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미니멀리즘

7개 키워드로 읽는 디지털 미니멀리즘

꼭 필요한 최소한만 남겨두고 번잡한 것은 정리하는 삶의 철학 ‘미니멀리즘’이 디지털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디지털 미니멀리즘의 핵심은 ‘편리’라는 명목으로 ‘시간’을 저당잡히지 않는 것이다. 모든 것이 연결되는 네트워크 시대로의 문명사적 대전환이 이뤄지는 세상에서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지 않을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통제다. 끌려다니느냐, 이끄느냐의 문제. 매혹적인 기기가 넘쳐나는 시대, 스스로 주도권을 갖지 않으면 어느새 디지털의 노예가 되고 만다.
© 셔터스톡
칼 뉴포트 교수가 최근 펴낸 《디지털 미니멀리즘》은 전 세계에 불고 있는 디지털 디톡스 열풍을 한눈에 보여준다. MIT에서 컴퓨터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조지타운대 컴퓨터공학과 부교수로 있는 등 디지털 최첨단에 자리한 그가 이런 책을 냈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는 1600명을 대상으로 ‘디지털 정돈작업’을 실험한 후 이 책을 썼다. 디지털의 효능만큼 부작용도 꿰뚫고 있는 그가 내놓은 삶의 방식 ‘디지털 미니멀리즘’은 그래서 신빙성이 있다. 그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떤 도구를, 어떤 이유로, 어떤 조건에서 활용할지 확신을 가지고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반동(反動)이 아니라 상식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내가 숲으로 들어간 이유는 나의 의지대로 살기 위해서, 오직 삶의 근본적인 실제만을 접하고 거기서 교훈을 얻을 수 있을지 알아보며, 죽을 때 인생을 제대로 살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지 않기 위해서다.”

산업시대에 등장한 초월주의학자 소로의 성찰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내가 숲으로 들어간 이유는’ 대신 ‘내가 디지털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는 이유는’으로 바꿔 읽어도 기막히게 맥락이 통한다. 세상이 아무리 고도화돼도 삶의 본질은 같다. 산업시대의 도시화된 기계문명이 삶의 본질을 흐렸듯, 네트워크 세상의 디지털 기기가 삶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


노모포비아


영국 캠브리지 사전은 2018년 단어로 ‘노모포비아(nomophobia)’를 선정했다. ‘노모포비아’는 ‘no mobile phone phobia’의 줄임말로, 휴대폰을 사용할 수 없을 때 느끼는 공포감과 불안, 초조를 뜻한다. 간단히 말해 스마트폰 분리불안이다. 스마트폰 없이 단 몇 초의 공백도 참지 못하는 ‘초미세 지루함(micro-boredom)’이라는 용어도 등장했다. 또 메시지를 보낸 후 바로바로 반응이 없으면 몇 분을 참지 못하고 전화로 보채 확인하는 ‘퀵백세대(Quick-back)’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영상과 라디오를 실시간으로 내보내고 실시간 댓글 반응에 익숙한 이들에게 몇 분의 공백은 불안과 초조를 유발한다. ‘왜 답이 없지?’ ‘무슨 일이 있나?’ ‘내가 말실수라도 한 걸까?’ 전전긍긍하며 도통 다른 일을 하지 못한다.

지난해 엠브레인의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2.2%가 ‘우리 사회에서 디지털 기기 의존도가 심각하다’고 답했다. 한국인터넷진흥원 조사에서는 스마트폰 이용자의 77.4%가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스마트폰을 자주 확인한다’고 답했고, ‘스마트폰이 없으면 불안하다’는 응답도 35.8%에 달했다.


VDT 증후군

VDT 증후군은 ‘Visual Display Terminal Syndrome’의 준말로, 컴퓨터 단말기 증후군을 뜻한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모니터 같은 영상기기를 오랫동안 사용해서 생기는 눈의 피로나 안구건조증, 나쁜 자세로 인한 거북목 증후군은 물론 주의력결핍장애, 불안과 우울증 등 정신장애까지 통칭한다. 미국 피츠버그 의대가 조사한 SNS 이용 시간과 우울증의 상관관계를 보면, 상위 25%가 하위 25% 이용자보다 우울증 발병 위험이 1.7~2.7배나 높게 나타났다. 한국정보화진흥원(NIA)이 발간한 ‘2018 스마트폰 과의존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스마트폰 이용자 중 19.1%가 과의존 위험 상태였다. 이 수치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같이 있어도 대면 대화 대신 SNS 대화가 편하다면 스마트폰 과의존을 의심해봐야 한다.


잡동사니와 피로 사회

칼 뉴포트 교수는 《디지털 미니멀리즘》에서 디지털 시대와 삶을 주제로 한 대화에서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바로 ‘피로’라고 분석했다. 네트워크 공간에서는 굳이 안 봐도 되는 ‘잡동사니’가 끊임없이 시선을 끌어당기고 기분을 조정한다. 디지털 라이프에서는 반사적·충동적 행동들이 넘쳐난다. 온라인 도구는 사람들을 중독시키는 방법을 기막히게 알고 있다. 나도 모르게 굳이 안 봐도 되는 콘텐츠를 클릭하게 하고, 이 잡동사니 콘텐츠들이 뇌에 들어차면서 피로를 유발한다.

