必환경하다

송경호 ‘더 피커’ 대표

‘제로 웨이스트’ 꿈꾸는 친환경 숍

글 : 유슬기 기자  / 사진 : 조선DB, 더 피커 

2017년 12월 31일, 중국은 폐자원 24종의 수입을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폐플라스틱과 분류하지 않은 폐지, 폐금속 등 고체 폐기물을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이다. 재활용품의 출구가 사라진 셈, 이는 ‘재활용 쓰레기 대란’의 시작이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분리수거의 기준이 더욱 엄격해졌다. 아파트 각 동마다 플라스틱 용기에 음식물의 흔적을 말끔히 지우고, 병과 통에 붙어 있던 라벨은 깨끗이 제거하자는 캠페인이 일어났다. 하지만 이는 미봉책이다. 여전히 분리수거장에는 매일 각 집에서 쏟아져 나온 종이와 플라스틱, 캔, 유리병 등이 가득하다.
송경호·홍지선 부부는 ‘더 피커’의 공동 대표다.
Recycling 이전에 Precycling

‘폐기물을 어떻게 처리할까’를 고민하는 게 Recycling의 문제라면, ‘폐기물을 만들지 않는 것’이 Precycling의 개념이다. ‘미리 조금 수고해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것’이다. 병을 어떻게 치료할까를 고민하지 않고, 병 자체를 만들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Precycling 마켓’은 2014년 독일에서 먼저 시작돼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베를린의 슈퍼마켓 ‘오리기날 운페어팍트(original Unverpackt)’에는 채소나 과일을 담는 비닐이 없다. 고객은 자신의 용기에 원하는 만큼 제품을 담아 간다. 현재는 덴마크,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에 이어 미국 뉴욕에서도 포장재 없는 가게가 문을 열고 있다.


“마트에서 장을 보고 나면, 포장재와 소포장재가 수북하게 쌓이죠. 친환경 제품을 살 때도 그것을 포장하는 제품은 친환경이 아니라는 게 아이러니했어요.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건 정말 불가능한 일인가, 고민을 하게 됐죠.”

송경호 더 피커 대표는 이전부터 친환경에 관심이 많았다. ‘친환경을 어떻게 구체화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으로 수렴됐다. 아시아에서는 아직 자리 잡지 못한 ‘Precycling’을 한국의 마을 공동체에 맞게 적용해보고싶은 마음도 있었다. 서울숲 옆 성수동에 문을 연 ‘더 피커(The Picker)’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먼저는 농작물을 수확한 이들을 가리키는 말이고, 또 하나는 그 수확물 중 필요한 것을 담아 가는 사람을 뜻한다.


송 대표는 지방 각지의 생산자들을 찾아다녔다. 농가에서부터 유통 과정이 시작되다 보니 대용량 벌크 포장과 소분 포장이 일상화되어 있었다. 소분 포장을 하지 않는 농가를 찾으려 발품을 팔았다.

더 피커 한쪽에는 현미, 퀴노아, 서리태 등 곡물과 채소를 파는 숍이, 다른 한쪽에는 여기서 제공하는 식자재를 이용해 음식을 파는 레스토랑이 있다. 이를 합쳐 ‘그로서란트(Grocerant)’라 부르는데, ‘식재료(Grocery)’와 ‘음식점(Restaurant)’을 붙인 말이다.


“모양이 예쁘지 않거나 흠이 많아서 판매하지 못하는 식재료를 활용해 샌드위치나 햄버거, 요거트볼 등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들이 파는 샌드위치와 햄버거는 채식 요리다. 콩패티와 두유마요네즈를 이용한 햄버거와 채소를 듬뿍 넣은 샌드위치는 인기 메뉴다. 플레이팅에도 같은 마음을 담는다. 빨대는 씻어서 재사용할 수 있는 스테인리스 빨대를 사용하고, 그릇은 야자수 잎으로 만들어 생분해가 가능한 친환경 용기를 이용한다.


한 달간 쓰레기, 10L 봉투 딱 하나!


‘재활용 대란’ 이후 더 피커를 찾는 고객은 20% 정도 늘었다. 쓰레기의 역습을 피부로 느낀 이들은 지속 가능한 실천 방식을 찾아가는 중이다. 담아 갈 용기를 미처 챙겨 오지 못한 이들은 더 피커에서 판매 중인 자연 분해 용기를 사용하면 된다. 더 피커에서 발생하는 쓰레기의 양은 한 달에 10L 종량제봉투 하나 정도다. 고객이 두고 간 쓰레기, 가게 앞에 쌓인 낙엽 등을 치울 때 쓴다. ‘제로 웨이스트’가 그저 구호가 아닌, 실제가 될 수 있다는 걸 이들은 삶으로 증명하고 있다.

“우리 관심은 지속 가능성이에요. 위기의식을 느끼게 해서 친환경을 강제하기보다는 삶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만들던 쓰레기를 관찰해서 줄여 나가는 방향으로 습관을 바꾸는 거죠. 작물도 포장 공정을 최소화해서 자연 그대로의 상태를 유지하고, 고객들은 딱 필요한 만큼만 저울에 재서 가져가다 보면 ‘버리지 않는 삶’이 그렇게 어렵지 않다는 걸 알게 될 겁니다. 규격화된 사이즈가 아니라, 자신에게 딱 필요한 만큼만 사용하는 거죠.”


규격화된 사회에서는 ‘각자에게 맞는 양’으로 소비하기도 쉽지 않다. 다 쓰지 못할 걸 알면서도 싼 맛에 벌크로 포장된 제품을 사다 쟁여두기도 한다. 2015년 유럽플라스틱제조자협회의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1인당 연간 플라스틱 사용량은 61.97kg, 미국은 48.78kg, 중국은 24.09kg을 기록했다. 한국이 세계 최대 플라스틱 소비국인 셈이다. 음식물 쓰레기는 또 어떤가. 음식물과 쓰레기라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의 조합으로 매일 숱한 폐기물이 쏟아져 나온다. 지구는 이미 쓰레기로 포화 상태, 바다 동물들의 호흡기와 소화기에도 인간이 버린 쓰레기가 쌓이고 있다.

“쓰레기를 치우는 것도 불편하고 수고스러운 일이잖아요. 같은 수고라면 미리 만들지 않는 쪽으로 해보면 어떨까요? 굳이 다음 세대에 안 좋은 환경을 물려주는 행동을 계속할 이유는 없는 것 같아요.”

마을 공동체와 더욱 긴밀히 협력하는 방안을 고민 중인 더 피커는 곧 뚝섬에 새로운 매장을 열 계획이다.

  • 2019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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