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미니멀리즘

제주로 떠난 2박 3일 디지털 디톡스 체험기

후배가 물었다, “속세를 떠날 셈인가요?”

글·사진 : 서경리 기자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루에도 수백 번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나에게 ‘디지털 디톡스 체험’이라니. ‘디지털 디톡스’가 스페셜 이슈 주제로 거론되면서부터 불안했다. 뜨끔하기까지 했다. 스마트폰에 기록된 데이터를 찾아봤다. 5월의 마지막 날, 내가 스마트폰을 ‘깨운’ 횟수는 총 159회, 일주일 동안 총 824회였다. 나를 잘 아는 후배는 디지털 디톡스 체험을 선고(?)받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선배, 속세를 떠날 셈인가요?”

‘디지털 울트라 메가홀릭(아무튼 많이 쓴다는 뜻)’인 나에게 디지털 디톡스는 숨통을 조이는 것 이상이었다. 우선 나의 하루 스마트폰 사용 일지를 공개하자면 이렇다. 아침은 빽빽 울리는 스마트폰 알람으로 시작한다. 출근 시간을 두 시간여 앞두고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침대에 누워서 밤새 올라온 페이스북 피드를 열어보는 일. 일종의 아침 의식이랄까. 밤새 누군가 슬픈 일을 겪고 피드를 올렸을지도 모른다. ‘오지라퍼’의 하루는 그들을 ‘좋아요’로 위로(?)함으로써 시작한다.

그다음은 인스타그램에서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의 영상 혹은 짤방을 찾아보는 일이다. 이어 유튜브에서 BJ들의 시시콜콜 잡담을 보며 실실 웃다 보면 한 시간이 후딱이다. 퇴근 후에는 냉장고에서 시원한 맥주를 꺼내 어포를 뜯어 가지런히 놓고 소파에 앉아 경건한 마음으로 웹툰과 넷플릭스 정주행에 들어간다. 언제까지? 동틀 때까지!

스마트폰은 이름만큼이나 똑똑하다. 이 녀석과 하루 종일 같이 있으면 심심할 틈이 없다. 가끔은 먼저 말도 걸어온다. ‘경리님, V라이브에 새로운 영상이 올라 왔습니다.’ 부장은 나의 이런 사생활을 꿰뚫은 듯 말한다.

“경리 씨가 한번 해볼래? 디지털 디톡스!”

스마트폰 없이 살아보는 2박 3일이 시작됐다.



스마트폰 없이 바다는 어찌 가고,
숙소까지는 어찌 가리오


제주행 비행기에서 작은 귀마개를 꺼내 들었다. 철저한 준비성을 ‘셀프’ 칭찬하며. 건너편 탑승객은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있었다.
누군가 말했다. 디지털 디톡스를 체험하기에 제주도만 한 곳은 없다고. 디지털 기기가 없어도 살 수 있는 여유로운 삶, 파란 하늘과 바다가 어우러진 환상의 섬. 이보다 더 멋진 조합이 있을까. ‘휴대폰 전원은 잠시 꺼두세요. 자연을 느껴보아요’라며 숲길을 산책하고 바다에서 요가 하고 밤이 되면 책을 읽겠지. 불편하지만 마음은 평온했다고 말할 거야. 그렇다. 제주도에서 디톡스 체험은 뻔해 보였다. 나도 뻔해 보이는 일정을 계획해봤다. 1일 차에 요가를, 2일 차에 숲길 체험을.

그런데 곳곳에서 난관을 만났다. 스마트폰 없이 바다까지 어떻게 가고, 요가는 누구와 하며, 무엇보다 숙소까지 찾아가는 방법은 어찌 알리오. 숙소 찾기부터 문제였다. 버스를 타야 하는데, 버스 시간표를 앞에 두고도 시간을 몰라 난감한 상황. 스마트폰으로 시계 보는 데 익숙해 손목시계를 챙기는 것도 깜빡했다. 숙소 사장님에게 제주도에 도착했다 알리고 가는 방법을 물어보기로 했다. 하는 수 없지. 스마트폰을 꺼낼 수밖에.

운명일까. 디지털 디톡스 체험을 떠나기 전날, 스마트폰을 떨어트려 액정이 깨졌다.
부득이하게 스마트폰을 꺼낸 목적은 두 가지다. 시간 확인과 숙소 사장님에게 전화하기. 그런데 나도 모르게 ‘F’가 적힌 파란색 아이콘으로 손이 갔다. 눈을 가늘게 뜨고 본 지인들의 피드 사이로 한 연예 매체의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이주연, 지드래곤과 열애설… SNS 영상 게재 후 삭제 왜?’ 왜라니, 왜? 궁금했다. 현기증 날 만큼.

