必환경하다

veganism

예쁜데 착한 ‘비거니즘 소비’

철학자 레비나스는 말했다.

“참으로 사람다운 삶은, 그냥 존재하는 데 만족하는 삶이 아니라 타자에 눈뜨고 거듭 깨어나는 삶이다.”

환경단체 시셰퍼드(Sea Shepherd)에서 활동하는 활동가 김한민이 쓴 책 《아무튼, 비건》을 보면 고기 먹기를 거부하는 어린이가 나온다. 어린이는 그 고기가 동화책 혹은 농장에서 본 동물이라는 걸 알고 “어떻게 친구를 먹을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우리는 쉽게 무시 또는 배제하는 말로 동물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짐승만도 못한’ ‘돼지 같은’ 등이 그렇다. 이는 동물을 타자화했기에 가능한 말이다. 만약 이들을 배려하고 친절하게 대하는 ‘더불어 사는’ 삶이 보편화된다면 ‘비거니즘(veganism) 소비’도 유난한 말이 아닐 것이다. ‘비거니즘 소비’란 동물을 착취한 제품의 소비를 거부하는 운동이다. 식생활에서는 엄격하게 고기는 물론 치즈나 우유 같은 유제품, 달걀이나 생선을 먹지 않고 가죽이나 모피, 양모, 악어가죽, 상아 등이 사용된 제품도 사지 않는다. 꿀처럼 곤충을 이용해 얻은 제품은 되도록 피하고, 돌고래 쇼 같은 부자연스러운 즐거움도 거부한다.



록시땅, 러쉬, 어퓨, 베이직…
동물 실험 하지 않는 화장품


지난해 5월 미국 하와이주 의회는 해양 생물 보호를 위해 특정 성분이 포함된 유기 자외선 차단제 금지법을 통과시켰다. 이 화학 성분의 잔존 물질이 해양 식물인 산호초와 해양 동물의 몸 안에 축적되기 때문이다. 인간을 이롭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화장품이 생태계에 해로운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자각이다.

특히 화장품은 제조 단계에서부터 인체 안전성 여부를 검사하기 위해 동물 실험을 한다. 눈 화장 제품의 경우 주로 토끼를 대상으로 하는데, ‘드레이즈 테스트(Draize Test)’는 토끼 눈에 제품의 기초 성분이 되는 화학 약품을 계속 주입해 어떤 반응을 일으키는지 보는 실험이다. SNS에 이런 모습이 공개, 확산되면서 ‘비건 화장품’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 비건 화장품은 이러한 동물 실험을 반대할뿐더러 화장품 원료로 달팽이 점액, 꿀, 콜라겐 같은 동물성 원료를 사용하는 것도 반대한다.

한국비건인증원에서는 인증 기준에 따라 ‘비건인증마크’를 부여하는데, 기준은 다음과 같다. ▲ 동물 성분을 일체 사용하지 않는다. ▲ 제품 생산 시 어떠한 교차 오염도 발생시키지 않는다. ▲ 유전자변형(GMO) 성분을 사용하지 않는다. ▲ 원료를 얻는 과정이나 제품 생산 과정에서 동물 실험을 일절 하지 않는다. 이른바 ‘크루얼티 프리(cruelty free)’ 제품이다. 공정무역으로 확보한 식물성 원료만 사용하는 록시땅, 동물 실험 반대 캠페인을 꾸준히 진행 중인 러쉬 등이 대표적이다.

국내에서도 비건 화장품이 속속 출시되고 있다. 에이블씨엔씨 ‘어퓨’는 올 3월 100% 비건 화장품 ‘맑은 솔싹 라인’을 출시했다. 2년여의 준비 기간을 거쳐 100% 비건 제품 인증을 획득했다. 커피콩을 주원료로 만든 화장품으로 해외에서 먼저 주목받은 국내 브랜드 ‘베이직’도 ‘착한 소비’를 추구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지지를 얻고 있다. 2013년 ‘환경 경영 생명 존중 선언문’을 선포해 동물 유래 원료뿐 아니라 멸종 위기 식물에서 유래한 원료도 사용하지 않는 아로마티카는 샴푸, 컨디셔너, 보디샤워 등에서 강점을 보이는 비건 뷰티 브랜드다.



