고 있었지?’


이름난 대학, 번듯한 기업에 입사했지만

청계천 고가가 만들어지면서 철거민들이 이주해 살던 동네가 있었다. 작가는 그곳에서 자랐다. 그의 부모는 빈자의 삶을 벗어나기 위해 늘 신중하고 성실했지만 가난의 굴레는 쉬이 벗겨지지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작가의 아버지는 말했다.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직장에 들어가야 사람답게 살 수 있다”고. 아버지의 말은 주문처럼 그를 따라다녔다.

어린 그는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적이 없지만 그림을 곧잘 그렸고, 대회에서 상도 탔다. 하지만 ‘그림 그리며 사는 일’은 그의 선택지에 없었다. 아버지의 원대로 이름난 대학에 입학하고, 번듯한 기업에 입사했다. 신입사원 연수부터 기업에서는 ‘조직이 얼마나 위대하며 특별한지’를 가르쳤다. 그 스스로는 ‘나는 그저 국숫집 아들일 뿐인데’라는 생각이 들어 메일 아이디를 ‘Kimbotong’으로 만들었다.

기업이 바라는 인재상과 자신이 어긋나 있다는 건 진즉 알았다. 비인격적인 대우와 폭언, 부조리한 관행이 일상이었다. 쉴 새 없이 이어지는 회식과 폭음으로 기본적인 체력과 정신력도 유지하기 힘들었다. 아버지의 병환은 깊어져 가는데, 곁을 지킬 수도 없었다. 어두운 표정으로 술자리에 앉아 있으면 “공사 구분 못 한다”며 욕을 먹었다. 결국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고, 그는 회사를 나왔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기 위해 아등바등했던 아버지와 그의 인생에 한 단락이 막을 내렸다.

“회사는 10년 후의 내 모습, 20년 후의 내 모습을 상상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곳이었어요. 거대한 스포일러를 당한 셈인데, 제가 원하는 결말이 아니더라고요.”

그 무렵 그는 지독한 우울과 자살 충동을 겪고 있었다. 사직서를 내고 나오는데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 수 있다면, 할 수 있는 것도 많았다.

“지금의 삶은 영화로 보자면 소동극 같아요. 굳이 장르를 따지자면 코미디에 가깝고요. 만화도 그리고 수필도 쓰고, 사무실도 운영하고 다양한 일을 하고 있지만 퇴사하고 나서는 실패의 연속이었어요. 작은 도서관을 열어보려고 했는데 잘 안 됐고, 로스쿨을 가볼까 했지만 그것도 쉽지 않았죠. DJ가 되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았고요.”


브라우니를 굽듯


퇴직금은 점점 줄어가고 식빵 한 줄로 매일을 연명하던 시기, 그는 뜻밖에 브라우니를 굽기 시작했다. 도서관을 만들기 위해 모아둔 책 중 《빈곤에 맞서다》를 보다가 “식생활의 질을 낮추며 스스로의 존엄을 포기하는 것이 빈곤의 시작점”이라는 부분을 읽고 나서다. 실제로 지금 우리가 먹는 브라우니는 실패에서 탄생했다. 미국 메인주 뱅거 지역에 사는 여인이 실수로 베이킹파우더를 빼먹어 부풀지 않은 초콜릿케이크를 만든 게 최초의 브라우니였다. 그는 곰팡이 핀 식빵을 버리고 달콤하고 따뜻한 브라우니를 만들어 먹었다. 마음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가진 것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만들 수 있는 것을 만들자. 브라우니를 만들듯 살아가기로 했다. 걱정하지 말자. 불안하고 두려울 때도 오겠지만 이제 내겐 브라우니가 있다.”
- 김보통,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 中


거창한 목표를 세우지도, 근사한 의미를 부여하지도 않고 일단 해보는 삶이었다. 할 수 없는 것은 인정하고, 하기 싫은 것은 피하면서 브라우니를 굽듯이 천천히 즐거운 마음으로 살았다. 그러다 보니 문득 그림을 그릴 마음이 생겼다. 거의 17년 만이었다.

“만화가가 되겠다는 마음은 없었어요. SNS에 제가 그린 그림과 짧은 글을 올리는 게 일상이었어요.”


나는 별일 없이 산다

당시 그의 삶은 ‘브라우니를 굽고, 그림을 그렸다’로 요약된다. 그의 그림에는 보통 사람들이 등장한다. 트위터를 통해 알게 된 무명인들의 그림이 500장쯤 쌓였을 때, 웹툰 《송곳》을 그린 만화가 최규석에게서 쪽지가 왔다. “만화를 한번 그려보지 않겠느냐”는 짧은 제안이었다.

“문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아 점유율이 거의 없는 플랫폼이었어요. 저는 그림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만화를 그린 경력도 없었죠. 만화가를 꿈꾸지도 않았고요.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어요. 그 우연이 저를 만화가로 만들었고요.”

세상일은 내 의도와 별개로 돌아간다는 걸 그때 배웠다. 혹자는 그림에 대한 거창한 꿈이 있어서, 웹툰 작가가 되고자 대기업을 그만둔 것 아니냐고 묻지만 전혀 아니다. 지금도 그는 “어떻게 하면 만화가 혹은 작가가 될 수 있느냐”는 비장한 질문을 종종 받는다. 그때마다 그의 대답은 한결같다.

“저는 운이 좋아 우연히 만화가가 됐습니다. 거기에 비결이나 비밀은 없어요. 다만 무언가를 하고 거기에서 이런저런 경험과 실패를 하다 보면 그 실패의 역사들이 작품에 좋은 재료가 되겠죠. 작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다 실패하는 과정조차 좋은 소재가 돼요.”

이런 대답을 하면 대부분은 실망한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김보통 작가는 ‘성공 신화’의 탑에 벽돌을 보탤 생각이 없다. 스스로 걸어온 길도 성공 비책과는 거리가 멀다. 그저 가고 싶은 방향으로 천천히 걸었고, 걷다가 아니다 싶으면 돌아 나왔다. 그 걸음의 기록이 글이 되고 그림이 됐다.

“제가 만화를 시작했을 때, ‘이런 그림으로 얼마나 가는지 보자’ ‘절대 책을 내진 못 할 거다’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었어요. ‘그래? 정말 그런가 보자’라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해온 것 같아요. 정말 좋은 복수는 화를 내고 분노하는 게 아니라 보여주는 거잖아요. 그런 소소한 복수심이 동기 부여가 됐죠.(웃음)”

그의 첫 작품 〈아만자〉는 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영전에 바치는 그의 길고 긴 편지다. 격무로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는데, 평생 성실하게 살아온 아버지가 남긴 말은 뜻밖에 “행복하라”는 한마디였다. 그가 보통의 삶을 응원하는 이유도 같다.

“남들이 행복하다고 하는 길이라도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낀다면, 행복해지는 길을 찾으세요.”

그래도 된다. 그래도 별일 없이 산다. 360도에 각기 다른 길이 있다. 김보통 작가의 이름은 그 길에서 행복을 찾은 자가 건네는 따스한 브라우니 한 조각이다.
  • 2019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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