제주도에서의 디지털 디톡스 체험을 작정했을 때부터 ‘Wish List’에 숲길 산책과 바다에서 요가 하기를 올려뒀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본 이효리의 일상이 내심 부러웠던 터다. 바다로 향하는 길, 설레는 마음 뒤로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스마트폰이 없으면 셀카는 어떻게 찍지? 카카오톡도 못 쓰고 SNS도 안 되면 어디다 자랑해?’ 수다쟁이에게 소셜 네트워킹을 차단하는 디지털 디톡스는 고문과 같았다.

해질 무렵 제주도 바닷가에서 요가를. 내가 스마트폰을 꺼둔 사이 누군가는 스마트폰으로 이 장면을 찍어 SNS에 올리겠지. #제주도_요가_민폐녀 #지들이_이효리인 줄_아나 봄.
첫날 디지털 디톡스 체험은 완전 실패다. 제주도는 생각보다 크고, 숙소에서 바닷가 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무작정 걷기에는 지도도 없고 방향도 몰랐다. 결국 또 스마트폰을 꺼내야 했다. 숙소 근처 요가 강사를 찾아보기 위해 인터넷을 검색하고, 바닷가로 가기 위해 카카오톡 택시 앱을 사용했다. 디지털 기기 사용 ‘제로’를 목표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하루 중 스마트폰을 열어본 횟수만 118회, 사용 시간도 네 시간 반이나 됐다. 요가를 체험하고 돌아온 숙소에서 자괴감에 빠졌다. 내가 이러자고 제주도까지 왔나.

밤은 깊어오고, 와이파이는 안 되는 숙소에서 멀뚱거리다 뜨개바늘을 집어 들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모여 앉아 뜨개질하며 제주도에 오게 된 저마다의 사연을 두런두런 나눴다. 바늘이 털실을 하나하나 꿰어가는 동안 저마다의 사연도 실에 딸려 왔다. 뜨개질은 밤을 지새우기에 꽤 괜찮은 도구였다.
숙소로 잡은 ‘하다 북스테이’는 서귀포 서쪽, 서광리 돌담을 따라 들어가는 마을 한가운데 있었다. 숙소 이름 ‘하다’에는 ‘실천하다’라는 의미가 있다. 사회 문제와 환경에 관심이 많은 주인장이 책에서 읽은 대로 실천하며 살자는 뜻으로 지은 이름이다. ‘북스테이’라는 콘셉트도 마음에 들었다. 탁월한 선택 같았다. 신축이라 아직 와이파이 설치를 안 했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진 말이다. ‘와이파이가 없어. 와이파이가!’ 몰래 가방에 넣고 간 노트북이 무용지물이 되는 순간이었다.



아, 아름답다!
으… 사진 찍고 싶다!


디지털 디톡스 체험 2일 차. 여전히 머리맡에는 스마트폰이 빵빵하게 충전되고 있다.
어제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은 아침부터 위기를 맞았다. 밤사이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비해 켜둔 스마트폰이 우렁차게 알람을 울려댔다. 눈을 뜨자마자 습관처런 ‘파랑새’ 아이콘을 눌렀다. ‘아차’ 싶어 내려놨을 땐 벌써 서너 개의 피드를 읽고 난 뒤였다. 눈물을 머금고 스마트폰의 전원을 껐다. 스크린타임을 보니 소셜 네트워킹 2분, 메시지 9초, 알람 6초, 사용량이 총 5분을 넘기지 않았다. 순조로운 시작이다. 스마트폰 화면을 깨운 횟수가 6회인 건 비밀.

숙소에서 조식을 먹으며 오랜만에 아침 여유를 부려본다. 우연히 잡아 든 책은 김훈의 《연필로 쓰기》. “연필은 내 밥벌이의 도구다. 글자는 나의 실핏줄이다.” 연필로 밑줄 그으며 음미해본다.
숙소 주인에게 디지털 디톡스 체험 중이라는 사정을 설명하고 치유의 숲에 가고 싶다고 도움을 청했다. 주인은 난감해하며 치유의 숲이 예약제로 운영된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어쩔 수 없지. 치유의 숲을 예약하려면 인터넷에 접속할 수밖에. 지금 생각해보면 ‘114’에 번호를 문의해도 됐지만, 평소 모든 정보를 인터넷에서 얻어온 나에게 그런 방법이 떠오를 리 만무하다. 습관이 이렇게 무섭다. 익숙하게 사용하던 물건이 바로 옆에 없다는 건 퍽 난감한 일이다.