구찌, 지미추, 톰포드, 비건타이거…
남의 것 빼앗지 않는 옷


세계 4대 패션쇼 가운데 하나인 런던패션위크는 2018년 9월 패션쇼부터 모피로 만든 옷을 금지했다. ‘비건 패션’은 가죽, 모피, 울 등 동물성 소재를 사용하지 않는 의류를 말한다. ‘인간을 위해 다른 생명이 고통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생명 감수성을 지닌 옷이다. 퍼 의류의 경우 살아 있는 동물의 털을 뽑거나 산 채로 가죽을 벗겨내는 행위 자체에 가혹함이 있다. 해외 유명 패션 브랜드도 모피로 만든 의류 라인을 없애고, ‘퍼 프리(fur free)’를 선언하고 있다. 구찌, 지미추, 톰포드 등은 2016년부터 모피 사용을 중단했고, 휴고보스는 동물 가죽 대신 파인애플 껍질로 만든 신발을 선보이기도 했다.

지난 5월 미국 뉴욕주 의회는 ‘모피 판매 금지법’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모피 제품의 판매, 이를 위한 전시, 생산, 교환, 증여 및 기부를 전면 금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뉴욕주에서는 모피류 판매가 전면 중단된다.

세계 패션의 중심인 뉴욕에서 모피가 사라지게 되자 대체 소재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비건 패션을 콘셉트로 하는 신생 브랜드들이 생겨나는가 하면 기존 브랜드들도 비건 패션을 표방하는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동물의 털과 비슷한 보온성과 내구성을 갖춘 소재인 텐셀 등 천연 소재와 인조 가죽, 합성 섬유 충전재 등이 대체 소재로 부각된다.

지난 6월 열린 ‘2019 콘텐츠산업포럼’에서도 ‘지속 가능한 패션’이 화두였다. 한국에서 비건 패션 브랜드를 운영하는 양윤아 비건타이거 대표는 본래 동물 보호 활동가였다. 그는 패션계에 만연한 동물 학대 문제에 직면해 창업을 결심하게 됐다. 양 대표는 “겨울옷 중 동물성 소재가 사용되지 않은 게 거의 없고, 만약 있더라도 마음에 드는 디자인이 없었다”며 “동물성 소재를 사용하지 않고 누구든지 입고 싶을 만큼 예쁘고 멋진 옷을 직접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브랜드를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비건타이거에서는 모피, 가죽, 울, 실크, 동물의 뿔을 이용한 단추를 사용하지 않는다. 유통 과정에서도 포장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생분해되는 ‘에코 패키지’를 사용한다.



국내 채식 인구 100만, 10년 만에 열 배 증가
점점 성장하는 비거노믹스 식품


제레미 리프킨의 《육식의 종말》이 발간된 건 2002년이다. 당시만 해도 “육식이 미래의 지구와 인류의 행복에 위협이 된다”는 그의 경고는 ‘급진적’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제 채식주의는 소수의 취향이 아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2019년은 비건의 해”라고 말했고,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채식은 일시적 유행이 아닌 우리의 미래”라고 선언했다.

실제로 세계 채식 시장은 2017년 10억 5000만 달러(약 1조 2300억 원)에서 2025년 16억 3000만 달러(약 1조 9000억 원)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채식연합에 따르면 2019년 국내 채식 인구는 100만~150만 명으로 2008년 15만 명에서 열 배가량 증가했다. 전체 인구의 2~3% 수준이다. 채식 전문 식당은 2010년 150여 곳에서 2018년 350여 곳으로 늘었다. 비건 식품도 점점 보편화되고 있다. 채식 전문 식당뿐 아니라 편의점과 마트에서도 속속 출시돼 인기를 얻고 있다.

편의점에서는 샐러드 제품을 확장하는 추세다. CU는 3~5종이던 샐러드 제품을 17종으로 늘렸고, GS25도 11종의 샐러드를 내놓았다. 이 제품의 매출 증가율은 98~154%를 기록했다. 이마트는 채식주의자를 위한 아이스크림으로 ‘스웨디시 글레이스’를 수입해 판매하고 있다. 스웨디시 글레이스에는 유당과 글루텐 대신 콩으로 만든 크림이 포함돼 있다. 오뚜기는 달걀노른자를 사용하지 않고 콩으로 맛을 낸 ‘담백한 소이마요’를 출시했고, 샘표는 한국 전통의 콩 발효 기술로 만든 100% 순식물성 에센스 ‘연두’를 만들었다.

온라인 푸드마켓인 헬로네이처는 새벽 배송업계 최초로 ‘비건존’을 오픈하고 신선 식품과 간편식은 물론 베이커리, 양념, 음료 등 약 200개의 상품을 판매한다. 연잎밥, 채식라면, 채식만두, 비건김치 등이 대표 상품이다. 지난 7월 열린 ‘2019 비건페스타’에 참여한 최정윤 샘표 우리맛연구팀장은 “한국은 세계 채소 섭취율 1위를 기록하는 나라”라며 “오일이나 버터로 만드는 서양의 채소 요리보다 발효된 장을 이용하는 한국의 채식 요리가 더욱 발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 2019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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