2017년 미국에서 출시된 ‘라이트폰(Lightphone)’의 엄청난 인기는 잡동사니가 유발한 피로 사회의 단면을 반영한다. 라이트폰은 전화 기능만 탑재한 극도로 단순한 휴대폰이다. 작은 테크 스타트업이 출시한 이 폰의 슬로건은 ‘당신의 시간은 그들의 돈입니다(Your time=Their money)’였다. 펀딩을 거쳐 지난해 출시된 라이트폰 2의 슬로건은 ‘go light’. 알람과 음악 감상, 녹음 등 몇 가지 기능을 추가했다. 스마트폰 출시 직전인 10년 전 기능으로 돌아간 것. 모든 진화가 바람직한 건 아니다. 어떤 진화는 필요 없을 수도 있다.


新러다이트(New Luddite)

‘러다이트(Luddite)’ 운동은 19세기 초 영국의 산업혁명 과정에서 발생한 운동으로 기계화·자동화에 반대하는 캠페인이다. 기계문명이 발달하면서 자동화가 이뤄질수록 인간의 일자리도 줄어들 것이라는 인식에서 태동했다. 디지털 혁명에 반대하는 움직임인 ‘新러다이트(New Luddite)’ 운동 역시 기술 과부하에 대한 반감에서 비롯됐다. 기술의 발전이 반드시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인식이 200년이 지난 현재 재현되고 있는 것. 문명의 진화를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종교도 있다. 야미시교는 18세기 이후 도입된 기기와 도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은 ‘공동체의 행복’이다.

디지털 기술의 변방은 물론, 디지털 기술의 한가운데에서도 디지털의 해악을 고백하는 ‘내부 고발자’들이 하나 둘 느는 현상도 눈에 띈다. 구글 엔지니어 출신이자 스타트업 창업자 트리스탄 해리스는 “스마트폰은 일종의 슬롯머신이다”라고 표현했다. 빌마허라는 방송인은 스마트폰의 해악을 주제로 한 토론 프로그램을 이끌면서 소셜 미디어 재벌들을 ‘티셔츠 차림의 담배 장사꾼’에 비유했다. ‘좋아요’가 얼마나 되는가를 확인하는 일이 ‘새로운 흡연’과 같다는 얘기다.


디지털 디톡스


디지털 문명을 ‘독소(toxin)’로까지 규정했다. 독을 뺀다는 뜻의 ‘디톡스’가 ‘디지털’과 결합돼 광범위하게 통용되고 있다. 스마트폰 과다 사용으로 인해 생긴 몸과 마음의 독을 빼기 위해 전자 기기 사용을 중단하고 명상과 독서 등을 통해 정신의 건강을 회복하자는 원리다. 단식으로 몸에 축적된 노폐물과 독소를 해독하듯, 스마트폰 사용을 멈춤으로써 정신에 누적된 독소를 해독한다는 것. 디지털 웰빙, 디지털 다이어트, 디지털 금식 등도 유사한 실천이다.

스마트폰 과다 사용이 우울증과 불안 등 정신 건강에 위험을 초래한다는 연구는 차고 넘친다. 1995년부터 2012년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스마트폰 사용이 자연스러운 세대라는 면에서 ‘아이세대(iGen)’로 불리는데, 이들 세대의 우울증과 자살, 불안장애가 급증하고 있다.


로그아웃-디지털 프리 캠페인

전 세계 곳곳에서 디지털 과다 사용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캠페인이 일고 있다. 미국의 비영리단체 ‘리부트(Reboot)’는 24시간 동안 컴퓨터와 휴대전화를 쓰지 않는 ‘언플러그드의 날’을 따르겠다는 서약서를 받고 있다. 1년에 딱 한 번, 3월 중 하루라도 오프라인 삶을 살아보자는 제안이다. 캐나다 문화운동그룹 ‘애드버스터(Adbuster)’는 개인이 설정한 시간 동안 스마트폰을 쓰지 못하게 하는 디지털 디톡스 앱을 만들어 보급했다. 그런가 하면 영국의 한 대학에서는 학생들의 디지털 중독을 고치기 위해 학내 모든 SNS를 차단하는 극단적 조치를 취했다. 캐나다와 미국, 노르웨이 등에서는 일체의 디지털 기기를 내려놓고 자연 속에서 온전히 자기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갖는 ‘디지털 디톡스 캠프’가 유행하고 있다. 한 달간 모든 소셜 미디어 사용을 금지하는 ‘드라이파이(Dry-fi)’ 캠페인도 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보급한 IT 기업이 나서서 스마트 웰빙을 유도하는 프로그램을 보급하기도 한다. 병 주고 약 주는 식이다. 애플은 사용자가 앱별로 사용 시간을 정할 수 있는 OS, 유튜브는 동영상 시청 시간을 15분에서 최대 세 시간마다 중단할 수 있는 ‘휴식알림기능’을 추가했다.


레스모어(Less more), 적을수록 좋다

칼 뉴포트 교수가 말하는 ‘디지털 미니멀리즘’은 디지털 도구와 맺은 관계에서는 더 적은 것이 더 나을 수 있다는 믿음에 근거한다. ‘많이 더 많이, 크게 더 크게’를 추구하던 ‘디지털 맥시멀리스트’의 삶에서 벗어나,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삶의 가치에 도움이 되는 온라인 기기와 도구만을 신중하게 선택하는 기술 활용 전략이다. 최적화된 기술 활용을 위해서는 ‘부수적인 것’은 기꺼이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 신기술을 배척하는 것도, 아무 생각 없이 수용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원하는 삶을 위해서’라는 분명한 의도를 갖고 과감하게 가지치기를 할 줄 알아야 한다는 얘기다. ‘필수’와 ‘편리’를 혼동하면 안 된다. 편리를 가져다주는 기능이 모두 필수인 건 아니다.
  • 2019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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