안 쓰던 연필로 하루를 기록하다 보니 스마트폰 메모장이 그리워졌다. 손이 저릿저릿해 노트 한 바닥을 채우기도 힘들었다. 대신 연필로 쓰면 속도가 느려 한 자 한 자 생각하며 쓸 수 있었다. 지우개로 지우지 않는 한, 이 글자는 흰 종이에 검은색으로 각인돼 오래도록 내 기억 속 이미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치유의 숲’은 디지털 디톡스를 체험하기에 최적의 환경을 갖췄다. 숲속이라 전파가 잘 안 터질 뿐만 아니라 볼 게 많다. 나뭇가지를 흔들며 지나는 바람, 촉촉하게 젖은 흙, 온몸 구석구석 자연이 파고든다. 하늘로 쭉쭉 뻗은 삼나무 울창한 숲에 누워 눈을 감고 있으니 오감이 깨어나는 기분이다. 바로 옆에는 모녀가 기다란 의자에 기대 앉아 책을 읽고 있다. 그 모습이 아름다워 나도 모르게 스마트폰을 열고 사진을 찍었다. ‘아차, 지금 디지털 디톡스 중이지!’



치유의 숲에서 책을 읽는 사람들. 자연이 주는 선물 그 자체인 제주도는 디지털에서 벗어나 그 풍광 속으로 빠져들기에 최적의 장소이면서 동시에 스마트폰을 갈구하게 만드는, 디지털 디톡스에 가장 사악한 곳이기도 하다. 사진을 찍어 SNS에 자랑하고 싶은 풍경이 곳곳에 널려 있으니까.
숲에서 나오며 그 기운을 담아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마트폰이 없으니 누군가와 수다를 떨 수도 없고, 누군가의 수다(피드)를 읽을 수도 없다. 갑자기 하루에 커다란 구멍이 생긴 듯 허전했다. 그 빈틈을 메워준 건 창작 욕구다.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한 잔 시키고 창가 좋은 자리에 앉았다. 이 정도 기분이면 뭐든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연필을 든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시상이 떠오른다. 시가, 글이… 갑자기 졸음이 쏟아진다. 역시 스마트폰 없는 하루는 지루하구나, 새삼 깨달으며 준비해 간 즉석카메라로 카페 풍경을 담아본다.



디지털 다이어트
우선순위가 보이기 시작했다


디지털 디톡스 체험을 시작한 금요일부터 일주일간의 스크린타임 기록. 디톡스 체험은 금·토·일 2박 3일간 진행됐다. 첫날 사용 시간은 다섯 시간. 그러나 디지털 디톡스 체험 이후 스마트폰 사용 시간이 현저히 낮아진 게 보이는지. 물론 그 효과는 그리 길지 않았다. 일주일 만에 사용량이 1.5배 더 늘었으니 말이다.
아침 일찍 필라테스를 다녀왔다. 온몸의 근육이 다 놀란 듯 뻐근했다. 디지털을 끊으라는 말에 떠올린 게 고작 요가와 필라테스라니. 식상한 선택이지만, 내 하루에서 기름을 뺀다는 점에서 탁월했다. 땀으로 육수 한 사발은 덜어냈으니 말이다. 독특한 것은 필라테스를 끝내고 체험한 ‘사운드 테라피’다. 조용한 숲에 누워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니 온몸이 노곤해지며 땅속 깊이 빨려 들어가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들었다.

2박 3일 디지털 디톡스 체험이 과연 나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이런저런 생각이 파도에 파도를 타고 밀려들었다. 그때 ‘땡’ 하고 체험 종료를 알리는 종이 울린다. 이제 서울로 돌아가야 할 때다.

즉석카메라에 담은 ‘수다스러운 하루’.
조용히 홀로 앉아 책 읽기 좋은 민박집 푹신한 소파, 길에서 따 먹은 산딸기와 아침에 먹은 소시지, 거품이 소복한 커피 그리고 저녁노을.
서울로 향하는 비행기 안. 내가 스마트폰에서 자주 사용하는 기능이 무엇인지 떠올려봤다. 전화, 카메라, 알람, 시계, 인터넷 검색, SNS, 동영상 검색, 내비게이션, 은행, 게임….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살펴보니 절반 이상, 아니 80% 이상을 소셜 네트워킹에 쓰고 있었다. 디지털 다이어트를 한다면 가장 먼저 줄여야 할 부분이다. 디지털 기기의 편리함을 누리면서도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무엇부터 해야 할지 조금씩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3일 차에 겨우!

습관처럼 보던 스마트폰의 횟수는 첫날 총 118회에서 60회로 반 정도 줄었다. 시간당 스마트폰 사용량은 4회. 전화 또는 문자, 카카오톡 알림을 제하면 50회 미만으로 스마트폰을 열었다는 거다. 이 정도면 꽤 만족스러운 결과다.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속세를 떠날 셈이냐고 물었던 후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어디냐, 나 돌아왔다.’ 한참 뒤에 답이 왔다. ‘수다 들어줄게, 어서 와요.’ 갑자기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하고 올라왔다. 2박 3일 동안 제일 그리웠던 건 스마트폰을 쓸 수 있는 나의 일상인 줄 알았다. 어쩌면 나는 스마트폰이 아닌, 사람이 그리웠던 건 아닐까. 생각보다 쉽게 디지털 디톡스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 2019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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