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와 그들

BTS의 길을 만든 사람들 |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대표 방시혁

방탄소년단의 아버지

너 자신의 이야기를 해라. 자유롭게
©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이제는 노래와 춤, 연기는 물론 연주와 작곡까지 겸하는 뮤지션돌이 등장할 것이다.”

방시혁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대표(47)가 2011년 4월, 모교인 서울대 ‘언론정보문화 포럼시리즈’ 강연 중 한 말이다. ‘아이돌’이 아닌 ‘뮤지션돌’의 등장을 알리는 서막이었다. 그리고 2년 후인 2013년 6월 13일, ‘완전체 아이돌’이자 기존에 없던 뮤지션돌인 7인의 방탄소년단(BTS)이 등장했다. 방탄소년단은 머나먼 별에서 반짝이는 ‘스타’라기보다 ‘우리 시대의 친구들’에 가깝다. 닿을 수 없는 신비스러운 별종이 아니라, 나와 비슷한 일상을 살아가는 ‘내 곁의 스타’. 탄탄한 음악적 실력에 노래나 춤은 말할 것도 없고 SNS를 통해 공개되는 일상 속 인성까지,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는 완전체인 이들은 확실히 달랐다. 기존에 없던, 새로운 유형의 스타였다.

방시혁 대표는 방탄소년단을 기획하고 육성해, 콧대 높은 미국 주류 음악계를 주름잡는 그룹으로 우뚝 서게 한 주역이다. 그래서 ‘방탄소년단의 아버지’로 불리지만 스스로는 이 수식어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아티스트란 누군가가 창조하는 것이 아닌데, 내가 아버지라고 불리는 순간 방탄소년단이 객체가 되기 때문에 내 음악적 철학과 맞지 않아 불편하다”는 게 이유다. 하지만 이보다 더 적확한 표현을 아직까지는 발견하지 못했다.


하루 종일 책만 보던 아이,
“나를 키운 건 분노와 불만”


방시혁 대표는 지독한 독서광이었다. 그의 아버지 방극윤 전 근로복지공단 이사장(80)은 그를 “어릴 때 자기 방에서 하루 종일 책만 읽던 아이”로 기억한다. 영특해서 다섯 살 때 한글을 깨쳤고, 중학교 때까지 웬만한 청소년 고전은 다 탐독했다고 한다. 책을 좋아하던 아이는 서울대학교 미학과에 입학했고, 인문대학 차석으로 졸업했다.

방 대표 스스로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몰랐던, 꿈이 없던 아이”로 기억하지만, 지나온 여정 곳곳에 음악적 열정과 성취가 녹아들어 있다. 음악에 처음 눈뜬 건 중학교 때다. 아버지가 사준 기타를 접하면서 음악에 빠졌고, 밴드를 결성해 이때부터 직접 곡을 썼다. 고등학교 때는 입시 준비로 잠시 음악에서 멀어졌다가, 대학 들어가서 작곡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대학 재학 중인 1994년엔 제6회 유재하가요제에서 동상을 수상했다. 프로듀서로서는 비 ‘나쁜 남자’, 백지영 ‘총 맞은 것처럼’ ‘내 귀에 캔디’, 다비치 ‘시간아 멈춰라’, 2AM ‘죽어도 못 보내’ 등 주옥같은 히트곡을 탄생시켰다.

프로듀서의 길을 열어준 건 박진영 JYP 대표다. 방시혁은 1997년 박진영이 설립한 연예기획사(JYP의 전신)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프로듀서의 길을 걸었다. 그는 “프로듀서의 모든 것을 진영이 형으로부터 배웠다”고 말한다. 두 사람의 파트너십은 여전하다. 음악적인 협업은 물론 인간적인 유대도 여전하다. BTS가 처음 빌보드에서 수상했을 때 그가 가장 먼저 통화한 사람도 박진영이었다.

방시혁 대표는 스스로의 성공 비결을 ‘분노’와 ‘불만’이라고 말한다. 2019년 2월 서울대 졸업식 축사에서 그는 “나는 꿈은 없지만, 불만이 엄청 많은 사람이었다”고 털어놨다. 그 불만, 즉 음악 사업이 안고 있는 악습들, 불공정 거래 관행, 사회적 저평가를 개선하기 위해 분노하고 싸우는 것이 자신의 소명이라고 했다. 2005년, 그의 나이 서른셋에 설립한 빅히트엔터테이먼트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이자 무대였다. 기존 관행에 타협하지 않고, 산업적으로 의미 있는 음악 생태계를 만들고자 하는 열망은 그에게 미래지향적인 시각을 갖게 했다.

‘자발성’을 강조한 방탄소년단도 이런 시선의 산물이다. 모든 곡을 멤버 스스로 작사·작곡 하면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음악에 녹여내는 아이돌, 화려한 무대 뒤 잠에서 깬 부스스한 일상을 낱낱이 공개하는 아이돌은 처음이었다. 무엇보다 1년 후, 3년 후를 내다본 긴 호흡의 서사를 지닌 음악적 앨범은 처음이었다. 각각의 앨범이 독자적인 완성도를 가지면서도 앞뒤로 유기적 관계를 갖는 아이돌 앨범도 처음이었다. 이 모든 것은 방시혁 대표의 빅 피처 안에서 가능했다.
  • 2019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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